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는 밀림에 오나 마음속엔 피 끓는다.
높은 산을 넘어넘어 눈에 묻혀 사라진 길을 열고
빨찌산이 령을 내린다 원쑤를 찾아 령을 내린다."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과 토벌군의 최대 격전지 중의 한 곳인 지리산 대성골에서 50여년만에 빨치산들의 노래소리가 다시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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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장기수들의 모임인 통일광장이 주최한 이날 추모제에는 빨치산투쟁에 직접 참가했던, 지금은 7,80대의 노인들이 전국 각지에서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동지들의 혁명정신은 영원히 우리 민족의 가슴에 살아 숨쉴 것"
권낙기 통일광장 공동대표의 사회로 열린 이날 추모제는 변숙현, 최상원 선생이 분향하고 제주를 올린 뒤 큰절을 두 번 올리는 것으로 시작됐으며, 참가자들은 먼저 떠나보낸 영령들에 대해 묵념하고 '태백산맥에 눈나린다'(태백산 빨치산가)를 합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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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선생은 "지금까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각 지방에서 분산적으로 지내오던 추모제를 하나의 전국적인 추모제가 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서 작년 4월에 전남 백운산에서 반세기 이상 구천에 떠돌고 있는 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지낸 후 오늘 두 번째로 대성골에서 추모제를 갖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내년에는 전북, 다음에는 충청, 그 다음에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추모제를 가질 '야심찬 계획'도 덧붙였다.
젊은 세대를 대표해 발언한 이경원 범민련남측본부 사무처장은 "선생님들을 만나서 너무 가슴이 벅차고 그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에 서니 지금의 시대에서도 우리 가슴속에서 높뛰는 감회, 감동을 받게 된다"며 "그때 당시에 싸웠던 여러 선생님들을 모시고 후대들이 그 의지와 사상과 뜻을 이어서 높게 실현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결의를 표현할 수 있는 추모대회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는) 젊은 사람들이 준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제 이 추모대회가 남과 북, 전체 민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추모대회로 점차 발전돼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당시 빨치산 투쟁을 하시면서 외세를 몰아내고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단일민족국가를 형성하려고 했던 그 투쟁의 정신을 오늘 다시한번 배우게 된다"며 "그 뜻 이어서 힘차게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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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낙진 선생은 "오늘 우리 지리산의 동지들이 5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건너뛰어 대성골의 칠성봉 아래 모였다. 수많은 우리 인민의, 해방전사들의 넋을 기리고 그때의 가열찬 해방전쟁의 투쟁을 되살리며 이곳에 서있다"고 말하고 "반백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으나 지금도 함께 총을 맞잡고 싸우던 동지들의 얼굴이 떠오른다"며 여러 빨치산 지도자들을 일일이 거명했다.
류 선생은 1950년 한국전쟁 후퇴시기 인민군 총사령관의 10호 명령에 따라 빨치산 활동으로 투쟁할 것을 결의하고 다시 총을 잡고 산으로 들어간 시기부터 지도자들의 전사로 지리산에 총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54년 가을까지를 개괄하고 "지금 여기에는 수많은 옥고를 치른 빨치산의 옛 동지들이 많이 왔다. 옛 전쟁터에 다시 서서 그때 힘차게 부르던 빨치산의 노래를 다시 부르고 있다. 아마 구천을 헤매고 있는 수많은 동지들이 부르는 것 같다"며 조국이여 영원하라, 해방조국 만세, 통일조국 만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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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원 선생은 "주머니에 남아 있는 한줌의 생쌀을 서로 나누어 씹으면서도 그분들의 가슴은 적개심으로 충천했다"며 "북풍한설 휘몰아쳐 지리산 전체가 얼어붙은 눈덩이로 변했을 때 적들의 동계공세는 어김없이 있었다. 이때 싸우다가 쫒기고, 쫒기다가 싸우며 장렬하게 산화해 가신 것이 바로 1951년 1월 18일 이곳 대성골 투쟁이었다"고 회고하고 "얼어죽고, 굶어죽고, 맞아죽고 조국과 인민을 위해 여한 없이 싸우다 죽은 동지들의 혁명정신은 영원히 우리 민족의 가슴에 살아 숨쉴 것"이라고 추모했다.
"고운 이름들이여! 거룩한 이름들이여!"
서경순 민가협 전 상임의장은 영령들의 뜻을 이어받아 자주, 민주, 통일 과업에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다짐했으며, 권오헌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회장은 외세의 간섭없이 자주통일을 이루는 일을 후대들이 잇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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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골투쟁 당시의 생존자인 김교영 선생은 당시를 회고하고 "대성골은 1952년 1월 10일부터 25일까지의 제2차 공세에서 경상남도 당.단체.기관 부부장급 이상 간부들이 몰살을 당한 곳이라고 생각해도 된다"며 간부중 생존자가 자신과 한창호 선생 두 명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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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박종화 시인의 '우리가 당신입니다-대성골 2004년의 넋'이라는 추모시 낭독을 시작으로 혜운스님(안병철)이 반야심경을 바쳤으며, 한대수 거창민예총 부지부장이 진혼굿을 벌였고, 노래패 희망새가 추모가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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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의 식사와 숙박 등 행사 실무를 뒷받침한 경남지역의 박순자 선생은 "93년부터 부산추모회가 위령제를 지내오다 2000년부터 남도열사 추모제로 지내왔고 작년부터 통일광장이 전국적으로 치르고 있다"며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젊은 사람들이 이어받아 계속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행사준비에 힘써준 하늬영상의 조성봉 감독 등에게 공을 돌렸다.
"슬픔을 기쁨과 승리감으로"
이날 추모제에 참가한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하루전인 29일 밤 대성골에 도착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동지들과 감격적인 상봉을 나누는 등 '전야제'를 함께 했다.
서울에서 오후 1시 30분경 사당역에서 버스 두 대가 출발하는 등 전국 각지에서 참가자들이 속속 추모제가 열리는 대성골로 모여 들었으며, 특히 이번 행사에 처음으로 참석한 이들도 많아 서로 인사를 나누고 지난 일을 더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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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은 노진민 천주교통일후원회 회장의 사회로 각 지역별로 나와 서로를 소개하고 노래를 부르는 등 친교의 시간을 가졌고, 노래패 맥박과 희망새 등이 나와 분위기를 돋구자 흥겨운 춤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2000년 9월 2일 북송된 비전향장기수 이경구 선생의 부인 김송단씨는 돌아오는 길에 "말할 수 없이 뜻깊고 감개무량하다"며 "눈물도 흘렸고 기쁘기도 했고 즐겁게 뛰어도 봤다. 이렇게 좋은 추모제는 처음이다"고 말했다. 권오헌 회장은 "슬픔을 기쁨과 승리감으로 승화시켰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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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빨치산 투쟁 당시 산청군 오보면 가마실동네에서 행해진 양민학살을 산에서 지켜본 생생한 증언도 나왔고, 경찰과 군의 세균전 실시, 양민을 추운 겨울에 핫바지 차림으로 포탄을 져나르게 해 집단 동사시킨 사건 등이 낱낱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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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민 회장은 "국지적으로 했던 행사를 상징성이 있는 지리산에서 모아 한다는 것이 의미가 크다"고 평가하고 "후학들이 역사성을 보고 배워야 되고 연결해 나가야 하는데 많이 참석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