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장기수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송환'의 김동원 감독 .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 기자]
비전향 장기수들과 전향 장기수들의 인간적 고뇌, 사연을 장장 12년 간 쫓아 필름에 담아 낸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송환'.

이 영화는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폭력과 회유가 난무하는 0.75평 감방에서 견딜 수 있게 하였는가'란 물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에게 가해진 전향공작의 폭력성이 우리를 저항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한 장기수 선생님의 말처럼 해답은 명쾌하다. '인간'이다. 김 감독은 '인간'이었기 때문에 사상과 신념을 지키려 했으며, '인간'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전향을 선택해야 만 했고, '인간'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고통받았다고 전한다.

영화는 '빨갱이'로 인식해야만 했던, 혹은 어렵게만 대해왔던 장기수들도 동네 할아버지 같은 '우리 이웃'임을 강조한다. 더불어 통일로 가는 길은 정치적 협상 테이블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애타는 그리움과 용서, 그리고 화해 속에 있다고 얘기한다.  

이 영화의 감독이며 1인칭 화자인 김동원 감독을 8일 6시 '송환' 시사회 후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만나 12년 간의 기록을 들어보았다.

□ 12년 간의 촬영이다. 장기수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감독 자신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나?

■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를 찍으려는 마음으로 장기수 선생님들을 만난 것은 아니었다. 비전향 장기수 조창손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길에 습관상 카메라를 챙긴 것이 다큐멘터리의 시작이었다. 이후 12년 간 장기수 선생님들의 삶을 따라다녔다는 것은 분명 내 안에도 변화가 일고 있었다는 것을 뜻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북한 사회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선생님들을 만나며 북에 대한 나의 시각과 장기수 선생님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하기도 했었다. 내 안에도 레드콤플렉스가 존재함을 느낀 것이다. 지금도 북에 대한 나의 생각은 많이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반공이데올로기의 장막은 걷힌 것 같다.

▶시사회를 마치고 뒷풀이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김동원 감독과의 동행 인터뷰.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 '송환'을 제작하면서 힘들었던 기억은?

■ 많이 묻는 질문이다. 12년 간 찍어 힘들었겠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사실 크게 힘든 것은 없었다. 처음 장기수 선생님들의 표정과 생활을 담고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해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생님들이 드러내기 싫어하는 부분들을 촬영해야 할 때는 망설여지기도 했고 송환되시는 날 변변한 축하 인사드리지도 못하고 카메라를 들이대야 했던 것이 송구스럽다.

□ '송환'을 보면서 전향 장기수의 고뇌가 가슴에 와 닿았다. 전향, 비전향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드러낸 이유가 있다면?

■ 비전향 장기수들과 전향 장기수들의 표정. 그 당당함과 어두움의 또렷한 대비가 내겐 충격적이었다. 난 그 차이를 통해 전향공작을 가한 남한의 반공정책이 얼마나 비인간적이며 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 또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전향했지만 왜 이리 대조되는 표정을 하고 있는지 그 역사의 아이러니를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인의 입장에서 보면 전향 장기수가 더 인간적이며 매력적인 캐릭터일 수도 있다. 
순박함 그 자체였던 김영식 전향 장기수 선생님의 경우 전향공작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쩜 그렇게 인간적인 모습을 간직할 수 있었는지가 수수께끼로 다가오기도 했다.

▶김동원 감독.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 기자]

□ 2차 송환에서는 전향 장기수를 포함한 송환논의가 이뤄질 듯 하다. 어떻게 보는가?

■ 현재로선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90년대 당시에도 송환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생각보다 빠르게 송환되실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 혹 평양에 이 영화를 보내고픈 생각은 없는가?

■ 아쉽게도 실정법 상으로 국가보안법을 위반하는 행위가 된다. 보내고픈 마음은 굴뚝같다.
2년마다 열리는 평양영화제에 출품하고 싶지만 받아줄지 잘 모르겠다.

□ 영화 첫 도입부에 '송환'이 "사회주의자로 살아간 비전향 장기수 할아버지들에게는 못마땅하게 보였을 것”이란 멘트가 나온다.

■ '송환'은 우연히 시작됐고 작품을 한다는 의지 없이 찍었기 때문에 더 솔직한 내용이 나올 수 있었다. 때문에 선생님들이 보실 때는 좀 거북한 장면도 있을 수 있다. 좀더 많은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몇 가지 위트를 섞어야만 했고 일반적으로 남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만큼의 북에 대한 비판의식을 표현했다. 조선일보를 보는 독자들도 영화에 거부감을 갖지 않고 볼 수 있게 균형을 잡으려 했다.

□ '송환'을 장기수 선생님들이 보신다면 뭐라 하실 것 같나?

■ 대체적으로 맘에 안 드시는 부분도 있겠지만 내 앞에서는 그런 말씀 안 하시고 격려해주실 것 같다. 선생님 섭섭한게 있으시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 편집에서 잘려나간 아쉬운 장면이나 알리고 싶었던 사연이 혹시 있는가?

■일단 아주 제한된 선생님들 밖에 소개할 수 없었던 점이 아쉽다. 특히 이종환 선생님이 출소후 부인과 딸을 찾다 결국 만나지 못하시고 송환되셨는데 이 사연을 다루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이밖에 선생님들의 연애와 결혼 등 프라이버시 때문에 다루지 못한 너무 아까운 얘기가 많다.

□ 영화를 보고 장기수 선생님들의 인간적인 면을 느꼈다. 관객들이 선생님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으면 하는가?

■ 한 사람의 인간으로 보면 될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너무 특별한 존재로 다가가면 선생님들도 부담스러워 하신다. 민가협만 봐도 선생님들을 편하게 대하는 후원회원이 선생님들과 더 친하다. 거리낌 없이 대하길 선생님들도 바라실 것이다.

▶'송환' 시사회장 아트시네마에서 김동원 감독이 장기수 선생님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사진 -통일뉴스 김규종 기자]
□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얻었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 한반도 어느 가족사도 분단에 얽혀있지 않은 가족사는 없다. 통일은 정치적 구호나 몇 사람에게만 관계 있는 일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일임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통일에 대한 희망을 주고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정치적 신념까지는 아니어도 모두다 자기와 약속했던 일, 뭔가 좋은 일에 자신을 헌신하고 싶었던 경험은 한 번쯤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나가기 힘든 세상이지만 장기수 선생님들을 통해 무엇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리고 싶었다.

□ 6.15공동선언에 대한 감독의 시각은 어떠한가?

■ 작년 6월은 월드컵 1주년으로 떠들썩한 달이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인데도 6.15공동선언에 대해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것 같아 좀 야속했다. 6.15공동선언은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임이 명확하다고 생각하지만 분명 월드컵보단 의미 있으며 역사에 남을 일이다.

 6.15공동선언이 발표되던 2000년 그 당시는 남북관계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을 보면 그때와는 천양지차다. 이는 6.15를 우리 스스로 받아 안지 못하는데서 비롯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시사회를 마치고 통일광장 임방규 공동대표와 영화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사진 - 통일뉴스 김규종기자]
□ 영화에 잠시 김동원 감독이 국가보안법에 저촉돼 2001년 8.15때 평양에 가지 못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지금은 어떠한가?

■ 평양행이 좌절된 다음날 소송을 걸었다. 혐의가 있으면 구속시키던가 하라 했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 혐의 없다는 통보가 왔다. 괜히 겁주려고 하는 것 같다. 다시 한번 평양행을 계획하고 있다.

□ 영화 중간, 중간 이북노래가 많이 등장한다. 심의 통과는 문제없나?

■ 실은 오늘 심의를 넣었다. 만약 이번 송환작품도 국정원 등에서 건드려 준다면 나로선 너무너무 기대되는 일이다. 영화가 뜰 것 아닌가.

□ 우리 사회 반공이데올로기의 높은 벽은 영화를 처음 제작하던 그 때로부터 몇 년이 지난 오늘에도 존재한다. 이 영화를 편향된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이들도 적지 않을 듯 한데.

■ 그 분들이 나쁘게만 볼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물론 공감하는 부분도, 못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다큐멘터리 '송환'은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항상 '사람'의 문제다.

□ 장기수를 주제로 다음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 김영식 선생님을 계속 찍고 있다. 행남동과 상계동 철거민 다큐멘터리도 다뤄볼 생각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