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환(통일뉴스 편집국장)

이번 한미정상회담 이후 한반도문제의 불투명성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부시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이뤄진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에서 최대 관심은 양국의 북한문제에 대한 인식과 조율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차이와 불협화음이 있는 듯하다. 지난 클린턴 정부 시기 한미간에는 공조체계로, 북미간에는 관계 정상화로까지 나아가는 듯했다. 그런데 한미공조에 틈새가 보이고, 북미관계에 악화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이처럼 한반도문제가 불투명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한반도문제의 불투명성은 첫째, 한미정상회담에서 나타난 양국의 대북 인식 차이에 기인한다. 이것은 엄밀하게는 미국측의 변화 또는 혼란 때문이다. 남쪽, 김 대통령의 대북 인식은 비교적 일관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에서 보여준 부시 정부의 대북 인식은 한마디로 `실망적`이었다. 미국은 한반도문제에 아직 정리가 안된 듯했고, 부시는 대북관에 있어 기대 이하의 인식과 발언을 보여주었다. 부시는 김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하면서도 북한에 대해 의구심(skepticism)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모순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미 외교안보팀도 대북 정책에서 심각한 혼선을 노출시켰다. 통상 체니 부통령, 럼즈펠드 국방장관, 라이사 보좌관은 매파로,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온건파로 분류된다. 이들간의 견해차가 엿보였고, 특히 국제외교의 사령탑이라 할 파월 국무장관의 말바꾸기는 점입가경이었다.

파월 장관은 지난 1월 의회 인사청문회에서 "클린턴의 대북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대북 정책 변화의 신호탄을 올렸다가, 이번 한미회담 과정에서 6일 "클린턴 행정부가 이룩한 일들 중에는 `믿음직한(promising) 요소`가 있다"며 입장을 바꾼 듯했다. 그러나 다음날 하루만에 "미국에 위협이 되는 나라와의 협상 재개를 서두르지 않겠다"라며 후퇴했다가, 8일 상원 청문회에서 "북한은 전제국가로 이미 파산한 체제"라고 한 수를 더 떴다.

대통령과 외교안보팀 간에, 외교안보팀 내의 매파와 온건파 간에, 그리고 외교 사령탑인 파월의 하루 사이의 발언에서도 보여지듯, 의견이 안 맞고 오락가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CNN은 미국의 `대북 정책이 갈피를 못 잡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어느 한반도문제 전문가는 `한미 정상회담은 대북 정책을 수립중인 미국의 새 행정부에 대해 좋은 교육의 기회였다`며 대미교육론으로 해석했다.

둘째, 한반도문제의 불투명성은 부시 정부가 전임인 클린턴 정부때 이룬 북미간 합의 및 대북 정책을 재검토 내지 변경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데 기인한다. 그간 북미관계는 2개의 북미합의문과 1개의 대북 보고서에 의해 유지 개선되어 왔다. 1994년 제네바 핵 합의문과 1999년 대북 정책의 바이블이라 할 `페리 프로세스`, 그리고 클린턴 임기말인 작년의 `북미공동코뮤니케`가 그것이다.

그런데 부시 정부에 들어와 `북미공동코뮤니케`는 실종된 듯하고, `페리 보고서`보다는 훨씬 공세적인 `아미티지 보고서`가 회자되고, 그리고 북미 제네바 핵 합의 변경 가능성 얘기가 자주 나오고 있다. 더구나 부시 정부는 북한에 대해 `우려 대상국`(States of Concern)에서 `불량국가`(Rogue States)라 다시 칭하고 있으며, 최근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독재자`라는 표현도 하고 있다. 10년 이상의 전통을 갖고 있는 북미관계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이에 대해 김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의 `북한 의구심` 표명 이후 한미간 공조 마찰을 의식한 듯, 곧바로 새로운 두 가지 대북 문제 해법을 제시했다. 하나는 `포괄적 상호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한미간 역할분담 전략`이다.

`포괄적 상호주의`란 북쪽에 제네바 합의 준수, 미사일수출 중단, 무력도발 포기를 약속 받고 그 대가로 북측의 안전보장, 경제협력, 국제사회 진출 및 차관지원을 주는, 크게는 세 가지씩을 주고받는 방식을 말하며, `한미간 역할분담`이란 미국은 북의 핵 투명성과 미사일문제를 한국은 재래식 무기감축 등을 각각 담당하자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아직 대북 정책에서 혼선을 빚고 있는 부시 정부에 대해 `통일문제 전문가`인 김 대통령이 한 수 가르쳐주는 `대미교육론`이라 치부할 만하다. 두 가지 대북 문제 해법은 그 실현가능성에 관계없이 한미공조를 위한 김 대통령식의 대미 `구애(求愛)작전`일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평화협정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김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시 "한반도 긴장완화문제는 평화협정이 아니라 군축협의 등이 담긴 92년 남북기본합의서의 불가침 합의를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 중"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한러정상회담 공동성명과 관련한 질문에 대해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협정에 관한 문구는 안 들어가는 게 좋았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하면서 한러정상회담 후의 NMD논란을 `일시적 오해`로 해결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는 대미 `구애작전`을 넘어 가히 `구걸처신`이라 할만하다.

왜 그러한가. 그간 김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하면 한반도평화선언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져 왔는데 이를 포기했고, 또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을 뒤집는 발언을 했다. 한반도평화선언과 NMD 반대는 모두가 북쪽과 관계가 있는 중요한 정책들이다. 이들은 넓은 의미에서 민족공조의 단초가 될만한 사안들이다. 그런데 미국을 의식해 민족적 소신과 국제적 신의를 한 순간에 저버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온당치 않아 보인다.

한반도문제의 불투명성은 부시 정부의 대북 정책 변화나 혼선 때문인 것이지 다른 그 무엇 때문이 아니다. 또한 대북 정책에 있어 일관한 김대중 정부와 변화된 부시 정부 사이의 차이는 당연한 것이다. 한미공조를 위해 두 가지 대북 문제 해법을 제시해 `대미 구애`를 할 수는 있지만, 민족공조의 기회를 저버리면서까지 `대미 구걸`을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김 대통령은 한미공조를 위해 보다 본질적인 민족공조를 실기(失機)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작년 6월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 이후 한반도문제는 그 중심축이 북미관계에서 남북관계로 전화하고 있다.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호기(好機)인 셈이다. 이번 한미 공동발표문의 `남북 문제해결에 있어서 김 대통령의 주도적인 역할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였다`는 내용에서도 확인되듯, 미국 역시 한반도정세의 변화흐름을 일정 인정하고 있다.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해서 한미공조보다는 민족공조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한 발 양보해 한미공조가 중요하다면, 남북간 민족통일이 더 중요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일관한 김대중 정부가 미국의 변덕스런 대북 정책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춘다는 것은 민족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올바른 일이 아니다. 더 나아가 민족공조를 이룰 기회와 민족통일을 맞이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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