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헌(許憲) 북한 최고인민회의 초대의장은 6.25전쟁때 남측의 야간폭격에 의해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의 평양방송은 최근 허 의장의 생애와 활동에 대해 소개하면서 그가 1951년 8월 평북 정주지방으로 피난갔던 김일성종합대학의 입학식에 참석하기 위해 깊은 밤 에 범람하는 대령강(평북 천마군에서 발원해 박천군 일대를 흐르는 청천강 지류)을 건너던 중 `불의에 달려든 적들의 야간폭격에 의해 애석하게 희생됐다`고 밝혔다.

허 의장에 관한 내용은 몇년전부터 북한 여러 신문, 방송, 출판물 등에 의해 대대적으로 소개됐다.

북한 언론에 따르면 허 의장에 대한 김일성 주석의 신임은 김 주석의 항일빨치산 동료이자 오른팔로 알려졌던 김 책 전 내각 부수상에 비교될 정도로 두터웠다.

김 주석은 허 의장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수천명의 군인들과 많은 선박을 동원해 그의 시신을 찾도록 했으며 결국 16일만에 정주 북쪽 앞바다에서 시신을 찾았다.

김 주석은 또 장례식날 그의 시신이 안치된 평양 모란봉 지하극장에 나와 영구를 직접 메기도 했다.

김 주석의 이같은 각별한 신임은 허 의장의 일대기에서 잘 나타난다.

1885년 6월 함경북도 명천군에서 출생한 허 의장은 남한의 보성전문학교를 거쳐 일본 명치(明治)대학 법과를 졸업한 뒤 변호사로 활약했다.

그는 변호사로 일하는 동안 많은 애국자들을 변호했는데 특히 김 책 전 내각 부수상이 1920년대에 반일활동으로 일제 법정에서 재판을 받자 무료로 변호했으며 그가 출옥 이후 중국으로 떠날 때에는 당시로는 거금인 4원을 노자로 주었다.

그는 또 1927년부터 보성전문학교 교장,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장 등을 지내다가 8.15 해방 이후 남쪽에서 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 남조선민주주의민족전선 공동의장 등을 역임했으며 한편으로 `김일성장군 환영준비위원회`를 조직하고 김 주석의 서울방문을 위해 맹활약했다.

1945년 12월 김 주석의 편지를 받고 이듬해 여름 월북한 그는 1948년 8월 제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같은해 9월 정권 수립 때에는 최고인민회의 초대 의장 및 법제위원장으로 각각 선출됐으며 노동당 정치위원회 위원,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의장도 맡았다.

허 의장에 대한 김 주석의 신임은 후손에게도 이어져 그의 외동딸 허정숙(1991.6 사망)은 여성들 가운데서는 드물게 노동당중앙위원회 비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부의장 등 고위직을 역임했다.

 이들 부녀는 또 모두 통일에 기여한 인사들에게 수여되는 `조국통일상`을 받았으며, 이들의 시신은 현재 평양시 형제산구역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함께 안치돼 있다. (연합뉴스 최선영기자 2001/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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