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긴장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한 북한의 강력한 반발, 개성공단사업 일정 차질, 남측의 탄핵 국면에 대한 북한의 비난 등 남북관계마저 이상기류가 형성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매년 꽃게잡이철만 되면 되풀이되던 북방한계선(NLL) 인근 수역의 긴장이 올해에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서해5도 어민 300명이 지난달 말 "해군 당국이 서해5도 주변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아 조업피해가 발생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30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에 정부는 3월초 중국어선 불법어로 단속을 위해 해경 주관으로 해상합동훈련을 실시하고 해경 함정과 특공대를 전진 배치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12일 "꽃게잡이철에 들어서면서 중국어선을 단속한다는 구실 밑에 서해 우리측 영해 가까이에 무력을 증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면서 "이러한 군사적 움직임은 새로운 `서해교전'으로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담보가 없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러한 반발에 이면에는 최근 강화되고 있는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한 경계심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안 그래도 풀기 어려운 NLL 문제가 최근 중국의 불법조업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악순환이 확대재생산 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이 각기 일방주의에 갇혀 NLL의 평화적, 경제적 활용 방안을 모색하지 못하자, 그 공백을 중국 어선들이 메우고 있고, 남측 당국은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을 막기 위해 서해에 무장 수준을 높이고, 이에 대해 북측은 자신을 겨냥한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라 남북한 모두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함께 우발적인 무력충돌 위험성까지 안게 되었다.
 
남북한은 이미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교전사태를 겪고 수십명의 젊은 목숨을 잃은 바 있다. 그러나 1차 서해교전이 발생한지 5년이 지나도록 예방책 하나 제대로 세워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참으로 부끄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무력충돌과 확전의 위험성

 
실제로 미리 예방책을 세워놓지 않으면 올해에도 서해상에 상당한 긴장이 조성될 가능성이 높다. 부시 행정부 출범이후 외화 수입원이 크게 줄어들고 있는 북한은 외화벌이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꽃게잡이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남측 어민 역시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에 따른 손실분을 만회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업 활동에 나설 것이다. 이렇게 양측에서 무리하게 조업에 나서면 긴장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올해 NLL 문제에 더욱 주목해야할 이유는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5-6월에 미국 주도의 대북한 해상봉쇄가 본격적으로 추진될 시기와 맞물릴 가능성이 높다는데 있다. 핵문제가 불거진 이후 대북한 비타협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핵물질 등의 수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구상'(PSI)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작년에 개념 연구 및 여러 차례의 실전 훈련을 거친 PSI는 늦봄-초여름부터 실행단계에 접어들 예정이다.
 
더구나 남북한 군당국이 두 차례에 걸친 교전사태를 겪으면서 사실상의 선제공격을 채택한 것도 또 하나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1999년 1차 서해교전 때 참패를 당한 북한 해군은 2002년 6월에는 남한 해군이 차단기동(밀어내기)을 하기 위해 북상하고 있을 때, 기습공격을 가함으로써 남측에 적지 않은 인적, 물적 손실을 입힌 바 있다. 함정의 견고함이 훨씬 떨어지는 북한으로서는 남한 해군의 차단기동을 공격 행위로 간주하고, 선제사격을 가한 것이다.
 
2002년 6월 29일 2차 서해교전에서 뜻밖의 기습공격을 당한 남한 해군은 교전규칙을 간소화해 사실상의 선제공격을 채택한 상황이다. 이전의 교전규칙은 '경고방송→시위 및 차단 기동→경고사격→위협사격→조준 및 격파사격' 5단계로 이뤄져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남북한간의 무력 충돌을 가급적 피하고, 무력 충돌시 확전을 방지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세워진 것이었다.
 
그러나 2차 서해교전 때 "군이 확전을 무서워해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보수 언론과 정치권의 집중 공격을 당한 군당국은 이전의 교전규칙을 '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 3단계로 줄였다. 경고 시간은 줄어든 반면, 공격 시점은 매우 빨라진 것이다.
 
남북 양측이 NLL 부근에 군사력 및 전투태세를 대폭 강화한 것도 이 수역을 분쟁의 화약고로 만들고 있는 요인이 되고 있다. 북한은 1999년 1차 서해교전이후 함정의 화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연평도 인근에 지대함 미사일, 대공포를 비롯한 해안포을 증강시켰다.
 
남한 역시 2차 서해교전 이후 북한 함정의 NLL 침범 징후가 포착만 되어도 육해공군 합동전력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남한 전투기의 초계비행 범위를 NLL 부근까지 확대시키고 서해 5도의 육군도 전투준비태세를 강화하며, 구축함, 초계함의 전진 배치 등을 포함한다.
 
이렇듯 남북한 군당국의 교전규칙 개정과 군사력 및 전투준비태세의 강화는 또 다시 서해교전 사태가 발생하면, 예년보다 훨씬 확전 위험성이 높아질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게 된다. 더구나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과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3차 서해교전을 예방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처럼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NLL 인근의 긴장은 예년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위기는 관리와 대응도 중요하지만, 가장 현명한 것은 '예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하루라도 빨리 NLL를 평화적으로 관리,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어로 지정을 위한 당국자 회담 열어야
 
두 차례의 교전사태가 보여주듯 서해 5도는 언제든지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이다. 6월 꽃게잡이철이 되면, 남북 양측 모두에게 놓칠 수 없는 황금어장이자, 이에 따른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화약고가 되어온 것이다. 이는 남북한이 NLL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의 주장만을 강조하면서 NLL 문제를 방치해온 일방성에 그 근본적인 요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남한 정부는 정전협정과 남북기본합의서를 들어 북방한계선이 북한 함정이나 어선이 넘어올 수 없는 '군사분계선'이라고 주장해왔으나 정전협정과 남북기본합의서에는 이러한 구절이 없다. 또한 정부는 북한이 묵시적으로 북방한계선을 인정해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정전협정 체결 이후 북한이 서해5도 주변해역에 지속적인 '도발'을 해왔다고 강조하는 자가당착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북한 역시 일방적으로 서해5도 통항질서를 발표하는가 하면 NLL 문제는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는 '남한 배제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정전협정과 NLL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에, NLL 문제를 미국과 협의해야 한다는 북측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이렇듯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남북한의 대결 구도 속에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예전부터 제기되어온 '서해 5도 주변 수역 남북공동어로화'를 조속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즉 NLL의 법적 지위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풀어나가고, 우선 꽃게잡이철을 맞아 이 지역을 남북한 공동어로로 지정함으로써 분쟁 가능성을 줄이고 민족화합의 계기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발적인 무력충돌의 위험은 줄이고 남북한 모두의 경제적 실리는 높임으로써 NLL를 '분쟁의 화약고'에서 '평화와 번영의 화해선'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대결과 분쟁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NLL. 이 문제를 어떻게 화해와 협력의 인계선으로 바꿀 것인가는 남북한 모두의 민족애와 평화의지를 가늠할 중대한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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