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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라도 걱정, 알아도 걱정...`상봉 후유증`
연합뉴스  |  tongil@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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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03.03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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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도 그리던 혈육의 생존을 확인한 8.15 이산가족 상봉자들이 충격에서 좀체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헤어진 뒤의 허탈감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식욕부진, 불면증 등의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고 심지어 빡빡한 일정으로 탈진해 병원에 입원까지 해야하는 사람도 생겨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짧은 만남 끝의 기약없는 이별로 인해 잊혀졌던 것들이 눈으로 확인되면서 그리움은 더욱 더 생생해지는 반면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초조함이 커지면서 심한 허탈감과 상실감을 겪을 수 있다"며 "현실에 충실하고 열심히 살아가는게 후유증을 이기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상봉 후유증 = 남으로 내려온 형 황기수(70)씨를 만난 기붕(59)씨는 "형을 떠나보내고 나니 `무사히 잘 가셨는지, 몸살은 안나셨는지` 궁금하고 걱정돼 마음이 편치않다"고 말했다.

여동생 황무년(66)씨는 오빠를 보내고 난 후 `음식이 목에 안넘어 간다`며 식사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

서울에서 형 황종태(66)씨를 만난 종률(63)씨는 "만나기 전에는 형이 고위층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너무 늙어버린 모습을 보고 나니 걱정이 더 늘었다"며 "허탈한 마음에 잠도 못자고 직장에 나가도 일이 손에 안잡힌다"고 털어놨다.

북측 방문단 리돈(72)씨의 여동생 숙례(70)씨는 "지난 50년간은 오빠가 죽었으려니 하고 잊고 살았는데 만나고 보니 오빠 생각이 날 때마다 너무 애처롭고 가슴아프다"고 말했다.

아들 리명수씨(66)를 다시 북으로 떠나보낸 김봉자(86.여.서울 송파구)씨는 전에는 아들이 살아있기만 바라다 이제는 잘 지내라며 기도를 하면서 마음을 달래고 있지만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김씨는 "명수 얼굴이 눈에 계속 어른거린다"며 틈날 때마다 아들이 주고간 사진을 꺼내 보며 지내고 있다.

유일하게 북에 살아있는 동생을 만나러 갔다가 작년에 죽었다는 소식만 듣고 돌아온 김희조(73.여)씨는 북에 있을 때 실망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고 돌아온 뒤에도 긴장이 풀려 심신이 모두 지쳐있으며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 우두커니 앉아있곤 하고 있다.

딸을 만나고 온 노범석(77)씨도 긴장이 풀려 몸살 기운과 함께 열이 나는 증상을 보이고 있다. 노씨는 딸 생각이 나 잠을 자다깨다 하면서 밤에 다리에 쥐가 나기도 하는 등 후유증을 앓고 있다.

오빠가 살아있다는 소식에 아픈 몸을 휠체어에 싣고 방북했다가 사망소식을 통보받고 돌아온 김금자(69.여)씨는 귀환후 상태가 악화돼 병원에 입원키로 했다.

김씨는 "오빠가 돌아가셨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만큼 몸과 마음이 몹시 피곤하다"며 "방북 전에 다친 허리도 참지 못할 정도로 아프고 20년전에 교통사고로 다친 무릎도 몹시 쑤셔 21일 병원에 입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반면 가족 상봉의 소원을 풀고 나니 몸과 마음이 모두 오히려 가뿐해졌다는 이들도 있다.

김정호(90)씨는 북에서 아들을 만나고 온 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며  "잠도 잘 자고 식사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진단 및 조언= 꿈에도 그리던 혈육을 만나 맺혔던 한을 눈물로 풀었다는 점에서 노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헤어진 후의 상실감과 허탈감 등이 정신적. 육체적 `상봉후유증`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노인성 치매전문의 이강희(42.강북신경외과)씨는 "잊혀졌던 것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그리움이 더욱 더 생생해지고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초조함이 강해질 수 있다"며 "뇌졸증이나 우울증 등 노인성 질환이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신경과 전문의인 김정일(43)씨는 " 50년 동안 기다려오면서 가슴속에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던 대상을 일단 만나게 됨으로써 마음속에 있던 무언가가 급속하게 움츠려 들게 돼 삶을 지탱해주던 힘을 잃을 수 있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감정적 충격은 헤어진 후 1주일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해 2∼4주정도 지속되는 것이 보통이며 당장 표면화되지 않더라도 이산가족에 대한 매스컴의 관심이 가라앉으면서 혼자 조용히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뒤늦게 심해질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후유증 극복방법은 무엇보다도 현실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

혼자 멍하니 있다거나 지난 3박4일 동안의 경험에 집착하기보다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 일이나 가족, 친구 등에 다시 집중을 하면서 극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일단 어느 정도 후유증을 앓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인 만큼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며 "주위사람들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잘  지켜보다가 본인이 어느 정도 정리를 한 뒤 현실로 돌아와 `누구를 만나고 싶다`든가 `어디를 가고싶다`는 식의 요청이 있을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는게 낫다"고 조언했다. (연합 2000/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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