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북한공작원' 김현희와 김승일이 KAL858기를 폭파하기 위해 평양을 출발해 모스크바에 도착했다는 첫 번째 사실부터가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23일 밤 8시부터 KBS1 TV의 'KBS스페셜'이 어제에 이어 방영한 'KAL858의 미스터리-(2)김현희와 김승일, 의문의 행적'편은 이 사건에 대한 새로운 의혹들을 본격 제기했다.

이 프로그램의 첫 회분 '폭파, 진실은 무엇인가'에서는 주로 KAL858기가 폭파되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데 중점을 뒀다면 이번에는 주로 김현희와 김승일이 평양을 출발해 바레인에서 체포될 때까지의 행적을 재추적해 김현희의 진술과 수사결과 발표가 엉터리임을 입증했다.

평양에서 모스크바까지의 비행시간과 중간 급유지 통과 문제 등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부터 하나하나 추적한 결과 김현희의 진술은 여지없이 거짓임이 드러났고, 김현희가 소지한 암호로 된 헝가리 소재 북한 비밀아지트의 전화번호는 유치원이었고, 그들이 묵었다는 비엔나의 암파크링호텔의 호실은 객실로 사용된 적이 없는 곳이었다.

사실 이런 의혹들의 많은 부분은 일찍이 일본 저널리스트 노다 미네오(野田峯雄) 씨의 '파괴공작'에서 제기된 바 있던 내용이다.

구체적인 의혹들 제기돼

그러나 이번 KBS의 기획 취재에서는 김현희와 김승일의 여권에 찍힌 스탬프 등을 근거로 이들이 1984년 '자본주의 적응훈련'을 위해 국제여행을 했던 사실이 87년 사건과 중첩되어 나타난다는 사실 등 보다 구체적인 의혹들이 제기되었다.

87년 당시 출발지가 평양이 아니라 일본일 가능성이 더 높고, 84년의 김현희와 김승일이 87년의 김현희와 김승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담고 있다.

특히 김승일(여권명 하치야 신이치)이 재령의 명신중학교를 나온 김일선이라는 새로운 제기는 이후 사건해결의 열쇠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이며, 84년 여권 사인과 이후 87년 필담 기록 등이 필체가 일치하지 않아 동일인임이 아니라는 필적감정도 의혹을 더하고 있다.

또한 하치야 신이치는 이미 85년 '니시아리아 사건' 직후부터 일본과 한국의 공안당국에 의해 대공(對共) 용의자로 감시대상이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아도 KAL858기 폭파 공작원이 하치야 신이치 여권을 위조해 사용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김현희 역시 자신의 집주소로 기억하고 있는 문수구역은 87년 당시 존재하지 않은 지명이었고, 바레인에서 탈출하지 못한 이유로 든 일요일이어서 항공사가 문을 닫았다는 증언도 금요일이 휴일인 현지 실정과 완전히 다른 것으로 판명됐다.

탈출하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비행편이 있는데도 2박3일간을 머물며 쇼핑까지 하다가 적발됐으며, 극약앰플을 깨물고 김승일은 죽고 김현희는 3일간 의식불명이었다고 진술했지만 당시 담당의사는 발길질을 하며 저항했다고 진술했다.

이번 KBS스페셜이 밝힌 김현희와 김승일의 신분과 행적을 둘러싼 의혹 제기는 이 사건에 대한 김현희의 진술과 여기에만 의존한 당시 안기부의 수사결과 발표에 대한 신뢰성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린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아부다비에서 김현희, 김승일과 함께 내린 승객들의 국적조차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는 수사당국과 대한항공측의 태도는 시청자들의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을 것이다.

'KAL858기 가족회', "양재동 위령탑부터 망치로 부셔버리고 싶다"

KAL858기 사건의 의혹을 다룬 소설 '배후'를 출간한 서현우 작가는 이번 KBS스페셜 'KAL 858의 미스터리'에 대해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있지만 지금까지 17년 동안 언론에 의한 가장 구체적이고 심층적인 의혹제기였다"고 평가했다.

서현우 작가는 "이 같은 의혹제기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더 이상 침묵만으로 일관하기는 불가능하지 않나 싶다"며 "진상규명의 결정적인 동기 부여가 되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KAL858기 가족회'의 차옥정 회장은 "사고 초창기에 사고 비행기가 눈송이처럼 산산조각나 기체가 없다고 했는데 잔해가 10M가 넘고 잘라서 고철상에 팔아먹었다니 너무 안 맞는 것 아니냐?"며 "어제 TV를 보며 수색만 제대로 했으면 생존자도 있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에 억울해서 잠을 못 잤다"고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차옥정 회장은 "이렇게 의혹이 제기됐는데 국정원에서 무슨 말이 있을 것이냐"라며 "우리가 취할 대책은 내일 회의에서 정하겠지만 피폭 희생자 위령탑이라고 돼 있는 양재동 위령탑부터 망치로 부셔버리고 싶다"고 분노를 표시했다.

87년 KAL858기 사건으로 북한은 테러국가로 지정돼 오늘까지도 테러지원국으로 남아있고, 115명의 실종자 가족들은 아직도 진상규명을 애타게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의혹은 제기됐다. 이제는 당사자인 김현희와 국정원이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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