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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두 눈물, ‘화씨 911’과 ‘심장에 남는 사람’ - 유동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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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4.08.12  14: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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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걸(영동여고 교사/전교조 통일위원회 사무국장)


2004년 여름이 뜨겁다. 그게 어디 날씨뿐이랴!

‘민족(民族)의 부활이냐 반공(反共)의 승리냐.’ 국가정체성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불평등과 억압의 근원인 외세, 자본과 평화,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세력간의 총성 없는 전쟁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1994년 전쟁위기를 딛고 형성된 제네바 합의를 깨려는 부시 미 행정부의 ‘북핵 파동’ 이후 3자, 6자회담을 거친 북핵 관련 회담은 거의 미국의 고립으로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 불가역적으로 완전검증이 가능한 사찰을 하고 싶은 미국의 희망사항은 리비아식 해법으로 변질되어 북측을 압박하지만 한낱 허튼 꿈에 불과할 뿐 미국은 앞으로도 계속 ‘어떤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공염불을 되뇌며 자신들의 전쟁의지를 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인권적인 기획탈북을 사주하는 무리들이 이른바 ‘북한인권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화씨 911’의 초기장면에 나오는 하원 흑인 의원들의 부시일가 부정선거에 대한 문제점 지적에 한 사람의 상원의원도 동조서명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국을 왜곡된 국가주의로 몰아넣은 전쟁광의 동조자들이 여전히 호전적으로 북의 붕괴를 유도하며 반인륜적 압살을 우리민족에게 자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스텔스기에서 ‘북한인권법안’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둑처럼 한민족을 압살하려는 ‘북핵-재배치-군사훈련-인권법안-기획탈북’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몸부림은 국가정체성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친일-반공-유신-독재-식민’의 긴 암흑터널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나라당의 애절한 몸짓과 겹쳐지면서 그 마지막 불꽃을 사르고 있다. 한미동맹을 불사르며 활활 타오르는 자주의 불꽃과 대조적으로 그들의 목소리는 쉬어 있고 지쳐 있다. 2005년 광복 60년과 함께 통일원년을 맞이하면 역사의 심판은 이제 친일을 넘어 반공과 식민성으로 이어질 것이다.

거짓을 불살라 진실을 살려내는 온도 ‘화씨 911’

방학을 맞아 7월 중순 금강산에서 ‘남북교육자통일대회’를 마치고 몇 차례의 연수와 여행을 거쳐 잠시 쉬는 틈을 타서 세기의 명작이라는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과 장기수와 함께 하는 북측 영화 상영마당에서 ‘심장에 남는 사람’을 하루에 보는 황감(惶感)한 시간을 가졌다.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나는 두 종류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볼링 포 콜럼바인’으로 미국 사회의 공포의 원형을 예리하게 짚어낸 바 있는 마이클 무어의 풍자극 ‘화씨 911’은 찰리 채플린 이후 최대의 희비극으로 다가왔다. 2001년 9월 11일. 성균관대 유림회관에서 분회장급 정도의 교사들이 모여서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우리 교육현실을 어떻게 유린하고 초토화시킬 것인가를 심각하게 듣고 집에 가는 길에서 9.11 소식을 들었다.

머리 속이 복잡한 가운데 다음 날 하루 종일 9.11의 본질과 의미가 무엇일가를 생각하던 나는 ‘케네디 같은 대통령을 죽인 놈들(미국내 군산복합체)이 무슨 짓을 못할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 아직 그 진실의 전체 내막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9.11 그 자체가 이미 언론을 매개로 한 ‘전세계 인류를 향한 미국의 테러’이며 계획과 실행과 처리의 주체 여부를 떠나 이미 수만의 무고한 이라크인과 미국인의 생명을 앗아가는 ‘악의 축’으로 변질되어 왔음을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인류는 알고 있다.

플로리다 주 부정선거를 통해 추악한 가문의 영광을 위한 불법을 마다않은 부시일가의 등장은 악귀의 상에 눈에 점을 찍는 점안(點眼) 바로 그것이었다.(부시와 딕 체니, 럼즈펠드, 월포위츠 그리고 곤돌리자 라이스의 얼굴을 잘 보라! 그들의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지옥도나 축생도에 나올 법한 짐승의 얼굴 바로 그것이다-짐승들이여 용서하시라!) 이어지는 9.11테러와 사우디 일가(빈 라덴 가문)와의 유착. 백악관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미국 경제의 7%를 장악한 사우디 가문과 미국 내 수구그룹의 정경유착 폭로가 무어의 2차 주장이다.

한 차례 조연으로 떠올랐다 사라진 빈 라덴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고 희생양은 9.11 이전부터 미국의 송유관 건설 사업의 걸림돌이었던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과 세계 제2산유국인 이라크와 그 대통령 사담 후세인으로 낙점되어 있었다. 역사란 우연의 산물도 신의 조화도 아닌 자본의 음흉한 기획이었다. 9.11 사건은 전쟁의 예고편이었으며 진짜 테러의 최대 주연은 부시였으며 빈 라덴과 후세인은 초라한 조연에 불과하고 무역센터 건물 속에서 스러져간 미국 내 서민들은 부시의 관점에서 보면 찢어져 바람에 어지럽게 흩날리는 종이조각 같은 가벼운 존재일 것이다. 무어가 살려내려는 진실의 열도는 그 말없이 죽어간 원혼들에 대한 연민에서 시작된다.

코드 옐로와 오렌지 혹은 레드를 오가며 테러경보를 죽끓듯 반복하는 공포조작가들의 언론 술수는 우리 사회에서 왜곡 조작을 밥 먹듯 하는 조선일보 문제와 함께 언어를 갖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이 지닌 숙명적인 과제다. 전세계인의 눈과 귀가 집중된 미국 선거 흐름이 큰 변동없이 흘러가는 걸 보면 ‘미국 사람 정말 대단해요!’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공포! 공포! 공포! ‘볼링 포 콜럼바인’이 우리에게 준 최대의 교훈은 ‘공포를 팔아먹는 언론’에 대한 자각 바로 그것이었다. 미국식 테러-공포의 식민지 판은 조선일보식 안보상업주의다. 불바다 발언을 이용한 평화의 댐 조작이나 진실을 알 수 없는 KAL858기 사건 및 각종 조작된 간첩단 사건이 우리 사회가 ‘작은 미국’임을 일깨운다.

수잔 손탁은 이미 우리가 접하는 어떤 언론도 이라크인이 직접 겪는 그 현실을 표현하지 못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우리 언론이 한 번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이라크의 현실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차마 눈뜨고 못 볼 살육의 현장 그것이었다. 하물며 이라크의 몇 배 군사를 보낸 살육전인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의 실상은 얼마나 끔찍했을 것인가.

나는 죽어간 이라크인의 시체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아니 흘릴 수가 없었다. 알라신에게 복수를 기원하는 한 이라크 어머니의 기도에 동의하기 힘들었지만 미국이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킨다면 나 또한 목숨을 걸고 총을 들 수밖에 없으리란 결의를 다졌다. 우리사회의 냉전적 내전은 군산업체의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양산하는 호전적인 세력에 의해 언제든지 군사무기 전쟁으로 불타오를 위험을 안고 있기에······

자본가들이 ‘빈곤의 재생산’을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는 무어의 현실인식이 다음으로 가슴을 울렸다. 실업률 상승(무어 고향은 실질 실업률이 50%에 육박한다)으로 경제위기가 조장되는 현실에서 국익과 부를 위해 우리의 가난한 젊은이들이 월남엘 다녀오고 이라크로 떠나는 현실 속에서 ‘가난한 자가 애국자가 되는’ 기막힌 현실 또한 미국과 우리가 다르지 않다는 게 슬프다. 미국의 위대함을 찬양하며 아들과 친척을 전장에 보냈다가 이라크에서 싸늘한 시신이 된 아들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는, 미국의 보수적 민주당지지자인 한 어머니의 각성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군수산업과 전쟁에 예산을 쏟아 붓느라 진정한 안보와 애국의 의미를 외면한 채 돈벌이에 열중하는 전쟁광 부시야말로 진짜 테러리스트라는 점이다. 또한 스스로 부시자신이 거짓을 비판하지만 부시 자신이야말로 거짓의 화신임을 암시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화씨 911’은 거짓을 불살라 진실을 살려내는 온도로서 충분하며 감독의 바람대로 부시 낙선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일어서려는 순간 터져나온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러나 나는 여전히 절망과 분노의 눈물을 흘릴 자격이 없는 사람인지 모른다. 진짜 현실의 진짜 눈물을······

장기수와 함께 본 ‘심장에 남는 사람’

영화 ‘송환’에서 뵈었던 장기수 어르신들과 함께 한자리에서 숨을 쉬고 탄식하며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하물며 그 영화가 남북 만남의 여운에는 항상 가슴을 울려주던 그 노래 ‘심장에 남는 사람’을 주제가로 유행시켰던 그 영화임에랴!

‘5·1절 남북노동자 대회’를 위한 평양방문에 참가했고 ‘6·15우리민족대회’에서 북측 동포들을 만났다. 7월 18일에서 20일까지 금강산에서 남북교육자들이 눈물겨운 상봉을 했다. 혈육의 정을 나누며 오열하는 이산가족만큼은 아니겠지만 수 십 년을 떨어져 살아온 분단의 아픔이 어디 이산가족뿐이겠는가. 평양에서 인천에서 금강산에서 감격의 상봉과 이별을 거듭하는 동안 나는 혼란스러웠고 방황했으며 나름대로의 길찾기에 골몰했다.

그러나 감격은 한 순간 뿐 남과 북의 경계에서 고뇌한다는 것이 서릿발 칼날 같은 그 위에 서서 삶을 던져야하는 전쟁포로나 장기수의 그것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땅 1평의 의미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살아온 나날이지만, 이 땅에 30년 이상을 채 한 평도 안되는 방에서 살아오신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은 앞으로의 정세와 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다시 누군가가 30년을 살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강제전향이나 미전향이 아니라 ‘비전향’이며 오히려 미송환(未送還)이라 해야 마땅한 20여 분의 장기수 어른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심장은 쿵쿵 울리고 있었다. ‘민족21’이 지난 6년 동안 꾸준히 진행해온 장기수들이 모여서 함께 울고 웃으며 보는 북측 영화 상영은 이미 80회에 육박했다고 한다. 나는 아직 ‘사상의 거처’를 제대로 찾지 못한 떠돌이로서 돌아갈 때와 곳을 발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심장에 남는 사람’은 그 답을 주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닌 영화였다.

2부작 가운데 1부 ‘언약’ 편을 보았다. 줄거리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학벌 좋고 엘리트인 남자친구(애인)로부터 청혼을 받은 한 여성 기자가 취재길에 나선다. 누군가의 추천 편지를 받고 그 대상인 타이어공장 초급 당비서를 찾아가는데 기차 안에서 만난 그 주인공은 취재를 포기하라고 충고한다. 공장에 가보니 활기가 넘치고 당비서에 대한 인민들의 존경심이 넘치는데 정작 당비서는 아직 취재 대상이 될 만큼 역할을 하지 못했으니 다시 돌아가라고 충고한다. 화가 난 여기자는 돌아가는데 그 길에 부비서가 나타나 자기가 추천의 편지를 보냈노라며 기자에게 당비서가 온 이후의 공장 변화와 의미를 이야기해준다.

홀아비 생활을 하는 두 아이의 아버지인 당비서는 형식적인 회의와 서류로 모든 것(가장 중요한 당의 결정조차)을 합리화하는 관행에 문제를 제기한다. 우선 스스로 노동자가 되어 일을 하면서 새로 접한 사회와 사람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동지 가운데 꼭 변화시키거나 이해해야할 사람들을 만나 당 사업에 함께 뛰어들 것을 권유하고 변화시킨다.

서류에만 파묻혀 일하는 노동자의 삶으로부터 멀어진 부비서를 깨우쳐주기도 하고 함께 합의한 강령이나 결정이 얼마나 소중하며 목숨을 걸고 바쳐야하는 순결한 약속인가를 ‘인민’들에게 호소력 있게 설득한다. 주인공 초급 당비서로부터 무안을 당하며 취재를 포기하려 했던 기자는 진심으로 그 당비서를 만나기 위해 다시 공장으로 향한다(1부 끝).

2부는 아마도 당비서의 다른 활약상이 펼쳐지면서 기자와 당비서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다. 한 달 후가 기다려진다. 하지만 영화 내용 못지않게 심금을 울리는 것은 바로 음악이다. ‘심장에 남는 사람’은 분단 이후 한 번도 심장을 노래한 적이 없는 남측 사람들에게 그 음률이나 가사만으로도 충분히 여운을 남긴다. 그렇다 우리가 언제 한 번 진정 뜨거운 심장의 피를 느끼며 살아본 적이 있었던가!

인생의 길에 상봉과 리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여진대도 헤여진대도
심장속에 남는 이 있네
아 ~ 그런 사람 나는 못잊어

오랜 세월을 같이 있어도
기억속에 없는 이 있고
잠간 만나도 잠간 만나도
심장속에 남는 이 있네
아 ~ 그런 사람 나는 귀중해

영화를 보는 내내 인민과 당을 위한 주인공 당비서의 열정과 헌신과 인간성에 사람들은 감복했다. 수십 년을 같은 심정으로 살아오신 장기수 어른들은 마치 당신들 신념이고 생활인 듯 바라보셨을 것이다. 우리 남측 사회에서 사회운동을 하는 어느 누가 저렇게 대상을 배려하면서도 공동체와 역사의 발전에 기여하는 운동을 할 것인가. 심장에 남는다는 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닐 듯싶었다.

‘심장에 남는 사람’하면 1만여 명의 참가자의 숨을 멈추게 했던 6·15 우리민족대회 북측 공연을 떠올린다. 그날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북측 민화협 출신 리영애의 노래는 여느 때에 들었던 ‘심장에 남는 사람’과는 압력과 맥박수가 달랐다. 6·15 우리민족대회나 남북교육자통일대회 참가자들이었다면 누구나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을 그 순간을 떠올려보고자 다음(daum) 검색창을 두드려보니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와 있다.

<한 편의 가요에 비낀 겨레의 통일의지>

범상히 들어오던 한 편의 노래가 만 사람의 심금을 울려줄 때가 있다.

지난 6월15일 남측의 인천시에서는 통일을 바라는 7천만 겨레의 관심속에 ‘6.15공동선언발표 4돌기념 우리민족대회’가 진행되었다.

그날 저녁에 있은 북남합동예술공연에서 북의 여가수가 부른 가요 ‘심장에 남는 사람’이 바로 그렇다.

구절구절 읊으면 읊을수록 자주통일행진에 나선 북과 남, 해외동포들의 심장을 격동시키는 노래가 아닐 수 없다.

무릇 인생길에는 수많은 상봉과 이별이 있다. 노래의 가사에도 있는 것처럼 짧은 상봉속에 심장에 남는 사람이 있고 오랜 세월 같이 있어도 이별 속에 기억에서 사라지는 사람이 있다.

이별은 상봉을 전제로 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시 있을 상봉의 그날을 위해 부끄럼없이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

오늘 우리 민족은 민족자주통일시대, 6.15시대에 살고 있다.

돌이켜보면 북과 남의 각계각층 인민들이 역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 발표이후 수많이 상봉하고 이별하였다. 그 상봉 속에 북과 남은 힘을 합쳐 불신과 대결의 검은 장막을 밀어내며 지난 시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경이적인 사변들을 이룩하여 놓았다. 이별 없는 영원한 상봉을 위해 북과 남은 눈물을 머금고 헤어지면서도 민족공조로 통일된 조국을 안아오자고 굳게 확약하였다.

지금도 나의 눈앞에는 지난해에 있은 ‘2003년 조국통일을 위한 북남노동자대표자회의’와 ‘북, 남, 해외동포 학자통일회의’에 참가하기 위하여 평양에 왔던 남녘의 동포들 모습이 선하다. 또 금강산에서 진행된 ‘북, 남 단청자료 전시 및 학술토론회’에 참가하였던 종교인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어찌 그들뿐이랴.

신념과 의지의 강자 리인모 선생과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 문익환 목사와 통일의 꽃 림수경을 비롯하여 애국투사들은 물론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통일제단에 한 몸 서슴없이 던진 유명무명의 애국열사들의 모습이 나의 눈앞에 비낀다.

취재의 짧은 시간에 만난 순간의 상봉이었지만 그들이 세월이 흘러도 나의 기억속에 아니 겨레의 심장속에 잊혀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아마도 그것은 그들이 겨레앞에 ‘통일조국실현에 이 한 몸 자그마한 주춧돌이 되겠다’고 다진 맹세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 맹세를 지켜 그들은 통일의 거목에 한줌의 거름이 되었다. 통일조국을 받드는 주춧돌이 되었다. 그래서 겨레는 통일조국을 위해 이 나라 유명무명의 통일열사들이 바친 애국의 피와 열정을 잊지 못하며 심장속에 영원히 기억한다.

바다로 향한 대하의 흐름이 변함이 없듯이 7천만 겨레의 마음마음은 언제나 통일로 흐른다.

비록 북과 남은 사상과 제도, 정견과 신앙의 차이는 있어도 겨레의 심장은 통일로 하나가 되여 고동쳤다.

그렇다. 북과 남, 해외의 온 민족의 마음은 지금 조국통일에 살고 있다.

핏줄과 언어도 하나, 문화와 역사도 하나인 우리 민족은 하나의 강토에서 결코 둘로 갈라져서는 못살 단일민족이다.

조국을 위하여 해놓은 것도 남길 것도 없는 사람은 한생을 헛되게 보낸 가련한 인간이다. 조선민족의 한 성원이라면 그가 누구든, 어디에서 살든 최대의 애국투쟁,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 한 몸 서슴없이 바쳐 겨레의 심장 속에 영원히 남는 사람이 되여야 한다. 통일의 이정표인 6.15공동선언 실현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쳐나감으로써 민족자주통일위업 실현에 백해무익한 사람, 비록 같이 오래 있어도 겨레의 기억 속에 거품과 같이 순간에 사라지는 인간이 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의지와 각오를 안고 관중과 가수는 하나가 되여 노래를 불렀다. 아니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가 함께 심장의 노래를 불렀다.

통일지향의 뜨거운 마음으로 7천만겨레가 부른 노래 ‘심장에 남는 사람’.

아마도 그것은 6.15공동선언의 기치밑에 자주통일의 활로를 힘차게 열어나가는 우리 겨레의 심장마다에 더욱 굳센 통일의지와 각오를 심어준 참으로 의미가 깊은 추억의 노래일 것이다. (김응철)

나는 장기수 어른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통일과 송환의 꿈으로 달구어져 있는 당신들의 뜨거운 심장을 식히길 바랐다. ‘화씨 911’로도 식힐 수 없는 진실의 온도가, 심장의 온도가 우리 민족에게는 있다. 나는 행복한 눈물을 흘렸다. 통일과 민족에 대한 깨달음이 늦은 늦깎이지만 지금이나마 내 작은 삶을 바쳐 전쟁없는 조국을 건설하고 외세로부터의 식민성을 극복하는 주체적인 아이들을 교육하는 교사로 살아갈 수 있다면 40 생애 나에게 피를 공급해온 심장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으니······

전국의 날씨가 섭씨 36도를 오르내리는 이 뜨거운 여름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전쟁반대’와 ‘파병철회’를 외치고 ‘통일은 됐어’와 ‘우리는 하나’를 외치는 ‘한총련 통일선봉대’가 ‘화씨 911’을 보고 나오고 ‘심장에 남는 사람’을 가슴 설레며 볼 나를 끌어당겼다. 나의 두 번째 눈물은 부끄러우나 행복했고 심장을 울리는 피는 뜨거우나 냉정했다. 나는 이 분단 역사 속에서 누구의 심장에 남을 것인가! 문득, 집에 있는 나의 두 아들과 학교의 아이들이 그리워진다. 앞으로 나의 눈물과 피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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