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송환대상 최고령 비전향장기수인 고성화 선생이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3박4일간 인천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4돌기념 우리민족대회’에 참관하고 나서 그 소감을 보내왔다. - 편집자 주


고성화 (88세, 2차 송환대상 최고령 비전향장기수, 제주 거주)

세계의 모든 민족에게는 고유한 신념이 있다. 그 신념은 제2차 세계대전 종식과 함께 해방된 식민지 반식민지의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역사적 사실로부터 올 수도 있고 인간의 자유와 민족중흥을 향한 미래에 대한 커다란 희망에서 올 수도 있다.

약소국들이 강대국들에 의한 식민지 반식민지로 지배받던 모든 약소 민족의 해방은 민족생존의 희망이요, 신념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주장하는 민족제일주의가 바로 그것인 것이다. 우리 민족도 예외 없이 이에 해당한다.

▶지난 14일 인천에서 열린 '우리민족대회' 환영만찬장에 참석한 2차 송환 희망 최고령
 비전향장기수 고성화 선생(88, 제주).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6월 14일 16시 30분 북과 해외동포 일동이 영종도 국제공항 출구에 모습이 나타났을 때, 그리고 환영하는 인파와 환영받는 손님들이 손에 손에 통일기를 들고 흔들며 환호성을 외쳤을 때, 그 감동적 장면은 우리 서로 남북으로 갈라져 살지라도 그 순간만은 아무런 장벽도 없었고 우리 민족이 하나라는 감동만이 있을 뿐이었다.

14일 밤 연회에 이어 15일 밤 야구경기장에 있었던 남과 북의 “우리민족 자랑대회”(합동공연)에서는 참관 인원 1만 7천여 명이 모였고 공연 중간 장면에 부른 ‘인생 길에 상봉과 이별 그 얼마나 많으랴’를 불렀을 때, 관람인원 전체가 박수로 재청을 요구하였고 재청에 따라 그 노래를 불렀을 때 관중석에서는 감동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16일 폐회식은 문화경기장에서 있었는데 6.15선언 5돌이 되는 2005년을 조국통일 원년으로 하자는 내용을 담은 선언을 뼈대로 하는 발표가 있었다.

남측 여성단체 연합회 상임대표 정현백, 북측 김일성 사회주의 청년동맹 중앙위원회 부장, 민단 평화통일추진위원장 박성우 등이 공동으로 선언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첫째 온 겨레는 6.15 공동선언 정신인 민족자주의 원칙에 기초하여 단결할 것, 둘째 조국의 통일을 위한 길에서 이념과 제도의 차이를 넘어 단합할 것, 셋째 민족의 생존을 지키고 나라의 통일과 평화를 실천하기 위한 길에서 언제나 단합과 단결할 것을 선언하였다.

참가단은 ‘2005년’은 6.15공동선언 발표 5돌이 되는 해라고 강조하며 남과 북,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가 단합하여 내년을 조국통일의 원년으로 만들자고 선언문을 마무리하여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참가자들의 큰 박수 갈채를 받았다.

실로 감격과 열의에 찬 장면이었다. 회고하건데 지금까지 우리 민족은 얼마나 잘못된 길을 걸어왔던가? 오해와 이념상의 편향적 사고,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과감하게 청산할 때가 되었다. 그리하여 자주적 통일, 균형적 자립적 민족경제, 다른 나라와는 호혜평등의 원칙 위에 떳떳하게 전진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되었다.

마지막으로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범민련 남측본부’가 이번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 것이다. ‘범민련 남측본부’를 이적단체로 규정하여 남과 북 해외가 공동 주최한 ‘6.15’ 네 돌 기념행사에 불참하도록 한데 대하여 한마디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범민련’이야말로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오직 나라의 통일을 염원하여 남과 북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모여 만든 유일무이한 통일조직이다. 이번 행사에 주인격인 범민련을 제외시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부 당국에게 묻노니 어찌하여 ‘범민련’이 이적단체인지 그 이유를 소상히 밝혀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다.

고성화 선생 주요 약력

1916. 8. 20.    제주도 우도에서 출생
1934. 9. 10.    일본낭화상업 5년 중퇴
1935. 3.         우도 사립보통학교 교원
1937. 3.         교원 사업
1938. 1.         함북자동차주식회사 경리사원 입사
1944. 10.       조선마곡창고 주식회사 정사원
1945. 10.       조선공산당 우도 책임자
1947. 3.         미 군정 탄압으로 부산으로 탈출
1947. 4.         남조선노동당 부산시당에서 활동
1948.            영도구당 오르그에서 구당 책임비서
1948. 1.         남로당 부산시 지구당 책임비서
1949. 6.         피검, 2년형 선고받음
1951. 4.         출소
1955. 4.         일본으로 감
1959. 10.        교포 귀환 시작으로 도일 중단
1968. 10.        당으로부터 소환
1973. 3. 16.    피검
1993. 3.         형집행 정지로 출소
현재              제주도에서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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