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섭(화가/ynano@hanmail.net)


인간의 마음

북한 용천역에서 폭발사고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슬픈 일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구호물자와 의료품을 보내고 있다. 사람의 슬픔을 사람의 힘으로 치유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어떤 조건과 의심을 달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북한을 특별한 나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국가체계가 아무리 특별해도 사람이 사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이 죽거나 다치면 슬프고, 좋은 일에 기뻐하고, 남의 위해 희생하는 일을 고귀하게 여기고,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고 평화를 바라는 사람은 마음은 모두 똑같다. 다만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과 형식이 다를 뿐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나라이다. 여기에 가족주의가 결합되어 있다. 사회를 하나의 커다란 가족단위로 본다. 국가 전체를 ‘가족공동체’로 생각하는 것이다. 수령과 당은 집안의 아버지 역할을 하고, 행정부는 어머니 역할을 한다. 인민들은 아버지의 영도와 어머니의 따뜻한 배려 속에서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북한에서 일어난 큰 사건들은 좀처럼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집안의 사소한 문제를 밖에 알리는 것은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외국의 손님이 방문하더라도 좋은 곳만 소개한다. 집안의 화장실이며 지저분한 골방을 손님에게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자존심이 아주 강한데서 오는 모습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런 북한의 체제와 자존심을 생각한다면 이번 용천역 열차 폭발사고는 의외이다. 외부에 빠르게 알려졌고, 또한 공식적으로 구호요청까지 했다. 그만큼 큰 사고였고, 수습이 절박하다는 의미이다. 사람이 죽고 다치는 일에는 이데올로기가 필요 없다.

북한의 대형 참사에 온정의 손길을 모아 보내는 우리 국민들이 자랑스럽다. 남의 아픔을 배려하고 함께 슬퍼한다는 것은 대단히 인간적인 모습이다. 또한 사회의식의 발전이다.
예술이나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사랑과 평화와 희생, 봉사 따위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 속에서 꽃이 핀다.

해바라기

▶해바라기/권경수/유화/2002
용천역 근처에 학교가 있었다. 열차 폭발은 학교를 휩쓸고 지나갔다. 사망자의 절반 가까이가 어린이였다. 다친 어린이들도 변변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 어린이는 인간사회의 유일한 희망이다. 사회가 삭막하고 절망적인 삶을 강요받더라도 우리는 어린이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 죽음에 대한 공포도, 늙음에 대한 쓸쓸함도 모두 어린이를 통해 보상받는다. 어버이들은 그래서 허리가 휘도록 일해서 어린 자식들을 먹이고 공부시킨다.

북한에서도 어린이는 여전히 희망이다. 북한미술에는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이 많다. 미술작품 속의 북한 어린이는 북한 사회전반과 연결하여 표현한다. 천진난만하게 노는 모습도 있고, 장난감 비행기나 총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도 있다. 점심을 싸가지고 아버지의 일터에 가는 어린이도 있고, 그림이나 음악 공부를 하는 어린이 모습, 운동을 잘해서 선물을 받아오는 어린이의 모습도 표현한다. 눈사람을 만들어 ‘강성대국’이란 글자를 쓰면서 꿈을 키우는 어린이 모습도 있다. 또한 공사현장에서 지친 노동자들을 위문하여 춤과 노래를 부르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어린이를 미술작품에 이렇게 많이 등장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미술작품에 어린이를 사회전반의 문제와 연결시켜 표현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린이가 북한 사회의 절대적 희망이란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해바라기>라는 제목의 작품은 북한화가 권경수가 유화로 그렸다. 2002년에 제작된 최근 작품이다.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서도 소개되었다. 2002년 8월, 서울에서 열린 ‘815민족통일대회’의 ‘남북한 통일미술전’에 출품되었다.

이 대회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축소되고, 또한 옥외행사를 할 수 없어서 미술전도 호텔 식당에서 초라하게 열렸고, 일반인들은 관람할 수가 없었다. 작품의 크기가 20호 정도로 아담했고, 전혀 색다른 작품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아무튼 이 작품 속에 나오는 어린이는 귀엽고 천진난만한 모습이다. 따가운 햇살에 눈을 감고 있는 여자아이, 해바라기 위에 앉은 잠자리를 잡기 위해 손을 내밀고 있는 남자아이, 그것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아이들...

아이들은 행복하게 보이고,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도 행복하다. 그림 속의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북한 어린이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림 속의 아이들은 국적과 이념을 떠나 모두의 아이들처럼 보인다.

이 작품의 제목은 작품에 등장하는 해바라기와 일치한다. 하지만 ‘해바라기’라는 제목 안에는 간접적인 의미도 숨어있다. 이것은 북한 사회와 연관이 있지만 굳이 설명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이 작품을 용천역 열차 폭발사고로 희생당한 어린이와 연결시키는 것은 가슴 아프다. 시커먼 화염연기와 먼지에 얼굴을 다친 어린이의 모습과 따스한 햇살을 받아 생기 넘치는 어린이의 극명한 대비는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든다.

마음이 필요할 때다. 인간적인 마음을 모아 어린이를 치료하고 밝은 웃음을 되돌려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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