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길(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지난 20일 개성공단관리위원회 개소식과 시범단지 입주기업 공장 착공식 참가를 위해 개성에 다녀왔다.

28,000평 규모의 시범단지에서는 공장건물 공사가 시작됐고, 총 100만평 규모의 1단계 단지는 부지정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남북경협과 화해협력의 심장부가 될 개성의 미래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개성공단 활성화라는 장밋빛 미래를 만들기 위해 넘어야 할 장애물도 만만치 않은 게 사실이다.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전략물자반출통제제도 역시 그 중 하나다.

10월 21일 현재 15개 입주예정 기업 가운데 2개 기업(제씨콤, 재영솔루텍)이 개성에 가지고 갈 설비가 전략물자반출통제에 걸려 통일부로부터 협력사업 승인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통일부와 해당 2개 기업은 뾰족한 해법 없이 ‘판정보류’ 물자에 대한 미 상무성의 검토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다. 해법은 없는 것인가?

미국 측에 해외대체원 제도 적용을 촉구해야

전혀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 정부는 미국 측에 상무성 해외대체원(海外代替源) 제도의 적극적 적용을 촉구해야 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미 상무성은 1979년의 수출관리법(1979 EAA)에 기초한 수출관리법령(EAR)을 통해 암호화제품, 항공부품, 통신장비, 컴퓨터, 공작기계 등의 대북 수출을 막고 있으며, 외국기업이 미국산 부품과 기술이 10%이상 들어간 물품을 북에 재수출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7월부터 15개 업체가 가지고 갈 1,200여 개 이상의 물자에 대한 심사를 미국 측에 요청한 것도 바로 이러한 수출관리법령들 때문이다.

문제는 미 상무성이 해당 물자의 대북반출 불가 결정을 내릴 때 정부가 오히려 이 부담을 사실상 기업 측에 떠넘기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통일부는 10월 19일에 ㈜로만손과 ㈜TS정밀 2개 기업에 대해 남북 협력사업을 추가로 승인했지만 이들 업체는 반출예정물자 중 일부 품목의 전략물자 해당 가능성이 제기된 이후 심사 과정에서 해당품목을 다른 품목으로 교체하거나 반출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함으로써 협력사업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계속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개성공단의 성공은 어렵다. 미국이 문제된다고 할 때마다 그 때 그 때 설비자재를 바꿔가면서 개성에 진출하면 어떻게 제대로 된 생산을 할 수 있겠는가?

미국은 1985년에 수출관리법을 개정(1985 EAAA)하면서 상무성 산하에 해외대체원국(海外代替源局)을 신설해 수출규제 시 해외대체원의 존재와 정도여부를 충분히 고려하도록 했다.

수출규제대상물을 규제대상국가가 해외에서 구할 수 있는 경우 미국의 국익에 유해하다고 대통령이 결정하지 않는 한 상무성은 수출허가를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은 이미 중국의 판다전자집단유한공사와 북의 전자공업성이 합자한 ‘아침판다컴퓨터합영회사’에서 미국의 대북 수출통제물자인 펜티엄Ⅳ급 아침-판다PC를 조립생산하고 있다.

일종의 ‘대체원’을 마련한 셈이다. 2002년 라선시에서 시작된 이동통신사업도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어 통신설비에 대한 반출통제도 점차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정부가 진정 개성공단의 성공을 바란다면 북의 해외대체원 현황을 조사하고 아울러 진출하려는 기업에게도 이러한 제도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개성공단 활성화를 바라는 시민단체들 역시 북의 컴퓨터 국산화 등을 예로 들면서 정부에게 현재 미국 측과 진행 중인 물자반출협의에서 해외대체원 제도의 적용을 적극 주장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략물자반출제도를 법규 정비해야

둘째, 정부는 국내의 전략물자반출제도를 법규 정비를 통해 ‘통일지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한국이 1996년 4월 가입한 바세나르체제는 전략물자의 수출입통제를 개별회원국의 ‘고유한 권한’으로 인정하고 있고, 통제품목을 수출했을 경우 회원국에게 사후에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

따라서 미국의 수출관리법(EAA)이나 수출관리령(EAR)에 관계되지 않는 경우라면 통제물자의 대북반출을 가로막는 ‘외부적’ 장애물은 없는 것이다.

실제 정부가 미국에 심사를 부탁한 15개 업체의 모든 반출물자들이 100% 미국산이거나 미국산 부품.기술이 10%이상 들어간 물자들인지는 반드시 따져볼 문제다.

만약 미국의 수출관리법령과 관계없는 물자들까지 반출심사요청을 ‘알아서’ 했다면 이는 바세나르체제가 회원국에 부여한 고유한 권한을 미국에 양도한 셈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개성공단 활성화를 위해 전략물자 반출승인제도를 북에 대해 예외적으로 ‘신고제’로 운영하면서 동시에 신고에 대한 통일부 내 독자적인 심사.관리능력을 강화해 남북 공동번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물자반출반입을 관리해야 한다.

국내 법규조차 개성공단 성공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정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과 국제사회에 남북관계의 특수성이나 최종사용권자가 남쪽 기업임을 설명하는 정부의 행동은 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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