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섭(화가/ynano@hanmail.net)

북한의 천재화가 오은별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인물이다. 2000년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4살 때부터 이미 미술 신동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오은별은 북한의 미술전람회에서 8번 입선을 했으며,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따위의 국제 전람회에서 14차례나 입선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 오은별은 23세가 되었다. 북한의 대표적인 미술대학인 평양미술대학 박사원생으로 지속적인 미술수업을 받고 있다.

▶북한미술작품에서 자화상은 처음 본다. 작품속의
주인공은 평범한 여성으로 보이지만 눈빛이 살아있다.
오은별이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재능이 어떻게 다듬어지고 가꿔지느냐가 문제이다. 우리나라에도 천부적인 미술적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많이 있다. 잠깐 그 능력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재능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스러진다. 획일적인 교육시스템, 미술교사의 자질부족, 암기식의 학교교육, 예술을 천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미술에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소녀를 한명 발견했다. 그림을 배우는 엄마를 따라온 아이였는데, 초등학교 1학년이 그린 것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혈통도 확실히 좋았다. 어머니의 형제는 모두 화가와 만화가였다. 하지만 아이는 산만했고, 집중력이 없었다. 또한 그림을 재미없어 했다. 무엇보다 이 아이를 교육시킬 어떤 시스템도 없었다. 아이가 평범하게 자랄 것은 분명했다.

오은별의 아버지는 화가였다. 오은별은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오은별이 2살 때 이미 미술대학과 만수대창작사에 의해 재능이 발견되었다.

오은별이 체계적이고 수준 높은 미술교육을 받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아마 상당히 어렵고 힘든 과정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해도 게으르거나 혹독한 교육과정을 인내하지 못하면 소용없다. 어린 나이에 지루하고 반복적인 기초 훈련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영재교육은 눈높이 교육이 아니다. 아이의 정서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교육이다. 이것은 현재 오은별을 지도하고 있는 스승의 말을 통해서 드러난다.

오은별은 대학 1학년때 석고소묘과제를 남들보다 4배가 큰 종이에 그렸다.

“그림종이 1cm 크기 차이가 그림에서는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자기 키 만하게 그린 소묘는 뚫고, 파고... 선 하나하나에 실로 그의 넋이 스며있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소묘의 크기는 곧 그의 결심의 크기이고 노력의 크기이며 목적의 크기였습니다.”

▶오은별의 작품은 서정성이 깊고, 인간 내면의 모습이 드러난다. 
소묘는 그림그리기 기초다. 기초는 재미없지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운동선수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체력 같은 것이다. 어떤 일에 있어 기본기를 연마하고 다지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고 이 과정에서 인내와 게으름을 극복해야 한다.

또한 스승은 오은별에게 박사원생 기간동안 3000장의 그림을 그리라는 주문을 했다. 이 정도의 작품량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다.

오은별의 장점이 뭐냐는 질문에 스승은 이렇게 답한다.

“그에게는 여성적인 부드러움과 함께 남자들을 능가하는 대담성이 있고, 철학적 깊이가 있습니다.”

그렇다. 현대 사회에서 남성적인 특징, 여성적인 특징 중 어느 하나만 가지고는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남성은 여성의 장점을 배워야 하고, 여성은 남성의 못된 점이 아니라 좋은 점을 배워야 한다. 오은별은 대학 때 남자들 속에 끼여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고 백두산에 오르고 답사행군의 천리길을 걸었다.

또한 철학적 깊이가 있어야 한다. 철학은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낸다. 돈만 밝히는 철학, 싸움을 조장하는 철학, 약육강식의 철학은 오히려 세상을 망친다.

오은별의 8세 때 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88년 2월 22일
선생님이 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들 때문에 속상해 하신다. 나는 작전계획을 세웠다.
첫째,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한 명씩 맡는다. 둘째, 공부 못하는 어머니한테 편지를 쓴다. 셋째, 그 아이들한테 공부 잘해야 우리나라를 빛낼 수 있다고 말해준다.”

오은별은 말한다.

“시대를 어떻게 보는가, 어떤 철학적 견해를 가지는가에 따라 미술가의 단수가 달라진다고 봅니다. 재간 있는 미술가는 많지만 시대와 역사에 남는 미술가는 적지 않습니까? 이런 생각은 어제 오늘에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박사원에 들어온 것입니다.”

재간 있는 미술가, 즉 재능 있는 미술가는 많이 있다. 이것은 오은별 자신도 잘 알고 있다.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재능을 별 가치 없는 것으로 말한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이것은 엄청난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자신감이다.

오은별은 북한만의 화가로 남기를 바라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세계문학선집, 여러 나라의 영화를 비롯한 많은 책을 읽는다. 그는 지금 인민대학습당의 외국어 전문강습(야간)을 다닌다고 했다. 영어, 일어, 중국어를 완전히 마스터하기 위해서란다.

오은별은 단지 그림만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완성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미술을 통하여 제 자신의 인간적 수양도 쌓으렵니다.”

사실 나는 미술천재를 믿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구의 여러 천재적 미술가는 상업적인 요구에 의해 조작되기도 하고, 일찍 사망해 진짜 천재인지 검증되지 않는 화가들도 많이 있다. 또한 현대는 ‘천재의 시대’가 아니라, ‘대중의 시대’이다. 천재적인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사회가 아니라 평범한 대중이 세상을 만들어간다. 따라서 천재에 대한 이야기는 자칫 보통 사람들을 주눅 들게 하거나 시대를 역행할 위험도 있다.

▶오은별의 작품은 여성스런 섬세함 뿐만 아니라, 선이 굵고,
역동적이며, 힘찬 남성미도 나타난다. 
내가 볼 때 오은별은 평범한 소녀로 끝날 수도 있었다. 오은별의 천재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과거의 천재는 고급정보가 독점되고 교류가 없었으며, 전체 교육의 수준이 낮은 상태에서 나올 수 있었다. 훌륭한 스승 아래 특별한 교육을 받았기에 가능하다는 말이다. 지금도 돈이나 정보로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은 교육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만들어 낸다.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의 자식은 뛰어나고, 보통사람들의 자식은 찌그러진다면 우리 사회는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지금은 정보와 문화의 시대이고, 인터넷, 휴대전화, 디지털카메라, 컴퓨터 따위의 도구가 발달했으며, 원하는 지식을 쉽게 얻을 수도 있고 네트워크를 통해 고급정보를 교환할 수도 있다. 평범한 천재들이 엄청나게 많이 배출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 사회의 주인이 되는 것을 꿈꾼다. 모든 사람들이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고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내기를 바란다. 그것은 좋은 혈통이나 정보의 독점에 의해서가 아니라 삶에 대한 애정과 부단한 노력, 사회적 가치의 발견 따위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글은 북한의 ‘통일신보’에서 인터뷰한 기사를 ‘민족21’ 이 2004년 5월호에 독점 게재한 내용을 참조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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