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3월 6일 『그라프 곤니찌와』에 게제된 사진을 보도한 일본공산당 기관지
『적기』. 김현희는 화살표된 화동이 "틀림없이 내 모습"이라고 진술했으나 나중에
북한 정희선씨로 밝혀졌다.  [자료사진 - 노다 미네오]
"국정원의 최종 입장 중 하나인 '김현희가 꽃을 준 사람은 이동복이다'라는 주장은 거짓이다."(신동진)

"이후락씨를 모시고 내렸기 때문에 두 번째 사람에게 꽃다발을 줬다면 장기영씨가 아니라 나였을 수도 있다."(이동복)

1987년 KAL858기 실종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KAL858기 폭파범으로 발표된 김현희씨가 평양에서 화동으로 1972년 남북조절위 남측 대표단에게 꽃다발을 증정했다는 사실을 둘러싸고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이동복은 비중있는 인물 아니었다"

먼저 문제를 제기한 쪽은  'KAL858기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의 신동진 사무국장.

1일 오후 3시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KAL858기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주관한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 토론회'에서 신동진 사무국장은 발표자로 나서  72년 당시 이동복 남북조절위원회 남측 수행원(공동위원장 대변인)이 "두세 번째로 꽃을 받을 만큼 비중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1일 국회도서관에서 'KAL858기 진상규명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신동진 사무국장(맨 왼쪽)은 자신의 신간 『KAL858, 무너진 수사발표』를 토대로
이동복 전 의원의 주장을 반박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신 국장은 자신의 신간 저서 『KAL858, 무너진 수사발표』(도서출판 창해)의 주요 내용을 설명하면서 KAL858기 폭파범으로 발표된 김현희가 1972년 11월 2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조절위 제2차 회담에 도착한 남측대표단에게 꽃다발을 증정한 화동이었다고 진술한 내용이 허위였음이 거듭 밝혀졌으며, 이 논란의 와중에 끼어든 이동복 전 의원의 주장 역시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이동복 전 의원은 1994년 5월 5일자 시사주간지 『뉴스 메이커』에 기고한 '내가 만난 북한 사람들'에서 김현희가 꽃다발을 건네주고 붉은 스카프를 매주었던 사람은 장기영씨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이후에도 1999년에 발간된 자신의 저서 『이동복의 미로찾기, 통일의 숲길을 열어가며』에서도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이에 따라 여러 매체에서도 이같은 주장을 그대로 인용했다.

이에 대해 신동진 국장은 당시 이동복 수행원은 두 번째나 세 번째로 꽃을 받을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자신의 책에서 당시 관련 사진들을 제시했다.

▶94년 『뉴스메이커』에 실린 72년 당시 남북조절위 남측 대표단의 평양 도착 사진.
왼쪽부터 장기영, 이후락, 최규하. [자료사진 - KAL858 대책위]
이 자료들에 따르면 당시 이후락, 장기영, 최규하 순서로 꽃다발을 받았다는 것이며, 일본 언론인 하기와라 료가 1990년 2월에 쓴 책 『서울과 평양』에서도 이 서열 순으로 꽃다발을 증정했다는 대목이 명확히 나온다고 제시했다.

이후락, 장기영 부수상, 최규하 전 외상의 순서로 내려왔다. 소녀들이 달려오고 소년단이 경례를 하며 꽃다발을 선사하고 손님들의 목에 붉은 네카치프를 둘러줬다. (중략) 서열에 유별나게 신경을 쓰는 북쪽 사회이다. 일렬로 늘어서서 선두의 소녀가 손님의 서열 첫 번째에게, 두 번째가 서울 두 번째 사람에게 증정해 가는 것이다. 『서울과 평양』 111-125쪽

뿐만 아니라 이동복 전 의원이 기억하고 있는 김현희와 주고받았다는 대화와 김현희가 자신의 책이나 글에서 밝힌 대화 중 "이 꽃의 이름은 무엇인지"라는 한 가지 외에는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구분

김현희 글

이동복 글

1

첫 번째 질문

"이게 무슨 꽃이지?"

"꽃이 참 예쁘구나. 그런데 이 꽃의 이름은 무엇인지?"

2

첫 번째 대답

대답 못함

"조선사람이라면서 조선꽃도 모릅네까?"

3

두 번째 질문

"몇 학년이냐?"

질문 없음

4

두 번째 대답

"1학년입니다"

대답 없음

<출처 : 『KAL858, 무너진 수사발표』274쪽>

그렇다면 왜 이동복 전 의원은 자신이 받지도 않은 꽃다발을 '김현희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신동진 국장은 이동복 전 의원이 이 사건에 개입한 배경에 대해 나름대로의 분석을 제시했다.

1988년 1월 16일 KAL858기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던 사람은 당시 안기부 제 1차장 이상연이었으며, 이상연은 노태우 대통령의 심복으로 나중에 안기부장(1992.3.31-10.8)이 됐고 이동복은 당시 안기부장 제1특별보좌관(1991-1993)을 역임했다.

이상연과 이동복의 이런 특별한 관계 속에서 이동복은 안기부장 특보 퇴임 직후인 1994년에 『뉴스메이커』에 글을 기고했던 것이다.

신 국장은 "혹시 안기부는 또 하나의 거짓역사를 만들어 놓았던 것은 아닐까?"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장기영씨보다 먼저 꽃다발을 받았다"

그러나 이동복 전 의원은 이같은 주장에 대해  "김현희 칼기 사건이 조작이냐 아니냐 따져야 할 많은 사건이 있지만 화동이었느냐 아니냐 시비가 붙는다면 증명해줄 상황증거로서 내가 있다"며 자신이 꽃다발을 받은 '두 번째로 내린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동복 전 의원은 3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헬기에서 내리는 순서가 이후락씨 개인 대변인이고 가장 가까이 이후락씨를 보좌한 측근실무자였기 때문에 일행이 움직일 때 이후락씨 옆에서 움직였다"며 자신이 두 번째로 내렸다고 주장하고 "헬기에서 내리면서 바로 꽃다발을 줬으니까 장기영씨보다 먼저 꽃다발을 받았다"고 명백히 말했다.

▶이동복 전 의원 홈페이지(www.dblee2000.pe.kr) 첫 화면. 북한 화동으로부터 인사받고
있는 장면을 싣고 있다. 물론 이 소녀가 김현희는 아니다.
이 전 의원은 신동진 사무국장이 제시한 사진에 이후락, 장기영, 최규하 순으로 스카프를 매고 있는 사진에 대해 "내리면서 바로 헬기 앞으로 와서 꽃다발을 주고 헬기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며 "나는 기자들 관계가 있기 때문에 기자들 쪽으로 이동해 (기념사진에는) 안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화동이 꽃다발을 주고 스카프를 매줬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물론이다"고 확인했다.

또한 김현희와 주고받은 대화에 대해서 이 전 의원은 "이 꽃이 무슨 꽃이지?"하고 물었더니 "웃으면서 달려들던 애가 세 걸음 물러서더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당황했다는 듯이 '조선사람이면서 조선꽃도 모릅네까?'라고 적개심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표정이 바뀌어 나도 아주 당황하고 어색해졌다"고 말했다.

나중에 차를 타고 숙소로 이동중에 "안내원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 이렇게 물어보는데 이렇게 대답하더라. 남북간의 큰 문제다"고 이야기했고 "도대체 이 꽃이 무슨 꽃이요?"라고 묻자 안내원이 쳐다보더니 "그거 뭐 조선꽃이죠"했다는 것이다.

이 전 의원은 이같은 내용을 여러 강연에서 이야기했고 KAL858기 사건이 발생한 87년에는 민간인 신분으로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보고 "11월 4일(2일의 착각인듯) 역포에 나왔고 장기영씨에게 꽃다발을 줬다. 거기서 이런(꽃이름) 얘기를 하더란 말이예요. 내가 얘기한 것과 애가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보부 사람들에게 기회가 있어 물어봤더니 김현희가 장기영씨를 기억할 리 없고 두 번째 내린 사람에게 줬다고 그래서 그러면 나일 수 있다"고 확신했다는 것이다.

그후 1991년 다시 안기부에 재직하게 된 이 전 의원은 "김현희를 더러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장기영씨를 기억하느냐?' 했더니 '기억 못합니다'. '내가 이런 이런 말을 했는데 너는 기억하느냐?'. '글쎄요, 저도 기억이 삼삼합니다'"라는 대화를 나눴고 "이후락씨를 모시고 내렸기 때문에 두 번째 사람에게 꽃다발 줬다면 장기영씨가 아니라 나였을 수도 있다. 당시 상황으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몇 학년이냐'는 질문을 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는 이 전 의원은 "몇 학년이냐는 물어봤을 수도 있다"고 답했다.
 
이 전 의원은 "김현희 칼기 사건이 조작이냐 아니냐 따져야 할 많은 사건이 있지만 화동이 었느냐 아니냐 시비가 붙는다면 증명해줄 상황증거로서 내가 있다"고 말했다.

이동복 전 의원의 홈페이지에는 우연인지 몰라도 북한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는 모습이 첫 화면을 장식하고 있다. 물론 그 소녀는 김현희는 아니다.

김현희는 세 번째 화동이 아니라 두 번째 화동?

그러나 이동복 전 의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몇 가지 의문이 남는다.

첫째, 김현희 화동사진은 오랜 논란과정을 거치면서 가장 최근에는 국정원이나 월간조선 등에서 모두 세 번째 화동이 김현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동복 전 의원은 자신이 두 번째로 내려 바로 꽃다발을 받았고 스카프를 맸다고 확언했다.

북한의 정희선 여인은 두 번째 화동은 남금숙이라고 분명히 신상을 공개한 적이 있다. 김현희가 아닌 것이다.

만약 이 전 의원의 주장이 맞다면 세 번째 화동이 두 번째로 내린 남측 손님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스카프를 매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동복 전 의원이 착각하고 있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대책위측은 세 번째 화동도 김현희가 아니라 사진이 조작된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측이 88년 3월 제시한 사진. 이후락, 장기영, 최규하 순으로 화동들이 스카프를
매주고 있다. 이 사진은 신동진의 책 254쪽에도 실렸다. [자료사진 - 노다 미네오]
둘째, 이동복 전 의원은 꽃다발을 받았을 뿐만아니라 스카프를 맸다고 확실히 말했다. 그러나 신동진의 책 254쪽에 실린 사진은 화동들이 스카프를 매주고 있는 사진인데도 이동복씨는 보이지 않고 이후락, 장기영, 최규하 순으로 서 있다.

이 사진은 이동복 전 의원이 기억하고 있는 기념사진이 아니라 스카프를 매고 있는 실제 상황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전 의원의 기억이나 주장이 틀렸든지 이 사진이 기념촬영을 위해 다시 스카프 매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셋째, 김현희씨와 이 전 의원이 주고받은 대화에서 "몇 학년이냐는 물어봤을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이 전 의원은 94년 『뉴스메이커』에 기고한 글에서 "필자는 아연실색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당시 정황을 보더라도 꽃이름 질문을 받고 화동이 바로 세 걸음이나 물러서서 '적개심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쏘아부치듯이 말을 해 '아주 당황하고 어색'한 상황에서 이렇게 물어봤을지 의문이다.

한편 김현희는 "조선사람이면서 조선꽃도 모릅네까?"라고 쏘아부친 것이 아니라 대답을 못했고 꽃이름을 대답하지 못한 것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는 뚜렷한 기억을 『이젠 여자가 되고 싶어요』등에서 서술하고 있다.

국정원의 말바꾸기 이번에도 되풀이 될까?

김현희의 화동사진을 둘러싼 논란은 88년 1월 15일 수사결과 발표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당시 안기부와 현 국정원이 두 번의 오류를 시인했고 세 번째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사결과 발표 당시 대대적으로 신문 1면을 장식했던 첫 번째 사진 속의 화동은 김현희의 '칼귀'와 다른 귀 모양이었고, 그 사진 자체가 평양을 떠날 때의 사진이었음이 밝혀져 거짓임이 드러났고, 다시 일본인 하기와라 료가 제시한 사진을 보고 김현희가 "틀림없이 내 모습"이라고 지목했던 소녀는 북한의 정희선 여인이 나타나 귀모양을 비교해가며 자신이라고 입증해 다시 거짓임이 밝혀졌다.

▶주간『요미우리』 2004년 신년호에 실린 새로운 사진. 세 번째 화동이 김현희라는
새로운 주장이제기되고 있다. 사건 17년만에 공개된 사진이어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자료사진 - KAL858 대책위]
이제 세 번째로 최근 일본 주간 『요미우리』가 제시한 사진중 세 번째 소녀가 김현희이고 꽃을 준 사람은 장기영이 아니고 이동복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동복 전 의원은 두 번째로 꽃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으며, 스카프를 매주고 있는 사진에는 나타나지도 않고 있다. 김현희와의 대화 내용도 일치하지 않는다.

국정원이 다시 말바꾸기를 할지 아니면 세 번째 주장이 사실로 판명날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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