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원(민족통일애국청년회 회장)


이적단체의 수괴. 이름만으로도 섬뜩함이 느껴지는 말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호칭이다. 불과 지난주까지만 해도 나의 이름 앞에 수식어처럼 따라다니던 호칭이기 때문이다.

6년 전의 일이다. 국민의 정부 하에서의 첫 조직사건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소위 '민애청조직사건'으로 내가 현재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민족통일애국청년회(민애청)는 법원에 의해 1심과 2심 재판에서 국가보안법 7조 3항 위반혐의로 이적단체 판결을 받았다.

'민애청조직사건'이 있던 1998년 11월은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지 꼭 50년이 되는 12월 1일을 앞두고 국가보안법폐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던 시기이다. 더욱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생사의 갈림길에 섰었던 김대중 대통령의 집권 첫 해이었기에 그 기대가 무척 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가 무색하게 '민애청조직사건'과 한 달 후 '민주청년노동자회(민청노회)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두 사건을 두고 국가보안법 폐지가 현실화된 상황에서 공안세력의 조직적 반발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였다. 그러나 민애청과 민청노회는 이적단체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 다음 해에는 안양사랑청년회가 또다시 이적단체의 길을 걷게 된다.

이적단체라는 낙인은 대중단체에게 있어서 너무도 가혹한 형벌이다. 사건 전 50명이었던 회원수가 1심 재판이 끝난 이후 20명 수준으로 축소되었고 대중 활동은커녕 조직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나날이 계속되었다. 민애청이 비로소 침체를 극복하고 정상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사건 발발 4년만이자 대법원 상고 이후 2년만인 2002년이 되어서였다.

2004년 7월 9일, 대법원에 상고한지 4년 5개월 만에 대법원 선고가 있었다. 대법원 선고통지를 받고는 과거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우리 스스로도 잊고 살았던, 어렵게 재건한 조직이 또다시 어둠의 터널로 들어설 수도 있는 위기의 순간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원심파기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적단체구성.가입 혐의가 대법원에서 뒤집어지는 새로운 판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민족통일애국청년회의 이적단체성 여부에 관하여'에 대한 판결에서 대법원은 민애청이 규약 상에 조국의 자주.민주.통일을 이룩하는 데 앞장선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고, 총회를 최고의결기구로 하여 그 밑에 상임위원회, 운영위원회 등의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는 점, 또한 정기총회나 학습토론에 사용한 자료들의 내용 중에 반국가단체인 북한의 주의, 주장에 부합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있는 범민련 등의 활동에 연계되어 있음과 동시에 범민족대회에 조직적으로 참가한 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적단체의 인정은 유추해석이나 확대해석을 금지하는 죄형법정주의의 기본정신에 비추어서 그 구성요건을 엄격히 제한 해석해야 한다며, 앞에서 인정한 사실들만으로는 민애청이 지향하는 노선이나 목적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어 이적단체에 해당한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하였다.

김승교 변호사가 지적하였듯이 헌법재판소에서 이적단체를 판단함에 있어 '실질적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어야 한다'고 결정했음에도 명백한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도 이적단체로 판단해 온 대법원의 관행과 비교해 볼 때, 주목할 만한 판결인 것이다. 단 한번의 판결을 가지고 섣불리 재단할 수는 없지만 공고하기만 했던 사법당국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라는 조심스런 기대를 해 볼만한 일대사건이라 할 수 있다.

7월 20일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판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민애청과 같은 대중적인 청년단체들이 소속되어 있는 전국적 협의체조직,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가 역시 서울지방법원으로부터의 이적단체 판단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민애청에 대한 대법원판결이 한청 사건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쉽게 예측하기 힘들다. 민애청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전향적인 판결로서 고무적인 일임은 분명하지만 그 자체가 정답일 수는 없다. 우리가 주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국가보안법 폐지이다.

최근의 정세를 보면서 1998년의 교훈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 못지않게 국가보안법 개정.폐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여론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은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은 채 지금까지 건재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 국가보안법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게 된다. 국가보안법 폐지의 당위성에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국가보안법 폐지에 전체가 힘을 실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다시 과거와 같은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정권차원에서 개혁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추진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대중들의 투쟁에 의해서 쟁취해야하는 과제인 것이다. 객관적 조건이 성숙되어 있다고 해도 주체의 사활적 노력이 결합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결실을 맺을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6.15공동선언의 이행을 통해 통일세상을 열어가는 데 있어서, 사회민주화를 가속화하는 데에 있어서, 그리고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의 삶의 질을 높여가는 것에 있어서 국가보안법 문제는 반드시 해결하고 가야할 우리의 선차적인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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