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되는 자연

어느새 봄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따사롭게 쏟아지는 햇빛만 믿고 외출했다간 큰 코 다치는 계절이기도 하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거기에 황사까지. 어쨌든 새로운 봄은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서민들에게 반가운 계절이다. 그러나 목련이나 매화의 향기보다도 더 빠르게 봄소식을 재촉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상품이다. 백화점이나 화장품 가게에는 봄을 사라고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다. 어쩌면 상품을 쇼핑하지 않고는 봄은 영원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요즘 인사동 화랑가에서는 봄맞이 전시가 한창이다. 묵은 먼지를 털고 집 단장을 할 때 거는 그림이나 화사한 꽃 그림, 봄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자연 풍경을 담은 작품이 대부분이다. 10여년 전 호황을 누리던 미술시장은 이제 계절의 분위기를 민감하게 잡아내어야 살아 남을 수 있다.

보통 사람들이 선호하는 미술작품은 형태가 비교적 선명하고, 화려한 색상으로 표현된 것들이다. 인물화보다는 정물화나 풍경화를 선호한다. 특히, 풍경화는 도시인들의 정서를 자극하며 가장 인기있는 장르로 꼽힌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풍경화의 내용은 주로 향수를 자극하는 시골의 풍경이나 멋있는 자연을 표현한 것이 많다.

사람들은 왜 시골의 한적한 풍경이나 때묻지 않은 자연풍경의 그림을 좋아할까?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어떤 사람은 당연하게 대답한다. 때묻지 않은 순수한 동심의 발로라고. 아니면 자연과 벗하고자 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사실 제일 흔하게 듣는 말은 고향에 대한 향수가 있기 때문이란다. 좋다. 인정한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나? 하지만 농수산물 가격 오르면 죽는 소릴 하고, 농산물 개방하는데 암묵적으로 동의를 해준 대표적 부류가 도시인이다. 명절 때 고향의 씨레기 나물까지 긁어오는 사람들도 모두 도시에 사는 사람이다. 어쩌면 가장 농촌을 착취하며 사는데, 때묻지 않은 순수한 동심이나 향수는 웃기는 소리가 될 수도 있다. 자연을 사랑한다면서 사람이 산이나 바다를 쓸고 다니면서 자연파괴에 앞장서는 장면은 정말 눈물없이 보기 힘든 블랙 코메디가 아닐 수 없다. 차라리 솔직하면 밉지나 않지. 하지만 흥분할 건 없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자연풍경, 시골풍경을 담은 미술작품에는 도시인들의 비애가 숨어있다. 프랑스 사람들이 고갱의 원주민 그림을 좋아했던 것도 식민지에 대한 향수와 찌든 도시생활 때문이었다. 말로는 생명의 원시성과 순수함을 표현했다고 하지만 그게 그거 아닌가. 심지어는 농촌의 팍팍한 현실을 그린 밀레의 <만종>이나 <이삭줍기> 따위의 작품을 보고 전원의 한적함이나 편안함을 느낀다. 새들과 먹이 경쟁을 하는 <이삭줍기>에서 한적함이나 편안함이 느껴지나? 대단한 심미안이 아닐 수 없다.


▶이삭줍기
    밀레


사람들은 도시생활에서 찌든 때를 고스란히 고향이나 자연 속에 벗어 놓는다. 비싼 돈을 들여 전원주택을 사고, 자동차를 몰고 황금같은 시간을 쪼개어 자연 속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하지만 자연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다.


`내나라 제일로 좋아`

진달래와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고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을 그린 이 풍경화는 김춘전이라는 북한 화가가 그린 <석담의 봄>이라는 작품이다. 형식은 조선화, 크기는 2절지 정도이다. 


▶석담의 봄
    김춘전/조선화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노래가 절로 나올 것 같다. 물장구를 치고 싶은 개울이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엉성한 줄다리도 주변 경치와 잘 어울린다. 
조선화 특유의 화사한 색상이 좋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취향에 맞는 은은한 분위기가 작품에서 배어 나온다. 마치 수채화로 그린 듯한 느낌을 준다. 

북한미술 하면 으레 딱딱한 수령그림이나 무거운 주제를 담은 작품을 떠올리기 쉽다. 사실 초기에는 이런 풍경화는 잘 그리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많이 그려지고 우리나라에도 흔하게 소개된다. 이유는 두 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외화벌이의 한 수단으로 각광받기 때문이다. 손재주가 좋은 민족이라 정교하고 보기 좋은 작품을 잘 그린다.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수입된 이런 식의 북한 풍경화의 수는 엄청나다고 한다.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돈의 가치는 별로 없다. 두 번째는 북한에서 풍경화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부르조아들의 고상한 취미를 만족시키는 정도로 풍경화를 인식했는데 지금은 민족성을 고취시키고 국토를 사랑하는 `애국`이라는 측면으로 보기 때문이다. 사실 서양의 화가들도 애국심이나 국토사랑이라는 관점에서 풍경화를 많이 그렸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런 탓인지, 북한에서 유행하는 가요 중에는 이런 제목의 노래도 있다.
`내나라 제일로 좋아`
금강산 관광을 하고 온 사람들은 그 수려한 풍경에 감탄을 한다. 하지만 가끔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북한에는 민둥산이 많다고 한다. 홍수나 산불같은 자연재해 때문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큰 이유는 먹고살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생존을 위해 자연을 먹은 것이다. 내나라 풍경이 제일 좋긴 하지만 그 풍경을 먹어야 하는 현실은 슬프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