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남북 적십자 3차 회담에서 타결된 합의는 지난 85년 8월 22일 개최된 제8차 남북 적십자회담 3차 실무접촉에서 타결된 합의와 비교해 볼 때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합의서의 명칭. 85년 당시에는 `이산가족 고향방문 및 예술공연단 교환방문에 관한 합의서`였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남북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과 면회소 설치.운영 및 비전향장기수 송환에 관한 합의서`로 정리됐다.

합의 배경도 다르다. 85년에는 그 전해에 이뤄진 남북 적십자간의 수재물자 인도. 인수와 함께 광복 40주년을 기념해 교환방문이 성사됐고 이번에는 남북관계에 큰 획을 긋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의 후속조치로 교환방문이 이뤄지게 됐다.

이번 적십자회담 합의는 또한 남북문제 해결과정에서 `뜨거운 감자`로 지적돼 왔던 비전향 장기수의 북송을 전격적으로 거론, 희망 대상자의 9월 초 전원 북송에 합의해 주목된다.

85년 당시에는 거론조차 될 수 없었던 50여명에 이르는 비전향 장기수 문제의 북송을 명기한 점은 남북 정상회담의 의미를 뒷받침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시대의 변화상을 담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비전향 장기수들의 북송 직후 적십자회담 개최를 통한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를 협의, 타결한다는 내용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면회소는 결국 이산가족 문제 해결의 정례화 및 제도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남북이 궁극적으로는 전체 이산가족의 재결합을 실현과도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진전으로 평가된다.

한편 상봉방문단의 규모와 교환방법, 방문지 등 절차적 부분은 85년 합의서와 대체로 유사하다.

방문단 규모와 관련, 85년 합의서는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50명과 예술공연단이 50명 등 모두 100명으로 했으나, 이번에는 예술공연단 50명을 제외한 대신 고향방문단만 100명을 규정하고 있어 고향방문의 실제 폭은 넓어진 셈이다.

85년에는 고향방문단 지원 요원과 취재기자를 각각 20명과 30명으로 구성한데 비해 이번 합의서는 지원 요원을 30명, 취재기자를 20명으로 편성해 전체 규모는 변함이 없다.

교환 시기와 방법은 85년과 마찬가지로 3박4일의 일정에 서울과 평양 동시 교환 방문으로 합의했다. (연합 2000/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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