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순(한국진보운동연구소 소장)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 발표 4돌을 맞았다.

인천에서는 6.15 공동선언 4돌을 기념하는 ‘우리민족대회’가 열렸으며, 서울 그랜드 힐튼호텔에서는 ‘6.15 공동선언 4주년 기념 국제토론회’가 열렸다. 특히 서울 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국제토론회’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여 축사를 하고 6.15 공동선언 탄생의 당사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임동원 전 특보가 직접 참석하여 특별강연과 토론회 발제를 맡아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여야 정당의 대표들이 대거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이 열려 ‘서해상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와 군사분계선지역에서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고 그 이행에 들어갔다. 이것은 6.15 공동선언 이행과정에서 매우 특기할 만한 사건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렇듯 6.15 공동선언 4돌을 맞고 있는 남북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에 차 있으며 새로운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어 있다. 6.15 공동선언 4돌을 맞아 지금까지 6.15 공동선언의 이행과정을 진단해 보고 향후 제기되는 과제를 모색해 본다.


1. 6.15 공동선언 4년의 성과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의 발표는 한국사회의 일대 분수령으로 되었다. 그것을 기점으로 한국사회는 오랜 반목과 대립의 시대를 마감하고 화해와 단합의 새로운 자주통일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어떤 정치가가 즐겨 쓰던 말처럼 한국사회는 6.15 이전의 한국사회와 6.15 이후의 한국사회로 나뉘어 진다고 단언할 수 있다.

실로 6.15 공동선언 이후 한국사회는 혁명적 변화의 물결에 휩싸여 있다. 낡은 것과 새 것의 투쟁이 보다 격렬해지면서 낡은 것이 무너지고 새 것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혁명적 변화의 뿌리에는 6.15공동선언이 자리잡고 있다.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이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

1) 6.15 공동선언은 자주적 통일시대를 열어놓았다

남북관계는 6.15 공동선언 이전과 이후로 확연하게 구분된다. 그 이전이 대결과 반목의 시대였다면 이후는 대화와 협력의 시대로 평가할 수 있다.

지난 13일 정세현 통일부 장관이 “4년전 정상회담을 분수령으로 성격을 차별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남북관계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었다”며 “남북간의 경제 사회 문화분야의 협력이 이뤄지는 가운데 생긴 신뢰가 남북관계의 변화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한 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남북 정부가 6.15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반목과 대결적 남북관계에서 화해협력적 남북관계로 전환됨에 따라 과거에는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남북관계가 발전하고 있다.

남북간 교류와 협력의 숫자들은 남북관계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금강산 관광을 제외하고 이북을 방문한 사람들의 숫자는 올 6월 현재 총 5만여명으로 지난 1989년부터 97년까지 방북자 2천여명의 20배에 달하며, 이북 동포의 이남방문도 역시 크게 늘었다.

남북간의 경제협력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금강산 관광도 육로가 이어지면서 65만여명을 초과하여 손익분기점을 넘어서고 있으며, 개성공단사업도 본격 추진되고 있다. 또한 끊어졌던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고 하늘길 바다길이 열리는 장쾌한 일들이 펼쳐지고 있다.

남북간 장관급 회담을 정점으로 한 다양한 대회와 접촉이 마련되면서 남북 현안에 대한 논의가 제도화 단계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정상회담을 포함하여 2000년 27회, 2001년 8회, 2002년 33회, 2003년 38회, 올해 17회의 회담이 열려 최근까지 총 123회의 회담이 열렸다. 그리고 최근에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까지 열려 남북 군사합의서를 채택함으로서 군사적 신뢰구축의 단초를 마련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민간차원의 대화와 교류, 민족대단결운동도 매우 활발하게 벌어졌다. 과거에는 반쪽으로 치르던 민간통일행사들도 남과 북이 함께 하는 전민족적 통일행사로 6.15와 8.15를 비롯한 민족공동의 기념일들에 성황리에 전개됨으로서 수많은 통일운동단체들의 연대연합이 더욱 활발해졌다.

또한 남북 노동자 농민 교사 등 계급계층별 남북 통일행사들도 연이어 치러지고 있으며, 각종 경기대회에서 공동입장과 공동응원으로 남북 화해와 단합의 열풍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특히 부산에서 있었던 아시안 게임과 대구 유니버시아드 게임에 이북의 선수와 응원단이 참가하여 통일열풍이 불어왔던 것은 매우 인상깊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획기적인 변화는 우리 겨레의 가슴속에 잠재되어 있었던 분단장벽이 무너져 내린 점이라 아니할 수 없다. 과거 반공반북대결의식이 붕괴되고 그 자리에 민족화해의식 민족공조의식, ‘우리민족끼리’ 정신이 자리잡게 된 점은 6.15가 가져온 위대한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6.15공동선언은 대결적 남북관계를 화해협력적 남북관계로 전환시키고 민족 대단결의 초석을 쌓아올렸다. 6.15시대 그것은 민족 대단결의 시대이다.

2) 6.15 공동선언은 반미자주의 새 시대를 열어놓았다

6.15 공동선언은 남북관계의 변화발전만 가져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한미관계의 변화발전을 수반한다. 기존의 한미관계는 반공반북이데올로기와 남북대결구도에 기초하고 있는데, 반공반북이데올로기와 남북대결구도의 붕괴로 인해 예속과 굴종의 한미관계의 토대가 붕괴되고 있다. 민족자주의식이 비약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자주적인 한미관계를 염원하는 대중적 열망이 급속하게 분출되고 있다.

효순이 미선이 촛불시위는 현시기 한미관계의 성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지난 몇 해 동안 우리나라를 휩쓸었던 대중적인 반미 열풍은 지난 1980년대 이후 대중적으로 형성 발전되어 왔던 반미 자주화투쟁의 성장발전의 결과이지만 6.15 공동선언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6.15 공동선언이 있었기에 그처럼 광범위한 대중들이 반미투쟁의 대열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6.15 공동선언은 남북관계만 바꾸어 놓은 것이 아니라 한미관계도 근본적으로 바꾸어 나가고 있다. 6.15 시대는 곧 반미자주의 시대이다.

3) 6.15 공동선언은 민주와 개혁의 새 정치시대를 열어놓았다

한국사회의 반민주적인 수구세력들은 냉전적인 분단체제에 기생하는 반통일적인 냉전대결세력들이다. 그들은 수십년 동안 반공의 이름으로 대중들을 억누르고 짓뭉개면서 온갖 특혜와 부를 불법적으로 획득하고 유지하여 왔다. 그들의 불법적인 특혜와 특권을 지켜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반공’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1987년 6월 민중항쟁으로 낡은 반공 정치질서가 민중들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하지만 남북대결구도가 청산되지 못한 조건아래에서 새 정치를 실현하려는 민중들의 투쟁은 반공이데올로기의 벽을 극복할 수 없었다. 반민주적 수구세력들은 6월 항쟁이후에도 반공반북이데올로기를 적절히 활용하여 정치적 헤게모니를 유지했다. 지난 시기 선거 때마다 ‘북풍조작’과 ‘색깔론 시비’가 단골메뉴로 등장했고 그것을 통해 그들의 권력은 연장되었다.

6.15 공동선언은 수구세력들의 온상으로 되어온 분단체제와 반공반북이데올로기에 파열구를 냄으로서 수구세력들의 사상적 정치적 지반을 결정적으로 붕괴시켰다. 지금 수구적인 반통일세력들이 6.15 공동선언의 이행에 사활을 걸고 시비질을 하고 방해해 나서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처럼 6.15 공동선언은 이 땅의 자주와 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 놓은 것만이 아니라 민주와 개혁의 새 정치 시대도 열어 놓았다. 6.15시대 그것은 곧 민주와 개혁의 새 정치시대이다.

4) 6.15 공동선언은 새로운 민중정치시대를 열어 놓았다

지난 4.15 총선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진보적 대중정당인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입 성공이다. 민주노동당 원내진입 성공은 새로운 민중정치시대의 본격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입함으로서 한국의 민중들은 비로소 자신들의 이익과 요구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을 갖게 되었으며, 정치의 대상에서 벗어나 당당히 정치의 주인으로 설수 있게 되었다. 이제 민중이 정치의 주인으로 되는 민중정치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된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입이 성공하고 민중정치시대가 본격화될 수 있었던 것은 진보적 대중정당건설을 위한 수많은 일꾼들의 활동과 투쟁의 결실이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이 없었더라면 현재와 같은 성과가 있었겠는가? 반공반북이데올로기가 판을 치는 반공반북체제의 토양아래에서 진보적 대중정당이 싹트고 발전해 나가기란 여간 어렵지 않은 법이다. 90년대에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피나는 투쟁을 벌였음에도 대중적 성과로 귀결되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6.15 공동선언으로 낡은 이데올로기적인 규제로부터 벗어난 대중들은 자신들의 사상적 계급적 요구를 당당하게 제기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정치의 주인으로 나서기 시작하였다. 6.15공동선언으로 인해 형성된 새로운 정치적 흐름이 진보적 대중정당의 원내진입을 가능하게 하였고 민중정치시대를 현실화시켰다. 6.15시대 그것은 곧 민중정치시대이다.

결론적으로 6.15공동선언 이후 한국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혁명적인 변화는 모두 6.15 공동선언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6.15 공동선언이야말로 21세기 민족사발전의 원동력으로 되고 있다.


2. 6.15 공동선언 4년의 교훈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6.15 공동선언은 이 땅의 반공반북체제와 반공반북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림으로서, 21세기 한국사회 총체적 변혁의 근본 동력으로 되고 있다. 그러므로 6.15 공동선언을 이행해 나가는 과정은 단순히 남북화해협력과 민족대단결을 촉진시켜 나가는 과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총체적인 변화발전을 추동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은 곧 낡은 분단체제에 기생하여 존재하는 미국과 수구 반통일세력들을 역사의 무대에서 퇴출시켜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과 수구반통일세력들은 사활을 걸고 6.15 공동선언의 이행관철을 가로막아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지난 4년 동안 6.15공동선언 이행과정은 결코 순탄하게 진행되지 못했으며, 걸음걸음마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과 난관에 부딪쳤던 것이다.

미국이 6.15 공동선언의 이행과정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어떠한 일들을 벌였는지에 대해 구태여 세세히 말할 필요가 없다. 북미관계의 발전속도에 맞추어 남북관계의 발전속도를 조절하라는 소위 ‘속도조절론’을 내세워 남북관계의 발전을 방해하였다. 핵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에너지를 지원해 줄 수 없다는 이유로 개성공단에 대한 전력공급을 가로막아 개성공단 사업진척을 방해하였다. 뿐만 아니라 비무장지대 통과문제를 트집삼아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도 방해하였다.

미국의 ‘6.15죽이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작전계획 5027-98, 작전계획 5030, 작전계획 5026 등의 대북 핵선제 공격계획을 세워놓고, 이북을 붕괴시키기 전쟁준비를 착착 진행시켜 가고 있다. 또한 이북을 ‘악의축’으로 규정하고 대화를 부정하고 대결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자신들의 대북정책을 한국정부에게도 강요함으로서 남북대결을 고취하고 6.15 공동선언의 순조로운 이행을 방해하고 있다.

현재 남북관계 발전과 6.15공동선언 이행에 최대의 걸림돌로 되고 있는 것은 ‘한반도’ 핵문제인데 그것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은 ‘선핵포기’를 내세우며,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거부하고 있는 미국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미국의 ‘6.15 죽이기’와 맞서 싸우지 않고서는 6.15 공동선언의 순조로운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웅변해 주고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을 추종하고 남북화해와 통일을 반대하는 반통일수구세력들이 지난 4년 동안 어떠한 반통일적 행동을 벌였는지는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은 6.15 공동선언이 발표되자마자 노골적인 적대감을 표출하면서 6.15 공동선언 흠집내기에 혈안이 되어 온갖 반통일적 책동으로 일관하였다. ‘대북 퍼주기 논쟁’, ‘엄격한 상호주의’ ‘금강산 관광 수익의 군사비전용 의혹’ 등의 온갖 설과 논쟁을 불러일으켜 6.15 공동선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유포, 확산시키고 남북대화와 남북경협을 사사건건 방해하였다.

그들은 심지어 남북교류협력기금마저도 대폭 삭감해 버림으로서 극도의 대북혐오증을 표출하였다. 또한 ‘대북 송금특검법’을 의회 다수의 힘으로 통과시키는 반통일적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이러한 사실들은 한국의 반통일 수구세력들이야말로 6.15공동선언의 걸림돌이며, 이 걸림돌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6.15 공동선언 이행과정이 순조로울 수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미국과 반통일 수구세력들의 방해로 인해 6.15 공동선언의 이행과정은 참으로 힘겨운 투쟁을 동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이들의 방해로 인해 6.15 공동선언 이행과정이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6.15 공동선언 이행의 정치적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이 지연되고 있는 것도 다 이들 때문이다. 최근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1년 봄에 서울을 답방하려고 준비까지 하였으나 부시 정부의 대북 고립압살책동 때문에 답방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상에서 보여주는 바처럼 지난 4년 동안 6.15 공동선언 이행투쟁 과정에서 얻은 귀중한 교훈은 미국과 반통일수구세력과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 6.15공동선언 이행 방해책동을 무력화시키지 않고서는 6.15 공동선언의 순조로운 이행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이야말로 6.15 공동선언 이행의 최대의 걸림돌이며, 6.15 공동선언 이행과정은 우리민족과 미국과의 치열한 대결 속에서 개척되고 전진한다는 것을 절절하게 깨닫게 되었다.


3. 6.15 공동선언 이행의 과제


6.15 공동선언 4돌을 맞는 지금, 6.15 공동선언 이행에 유리한 조건과 불리한 조건이 교차하고 있다. 4.15총선 이후 조성된 국내정치적 환경과 남북관계는 유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나, 한반도 핵문제를 둘러싼 미국의 대북 강경태도는 전혀 바뀌고 있지 않아, 한반도 평화와 6.15 공동선언 이행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문제는 역시 미국이다. 미국은 여전히 ‘6.15 공동선언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호전적이며 대결적인 대북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그들은 일본과 중국의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제의에 대해서도 신경질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일부에서는 한반도 핵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6.15 공동선언 이행이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으며, 노무현 정부도 핵문제 해결이 전제되어야 남북경협을 대대적으로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학계와 언론에서 거론되고 있는 소위 ‘북미결정론’은 이러한 대표적인 견해이다.

과연 미국이 대북 강경대결정책을 바꾸지 않는다면, 6.15 공동선언 이행은 불가능한가?

지난 4년 동안에 얻은 실천적 결론은 미국의 ‘6.15 공동선언 죽이기’가 아무리 거세게 휘몰아쳐 오더라도 민족공조를 강화발전시켜 나간다면 능히 승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미국의 온갖 방해와 간섭에도 불구하고 6.15 공동선언을 고수 이행해 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민족공조의 힘 때문이었다.

민족공조가 있었기 때문에 전쟁위기 속에서도 평화를 수호할 수 있었으며, 민족공조가 있었기에 서해교전이라는 불미의 사태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가 깨지지 않았으며, 민족공조가 있었기에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고, 교류와 협력이 지속될 수 있었으며, 민족공조가 있었기에 각급 차원의 대화와 협상이 진척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민족공조가 있었기에 반통일세력들의 도발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6.15 정신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통일운동은 민족공조의 힘으로 자주통일의 활로를 열어나가는 새로운 높은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첫째는 민족공조와 외세공조와의 대결에서 민족공조가 압도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둘째는 6.15공동선언의 이행을 좌우하는 것은 미국의 대북정책이 아니라 민족공조의 힘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미국이 어떠한 대북정책을 취하든지 민족공조로 6.15 공동선언을 고수.이행해 나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미국의 그 어떠한 간섭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우리민족은 좋게 발전해 가고 있는 남북관계와 6.15 공동선언의 기치를 포기하지 않고, 6.15 공동선언을 이행해 나갈 것이다.

일부에서는 다가오는 미국의 대선에서 부시 낙선문제를 한반도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6.15 공동선언 이행에 관건적인 문제로 바라보는데, 그것은 민족주체적 관점이라 말할 수 없다. 물론 다가오는 대선에서 부시가 낙선하는 것이 우리에게 다소 유리할 수 있다. 부시가 낙선하면 부시의 대북 강경정책이 수정될 수 있으며, 북미대화가 과거 클린턴 시절 북미공동코뮤니케 발표 당시처럼 활성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정책의 근본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케리의 “이북은 이라크보다도 더 큰 위협”이라는 발언 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부시와 케리의 차이는 대북정책의 전술의 차이이지 목표의 차이가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미국의 대북 정책변화가 한반도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6.15 공동선언의 이행에 하나의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줄 수 있으나 그것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 없다.

우리민족은 미국의 대북 정책변화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힘으로 자주적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바로 민족공조 강화에 있다. 따라서 한반도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6.15 공동선언을 이행해 나가기 위한 올바른 전략은 부시 낙선을 통한 미국의 대북 정책전환을 유도하는 타협적인 노선이 아니라 민족공조의 힘으로 미국의 ‘6.15죽이기 전략’을 무력화시키면서 6.15 공동선언을 이행해 나가는 비타협적인 자주노선이다.

민족공조에 기초한 자주노선은 미국의 대북 대결정책의 포기를 환영한다. 하지만 미국이 대북 대결정책을 고수한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민족공조의 힘으로 미국의 대북 대결정책을 무력화시키고 우리민족끼리 자주적으로 6.15 공동선언을 이행해 나가는 비타협적인 투쟁의 길을 묵묵히 갈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도 민족공조의 힘으로 지켜낼 것이다.

지금까지 한반도 평화가 유지된 것은 전적으로 민족공조의 힘 때문이었지 미국의 선의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민족공조를 통해 자주적으로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여 자주통일의 새날을 열어나가는 과정은 말처럼 간단하지도 쉽지도 않다. 현실은 매우 복잡하며, 미국의 세력과 힘도 막강하다. 민족공조의 길은 사실 세계 최강대국이라고 하는 미국과의 투쟁을 동반하는 험난한 길이다. 하지만 우리민족은 지난 4년 동안의 투쟁과정 속에서 승리했고, 앞으로도 승리할 것이다.

민족공조를 더욱 강화하여 우리민족의 주체적인 힘으로 6.15 공동선언을 이행해 나가기 위해서 제기되는 과제는 무엇인가?

1) 외세의존사상, 민족허무사상에서 탈피하고, 민족자주사상으로 무장하여야 한다

우리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바라보고 실천 속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미국이 우리에게 평화와 통일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보는가? 아직까지 우리사회에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에게 의지해야 전쟁도 막고 경제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구체적 현실은 그와는 정반대이다. 지난 수년간의 실천적 경험은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이라고는 평화와 경제안정이 아니라 전쟁위기와 경제위기(IMF경제신탁통치) 밖에 없다. 미국에 의지해야 전쟁도 막고 경제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환상일 뿐이다.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미국에 의지해서 납치자 가족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가 낭패하고 평양으로 허겁지겁 달려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머리 숙이고 사과했던 사실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미국은 지금 그 어느 나라에게도 무엇을 가져다 줄 의사도 능력도 없는 나라이다. 미국의 눈에 잘 보여 한반도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짓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에 대한 환상 중에 또 다른 하나는 미국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고 미국이 이북을 공격하지 않은 것은 한반도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생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 전쟁을 막으려면 미국의 비위를 거스르는 행동을 말고 미국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이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서처럼 자신들이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하게 되면 무자비하게 침략전쟁을 일으키는 전쟁광의 나라이다.

그런데 미국이 이북을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딱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는 이북의 선군정치로 인해 이북과 전쟁을 벌여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은 수시로 컴퓨터 시뮬레이션 전쟁게임을 벌여 보았지만 매번 승리할 수 있다는 답변이 나오지 않고 오히려 패배할 것이라는 답변만 나오고 있다. 둘째는 이남 민중들의 반미 반전여론이 너무 강해 전쟁을 일으키게 되면 이남 사람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즉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우리민족의 민족공조의 힘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에 대한 두려움에 빠져 있는 것은 전형적인 민족허무사상의 포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민족허무사상의 포로가 되면 자기나라와 민족의 힘은 믿지 못하면서 큰 나라의 힘은 과대평가함으로서 외세에 의존해서 구걸을 통해 평화를 얻으려는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민족공조를 강화하려면 이처럼 외세의존사상, 민족허무사상에서 벗어나서 우리민족의 힘을 믿고 민족공조의 힘으로 자주적으로 우리민족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려는 강력한 민족자주사상을 가져야 한다.

2) 우리민족과 미국의 대결구도를 명확히 세우고 실천을 통해 이를 풀어나가야 한다

민족공조는 목표는 분명하다. 6.15 공동선언 이행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민족전체의 단합된 힘에 기초한 공동행동으로 돌파해 나가자는 것이다. 현시기에 민족공조의 목표는 미국의 ‘6.15죽이기’를 타파하고 민족대단결을 이룩하는 것이다. 그것을 말로가 아닌 실천적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현시기에 ‘우리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를 실천으로 해결하고 민족공조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첫째, 남과 북, 해외의 칠천만 민족이 한반도에 조성된 전쟁의 위험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서 공조해야 한다. 미국의 대북 고립압살책동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에서 공조해야 한다. 미국과의 공조는 전쟁공조이고 반북분열공조이며, 민족공조는 평화공조, 통일공조이다. 둘째, 남과 북 해외의 칠천만 겨레가 6.15 공동선언을 철저히 이행하기 위한 남북 교류협력사업의 성공적 발전을 위해 공동노력 해야 한다.

며칠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합의한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는 우리민족의 힘을 굳게 믿고 민족공조를 튼튼히 강화발전시켜 나가기만 하면 전쟁도 막고 통일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우리민족에게 주었다. 지금 우리민족이 믿을 것이라고는 전쟁위기만을 가져다주고 대결과 대립만을 강요하는 한미동맹이 아니라 평화와 통일을 가져다주는 민족공조인 것이다.

이번 6월 14일-16일까지 인천에서 열린 ‘우리민족대회’에서 남과 북 해외의 통일운동 대표들은 “내년 2005년은 6.15공동선언 발표 5돌이 되는 해이자 조국광복 60돌, 민족분열 60년이 되는 해이다. 남과 북 해외 온 겨레가 단합하고 또 단합하여 뜻깊은 내년을 조국통일의 원년으로 만들자!”고 선언하였다.

내년 2005년을 조국통일 원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 어려운 과제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과연 내년을 조국통일 원년으로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도 있다. 하지만 지난 4년처럼 우리민족의 힘을 굳게 믿고 우리민족의 힘으로 통일을 이루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갖고 민족공조를 실현해 나간다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민족공조를 무기로 2005년을 자주통일 원년으로 맞이하기 위한 민족적 대행진에 떨쳐 일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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