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활웅 (재미 통일문제 자유기고가)


최근 민주당 국가경영전략연구소 부소장 황태연 교수가 북의 김정일 위원장에게 6.25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발언을 하였다하여 정가에 큰 파문이 일고 있다한다. 이 기회에 6.25의 책임소재와 관련해 몇 가지 문제를 한번 차분히 생각해 보고자 한다.

첫째, 6.25는 북한에 의한 반민족적 죄악행위인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전면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이 3년을 끌면서 우리 민족 전체가 막심한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을 입었을 뿐 아니라 그후 지금까지 반세기가 넘도록 분단과 대결속에 힘든 시련을 겪고 있으니, 6.25는 북한이 저지른 반민족적 죄악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남한에서 아무 이의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통설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6.25전 남한정부도 북침준비를 추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무시하는 잘못이 있다. 그 때 이승만 정부는 북진통일정책을 공공연히 제창하고 있었다. 명령만 떨어지면 아침은 사리원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그리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게 된다는 것이 신성모 국방장관의 장담이었다. 그런 목적으로 한국은 필요한 무기원조를 미국에 요청하고 있었다.

그런즉 동족상잔이란 민족적 죄악을 저지를 범의(犯意)는 남쪽도 북쪽 못지 않게 갖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한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소련은 북한에 무기를 대주고 남침계획을 뒷받침 해준 데 비해 미국은 이승만의 북침계획을 반대하고 무기를 대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이 왜 그랬느냐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아무튼 남쪽도 북을 칠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준비가 안돼서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 처지에, 준비된 북쪽이 먼저 쳤다고 해서, 남쪽이 이를 반민족적 죄악행위로 단죄하고 사과를 요구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된다.

둘째, 우리는 그날 아침 북이 남침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가? 그렇다. 그러면 미국도 전혀 모르고 있었는가? 아니다. 미국은 알고 있었다. 미국은 북의 남침계획 정보를 벌써부터 가지고 있었고 더욱이 그해 6월 이제 북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정보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한국측에 알리지 않았다. 미국은 또 북이 남침하면 남쪽 군대가 패망할 것이라는 점도 알면서 일부러 남쪽 군대에 대한 장비보급을 줄였다. 왜?

남북에 두 분단정부가 선 다음 한국에서 내전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물론 미국도 알고 있었다. 다만 미국은 이 내전이 남한의 북침이 아니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이승만의 북침을 위한 무기원조 요청을 묵살했던 것이며 북의 남침이 임박했다는 정보도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북한군의 불시의 남침으로 남한군대가 패퇴하며 수많은 피난민이 떼지어 남으로 몰려가는 사태가 벌어져야만, 2차대전 승전으로 잔뜩 평화분위기에 젖어든 미국민과 세계의 여론을 자극하여, 그를 바탕으로 대소강경정책의 기틀을 잡을 수 있다는 미 정책입안자들의 고도의 전략적 계산에 따른 것이었다. 실제에 있어서 미국은 1949년에 이미 북한군 남침시에는 유엔에 제소하여 이를 국제화하여 침략으로 규정하고 연합군을 편성하여 한국의 내전에 개입한다는 대비책을 강구해 놓고 있었으며 1년후 북의 남침이 시작되자 그 시나리오대로 침착하게 대처했던 것이다.

셋째, 6.25전쟁 3년간의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의 책임은 모두 북한에게만 있는가? 미국과 한국의 언론은 그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부당한 주장이다. 6.25전쟁은 총 1,137일을 싸웠다. 그중 미군이 참전할 때까지의 처음 6일간의 모든 피해를 북한측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있을 것이다. 그후 미군의 참전으로 전쟁파괴력이 엄청나게 확대되어 피아간에 피해가 급격히 증가했는데 이에 대한 책임도 모두 북한이 혼자서 져야 한다는 논리는 모순이다.

설사 미국의 참전은 침략을 격퇴하기 위한 것이었음으로 그로 인한 피해도 북한의 책임이란 논리를 수용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북한군을 38선 이북으로 격퇴한 9월 30일까지의 92일간으로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군과 유엔군의 38선 이북으로의 북진이 시작된 후 휴전까지의 1,039일간의 피해에 대해서는 북한만이 홀로 책임질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당초 유엔이 부과한 침략군 격퇴라는 임무의 한계를 넘어서 북진을 결행한 미국과 한국이 공동으로 지거나, 아니면 적어도 남.북.미.중의 4자가 공동으로 질 책임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참고로 한국전에서 전사한 미군의 총수는 36,940명인데 북진 이전의 전사자는 5,567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31,373명은 북침후에 전사한 것인데 이들도 모두 북한 때문에 전사한 것이라는 미국의 주장은 매우 부당한 것이다. 한국군 전사자의 통계는 자료마다 다르기 때문에 확실한 숫자를 제시하지 못해 유감이지만, 같은 이치에 따라서 모든 책임을 북한이 져야 한다는 논리는 이치에 어긋난다.

넷째, 한국은 전쟁을 속히 끝내고 싶었는가? 아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한국도 동족상잔의 전쟁을 계획하고 있었다. 따라서 북한군이 38선 북으로 격퇴된 후에 거기서 멈추지 않고 북진해 들어갔다. 그 결과 3개월에 끝났을 전쟁이 3년으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또 3년간의 전쟁으로 쌍방이 막심한 피해를 입고 지쳐서 휴전하려고 할 때 한국은 전쟁계속을 주장하면서 휴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후에도 계속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간 1960년까지 7년간 북진통일정책을 고수해 왔다. 그런 즉 남쪽에서는 평화를 부르짖고 있었는데 북쪽에서만 전쟁준비를 하고 쳐들어 왔다는 식의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다섯째, 미국은 한국전 발발에 아무 책임이 없는가? 있다. 미국은 북한의 남침계획과 공격임박의 정보를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남한에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트루먼, 애치슨, 맥아더 등이 북의 남침의욕을 유도하는 발언을 연달아 했다. 또 자국의 대소 전략상 견지에서 한국군이 북한군에게 패퇴하도록 하기 위해 군장비 보급을 일부러 제한했다. 미국이 북한군의 남침임박 정보를 한국측에 주고 북한의 남침의욕을 사전에 꺾을 수 있는 적극적 조치를 강구했더라면 한국전 발발은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북한정권은 악의 집단이요 김일성은 6.25의 원흉이요 따라서 6.25로 인한 모든 피해와 고통과 원한은 평양정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듣고 배우고 또 믿어왔다. 그것은 피차간에 싸우고 죽이고 하던 전시 히스테리에서 나온 해석으로는 타당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야만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나가서 목숨을 바치고 싸울 수 있었을 터이니까.

그러나 6.25 전쟁, 그것은 알고 보면 남북간에 우리들이 어리석어서 남의 노름인 줄 모르고 저질렀던 수치스런 실수였다. 그리고 그 어리석은 싸움을 멈춘지도 벌써 50년이 다 되어간다. 그동안 동서냉전도 끝장나고 세계화요 정보화요 하면서 세상은 또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가. 남북간에 정상회담도 열리고 장관급 회담도 열리고 있지 않는가.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으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로 답방을 오겠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 마당에 그를 보고, 오려면 6.25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을 다른 사람들도 아닌 소위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 핏대를 올려가며 한다는 것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그때에 피차가 한 일들을 반성해 본다면 남북간에 설사 어느 한쪽이 먼저 "그때의 일은 참으로 잘못되었습니다"고 사과한다 하더라도 다른 쪽에서 "아니오. 우리도 잘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고 사양해야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한국의 정치인들이여! 한국에서 가장 뒤진 것이 정치라는 것을 아는가? 좀 차분히 생각하고 침착하고 분별있게 말도 하고 행동도 하는 정치인들이 되기를 간곡히 부탁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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