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이산가족 상봉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하고 2일 서울에 돌아온 남측 이산가족들은 잃었던 혈육들을 반세기만에 다시 만난 기쁨이 채 가시지 않은 듯 들뜬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2박3일의 짧은 일정 뒤에 기약없이 다시 이별을 한 때문인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산가족들은 짧은 상봉 뒤에 또다시 이산가족의 처지로 돌아온 현실이 믿기지 않는 듯 "지난 사흘이 꿈만 같았다"면서도 "다시 만날 때까지 또 얼마나 가슴앓이를 하며 기다려야 할 지 두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다들 건강하게 오래 살아 꼭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면서 "2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이 서신왕래와 면회소 설치 등으로 이어져 1천만 이산가족들의 고통과 아픔이 치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방북단중 최고령인 유두희(100.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할머니는 아직도 맏아들 신동길(75)씨를 만난 기쁨에 젖어있는 듯 공항에 마중나온 작은 아들 종순(63)씨를 맏아들로 착각하고 "동길아"라고 불러 보는 이의 가슴을 찡하게 했다.

유 할머니는 종순씨가 "2백살까지 살아서 또 만나셔야죠"라고 말하자 "내가 오래 살다보니 이렇게 만나게 됐다"면서 "이제 마음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겠다"고 소회를 피력했다.

시인이 된 동생 김 철(67)씨를 만나고 돌아온 서양화가 김 한(73)씨는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후부터는 꿈이나 생시나 만나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동생가족들까지 봤으니 모든 소원을 풀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박후정(69.부산 남구)씨는 "여동생과 꼭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면서 재상봉의 그날을 기약했고 `아름다운 양보`의 주인공이었던 우원형(67)씨는 "이제 보고싶은 동생들을 만났으니 더 이상 바랄게 뭐가 있겠느냐"며 밝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짧은 상봉기간에 시간과 장소의 제약으로 함께 자거나 집을 방문해보지 못했던 아쉬움도 터져나왔다.

박해수(72.서울 광진구)씨는 "북에 있는 동생들에게 족보 복사본을 전해줬다"면서 "부모님 산소에 가서 성묘라도 했으면 평생 맺힌 불효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을텐데.."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큰 딸 맹영숙(61)씨가 몸이 불편하다며 나오지 않아 만나지 못했다는 맹용덕(82)씨는 "얼굴은 못봤더라도 편지라도 자주 교환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반세기만의 귀향길에 딸을 만나지 못한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조카 2명을 만나고 온 김형일(80.경기도 고양시)씨는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에서 주진호라는 북한 학생으로부터 `조국은 하나`라는 서예 작품을 선물받았다"며 "이런 재능을 가진 학생들도 남북간에 교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겨레 2000/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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