노  중  선(통일뉴스 논설위원)

지난 해 남과 북의 정상이 평양에서 만나 발표한 `6.15남북공동선언`에서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으로 통일지향, 인도적 문제 조속 해결, 경제협력과 제반분야의 교류활성화를 합의하고 이 같은 합의 사항들을 조속히 실천하기 위하여 당국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했었다.

이에 따라 지난해 7월말 서울에서 첫 번째 남북장관급 회담이 열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모두 4차례의 회담을 열어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간 현안문제에 대해 협의하고 합의사항들을 공동보도문으로 발표하였다.

남북장관급 회담은 남북공동선언의 이행과 실천과정에서 제기되는 제반문제를 협의·해결하는 중심적 협의체다. 그리하여 그 동안 남북적십자회담, 남북국방장관회담, 남북경협실무접촉 등 여러 분야의 회담들에서 합의된 사항들의 이행을 총괄 및 조정하고 지원해 나가는 역할을 해왔다.

이렇게 볼 때 지난 3월 13일로 예정되었던 제5차 남북장관급 회담이 개최되지 못한 것은 6.15남북공동선언의 실천이 중단되는 사태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번 남북장관급 회담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문제,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조치와 같은 비중 있는 현안들이 중점 논의될 것으로 기대됐었다.

그러나 개최예정 당일 북측의 일방적 불참통보에 의해 열리지 못했고, 정부 당국은 조만간 재개될 것이라는 희망적 관망만 할 뿐 지금까지 그 정확한 내막은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미국의 반북적 대북 정책에 대한 이북 당국의 반발 작용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실제로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미 고위정책 담당자들은 경쟁이나 하듯이 `국가미사일방어체제 지속 추진 방침`, `태평양에서 미국의 제1 적국은 북한` 이라는 식의 적대적 입장을 표명했다. 이는 지난 해 10월 `적대감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라는 북·미공동성명 조차 무색케 하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북 당국은 "남한 당국이 아무런 자주성도 없으며 미국에 철저히 예속돼 있다"고 불만을 나타낸 뒤 이어 "미 행정부가 어떻게 나오든 우리의 민족적 존엄을 조금이라도 건드리거나 우리를 모욕하고 위협하려는 `바스락`소리만 내도 우리의 분노는 삽시간에 복수의 불소나기로 답할 것"이라며 주저없이 저항의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들을 감안하여 우리 모두는 이 기회에 남북장관급 회담에 관해 올바르게 인식할 필요가 있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남북장관급 회담은 단순한 남북접촉의 한 형태가 아니라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의 구체적 실천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남북장관급 회담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은 곧 6.15남북공동선언 실천의 정지를 뜻한다.

둘째, 남북장관급 회담은 남북화해를 도모하고 민족의 자주적 통일을 위한 회담이다. 따라서 남북장관급 회담에서는 민족화해를 저해하거나 민족 자주적 통일의 장애물이 되고 있는 걸림돌들을 제거하는 문제가 합의되어야 한다.

셋째, 남북장관급 회담이 정상적이고 발전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북미관계가 개선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합의된 북미간 합의사항들은 어김없이 지켜져야 하고 미 행정부의 반북적 대결정책은 중지되어야 한다.

넷째, 남북장관급 회담은 회담진행 과정에서 민족공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민족공조가 이루어지지 않는 남북장관급 회담에서는 민족화해와 대단결, 그리고 그 같은 민족적 단합을 통한 민족의 자주를 실현해 낼 수가 없다.

지금 남북장관급 회담의 재개 여부는 민족구성원 모두의 커다란 관심사가 되고 있다. 물론 남북장관급 회담은 하루빨리 재개되어야 한다. 그러나 민족화해를 저해하는 걸림돌의 제거, 북미관계의 개선, 민족공조와 같은 요건들이 충족된 상태에서 남북장관급 회담이 이어져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한 채 회담이 진행된다면 남과 북의 평화적 공존을 이끌어내는 일은 가능할 지 모르지만 민족의 자주적 통일을 이루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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