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섭(화가)


지난 2001년 2월22일부터 2002년 3월27일에 걸쳐 1년 넘게 매주 수요일에 애독자의 많은 관심속에 연재되었던 <심규섭의 북한미술이야기>가 오늘부터 매주 수요일에 다시 연재됩니다. 글을 다시 쓰게 된 심규섭 화백께 감사드리고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다시 연재를 시작하며...

세월이 빠르다. 사는 여유로움을 느낄 틈도 없었다. 뭔가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고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거대한 불꽃이 만들어졌다. 이렇듯 역동적인 대한민국에 살려면 굉장한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

요즘은 온통 정치이야기 뿐이다. 나도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떠들어 댄다. 어쩌면 정치는 미술보다도 훨씬 높은 단계의 예술인지도 모른다. 정당이나 직위라는 형식에 철학과 경제, 문화를 아우르는 내용을 담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는 수천만 명의 국민들이 만들어 내는 퍼포먼스처럼 보인다.

나는 정치와 미술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제 식민지에 복역한 친일 미술가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 미술은 수렁에 빠져버렸다. 독재자를 찬양하고, 검은 돈과 비릿한 권력이 난무하는 미술문화를 만들었다. 미술에 재능이 있는 젊은 화가지망생들은 입시제도와 미술대학에서 뺑기쟁이나 비판의식이 거세된 무뇌아로 길러진다. 사람들은 미술로부터 소외되었고, 미술작품을 썩은 국회의원쯤으로 바라본다. 반쯤은 두려움으로, 반쯤은 역겨움으로 말이다.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굶주리고 있다. 포르노와 성형미인으로 미학을 말하고, 고스톱과 경마오락으로 감성을 훈련하고, 노래방과 쇼핑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이상한 허기와 목마름 때문에 먹고 마시기를 반복한다. 많이 먹어 살찌는 일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돈버는 문제에만 관심이 있다. 이것은 분명 정치적인 문제이다. 정치가 밥 먹는 문제도 해결해야 하지만 밥 먹고 난 뒤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사람들은 정치와 미술은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술은 순수해야 하기에 지저분한 정치와 관계를 가지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란다. 제법 진보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도 이런 이야기를 신봉한다. 나는 80년대 미술대학을 다니면서 교수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지겹도록 들었다. 하지만 이런 교수들의 전시회에는 언제나 돈 많은 사람들과 정치인, 부패한 관리들이 들끓었다. 이들이 화려한 색상의 작품 앞에서 칵테일 잔을 들어 건배를 하고 낄낄거릴 때 나는 죽어가는 민주주의를 보았다.

진정 순수한 미술이란 사람살이에 복무하는 일이다. 진정한 정치도 국민들의 삶에 기여하는 것이다. 정치는 문화를 바꾸고 문화는 사람들의 의식을 바꾼다. 올바른 정치가 없으면 예술과 미술은 썩는다.

통일을 생각한다. 통일은 고도의 정치이다. 우리 정치가 발달해서 아주 높은 경지에 올라야만 통일이 가능하다고 본다. 또한 사람들의 높은 문화적 수준과 사상의 폭이 넓고 깊어야 한다.

또한 통일은 눈물이고 감동이어야 한다. 삶의 에너지가 충만하고 미래가 있어야 한다. 나는 사람들의 높은 정치의식이 촛불을 타오르게 하고, 아름다운 질서를 만들어내고, 신명나는 문화행사를 일구어내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래서 통일은 문화와 결코 떨어질 수 없다. 문화가 없으면 재미와 신명이 없고 예술이 없으면 깊이와 다양성이 없다. 이것이 없는 통일은 흡수통일이거나 적화통일일 뿐이다.

다시 북한미술이야기를 연재하려고 한다. 다행히 얼마의 새로운 자료가 생겼고, 비축된 약간의 내공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쓸데없는 주접을 떨 것이고, 일정한 간격으로 글을 내보일지는 자신이 없다. 그래도 초심은 변함없다.

인민체육인 계순희

▶조국의 딸 계순희 / 정일룡 / 조선화
계순희를 기억하는가. 북한의 유도 선수 계순희. 그이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48kg급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어 단번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당시 일본 유도의 자랑이자 신화라고 불리던 다무라 료코를 꺾고 우승한 계순희는 겨우 16살의 소녀였다.

계순희는 평범한 사무원 가정의 외동딸로 태어나 고등중학교 1학년인 10살 때 인민체육인 박철에게 발탁되어 유도에 입문했다.

1992년 전국과외체육학교 학생대회에서 우승하며 처음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여, 1995년 북한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로 인정받는 백두산상 체육경기대회와 만경대상 체육경기대회마저 제패하여 명실상부한 북한 최고의 유도스타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열린 애틀랜타 올림픽 48kg급에서 금메달을 거머쥐는 이변을 일으키며 세계 여자유도의 신데렐라로 부상했다. 그 해 10월에는 북한 정부로부터 스포츠 선수로서 받을 수 있는 영광 중 하나인 '인민체육인' 칭호를 수여 받았다.

이후 52kg급으로 체급을 올린 뒤, 각종 국제대회를 제패하며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지만, 두 번째로 참가한 올림픽인 시드니 대회에서 판정시비 끝에 동메달을 차지하는 불운을 겪게 된다. 여기에 2002년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컨디션 난조와 판정시비가 겹쳐 다시 동메달에 그쳐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참고-엠파스 인물사전>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화가 정일룡이 조선화로 그린 <조국의 딸 계순희>이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커다란 트로피를 안고 어딘가를 쳐다보는 계순희의 모습은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표현되었다. 그야말로 영웅의 모습이다. 배경에는 인공기를 흔들며 환호하는 군중들 위로 폭죽이 터지는 느낌이 그려져 있다. 정적인 계순희의 모습과 역동적인 배경을 적절히 결합시켰다. 이 작품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인물을 영웅처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구도는 지극히 고전주의적이다. 다른 말로 정석을 따랐다. 화면 중심에 가득 채운 인물의 크기는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또한 아래에서 위로 인물 각도를 잡으면 카리스마가 생긴다. 반대로 위에서 아래로 인물각도를 잡으면 신비하고 귀여운 느낌을 준다. 요즘 유행한다는 얼짱 포즈는 대부분 위에서 아래로 구도를 잡은 것이다. 여기에 꽉 다문 입술, 남자인지 여자인지 애매한 중성적인 얼굴과 먼 곳을 응시하는 시선처리는 영웅의 이미지를 표현하는데 충분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런 식의 표현은 포스터나 영화에서 많이 쓴다.

또한 선묘와 사실성의 결합도 눈여겨 볼만하다. 계순희가 입고 있는 유도복은 동양화 방식의 거친 먹선으로 표현했고, 얼굴이나 손, 트로피는 은은한 색상과 꼼꼼한 묘사, 그리고 명암법을 사용했다.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개의 요소가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화가 정일룡의 필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 미술의 최근 경향은 선묘의 복원이다. 그동안 색상이나 사실적인 묘사에 치중했던 조선화에 선묘의 등장은 의미심장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선묘는 추상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추상’하면 알 수 없는 벽지 따위의 작품을 떠올리지 모르나 수묵이나 먹선으로 그린 우리 옛그림은 모두 추상화이다. 조선화에서 선묘 따위의 추상성이 나타난다는 것은 조선화가 발전하여 추상의 경지까지 완성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모든 예술은 구체성으로 시작해 추상으로 완성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속의 계순희는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모습을 표현한 것은 아니다. 목에 걸린 금메달도 올림픽에서 주는 것과 틀리고, 올림픽과 트로피는 전혀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않는 계순희를 그린 것도 아니다. 미술작품은 사진과 다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계순희의 모습을 북한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금메달 하나를 달랑 들고 웃고 있는 모습보다는 폼 나고 커다란 트로피를 들고 붉은색 끈에 달린 메달을 목에 건 총체적인 계순희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미술작품이기에 가능한 표현이다.

158cm의 작은 키, 16세의 어린 소녀가 내로라하는 강호들을 물리치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북한의 국위를 선양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에게 압박당하며, 경제난과 싸우는 북한인민들에게 큰 용기와 자부심을 심어준 일이었다.

2002년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만들어 낸 일은 우리 국민들에게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서로에게 믿음을 주었다. 이것이 광장문화와 촛불문화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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