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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교재-미술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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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03.07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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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이야기 한 토막

▶학교가 그립건만
강만수/조선화/129*91/1975


역마살이 붙은 아버지는 가족을 여기 저기 끌고 다녔다. 워낙 이사를 많이 다니고 전학을 하다보니 변변한 친구조차 없었다. 어떤 때는 전학간지 하루만에 다시 전학을 한 일도 있다. 반에서는 항상 뒷자리에다 번호는 70번을 오르락내리락 했다. 학업에 재미를 붙이지 못한 것은 당연했고, 통지표에는 `미양가`라는 표시로 도배를 당했다.

사실 어린 나는 `미양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고, 그게 공부를 제일 잘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거의 모든 과목이 `양가`집이었는데 유독 미술만은 `미`를 맞았다. 학교를 가는 대신 만화방에서 죽쳤고, 필기를 해야 할 공책이나 교과서에는 만화나 그림을 그렸다. 새 학기가 되어 새 교과서를 받을 때 가장 좋았던 것은 아무런 낙서가 없는 흰 공간이 많아 그림 그리기에 좋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얼굴이 하얀 돈 많은 집 딸을 속으로 좋아하며 근처를 얼쩡거렸고, 어른이 되면 돈을 아주 많이 벌어야겠다고 다짐을 하기도 했다. 가난했던 친구를 보며 맛있는 음식이나 장난감을 풍족하게 사주고 싶었고, 내게 관심없는 선생님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부모님에 대한 미움은 상대적으로 없었다.

어른이 된 이후 생각해 보니 이사를 자주 한 것이 꼭 아버지의 역마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도 먹고살기 위한 발버둥이었을 것이다.

교육의 나라, 북한

강만수의 <학교가 그립건만>이란 작품은 공부를 할 수 없는 가난한 소작농의 아이들의 모습을 비판적 시각에서 그렸다. 북한 미술에서 보기 드문 `비판적 사실주의` 계열에 속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일제시기이다. 학교를 갈 수 없는 가난한 한 아이는 까치발을 하고서 안타깝게 교실을 쳐다보고 있고, 지게를 진 큰 아이는 서러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단순히 공부를 하고 싶은 가난한 아이의 서러운 분노에 있지 않다. 가난한 아이는 학교에 가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식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돈 많고 힘있는 사람은 공부를 한다. 자신은 학교에 가질 못한다. 자신은 돈 많고 힘있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돈 많고 힘있는 사람은 모두가 좋아하고 추구하는 인간형이다. 그렇다면 돈 많고 힘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학교에 가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작품은 말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만약 지게를 진 아이를 작품에서 빼버린다면 공부를 하고 싶은 아이의 까치발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정도를 끝날 것이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공부하고 싶다면 돈을 벌든지, 부모를 잘 만나든지 하라고? 갑자기 중학교 사회선생님의 고귀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공부를 못하면 돈이라도 많든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교육의 평등을 말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교육의 역할을 이야기한다. 이런 감상의 포인트를 아슬아슬하게 지탱해 주는 소품이 아이의 표정과 지게에 매달린 도끼이다. 지게 진 아이는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이다. 자세히 알 수 없지만 그것이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지가 숨겨져 있다. 또한 이런 구조의 문제는 개인의 편안함을 버리고 싸움에 나설 때 극복할 수 있다고 소곤거리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의 교육은 `공산주의적 인간형`을 만드는 강력한 수단이다. 북한은 돈 많은 사람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체제도 아니고 개인의 출세를 보장하는 나라도 아니다. 따라서 교육은 곧 북한 특유의 사회주의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 방편이라는 말이다. 우리 나라에서 돈이 없어 시행하지 못하는 11년제 의무교육을 몇 십년 전부터 시행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감성적인 혈통을 가진 사람들을 어떤 원칙과 목표에 맞추고 개인의 욕구를 극복하려면 이보다 더 강력한 이성의 힘이 요구된다. 이성은 지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의 교육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시력을 희생하는 군인의 미담이 나오고 그 군인을 위해 자신의 눈을 주겠다는 의사가 있고, 평생 그 사람의 길눈이 되겠다는 처녀가 북한 TV를 통해 소개된다. 명문대학을 나와 농촌을 발전시켜보겠다고 떠나는 젊은 무리의 이야기가 나오고, 굶어서 죽을지언정 무릎을 굽히지 않겠다는 외침이 들린다.

자유롭고 잘먹고 잘살려는 욕구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이다. 또한 함께 살려면 서로를 도와야 한다는 본성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타인과 사회를 위해 희생하고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는 것은 본성의 힘만으론 어림없다. 이것을 폭력의 힘으로 누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좀 멍청하다. 이는 기름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 불을 지르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북한의 당국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춤, 노래, 미술, 영화와 같은 예술을 통해 팍팍한 이성교육을 순화하고, 예술 속에 이성의 내용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북한의 이와 같은 교육방법은 특별나지 않다. 미국에서도 여러 인종과 문화를 나름대로 국가적 개념으로 통합시키기 위해 헐리우드 영화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영화마다 등장하는 성조기며 폭력 영화에 패트리어트(애국심)를 자극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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