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하고 18일 돌아온 남측 이산가족들은 잃었던 혈육들을 50년만에 다시 만난 기쁨에 대체로 밝은 표정들이었으나 이별의 아픔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다들 건강하게 오래 살아 꼭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면서 "이번 상봉이 서신왕래와 면회소 설치 등으로 이어져 1천만 이산가족들의 고통과 아픔이 해결돼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몽섭씨(75) = 방북 첫날 아내와 딸을 만났을 때는 북측에서 `따로 떨어져 앉으라`고 한 데다 무슨 얘기를 할지 몰라 서먹서먹했지만 차츰 얘기도 많이 하고 서로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다.

딸이 북한체제에 관한 얘기를 계속 반복해 기분이 상했지만 딸의 기분이 상할까봐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다. 아내가 50년 동안 나만 기다리면서 살아왔는데 오래오래 살아서 통일되면 다시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자고 다짐하고 왔다.

▲이찬우씨(69) = 사촌동생들을 만나고 평양을 떠날 때 영원히 다시 못만날 것 같아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촌동생들로부터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찢어졌다. 사촌동생들이 큰아버지, 큰어머니 제사를 제대로 지내지 않고 있어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박용화씨(83) = 50년만에 처음 만나니 누가 누군지 잘 알아보지 못하겠더라.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아이는 몇이나 낳았는지, 주로 이런 얘기를 했다. 가족들을  만난 소감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가족들이 그 긴 세월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하느라 평양시내 관광을 할 때도 뭐가 뭔지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김희조씨(73.여) = 일단은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지만 할 수 없지 않나. 사실은 지금도 소리내어 울고 싶은 심정이지만 담담해지려고 한다. 평양의 숙소에서 밤에 혼자 많이 울었다.

동생이 죽었으면 조카들이라도 있었을 텐데 이번에 만난 사촌동생이  조카들의 소식도 모르는 것이 이해가 안되고 가슴아프다. 고향의 소식도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이 원통하다. 그래도  북한땅을  밟아봤다는 것이 좋고 기쁘다.

▲장이윤씨(72) = 돌아가신 어머님 묘소에 참배라도 하기를  바랬는데, 그것조차 못한게 무엇보다 아쉽다. 고향땅을 밟지는 못했지만 평양땅이라도 밟아서 그나마 위로가 됐다. 이미 72세에 돌아가신 어머님을 109세가 될 때까지 살아계시다고 했으니 나를 두 번 울렸다.

▲김금자씨(69.여) = 친오빠를 만나러 갔는데 오빠는 죽었고 사촌언니 2명만 만났다. 오빠가 없어서 못내 아쉬웠다. 북한을 방문할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고 해도 오빠가 없는 그 곳에는 가고싶지 않다. 허리가 좋지 않아 휠체어를  타고 갔는데 오빠도 없고 해서 거의 매일 방에서 누워서만 보냈다.

▲최성록씨(79) = 북에 두고 온 아내에게 만나자마자 `고맙다`는 말을 먼저 했고 자식들이  해준 금반지를 끼워주면서 다시 한번 결혼하는 기분을 느꼈다. 헤어질 때 건강하게 서로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떠나오는 심정은 착잡했으나 김포공항에 도착하고 보니 내가 살던 곳으로 와서 그런지 지금은 마음이 편안하다. 서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한번 만나는 것이 소원인데 다음에는 숙소를 정해 만나지 말고 집까지 찾아가서 직접 만나고 싶다.

▲김장녀씨(78.여) = 딸을 만났는데 그 딸이 자식을 낳고 잘 산다는 말을 들었으니 지금 죽어도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다. 평양에서 있었던 3박4일이 왜그리 빨리 지났는지 모르겠다. 평양에서 시간이 더디 갔으면 얘기라도 한마디 더 했을텐데 아쉽다.

▲장두현씨(74) = 동생 2명과 조카 2명을 만났는데 그동안 생활이 어려웠던지 많이 야위었다. 동생들이 전해준 사진을 통해 고향을 봤는데 고향이 무척이나 많이 변해 생소했고 이번에 고향을 방문하지 못해 비통한 심정이다.

떠나올 때 살아서는 다시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슬펐고 평양을 출발해서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방북단 일행 모두가 슬프고 착잡했다.    

▲조윤진씨(74)= 몸은 조금 피곤하지만 북에서 아주 잘 대접해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기분이 좋다. 사람들이 의외로 친절했고 특히 나를 따라다녔던 수행원이 아주 잘해줘서 친척같은 느낌을 받았다. 가족들을 만나고 오니 아주 오래된 묵은 감정이 해소되는 것 같아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앞으로 서신왕래를 통하면서 좀더 자주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한재일씨(82) = 아내와 아들을 만났는데 아들이 너무 나와 안닮았고 아내도 젊은 시절의 새댁모습이 아니어서 처음에 못 알아봤다. 하지만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 가족, 핏줄임을 느꼈다. 아내의 손을 부여잡고 다시 한번 꼭 찾아오겠다고 말했고 아내는 기다리겠다고 했다.

이번 방북으로 북한에 대해 지금까지 가졌던 나쁜 선입관이 많이 바뀌었다. 어차피 같은 민족인데 빨리 통일돼 같이 잘 지냈으면 한다.

▲이선행(81).이송자씨(82) = 지금까지 자식을 버리고 내려온 죄인이라는 심정으로 죄책감을 갖고 살았다. 그러나 이번에 가서보니 다들 건실하게 잘들 살고 있어 죄인이라는 심정에서 벗어나게 됐다. 나중에 통일되면 두 가족이 다같이 살고 싶다. 헤어지기 전날인 어제 밤에는 아픈 마음을 잊고 이제 서로 마음 편하게 살자고 얘기했다.

▲김정호씨(90) = 가기전부터 아들이 많이 늙었을 것으로 생각하기는 했지만 막상 만나서 아들 얼굴의 주름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처음  만났을 때는 한동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아무런 말없이 울기만 했다.

나는 여기서 어렵게 살지만 아들이 북한에서 자동차회사 간부이고 며느리가 의사로 성공해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니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다만 고향이 평양인데도 일정때문에 살던 동네를 가보지 못한게 너무나 아쉽다. 다음에는 고향에도 방문하게 해줬으면 좋겠고 일정중 하루라도  자유시간을 줬으면 좋겠다. (연합 200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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