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에 눈나린다 총을 메어라 출전이다.
눈보라는 밀림에 오나 마음속엔 피 끓는다.
높은 산을 넘어넘어 눈에 묻혀 사라진 길을 열고
빨찌산이 령을 내린다 원쑤를 찾아 령을 내린다."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과 토벌군의 최대 격전지 중의 한 곳인 지리산 대성골에서 50여년만에 빨치산들의 노래소리가 다시 울려퍼졌다.

▶30일 지리산 대성골에서 통일광장이 주최한 '남녘 애국통일열사 추모제'가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30일 낮 1시 지리산 대성골 입구인 경북 하동군 화개면 신촌부락에서 여순항쟁과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투쟁'을 벌였던 당사자들과 사회단체 관계자등 200여명이 모여 '남녘 애국통일열사 추모제'를 열었다.

비전향장기수들의 모임인 통일광장이 주최한 이날 추모제에는 빨치산투쟁에 직접 참가했던, 지금은 7,80대의 노인들이 전국 각지에서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동지들의 혁명정신은 영원히 우리 민족의 가슴에 살아 숨쉴 것"

권낙기 통일광장 공동대표의 사회로 열린 이날 추모제는 변숙현, 최상원 선생이 분향하고 제주를 올린 뒤 큰절을 두 번 올리는 것으로 시작됐으며, 참가자들은 먼저 떠나보낸 영령들에 대해 묵념하고 '태백산맥에 눈나린다'(태백산 빨치산가)를 합창했다.

▶김영승 선생이 행사 추진경과와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행사를 준비한 통일광장 김영승 선생은 "전국에서 달려오신 우리 선배동지들과 후배 친구들 대단히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고 "백두영봉에서 한라까지 조국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산마다, 능선마다, 골짝마다, 들마다, 마을마다, 지하에서, 감옥에서 피가 어리지 않은 곳이 없다"며 "특히 오늘 제를 올리고 있는 대성골은 지리산 어느 골짜기보다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시기 1952년 1월에 치열한 전투로 말미암아 피로 물들었던 전투장이었고 더욱이 제5지구당 위원장인 이현상 동지가 이곳 빗점골에서 53년 9월 18일에 희생된 골짜기라는 점에서도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김영승 선생은 "지금까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각 지방에서 분산적으로 지내오던 추모제를  하나의 전국적인 추모제가 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서 작년 4월에 전남 백운산에서 반세기 이상 구천에 떠돌고 있는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지낸 후 오늘 두 번째로 대성골에서 추모제를 갖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내년에는 전북, 다음에는 충청, 그 다음에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추모제를 가질 '야심찬 계획'도 덧붙였다.

젊은 세대를 대표해 발언한 이경원 범민련남측본부 사무처장은 "선생님들을 만나서 너무 가슴이 벅차고 그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에 서니 지금의 시대에서도 우리 가슴속에서 높뛰는 감회, 감동을 받게 된다"며 "그때 당시에 싸웠던 여러 선생님들을 모시고 후대들이 그 의지와 사상과 뜻을 이어서 높게 실현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결의를 표현할 수 있는 추모대회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는) 젊은 사람들이 준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제 이 추모대회가 남과 북, 전체 민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추모대회로 점차 발전돼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당시 빨치산 투쟁을 하시면서 외세를 몰아내고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단일민족국가를 형성하려고 했던 그 투쟁의 정신을 오늘 다시한번 배우게 된다"며 "그 뜻 이어서 힘차게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류낙진 선생이 제주를 올리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이어 전라도 빨치산을 대표해 류낙진(76), 충청도를 대표해 손경수(74), 경상도를 대표해서 최상원(82) 선생이 차례로 추모사를 했으며, 서경순 민가협 전 상임의장,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회장이 역시 추모사를 임방규 통일광장 공동대표가 제문을 낭독하고 소지했다.

류낙진 선생은 "오늘 우리 지리산의 동지들이 5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건너뛰어 대성골의 칠성봉 아래 모였다. 수많은 우리 인민의, 해방전사들의 넋을 기리고 그때의 가열찬 해방전쟁의 투쟁을 되살리며 이곳에 서있다"고 말하고 "반백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으나 지금도 함께 총을 맞잡고 싸우던 동지들의 얼굴이 떠오른다"며 여러 빨치산 지도자들을 일일이 거명했다.

류 선생은 1950년 한국전쟁 후퇴시기 인민군 총사령관의 10호 명령에 따라 빨치산 활동으로 투쟁할 것을 결의하고 다시 총을 잡고 산으로 들어간 시기부터 지도자들의 전사로 지리산에 총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54년 가을까지를 개괄하고 "지금 여기에는 수많은 옥고를 치른 빨치산의 옛 동지들이 많이 왔다. 옛 전쟁터에 다시 서서 그때 힘차게 부르던 빨치산의 노래를 다시 부르고 있다. 아마 구천을 헤매고 있는 수많은 동지들이 부르는 것 같다"며 조국이여 영원하라, 해방조국 만세, 통일조국 만세를 외쳤다.

▶최상원 선생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왼쪽은 사회자 권낙기 통일광장 공동대표.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손경수 선생은 "선열들의 열기에 찬 투쟁의 함성과 분위기가 우리들의 온 몸을 감싸돌고 있는 듯하고 피를 끓게 하고 있다. 불어오는 바람은 여러 선열들의 고결한 투쟁정신을 우리의 가슴과 우리의 머릿속에 스며들게 하는 듯 하다"며 "우리민족의 간절한 염원인 자주적 통일을 아직도 완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실로 통탄스럽고 영령들에게 죄송하고 애석하기 그지없으나 한걸음 한걸음 통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최상원 선생은 "주머니에 남아 있는 한줌의 생쌀을 서로 나누어 씹으면서도 그분들의 가슴은 적개심으로 충천했다"며 "북풍한설 휘몰아쳐 지리산 전체가 얼어붙은 눈덩이로 변했을 때 적들의 동계공세는 어김없이 있었다. 이때 싸우다가 쫒기고, 쫒기다가 싸우며 장렬하게 산화해 가신 것이 바로 1951년 1월 18일 이곳 대성골 투쟁이었다"고 회고하고 "얼어죽고, 굶어죽고, 맞아죽고 조국과 인민을 위해 여한 없이 싸우다 죽은 동지들의 혁명정신은 영원히 우리 민족의 가슴에 살아 숨쉴 것"이라고 추모했다.

"고운 이름들이여! 거룩한 이름들이여!"

서경순 민가협 전 상임의장은 영령들의 뜻을 이어받아 자주, 민주, 통일 과업에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다짐했으며,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회장은 외세의 간섭없이 자주통일을 이루는 일을 후대들이 잇겠다고 말했다.

▶임방규 공동대표(오른쪽)가 제문을 불태우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제문을 올린 임방규 선생은 "신위들이여 우리는 임들의 피끓던 애국애족 정신을 이어받아 조국의 자주통일과 6.15공동선언 관철을 위해 굳세게 싸울 것을 제단앞에서 엄숙히 맹세한다"며 "아! 가신이들이여, 눈물로 그 목숨 다시 살려낼 수 있다면, 섬진강 물을 퍼서 눈물로 빚겠나이다. 먼저 간 이들이여, 외쳐서 이 자리에 다시 불러올 수 있다면 목이 피로 터져 소쩍새 되겠나이다. 변치않고 삭지않고 깨어나지 않는 긴 긴잠, 평화만이 깃든 영겁의 평안속으로 가시옵소서. 고운 이름들이여! 거룩한 이름들이여!"라고 추모했다.

대성골투쟁 당시의 생존자인 김교영 선생은 당시를 회고하고 "대성골은 1952년 1월 10일부터 25일까지의 제2차 공세에서 경상남도 당.단체.기관 부부장급 이상 간부들이 몰살을 당한 곳이라고 생각해도 된다"며 간부중 생존자가 자신과 한창호 선생 두 명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교영 선생(오른쪽)이 항상 지니고 다닌다는 지리산 지도를 펼쳐들고 옛 동지들과
포즈를 취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김교영 선생은 "엄청난 10만이상 되는 부대가 대성골에 집결해 경남 57사단과 이현상부대인 4지대를 2중, 3중으로 포위해서 비행기로 폭격했고 소이탄을 던지고 휘발유를 뿌리고 각종 포화를 던져서 전부 검게 태워 죽인 곳이 바로 대성골"이라고 말하고 "눈이 허리에 차 (생포자들을) 걷지만 못하면 모두 죽였다"고 증언하고 "오늘 대성골 위령제를 계기로 더욱더 분발하고 분노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며 "6.15정신, 하나되는 정신으로 분발해서 통일을 앞당기는 길에 같이 매진하자"고 호소했다.

이어 박종화 시인의 '우리가 당신입니다-대성골 2004년의 넋'이라는 추모시 낭독을 시작으로 혜운스님(안병철)이 반야심경을 바쳤으며, 한대수 거창민예총 부지부장이 진혼굿을 벌였고, 노래패 희망새가 추모가를 바쳤다.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열린 추모제에는 전국 각지에서 200여명이 참석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행사를 추죄한 통일광장의 권낙기 공동대표는 "1044명의 열사 명단에 일부 누락된 분들이 있는 것을 양해해달라"고 말하고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참석해 행사 자체는 대성황이었다"고 평가한 뒤 "6.15 정신 속에서 지난 과오를 끌어안고 잘못되고 왜곡된 대목은 고쳐나가 통일로 가는 길에 폭넓은 마음으로 함께 가자"고 말했다.

참가자들의 식사와 숙박 등 행사 실무를 뒷받침한 경남지역의 박순자 선생은 "93년부터 부산추모회가 위령제를 지내오다 2000년부터 남도열사 추모제로 지내왔고 작년부터 통일광장이 전국적으로 치르고 있다"며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젊은 사람들이 이어받아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행사준비에 힘써준 하늬영상의 조성봉 감독 등에게 공을 돌렸다.

"슬픔을 기쁨과 승리감으로"

이날 추모제에 참가한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하루전인 29일 밤 대성골에 도착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동지들과 감격적인 상봉을 나누는 등 '전야제'를 함께 했다.

서울에서 오후 1시 30분경 사당역에서 버스 두 대가 출발하는 등 전국 각지에서 참가자들이 속속 추모제가 열리는 대성골로 모여 들었으며, 특히 이번 행사에 처음으로 참석한 이들도 많아 서로 인사를 나누고 지난 일을 더듬기도 했다.

▶전야제에서 지리산 빨치산 출신들이 노래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희망새의 노래에 맞춰 모두가 어우러진 대동한마당이 펼쳐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큰아들 나순철(55)씨와 함께 처음 추모제에 참석한다는 나경운(76) 선생은 전남 나주출신으로 해방후 비합활동을 하다 장흥군 내산에서 생산유격대 활동을 하다가 15년간 감옥생활을 하고 비전향으로 출소했으나 12년간이나 보안관찰 처분을 받았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참가자들은 노진민 천주교통일후원회 회장의 사회로 각 지역별로 나와 서로를 소개하고 노래를 부르는 등 친교의 시간을 가졌고, 노래패 맥박과 희망새 등이 나와 분위기를 돋구자 흥겨운 춤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2000년 9월 2일 북송된 비전향장기수 이경구 선생의 부인 김송단씨는 돌아오는 길에 "말할 수 없이 뜻깊고 감개무량하다"며 "눈물도 흘렸고 기쁘기도 했고 즐겁게 뛰어도 봤다. 이렇게 좋은 추모제는 처음이다"고 말했다. 권오헌 회장은 "슬픔을 기쁨과 승리감으로 승화시켰다"고 평했다.

▶정운창, 이옥남(이옥자) 부부.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추모제에는 정운창(76, 구례), 이옥남(이옥자, 78, 남부군)부부와 신동필(76, 함양), 장필순(69, 함양), 오영애(70, 논산), 손경수(74, 충남) 부부가 나란히 참석해 눈길을 끌었으며, 박종린 선생의 중국에서 온 조카와 손녀도 이채를 띠었다.

또한 빨치산 투쟁 당시 산청군 오보면 가마실동네에서 행해진 양민학살을 산에서 지켜본 생생한 증언도 나왔고, 경찰과 군의 세균전 실시, 양민을 추운 겨울에 핫바지 차림으로 포탄을 져나르게 해 집단 동사시킨 사건 등이 낱낱이 밝혀졌다.

▶유적지 답사는 폭우속에 진행됐다. [사진 제공 - 한옥주]
한편 예정된 지리산 유적지 답사는 30일 오전 폭우로 인해 21명만 참가한 가운데 김교영 선생이 이현상 사령관이 전사한 빗점골과 인근의 4지대 지휘부 아지트를 안내했다.

노진민 회장은 "국지적으로 했던 행사를 상징성이 있는 지리산에서 모아 한다는 것이 의미가 크다"고 평가하고 "후학들이 역사성을 보고 배워야 되고 연결해 나가야 하는데 많이 참석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