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우(사진가)


미국은 다시 한번 한국을 볼모로 대인지뢰정책을 후퇴시켰다.

자폭식 지뢰만을 사용하겠다는 약속은 1997년 국제대인지뢰금지조약에 불참하면서 국제여론의 비난을 의식하여 클린턴 대통령이 했던 약속이다. 무슨 새로운 정책인양 선언된 이번 발표는 결국 미국이 그동안 전혀 스스로의 약속을 이행해 오지 않았음을 실토한 것에 다름아니다.

한편, 1997년에 이어 미국은 다시 한반도를 볼모로 대인지뢰정책을 97년 이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미국은 1997년 한반도의 비무장지대의 지뢰 제거에 대한 예외를 주장하며 대인지뢰금지조약에 불참한 바 있다. 한반도에는 대인지뢰로 인한 민간인 피해가 없다고도 주장했다.

그러나 과거 민간인 지뢰피해자는 2000명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97년 이후로도 1년에 10여명씩의 지뢰피해자가 발생해 왔다. 벙어리지뢰로 인한 피해실태가 이처럼 명확한 데도 한반도에서만은 계속해서 벙어리지뢰를 사용하겠다는 발표는 피해자들을 경악케 하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2006년까지의 시한을 4년이나 연장시켜 지뢰사용의 계속을 주장하고 있다. 벙어리지뢰 사용시한을 2006년까지로 약속했을 때도 구체적인 이행계획이 없었다. 그러더니 아무런 반성이나 사과도 없이 슬그머니 4년을 연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2010년 이후의 지뢰제거대책은 과연 있는 것인가? 전체 대인지뢰의 75%가 미확인 지뢰지대인 한국의 현실에서 합참은 CCW(특정재래무기금지조약) 지뢰의정서에 가입하고도 이 시행법이 8조에서 규정한 지뢰지대의 조사조차 전혀 시행한 바가 없다.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와의 전화통화에서 합참작전과는 ‘조약은 조약일 뿐 아니냐’는 후안무치한 답변만을 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미국은 무슨 대책을 갖고 이런 발표를 무책임하게 하는가? 부시 대통령은 이번 발표를 철회하고 한반도의 대인지뢰정책을 원점에서부터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다음은 미국의 발표에 대한 항목별 반박문이다. 

발표문

[미국은 새 지뢰정책에 따라 앞으로 스스로 파괴되도록 시한장치가 돼 있는 지뢰를 대체지뢰로 개발해 사용할 계획이지만 한반도에 매설된 지뢰 등 공격에 대한 억제 수단으로 인정되는 지뢰는 계속 사용된다.]

반박문

우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국이 한반도의 매설지뢰에 대해 스스로의 책임을 자인하는 부분이다. 한국의 대인지뢰가 한국 정부에 의해 매설되었고 관리되는 것이라면 미국은 자신들이 한국의 매설지뢰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는 2002년 주한미군이 과거 매설한 대인지뢰 실태와 그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주한미군은 이에 대한 이례적인 즉각 논평을 통해 미군은 한반도에 지뢰를 매설한 적이 전혀 없으며, 모든 지뢰는 한국정부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고 했다.

주한미군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미국무부는 도대체 무슨 근거로 한국의 매설지뢰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가? 이는 주한미군측이든 미국무부든 어느 한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내정간섭을 하고 있는 증거이다. 그러나 진실은 이렇다.

육군본부가 1970년 발행한 육군발전사에 의하면 1950년 당시 한국군이 보유하고 있던 대인지뢰는 7,600개, 대전차 지뢰 360개뿐이었다. (육군발전사 상권 1970 육군본부 p207~208)

그러나 미군의 한국전 참전기록에는 미군이 어떻게 해서 한반도에 백만개가 넘는 대인지뢰를 매설되어 있는지에 대한 상세한 기록들이 존재한다.

‘미군 지뢰전 교리는 흠 잡을 데가 없으나 8군이 120.000발의 지뢰를 부대에 보낸 후 불과 20.000발만이 보유하고 있거나 매설 기록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머지 100.000발은 버리거나 기록도 하지 않고 매설되었다.’ (한국에서의 전투지원 Combat Support in Korea. by captain John G. Webstover 1955)

이들 기록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2002년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의 실태조사에 의하면, “과거 미군은 한국 전쟁 당시로부터 60년대까지 수십 곳의 주둔기지 주변에 지뢰를 매설하였다. 그러나 철수하면서 지뢰 제거를 하지 않았음은 물론, 지뢰 매설 정보조차 한국군에게 이양하지 않아 미군이 매설한 지뢰로 인한 피해가 2002년까지 계속 되었다. 이번에 조사된 바에 의하면 그 피해는 21개 지역 100명에 이르며 김포, 파주, 연천, 철원, 고성 5개 지역 주민들은 집단피해를 당했고, 주한미군조차도 5명이 지뢰사고를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발표문

[불름필드 차관보는 "이 기간에 대인지뢰 사용은 한국과 맺은 방위조약에 의거한 의무를 완수하기 위한 경우에만 허용된다"면서 어떤 경우든지 대인지뢰와 대전차지뢰 등의 사용은 국제조약에 의거한 의무조항에 엄격한 통제를 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비무장지대(DMZ) 남쪽에 있는 지뢰밭은 실질적으로 한국군의 통제 하에 있다"고 덧붙였다.]

반박문

미국이 대인지뢰전면금지조약 대신 가입하고 있는 특정재래무기금지조약 제2의정서(CCW) 제8조에 의하면 지뢰 등 설치지역에 관한 정보를 기록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보가 전혀 없는 소위, 미확인지뢰지대는 지뢰지대 총면적인 91㎢(2천753만평)중 65곳, 69㎢(2천90만평)이다. 미확인지뢰지대만 여의도 면적의 23배이며, 전체 지뢰지대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한국전쟁 당시미군이 살포하거나 매설한 지뢰지대들로 지뢰 매설지도가 존재하지 않거나 한국군에 이양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미군은 물론 한국군조차 CCW의 가장 초보적인 조항인 8조를 이행한 사례는 전무하다. 오히려 연천군의 경우에는 군청이 나서서 주민들과 직접 조사작업을 전개하기까지 했다.

한편 비무장지대 이남의 지뢰지대가 한국군의 통제아래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군의 통제권은 이미 오래전에 통제불능 상태에 있음이 증명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유실지뢰이다. 국감자료에 의하면 유실지뢰 1발 회수에 장비 93대와 인력 995명이 소요된 것으로 나타났다. 유실지뢰 수거작업의 효율성을 심각하게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뢰가 유실되기 전에 지뢰의 유용성을 전면 검토하여 미리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인 대책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합참 또한 그렇게 판단하고 지뢰제거에 착수한 바 있다. 나아가 2006년까지 지뢰 유실의 원인을 아예 제거한다는 차원에서 39개 후방 방공기지에 대한 제거 계획이 추진중에 있다.

그러나 합참이 제거계획을 발표한 방공기지 주변의 지뢰지대는 전체 지뢰지대 2753만평(91㎢)중 12만평(400000㎡)으로 0.004%에 불과하다. 이는 유실지뢰원을 제거하는데 거의 의미없는 숫자가 아닐 수 없다. 현재 한국군의 대인지뢰에 대한 통제권은 0.004%임을 증명한다.

다른 나라와 달리 여름에 게릴라성 집중호우를 기후의 상수로 설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한국의 경우 유실지뢰문제는 결코 대인지뢰문제의 부수적 사항이 아니다. 본질적 사항인 것이다. 때문에 합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실지뢰사고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미국은 CCW에 의거한 의무조항에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미국무부가 밝힌 국제법 의무의 이행이 이토록 철저히 방기되고 있는 현실엔 눈감은 채 또다시 미국은 자폭식 지뢰와 이미 매설된 지뢰의 계속 사용을 천명하고 있다.

국방부가 올해 계속사업으로 한국형 지뢰살포기 도입에 243억원의 예산을 책정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예산 184억원에 비해 59억 가량의 예산이 증액된 것은 전투예비탄약(WRSA)의 증가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지뢰 살포기에 쓰이는 M74 대인지뢰와 M75 대전차 지뢰, M79 연습용 대전차 지뢰를 미국으로부터 더 많이 수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미국무부의 성명에 의해 한국의 자폭식 지뢰살포기사업이 미국과의 연관하에 이루어진 일임이 분명해졌다. 국방부 예산을 살펴보면 유실지뢰를 방지하는 예산이나, 지뢰 제거에 소요되는 예산 책정은 전무한 상황이다. 미국과 한국 국방부는 대다수의 국민들을 비인도적 살상무기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도외시한 채 여전히 냉전적 사고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현재 추정되고 있는 대인지뢰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액의 총 규모는 70억원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뢰살포기에만 투자할 금액이 1천8백억으로 200배에 이른다는 것은 미국과 한국 정부가 인도적 조치인 피해자보상과 지뢰제거에 대해 특별한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발표문

[링컨 불름필드 미국 국무부 정치군사담당 차관보는 "미국은 새로운 정책에 따라 특정시한까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종류의 잔존 지뢰를 폐기할 용의가 있다. 그 시한은 2010년이다.]

반박문

이는 빌 클린턴 전 행정부가 오는 2006년까지 지뢰를 대신할 대안무기개발을 완수하는 조건으로 ‘지뢰금지협약(MBT)’에 가입키로 했던 정책을 사실상 뒤집는 것일 뿐만 아니라, 지난 10여년 동안 지뢰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해왔던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것이다.

지난 1997년 지뢰금지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조디 윌리엄스 국제지뢰금지운동(ICBL) 대표는 “부시 행정부가 국제법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또하나의 예”라며 분노를 터뜨렸다.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의 스티븐 구스 사무국장은 “전세계가 지뢰금지를 위해 단결하고 있는 이 때에 부시 행정부는 지뢰무기의 영구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한반도의 대인지뢰 상황에 대해 기초적인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모한 정책발표만을 일삼고 있다. 과연 발표 이전에 한국정부에 현황파악이라도 의뢰해 본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더욱 한심한 것은 한국정부이다. 도대체 한국정부는 미국정부가 이런 발표를 하기 전에 한번 문의 전화라도 받아본 것인가? 만일 이번 발표가 한국정부와의 사전조율을 거쳐 나온 것이라면 한국정부는 막중한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한국정부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루어진 발표라면 이는 외교적 무시와 모멸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수모를 받고도 한국정부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면 한국정부는 아무런 기준도 없이 미국의 정책에만 끌려다니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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