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부시행정부의 대북 강경 기조가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공화당의 기존 당론이 포용 정책을 내세운 전임 클린턴 행정부와 다른 만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첫 한미 정상회담을 즈음해  두드러졌다는 미묘한 시기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해답을 찾고 있는데 하나는 부시행정부 내부 혼선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미사일방어(NMD)에 대한 한국의 입장이다.

내부 혼선이란 다름 아니라 외교.안보팀의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매파와 비둘기파의 힘겨루기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김 대통령이 워싱턴에 도착한 지난 6일 안나 린드 스웨덴 외무장관과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인준청문회 등을 통해 밝혔듯이 클린턴 행정부가 남겨 놓고 떠난 곳에서 시작함으로써 북한을 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파월 장관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정책 가운데 "일부 유망한 요소가 (협상) 테이블 위에 남겨져 있으며 우리는 이들 요소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해 클린턴 행정부의 북미 협상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그러나 조지 부시 대통령의 질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고 다음날부터 말을 바꿈으로써 권력 투쟁에서 강경파가 득세했다는 분석의 빌미를 제공했다.

이 때문에 정상회담 직후 백악관에서 열린 배경 설명에서도 파월 장관의 말바꾸기와 외교.안보팀의 혼선에 대한 질문이 잇따랐다.

당초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은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정점으로 하는 매파가 파월 장관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으로 이어지는 비둘기파와 균형을 이룬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부시 대통령의 논조로 미뤄 라이스 보좌관이 강경으로 돌아서면서 세력 균형이 깨진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파월 장관이 7일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와 8일 상원 외교위원회  증언에서  "대북정책을 서둘지 않겠다"며 강경 노선으로 급선회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라는 것이다.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한 당시 발표된 한-러 공동 코뮈니케에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을 포함시킨 게 `결정적인 실수`로 강경 보수파를 자극했다는 지적도 설득력 있게 들리고 있다.

정통한 의회 소식통은 "부시 행정부가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NMD 문제와 관련해 한국이 러시아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전해짐에 따라 `괘씸죄`를 물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8년 민주당 정권이 무너질 때 이 정도는 충분히 예견됐던 일로 한국이 그리 신경쓸 상황이 아니라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김 대통령이 직접 찾아 온다고 손을 번쩍 들어줄 것으로 기대한 한국 외교.안보팀이 너무 순진했다는 분석이다.

공화당 정권의 대북 강경 노선은 당론이지만 현재로서는 이렇다 할 대북 정책이 없기 때문에 북한에 대고 `말보다 행동`을 요구하는 부시 행정부 자체도 현재로서는 말만 요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돈 오버도퍼 전 워싱턴 포스트 도쿄(東京) 지국장은 "김 대통령의 방미를 `실패작` 운운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말하고 "한미 양국 관계에 매우 유익한 좋은 출발이었다"고 평가했다.

조엘 위트 브루킹스연구소 객원 연구원도 "김 대통령의 방미 목적은 부시 행정부가 대북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입장을 교육하는 것"이라며 뉴욕 타임스 등 일부 미국 언론이 부정적인 평가에 강한 이의를 제기했다.(워싱턴=연합뉴스 이도선특파원 2001/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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