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매체들은 가끔 큰 사건 현장을 '속보'형식으로 다루고 있고 현장 취재기자는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전화로 '부르는' 경우가 있다.

이라크 추가파병 동의안이 국회 본희에 상정된 날도 국회안과 국회밖 반대집회 현장을 기자들이 취재해 열심히 '부르는'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이 '열린 파병당', '소신파병당', '딴나라당', '전쟁참여정부'라는 이름을 붙인 영정앞에 잡귀를 물리치는 의미로 소금을 뿌리는 의식을 진행했다는 내용이 들어왔다.

당연히 즉각 속보로 올리고 나서 조금 있다가 현장사진이 전송돼 왔다. 그런데 사진을 확인한 순간 실소를 금할 길 없었다. 각 당대표와 노 대통령의 사진에 검은 리본을 붙이고 근조(謹弔)라 써붙였는데 기자가 '불러준' 것과는 달리 유독 '딴나라당'만은 '딴나라(미국)당'이라고 돼있었던 것이다.

아마 이라크 파병에 적극 나서는 한나라당을 비꼬아 미국이익을 대변하는 당이라는 의미에서 그런 설명을 굳이 달았을 법하다.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을 적극 반대한 의원들 대부분이 한나라당이었다는 사실을 비롯해 과거의 행적에 대한 '괘씸죄'가 작용했으리라.

정치권의 일각이 '우리나라'보다 '딴나라'를 더 위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치는 현실이 통탄스럽지만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소위 참여정부를 표방한 우리 정부의 모습이다.

월초 켈리 미 국무성 차관보가 방한해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을 예방했고, 그 내용을 외교통상부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에서 기자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을 접했다.

미 대사관 청사신축 문제에 대해서 "장관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과 총리께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고 말하고 외교부가 현재 문화재 심의위원들을 개개인으로 설득하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설명을 했다"는 것이다.

미 대사관 청사이전을 추진하기 위해 외교부가 직접 나서 덕수궁터의 문화재 보존여부를 판단할 문화재 심의위원들을 '개별'적으로까지 '설득'하고 있다고 '당당히' 밝힌 것이다.

'외교부가 미국측의 우려와 관심을 문화재위원회에 충분히 전달했다'고만 말해도 될 사안을 '개별 설득'까지 발벗고 나서고 있다고 자랑한 셈이다. 마치 노 대통령의 한미정상회담에서의 '수용소 발언'을 연상케하는 대목이다.

기자는 브리핑을 마친 대변인에게 켈리 차관보에게 우리측도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의미로 소위 '립 서비스'(말 접대)를 한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사뭇 진지하게 사실임을 재확인해주었다.

기자는 다음 정례 장관브리핑에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이 문제를 질의했다. 이런 발언을 한 것이 사실인지의 여부와 이에 대한 비판여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취지였다.

반 장관은 "현재 정부와 서울시 관계자가 문화재 위원들과 간담회 성격으로 의견을 교환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부 언론에서 보도된 바와 같이 어떤 압력을 넣었다든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지 이런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미국 관리 앞에서 발언과 국민을 상대로 한 언론 앞에서의 발언이 다른 셈이다.

그렇잖아도 반 장관의 임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다. 91년 용산 미군기지 이전협정과 관련해 소파합동위 조약체결 당사자라는 지적에서부터 미국에 경사된 전형적인 외교부 관료라는 지적까지. 그래도 이 정도는 점잖은 편에 속했다.

그런 반 장관의 취임 일성은 외교부의 내부 혁신이었고, 일종의 태스크포스팀까지 가동하며 조직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혁신되어야 할 것은 미 대사관 청사 신축을 바라보는 외교부의 낡은 시각과 업무수행 양태이다. 외교부가 '미국부'가 아닌 이상, 외교부 장관이 '미국 장관'이 아닌 이상 우리 국민의 입장에 서서 자신의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무슨 거창한 '자주'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정상국가의 정상적인 외교부와 정상적인 외교부 장관을 바라는 소박한 심정을 말하는 것 뿐이다.

최근 반 장관의 자리이동으로 공석이 된 청와대 외교수석에 '중국통'이 기용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 '미국통' 중심으로 짜인 외교안보라인에 중국통을 기용해봄직하고 수석자리가 대통령에 대한 '교사'의 역할도 있어서 2년차를 맞는 대통령이 미국에 대한 '이해'를 어느 정도 했으니 중국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혹시 미국통들처럼 중국통이 중국에 경사된 '친중파'는 아닐지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장관'에 '중국 수석'이 들어서는 최악의 구도를 우려하는 까닭이다.

언감생심, 연목구어(緣木求魚)일지 몰라도 '미국통 우리 장관', '중국통 우리 수석'을 갖기를 바라고 그 '우리' 안에는 우리의 반쪽인 북한까지를 껴안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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