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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고구려사 왜곡이 주는 교훈-정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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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4.08.20  17: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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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랑(경희대 민주총동문회 회장/한샘학원 강사)


1.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동상이몽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날이 갈수록 노골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모습을 접하면서 민족적인 울분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거기에는 진보도 보수도 따로 없는 것 같고, 민족 세력과 반민족 세력의 구분도 없는 듯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을 보면 마치 오랜만에 전 민족이 하나가 되어 중국의 행태를 비판하는 데 한 목소리를 내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문제 역시 각 세력 사이에 첨예한 대립이 숨어 있다. 말하자면 지금 한 목소리처럼 들리는 것은 사실은 동상이몽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차이는 무엇이고, 그것은 무엇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것을 지양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중국의 대국주의는 물론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그것이 역사적으로 발현되는 것은 각 시기의 역사적 상황에 따라 다르다. 모든 대국은 침략 근성이 있고, 그것은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몰역사적인 발상이다. 이러한 몰역사적인 발상은 오늘의 문제를 희석시키고 왜곡시키는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대응에서 동상이몽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그토록 ‘세계화’를 부르짖고, 민족적인 것을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떠들던 반민족수구세력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에 기를 쓰면서 떠들어대는 까닭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감정적으로 몰아가면서 반미, 반일 감정을 반중 감정과 동일시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니 일부 수구언론은 그것을 넘어서 오히려 반중 감정을 확산시켜서 반미, 반일 감정을 누그러뜨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일본과 중국은 동일할 수가 없다.

미국과 일본은 제국주의 국가이다. 특히 미국은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우리나라에 심각한 압력과 간섭을 하고 있는 나라이다. 일본은 30여 년 동안 우리를 강점하였으면서도 그에 대한 청산을 전혀 하고 있지 않고, 미국을 추종하면서 새로운 침략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국가이다. 따라서 이들과 중국을 동일시하는 것은 우리 집에 들어와서 칼을 휘둘러 대고 있는 강도와 우리 집이 자기 집이라고 떠들면서 분위기를 잡고 있는 사기꾼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산적해 있는 많은 현안들 중 민족자주세력과 반민족수구세력 사이에 첨예한 견해의 대립이 없는 문제는 거의 없다. 하물며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와 같은 근본적인 역사 문제에서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민족자주세력은 하루바삐 이 문제에서 동상이몽을 깨뜨려야 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바라보는 민족자주의 관점과 반민족수구의 관점을 확연하게 구별해 내야 한다. 그래야만 동상이몽 속에 빠져서 반민족수구세력의 의도에 말려들지도 모를 대다수 사람들을 확실하게 민족자주의 관점에 서서 이 문제에 대처해 나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2. 중국의 역사는 ‘왜곡’의 역사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어제 오늘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하여 남북통일에 대비하여 만주를 지켜내려고 하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나왔다가, 이제 한발 더 나아가서 북한 지역을 차지하고자 하는 야욕에서 그리하는 것이라는 논리까지 등장하였다. 이러한 주장들이 완전히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자칫 음험한 세력들에 의해 이용될 수도 있는 논리라는 점을 냉철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그들의 오랜 대국주의적 ‘역사 왜곡’의 연장에서 보아야 한다. 사실 중국의 역사는 그 자체가 ‘왜곡’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천 년 전에 강대국이었던 나라 중에 지금도 강대국으로 행세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 이외에는 없다. 중국은 20세기 초기에 약간의 수모를 당하기는 하였지만, 그 뒤 공산화를 통해 내부 통일을 이루고 강력한 국가권력을 확립한 뒤 다시 강대국으로 부상하여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중국은 공산주의 이론을 국가 지도 이론으로 했던 마오 시대(모택동 시대)를 제외한다면 주변의 역사와 문화를 삼켜 가면서 ‘왜곡’시켜 왔던 것이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그것은 역사적 발전의 산물이다. 여러 부족국가가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또 그것들이 대립과 투쟁을 거치면서 결국 중앙집권적인 나라를 형성하는 것이다. 특히 중국과 같은 거대한 다민족국가는 많은 문화권들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어 왔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중국은 이러한 역사를 완전히 뒤바꾸어 버렸다. 거대한 중화가 있었고, 그 중화가 주변의 많은 ‘야만’들을 동화시켜 왔다고 보는 것이다. 중국의 이러한 왜곡은 많은 경우 성공해 왔다. 그러나 주변의 몇몇 민족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몽골과 베트남과 우리 민족이다. 그렇게 된 것은 세 민족 모두 오랜 역사를 가졌고, 강인한 자주 정신을 갖고 있었으며, 또한 중화 문화권이 형성되는 초기에 그에 맞먹는 강대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이 강대한 문화권이 바로 고조선이었다.

중국이 고조선을 자기 문화권으로 흡수해 버리려고 하는 ‘왜곡’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사실 고조선이 중국의 한(漢)나라에 비견해서 별로 뒤지지 않는 거대한 문화권을 형성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충분히 있다. 그러나 고조선은 안타깝게도 한나라에 패했다. 그리고 그 패배 뒤에 역사는 왜곡되었다. 중국은 결국 고조선의 역사를 ‘기자조선’이라고 하는 허구로 흡수해 버리려 한 것이다. 그러나 고조선의 문화는 결코 만만하게 중국에 동화되어 버릴 약체가 아니었다. 그리하여 부여와 고구려에 걸쳐서 ‘고조선 계승의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3. 외인(外因)은 내인(內因)을 통해 작용한다

우리는 모든 역사 현상을 접하고 분석할 때 ‘외인은 내인을 통해 작용한다’는 원칙을 준거로 삼아야 한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라고 하는 외인 역시 내인을 통해 작용한다. 고구려사를 왜곡하고자 하는 중국의 필요와 의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작용할 수 있는 내인이 없다면 혹은 취약하다면 중국의 기도는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 그것은 대단한 위력으로 우리 민족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중국이 고구려사를 왜곡하려고 하는 의도와 그 실상을 정확하게 아는 것 못지않게, 그것을 맞이하는 우리의 상태와 자세 또한 면밀하게 분석해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응되는 우리의 내인(內因)은 무엇일까?

우선, 고구려에 대해 감상적으로만 접하게 하는 잘못된 역사 인식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남한의 대다수 사람들은 고구려를 그저 만주 벌판을 휘저었던 광대한 나라로만 인식하여 왔다. 고구려가 우리 민족사에서 갖는 중요한 의미가 역사 연구 혹은 인식 속에서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구려를 감상적으로만 배우고, 실제의 역사는 ‘신라의 삼국통일’로 민족 정통성을 찾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것은 지난 시절 자유당 독재정권이나 군사독재정권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던 열등의식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서 이러한 경향은 상당 부분 수정되면서 발해의 존재가 부각되고,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고구려와 백제를 무너뜨린 전쟁의 결과를 ‘삼국통일’과 ‘남북국시대의 성립’이라는 얼마간 어정쩡하지만 그런대로 진일보한 평가를 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도 역사 교육의 위축으로 빛을 잃게 되었다. 대학에서 한국사가 교양과목에서 사라진 지 오래이며, 각종 고시에서 국사를 보지 않게 되었고, 심지어 고교 교육에서 국사와 근현대사가 분리되었고, 대학입시에서 국사까지 선택과목으로 되어 버렸다. 이러한 일들이 논란거리가 된 지 벌써 10년이 가까워 오건만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일부의 역사를 전공한 사람들 이외에는 거의 없었다.

이러한 모든 정책은 결코 우연히 나타난 현상은 아니며, 지난 정권들의 우민화 정책이 빚은 결과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어도 실제 교육당국의 핵심 관료들은 여전히 숭미사상에 찌든 자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역사를 자라나는 세대로부터 차단시키려는 기도가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정이니 중국의 역사 왜곡에 어떻게 대응을 하겠는가?

4.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민족대단결로만 대응할 수 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는 ‘제국주의 침략’이 아니라, ‘대국주의적 근성’이 빚은 ‘정신적 문화적 침탈’이다. 물론 그 근성은 매우 뿌리 깊은 것이고, 그것은 절대로 과소평가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당장의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침략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에 알맞은 대응을 해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중국에 대한 감정적 대응이 바로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침략자인 제국주의를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을 분열시키고자 하는 숱한 기도를 하였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리고 남한 정부와 일부 기업 및 몰지각한 사람들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이런 기도에 부화뇌동했던 일들도 있었다.

중국과 수교를 한 직후인 90년대 초에만 해도 연변 지방에 가서 공공연하게 ‘만주는 우리 땅’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심지어 ‘고토를 회복하자’라는 플래카드를 버스에 내걸고 돌아다니다가 제지를 당한 연예인 위문단도 있었다. 이런 일들은 모두 미국과 일본의 음흉한 의도와 그에 따라 날뛰는 자들의 어리석음이 빚은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감정적인 대응은 중국의 왜곡에 맞선 우리의 대응의 정당성을 훼손할 뿐이다. 그리고 제국주의에 맞선다는 구실로 중국측의 명분을 오히려 강화시켜 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의 문제는 역사로 대응해야 한다.

먼저, 뿌리 깊은 사대사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대사로부터 이어지는 우리 역사에 대한 관점을 근본적으로 재확립할 필요가 있다. 고조선을 계승한 고구려, 그리고 고구려를 계승한 그 뒤 우리의 민족국가라는 정통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민족민주진영 내에서도 확고한 인식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다음으로는, 그 역사적 과정에서 빚어진 사대주의에 대한 철저한 역사적 평가와 비판이 있어야 한다.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하는 고려조차도 발해를 역사로 편찬하지 않았음을 실학자 유득공이 ‘발해고’의 서문에서 비판한 것을 보면, 고려시대에도 비판할 점은 산적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뒤를 이은 조선이야 굳이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고려와 조선의 지난 역사를 모두 사대주의로 돌리는 ‘역사허무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실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고려와 조선의 관료들 중에서도 민족 자주의 관점을 세우기 위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노력한 사람들의 흔적은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런 과정이 이어지면서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대주의에 대한 평가와 비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근현대사에서의 친일, 친미 사대주의자들에 대한 죄과에 대한 규명과 비판이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도 결국에는 현재의 관점에 따라 분석하고 대응할 문제인 것이다. 이런 문제가 있게 된, 그리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된 원인에는, 외세의 침탈을 종식시키지 못한 우리의 책임이 크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친일에서 친미로 이어지는 외세의존세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역사 바로 세우기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것이다.

결국 올바른 역사관의 정립과 그릇된 역사관의 척결이라는 것들은 모두 민족대단결이라는 관점에서 해 나가야 한다. 같은 민족인 북한보다 외세인 미국과 일본을 더 친근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자들에 의해서는 절대로 올바른 역사관이 세워질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자들이 유포하는 사대주의적 역사관에 많은 사람들이 물들어 있는 한 민족의 역사가 올바로 세워질 수 없는 것이다.

남과 북이 힘을 합쳐서 대응을 한다는 실제적인 필요 때문에도 민족대단결의 관점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조선과 고구려를 잇는 우리 민족의 국가는 하나일 수밖에 없고,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생각이 민족 구성원 속에 심어져 있어야, 비로소 우리는 외세의 어떠한 역사 왜곡도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도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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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 2004-08-28 04:32:00

정해랑 선생님의 글은 중국의 의도에만 분노하여 감정이 앞섰던 제게 일종의 환기를 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남북이 단결해서 이 문제에 대처해나가야 하며, 기존의 잘못된 역사관을 바로 세우고,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해야 한다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글을 읽다 보니 한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습니다.

고구려사 문제의 경우 그 전에 어떤 역사인식을 하고 있었든지에 상관없이, 그리고 수구든 보수든 진보든, 아니면 매일매일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려 사는 소시민이든 누구를 막론하고 민족의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의 경우는 사소한 차이나, 아니면 내심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지를 떠나서 전 민족적으로 단결된 목소리를 모아내야만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고, 또 여기서 수구니 진보니 하는 논쟁을 들이댄다면 - 물론 선생님의 지적은 타당한 면이 있지만 - 오히려 이 기회를 활용하여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고, 남북의 단합을 보다 촉진시킬 수 있는 계기를 놓치게 되지 않을까요? 너무 수구라고, 보수라고, 친미라고, 친일이라고 몰아만 대시지 말고, 이번 기회에 한번 보듬는 것도 필요할 듯 합니다.

솔직히 만주에 가서 원래 우리 땅이었는데 라고 느낀 사람이 수구나 보수만은 아닐 듯 해서요.

그리고 미국을 위시한 제국주의 세력의 중국 분열 움직임에 부화뇌동해서는 안된다고 하셨는데, 제가 보기에 중국은 자체로 그런 것을 해결할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굳이 걱정해주지 않아도요. 그리고 철저히 실리에 따라 움직이는 중국은 이제 더 이상 북한의 혈맹이기를 스스로 거부합니다. 즉 과거 이데올로기에 따라 맺어진 동맹관계보다는 이제는 국가이익에 따라 '정상적 국가'관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현 단계 중국정부의 공유된 인식일 것입니다. 북한과의 관계보다도 중미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더욱 지향하는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언제든 우리 민족의 이익을 위협할 수 있는 나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주은래마저 북한에 많이 내줬다고 비판받는 실정이니까요..)

물론 미국식의 '중국위협론'에 휩쓸려서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해가 바뀌게 급속도로 탈냉전 시대의 강성대국을 지향하는 중국의 위험성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어야 할 듯 싶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중국의 논리를 무조건 편들어주기 보다는 그에 대한 절적한 외교적 지렛대를 갖는 것도 필요할 것 같고요, 그 지렛대를 반대로 일본과 미국을 향해 사용하면서 그 중심에 남북히 견고하게 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제 이해가 짧아서 선생님의 뜻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면 죄송합니다. 남북이 강대국 눈치를 볼 것 없이 그냥 남북끼리 문제 해결하고 통일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에, 보수와 진보로 갈리워 싸우는 남한을 보라면서 남한 내에서도 저런데 남북끼리 통일이 가능하겠냐는 외국인의 시각, 그리고 고구려나 독도 문제 조차 자리다툼으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국회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몇 자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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