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섭(화가/ynano@hanmail.net)


역동성과 예술

우리 사회는 역동적으로 변화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생활전반에 걸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이런 변화의 바람을 예견한 사상가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이런 변화를 거부하며 과거의 낡은 가치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고, 방향을 잡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지식인도 있다. 또한 변화의 바람은 거세지만 당장 몸으로 느끼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눈앞에 당장의 이익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해 변화를 막으려는 정치인도 있다. 경제와 혼란이라는 이유가 그것이다. 하지만 경제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낡은 구조와 방식이며, 혼란은 자기들만의 정신적 충격에 다름 아니다.

당장의 이익보다는 지속적이며 큰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행각은 국민을 초등학생 수준으로 얕잡아 보는 데 기인한다. 이들은 국민을 이용할 줄만 알았지 위할 줄은 모르는 사이비 정치가이다.

세상을 바꾸는 역동적인 바람은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을 요구한다. 위선과 기만의 껍데기도 벗어야 하고, 깊숙이 숨겨둔 욕망과 정체도 낱낱이 드러내기를 바란다. 정치인도 가식을 벗어야 하고, 지식인도 얄팍한 허울을 벗어야 한다. 정체를 속속 드러내는 지식인이나 정치인을 보면서 거센 바람의 위력을 실감한다.

하지만 이런 바람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국민의 요구이다. 국민의 실천이다.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만들어 가는 바람이 아니다. 국민은 만드는 바람에 자신의 몸을 맡기지 않으면 쓸려가 버린다.

그동안 정치인, 부자, 군인, 지식인, 전문가들이 독점해온 여러 가치들을 대중들이 빼앗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인은 나라를 부패하게 만들었고, 부자는 사람들의 꿈을 빼앗고 나라 경제를 거지꼴로 만들었다. 군인은 국민을 학살했고, 지식인은 사람들의 생각을 오염시켰으며, 전문가는 대중을 위협하고 겁주고 수동적으로 만들었다. 지금까지는 이들이 만든 허접한 문화와 가치를 쫒아가기 바빴다.

이런 환경에서는 대중이 올바른 삶을 꿈꿀 수 없다. 절대 다수의 대중은 그저 질질 끌려갈 뿐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대중의 창조성과 능동성이 있어야 한다. 역동적인 대중의 시대가 되어야 가능하다.

대중이 참여하지 않는 어떤 가치도 성공할 수 없다. 올바른 가치나 행위는 문화가 되어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 속으로 녹아야 그 힘을 발휘한다. 위기를 극복하고 높은 단계로 발전하기 위한 대중의 창조력도 마찬가지이다.

창조성의 뿌리는 문화와 예술이다. 또한 예술은 새로운 시대정신과 만나 창조성을 증폭시킨다. 예술은 비반복적이고, 낡은 과거를 되풀이 하지 않는다. 철저히 미래 지향적이다.

나는 우리 국민의 가슴속에 이글거리는 예술적 감성과 본성을 본다. 그동안 억눌리고 감춰왔던 예술적 끼(氣)가 분출되고 있음을 본다. 지금까지 새로움을 향한 모둔 운동은 예술과 관계를 맺어왔다. 예술과 결합되지 않고 칙칙한 골방에서, 혹은 살벌한 구호로 가득한 운동은 실패했다.

붉은 악마의 율동과 음악과 파도타기와 화려한 색상과 특이한 분장, 촛불을 든 사람들의 춤과 노래와 신명, 긍정성과 흥겨움, 그 속에서 대중들이 분출하는 역동적인 바람이 분다. 울분과 절규와 폭력은 춤과 노래와 율동과 미술과 퍼포먼스로 녹여 내여야 비로소 대중이 마음을 움직인다. 예술과 함께하는 운동방식은 그 자체가 새로움이고 충격이다.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대중의 방식이다.

대중의 시대는 예술의 시대와 함께 온다.


대중예술의 나라

▶우리도 한몫/리경일/템페라/2002
북한은 대중예술의 나라이다. 우리가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이 단순히 정치, 사상적인 문제로만 국한시키기 때문에 북한체제의 특수성을 놓친다. 북한을 방문했던 어떤 미술평론가는 평양을 거대한 기념비조각의 도시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방문자들에게 반드시 수준 높은 공연을 보여주는 것도 북한의 특징이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북한 예술단의 공연은 국민을 감탄과 경악으로 몰아넣었다. 10만 명이 참가한 거대한 집체극을 만들고, 일상생활에서 크고 작은 예술 공연이 끊이지 않는다. 공사장이나 군대, 농사일에는 어김없이 노래와 악기와 그림과 춤이 등장한다.

북한의 명절 때는 수만 명이 광장으로 나와 춤을 춘다. 아이들은 모두 한 가지 이상의 악기를 다루도록 교육한다. 독재자의 총칼로 북한 인민을 억압한다는 논리와 이런 현상은 양립되기 어렵다. 예술과 억압은 반대되는 개념에 가깝기 때문이다.

북한의 예술은 예술가나 평론가 혹은 소수의 전문가를 위한 것이 아니다. 철저히 대중의 수준에 맞추어져 있다. 북한 노래나 춤, 혹은 미술작품을 자세히 보면 어떤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의 감성을 묘하게 건드리고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기교가 아주 뛰어나야 하며, 감동의 지점을 정확히 포착해야 한다.

공연자는 표정과 행동을 한껏 상기하고 과장하여 감상자의 시선을 모은다. 또한 고음과 미세한 율동과 리듬으로 감정을 고조시키며 끌고 간다. 공연자는 스스로 몰입하고 감동하기에 감상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여기에 웅장한 배경음악과 시시각각 바뀌는 무대장치가 더해지면 감상자의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없다.

미술작품도 마찬가지이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낭만적인 화면과 순간포착에 따른 긴장감, 그리고 밝고 화사한 색상과 무리 없는 분위기, 격앙된 주인공의 표정은 감상자의 닫힌 마음을 푸는데 제격이다. 또한 소재나 주제도 인민들의 일상생활에 찾아내 친근감과 편안함이 있다.

어떤 사람은 북한이 체제를 유지하는데 요소를 군사력, 사상성, 대중예술이라고 했다. 그만큼 예술이 북한 인민들의 생활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북한의 이런 문화와 예술은 충분히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특별히 템페라(tempera)로 그렸다. 템페라는 안료와 계란 노른자를 혼합해 그리는 불투명 수성물감이다. 그림을 그릴 때 계란 썩는 냄새와 색칠의 불편함 때문에 흔하게 사용하는 재료는 아니다.

아무튼 이 작품은 철도공사장을 찾은 어린이 위문공연단의 모습을 담고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간이무대 앞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이들의 표정은 밝고 앙증맞다. 간이 무대 뒤에는 지도하는 여선생이 보이고, 다음 공연자가 대기하고 있다. 멀리 배경에는 거대한 공사장이 보인다. <우리도 한몫>이라는 제목처럼 어린이 위문공연단은 철도 공사장에서 일하는 군인 건설자를 위로하고 기쁘게 하여 더욱 열심히 일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이 작품에는 몇 가지 재미있는 요소가 있다. 간이무대 뒤편에 보이는 ‘붉은기 휘날리...’까지만 보이는 글자는 이 공연의 제목이다. 우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와 비슷해 재미있다.

물론 ‘붉은 기’는 북한의 인공기를 뜻하는 동시에 북한혁명의 상징이다. 또한 공연하는 어린이를 주된 형상으로 잡다보니 관객의 모습을 표현하지 못했다. 자칫 아무도 없는 공연장이라고 오해할 것을 걱정한 화가는 화면 좌측에 관객의 모습을 그림자로 처리해 넣었다.

감상자를 위한 세밀한 자상함이 보인다. 그리고 공연예술을 또다시 미술로 표현하는 것도 재미 있다. 재미를 넘어서 조금 이상하고 불편함은 느껴진다. 나만의 생각인가? 그렇다면 나는 아직 대중의 마음과 정서를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 작품은 북한 인민들의 생활과 함께 호흡하는 북한예술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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