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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미술이야기2-8>예술과 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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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4.06.16  1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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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섭(화가/ynano@hanmail.net)


예술과 성숙

한동안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청춘시절 내내 자신을 괴롭혔다. 정치나 역사 혹은 문화 전반에 대한 의심을 어느 정도 푸는데 근 10년이 걸렸다.

하지만 첫 개인전을 앞두고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과연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내가 좋아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진짜 나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정서일까? 자신이 없었다. 어떤 풍경이 너무 좋아 한동안 따라 가다보면 결국 어느 서양 명화의 한 장면과 비슷했고, 어떤 기발한 생각이 들어 따라 가보면 누군가의 책 속이었다.

마치 머릿속에 누군가가 기계 칩을 심어 놓은 것 같았다. 여기에 불쑥 불쑥 솟아오르는 욕망과 이상한 치기, 불만, 열등감 따위의 감정은 도무지 그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낮인지 밤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웠고, 진짜와 가짜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림 그리기는 나의 정신과 감성을 치료하는 과정이었다.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은, 사람도 컴퓨터처럼 때마다 업그레이드를 시켜줘야 하고, 가끔 바이러스 검사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소년 시절과 성년의 시절은 차원이 달라야 하고, 성년이 되면 청소년 시절의 낡은 생각이나 아픈 경험, 잘못된 정서는 치료해야 한다.

사람마다 조금씩은 다르지만 대략 차원의 변화를 겪는 시기는 10년 주기이다. 극심한 변화가 오는 시기는 10대말에서 20대 초, 20대 말에서 30대초, 30대 말에서 40대 초 따위로 흔히 ‘말초증상’이라고 부른다.

이런 시기에 좋은 친구나 선배 혹은 스승을 만나 비약적으로 발전하거나 책이나 사상, 혹은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변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드리고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못한다. 원인을 모르기 때문이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인이면서도 어린 아이 같은 정서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심지어는 결혼을 하고 어버이가 되어서도 폭력성과 소유욕 따위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도 있고, 자신의 나이에 맞는 문화나 정신적 수준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특히 과거에 만들어지고 경험되어진 낡은 생각이나 잘못된 오류를 업그레이드 하거나 치료받지 못해 타인이나 사회에 바이러스 같은 존재가 되는 경우도 있다. 현대의 질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신경증이나 정신병이다. 겉은 멀쩡한데 정신이 병드는 현상은 세상이 너무 빨리 변화하고, 다양한 가치나 관계 속에서 소외되거나 방향을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어떤 학자는 현대 사회가 신화나 주술적 기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의 성숙과 발전에 따른 사회적 통과의례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원래 이런 역할은 종교나 민간신앙, 혹은 사회적 도덕규범이 해 왔다. 하지만 종교는 타락했고, 민간신앙은 미신으로 취급받으며, 사회적 도덕규범은 현실을 따라잡지 못해 구닥다리가 되었다.

앞으로 사람들의 정신적인 균형을 주고 성숙과 발전에 맞는 업그레이드와 바이러스 퇴치는 예술이 할 것으로 보인다. 예술적인 소스를 기반으로 대중적인 합의가 이루어지면 곧 문화가 된다. 예술은 결국 인간에 대한 학문이고, 삶에 대한 학문이다. 반복적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며, 능동적이며 창조적인 학문이 바로 예술이다.

단지 즐기거나 위로가 되는 얼뜨기 예술보다는 인간은 깊은 심연을 드러내고 삶의 본성을 표현하는 예술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예술을 통해 다양한 창조성을 발휘하고 그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는 꿈은 결코 망상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른다.

울림폭포

이번에 소개할 그림은 북한화가 차성철이 조선화로 그린 <울림폭포>이다. 울림폭포는 강원도 법동군 룡포리에 있는 유명한 폭포이다. 울림폭포는 높이 75m, 폭이 20m에 이르며, 깊이 1.5m, 반경 30m 정도 되는 폭포 아래 물웅덩이에는 버들치를 비롯해 칠색송어들이 자라고 있다고 한다. 2001년 김정일 위원장이 현지지도를 하면서 남긴 말은 울림폭포의 아름다움을 잘 말해 준다.

▶울림폭포/차성철/조선화
"금강산에서 묘향산으로 들어가던 서산대사가 이런 유명한 폭포가 있는 줄 알았더라면 이곳에 절간을 세웠을 것이다."
현재 울림폭포는 군인 건설자들에 의해 주차장, 야식장, 다리 따위가 세워지면서 북한 주민들의 문화 휴식터가 되었다.

<울림폭포>는 조선화로 그린 풍경화이다. 울림폭포라는 이름대로 굉장한 폭포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작품이다. 아래에서 위를 보고 잡은 구도는 물줄기가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조선화로 그렸지만 단단한 바위의 표현이나 빈틈없는 묘사는 마치 유화로 그린 것처럼 육중한 무게감을 준다.

이 작품에는 특별한 사상이나 교양적 내용이 없다. 조금이라도 찾아본다면 ‘내나라 제일로 좋아’라는 의미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정도이다.

풍경화의 출발이 원래 그러했지만 북한에서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북한에서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라는 창작방법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처럼 자연을 그대로 모사한 것은 흔히 ‘자연주의’라고 해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만 그리는 것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예술작품 속에 구현되는 ‘당성, 계급성, 인민성’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특히 내용이 없거나 애매한 모더니즘을 싫어하는 북한의 경우 ‘자연주의’도 좋게 보질 않아 80년대 까지 이런 종류의 작품은 볼 수 없었다.

우리가 보는 북한의 풍경화는 대부분 90년대 이후에 창작된 것이다. 이런 변화의 깊은 속내는 알 수가 없다. 북한 화단의 깊이나 토론과정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김정일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풍경화가 등장했고, 김정일 위원장의 교시가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내용은 대략 ‘인민들에게 조국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줌으로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문화적, 정서적 발전에 기여한다’ 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울러 조선화에서 추상성이 함축된 ‘선묘’와 확장된 ‘몰골기법’의 등장과 ‘정물화’, ‘동물화’ 따위도 90년대를 기점으로 창작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북한미술은 한층 깊어지고 다양한 표현방법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북한의 미술은 다양성이 부족하다. 그것은 북한 사회가 그만큼 단순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북한은 서구나 우리나라처럼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며,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모여 사는 곳은 아니다.

그렇다고 다양하지 못한 북한미술을 막연히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현실적인 조건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위협받으며,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하는 곳이다. 다양성은 현실 제도나 형식을 부정하면서 출발한다. 이런 조건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은 국론분열이나 종파론자로 보일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우리 미술이 분단이나 국가보안법 때문에 창작의 제약을 받는 경우도 있다. 분단의 현실은 예술의 다양성을 막고, 창작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다. 이것은 우리 민족 모두의 고통이다. 사람들이 존경하는 김구 선생은 예술과 문화가 꽃피는 ‘문화국가’를 꿈꾸었다. 땅덩이가 좁고 자원이 부족한 한반도가 미국이나 일본 따위를 능가하는 좋은 나라를 만들려면 ‘문화’ 밖에는 없다. 그래서 통일은 남북한 모두가 잘살고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기상을 드높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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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보기(2)
이귀순 () 2006-02-01 23:58:00
우리민족서로돕기 운동본부를 통해서 처음으로 북한 그림을 접하게
된 그 이후로 북한그램에 매료되어 다른 그림이 눈에 들어오지 않네요.
혹 전시회 기회가 없는지요.
그리고 심규섭화백님의 초청강의가 가능한지요.(저희가 의뢰할시에)
이런 문의를 할려면 어디에 연락해야 할까요?
저희 동아리중에 박물관동아리가 있는데
그중 한분은 현재 북한그림중에서도 최고인 분들 그림만도 8~9점 정도를
소장하고 있답니다.
저는 정창모화백의 작품 한점을 소장하고 있는데
오영성화백의 그림 한점을 더 간직하고 싶습니다.
전시회 기회가 있다면 정말 반갑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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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남교역 () 2006-04-22 17:54:00

북한 그림은 통일부 승인을 받아서 남포-> 인천으로 직송 받아 정상적으로 통관되지 않은 작품을 소지 하거나 매매하는 행위는 불법이 됩니다.

주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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