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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제2차 정상회담에 부쳐-손장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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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4.07.22  16: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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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장래 (통일뉴스 상임고문, 전 합참 전략 기획국장)


최근에 여러 정황은 머지않아 남북 정상 회담이 이루어 질 것을 보여 주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늦은 감이 있으나 환영할 일이다.

우리가 참고해야 할 일본의 자주적인 실리외교

늦은 감이 있다 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 일본, 중국을 방문하고 제3국에서나마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회담했는데, “악의 축” “선제공격” 등으로 민족의 사활이 걸렸던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가장 중요한 당사국인 북의 최고책임자를 1년 반이 지난 이제야 겨우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정부는 그동안 “회담은 성과가 있어야 하는데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냥 만나기만 하면 뭐하냐”고 핵문제 해결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왔다.

지난 달 제3차 6자회담에서 북핵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한 가닥이 잡혀가면서 정부는 “북핵 문제의 완전 해결 전이라도 2차 정상회담을 개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북핵 문제 해결에 큰 도움되리라 본다”고도 했다.

대북 정책에 있어 한.미.일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는 일본 고이즈미 총리는 북핵 문제가 전혀 해결의 가닥을 잡고 있지 못했던 2002년 9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했고, 금년 5월 또 다시 국방위원장을 평양에서 만났다. 그는 앞으로 1년 내에, 늦어도 2년 내에 조일수교를 이뤄내겠다고 했다.

중국과의 수교에 있어, 일본은 미국보다(1979년 1월) 4개월이 앞섰다(1978년 8월). 우리가 음미하고 참고해야 할 일본의 자주적인 실리외교 실태다.

한반도와 핵문제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우리가 유념해야 할 사실이 있다. 너희들 가운데 죄 없는 자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했다. 1975년 3월 4일 미 국무부장관 헨리 키신저는 한국정부에 경고한다.

“한국은 현재 초기단계의 핵 개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향후 10년 기간 내에 한국은 제한된 수의 핵 병기와 미사일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와 같은 계획으로 한국은 아주 심각하고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1976년 5월 27일 당시 미 국방부장관 도날드 럼즈펠드(현 장관)는 한미 안보연례회의 장관단독회담에서 한국 서종철 국방부장관에게 말한다. “한국이 핵 병기를 개발하면 한미 방위조약을 포함한 모든 계층의 한미 관계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에 “한국은 핵 병기를 개발할 능력도 없고 의사도 없다”고 한국장관이 대답했다.

한미 안보회의 주무국인 합참 전략 기획국장으로 배석하였던 필자가 이를 통역하고 기록하였다.
그로부터 18년 후 1994년 북의 김일성 주석이 말한다.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은 핵 병기를 개발할 능력도 없고 의사도 없다.”

이른바 닉슨 닥트린(1970년 2월)으로 주한 미 보병 제 7사단이 일방적으로 철수된다. 월남은 공산 통일(1975년)되고 카터 미 대통령은 남은 보병 제2사단을 비롯한 전투부대를 철수하기 시작한다.(1977년)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이 남측“핵 개발 의혹”의 배경이다. 월남전 기간 중 미 국방부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는 그의 저서에서 말한다. “미국의 월남전은 잘못된 일이었다. 대단히 잘못된 일이었다.”

민족을 찾아야 하는 이유

지난 7월 6일 미 상원 조사위원회는 이라크전 개시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는 정확한 정보가 아니었다고 발표했다. “선제공격”의 당위성과 권리를 천명한 미국의 정책을 고려할 때 한반도는 사실 심각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쉴 새 없이 닥쳐오는 주변 강대국의 침략과 이에 맞선 저항의 역사이다. 불과 59년 전까지도 그랬다.

역사왜곡의 일본의 교과서 문제가 있다. 뿐만이 아니다. 중국은 최근 고구려의 중국변방론을 주장하고 있다. 힘의 논리가 무자비하게 행사되며 많은 국가의 존립과 패망 병탐의 냉엄한 역사에서, 만일의 경우를 가상할 때. 이는 아주 중요한 결과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특히 고구려의 후기 수도는 평양이기 때문이다.(이것이 정상회담의 장소는 금강산이 아니고 필히 평양이어야 하는 여러 이유 중의 하나이다.)

일본 이시하라 신타로 동경도지사는 중국은 구 소련 모양으로(대만, 티벳트 등등) 몇 개 나라로 분할 돼야 한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 공언의 역작용도 가정할 수 있다. 분할과 통치의 원칙이 작용되는 힘의 국제정치이다.

“세계화” “지구화” 되는 시대에서 상대적으로 민족의식이 희박해지고 있다. 우리가 민족을 찾는 것은 결코 협의의, 배타적, 침략적 의도에서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주변 강대국으로부터의 경험에 입각한, 최소한의 인구와 면적과 경제적 크기를 가지기 위함이다.

2차회담에서 단계적 통일문제 심도있게 다뤄야

6.15 공동선언의 제2항은 통일의 형태를 명시하고 있다. 남측의 국가연합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공통점을 인식하고 이 공통점에 기초하여 통일을 지향한다고 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양측 안의 공통점, 차이점, 단계적 통일의 형태 등은 아직 남북 간에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지 않다. 그 단계적 통일의 모습을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통일논의 자체의 기피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홍콩은 중국에 반환됐지만 홍콩의 출입은 사증으로 통제돼있다. 남북한의 단계적 통일안도 지금 바로 모두에게 통행과 거주의 자유를 주자는 것은 아니다.

1965년 한일 국교수립의 계기로 우리는 포항제철 비료공장 등 국가기간산업을 구축, 발전시켜 오늘에 이르렀다. 한국은 조일수교를 적극 권장 촉진시켜야 한다.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미국은 ‘깜짝 놀랄만한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94년 제네바협의 사항을 당사자 어느 한쪽만이 위반한 것이 아니다. 어느 쪽이 먼저냐를 떠나서 결과적으로 다같이 준수하지 않았다.

1차대전, 2차대전으로 주변국과 인류에 극심한 재앙을 입혔던 독일은 15년 전에 통일했다. 분단 된지 60년이 되는 아직까지도 통일을 이룩하지 못하는 현세대는 후세의 신랄한 비판을 받을 것이다.

2차 남북 정상 회담이 이뤄진다면, 민족의 근본적인 과제인 남북의 공존과 공영 그리고 단계적 통일문제가 심도있게 다루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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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육군소장(예)
전 안기부차장(국제관계)
전 말레이시아대사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초빙교수
민화협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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