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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행. 이송자씨 부부 방북기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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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03.03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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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 벌써 며칠째 잠을 설쳤어도 오늘 또 가족들을 본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잠이 깼다. `내 처는 잘 잤을까. 그 사람도 자식들 본 감격에 제대로 못잤을거야` 아침식사를 마치고 오전 10시부터 호텔방에서 개별상봉.

경옥이와 아들 진일, 진성이가 다시 찾아왔다. 50년 세월에 옛 모습은 잃었어도 보고 또 봐도 너무 반가운 얼굴.

"진일아. 손주들 이름이 뭐랬지"

진일이는 커다란 백지를 꺼내놓더니 북에 있는 친척들과 손주들의 이름을 도표처럼 그려가며 일일이 확인해줬다.

"이게 우리집 새 족보다" 절로 함박웃음이 나왔다.

같은 시각 (남쪽의) 내 아내는 큰아들 박위석과 만났다. 전날은 좀 서먹하더니 두번째 만남이라 그런지 한결 편한 자리였다고 했다.

위석이가 "어머니 앞에서 생전 처음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하길래  "건강에도 안좋은걸 뭐하러 피우니"하고 야단은 쳤지만 밉기는커녕 이쁘기만 했다고 말해줬다.

처는 위석이가 "외손자가 공부를 잘해서 인민학교 단위원장(학생회장)을 하고 있다"고 자랑했다면서 헤어질 적 7살짜리 응석받이였던 위석이 모습을 떠올려봤다는 말을 했다.

위석이가 "남쪽에 내려가서 두 분이 북쪽 가족때문에 사이가 나빠질까 걱정스럽다"고 해 "살아있는 걸 본 것만도 어딘데 그런 걱정을 하느냐"고 안심시켜줬다며 은근히 속깊은 아들 자랑까지 했다.

이날도 두 가족이 따로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남북의 아내를 소개시켜주는 것은 다음날로 미루기로 했다.

훌쩍 2시간이 지나버리고 점심을 먹은 뒤 오후 3시께 유람선을 타고 대동강 관람에 나섰다.

평양이 고향인 사람들은 내내 `여기는 어디, 저기는 어디`라며 아는 체를 해댔지만 나는 워낙 오래 전 몇 번밖에 안와본 곳이라 그런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어쨋든 설명을 들으면서 대동문. 연광정 같은 유적지와 평양성의 이끼 오른 성벽이 그대로 남아있는 모란봉은 보기 좋았다.

김일성광장, 주체사상탑, 역사박물관 등과 강 한가운데 있는 능라도, 양강도도 둘러봤다. 68년 북한이 나포한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가 쑥섬 근처에 정박돼 있었다.

평양 시내에서 북동쪽으로 떨어진 단군릉까지 관람하고 호텔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했다.

언뜻 본 노동신문에도 `흩어진 북남 가족들의 평양출발과 도착` 기사가 실려 있었고 텔레비전에서도 우리 일행과 남에 내려간 이산가족들의 감격의 상봉장면이 계속 방영되고 있었다.
(연합 200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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