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김용준/조선화/171*86/1958

우리 나라 사람은 감성이 풍부한 민족이다. 어떤 학자는 북방계열의 혈통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 나라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가무(歌舞)를 즐겼다. 유교적 규범이 엄격하던 조선시대에도 백성들의 가무를 막을 수는 없었다. 먹고살기 위해 농사를 지을 때나 힘든 노동을 할 때도 춤추고 노래를 불렀다. 군사용으로 쓰던 악기나 진법을 가지고 풍물놀이로 발전시켰으며, 심지어는 사람이 죽었는데도 노래(곡소리)를 불렀다.   

이러한 전통은 근대화 과정에서도 면면히 이어졌다. 춤과 노래를 부를 장소와 시간이 없어지자 사람들은 장바구니를 들고 무도장을 들락거렸으며, 관광버스를 디스코장으로 만들었다. 세계에서 관광버스에서 춤을 추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아무튼 젊은이들이 통기타를 메고 다니는 것은 낭만이었고, 야유회를 가거나 모임이 있을 때는 어김없이 가무가 뒤를 따랐다.

요즘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수입한 가라오케, 노래방 문화는 전국을 휩쓸었으며, DDR이라는 댄스 오락기는 청소년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일본으로 역수출하는 기현상도 발생했다.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 발라드나 뽕짝이 대중음악의 주류를 차지하고, 그것도 어렵다면 춤이라도 출 수 있는 댄스곡이라야 히트를 칠 수 있다. 사람들은 1차에서 술을 마시고 2차에서 노래와 춤을 춰야 `잘 놀았다`고 흐뭇해한다. 점잖을 빼는 사람이나 외국사람들 눈에는 이것이 퇴폐향락으로 보일런지 몰라도 우리 민족의 춤바람은 막을 수 없다. 이것을 막는다면 아마도 1987년 6월 항쟁 이상의 대중봉기가 일어날지 모른다.

이런 춤바람은 남한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북한도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찬가지다. 국가 명절이 있는 날에는 광장에 몇 십만 명이 나와 춤을 춘다. 또한 어릴 적부터 하나 정도의 악기를 다루도록 교육한다. 북한의 집단무용(집단체조)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얼마전 통일 분위기를 타고 우리 나라에 온 청소년들의 악기연주나 노래는 보는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통일전망대`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북한의 모습에서도 이런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들놀이에서 아코디언, 장구, 기타는 필수품이고 여기에 왈쯔 비슷한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아무튼 북한에서도 춤바람은 막을 수 없나 보다. 춤바람만큼은 이미 남북한이 통일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엄격하고 경직될 것 같은 북한미술도 바로 춤바람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북한미술은 50년대 말부터 중요한 변화를 겪는다. 이 시기 북한미술은 새로운 평양미술대학 출신의 신진세력을 중심으로 변화를 모색한다. 서양전통의 유화보다는 민족 전통을 계승한 조선화를 앞세우게 된다.

<춤>이라는 작품은 바로 조선화의 한 정형으로 평가받았던 그림이다. 일단 그림을 살펴보자. 사실묘사를 기본으로 하면서 율동감이 드러난다. 얼굴과 옷 부분의 채색이 작품에 긴장감을 주고 동시에 액센트 역할을 하고 있다. 시선이 가는 쪽으로 여백을 남겨 적절한 여운과 신비감을 준다. 또한 투명한 옷의 처리를 치마의 어두운 농담처리와 대비시켜 표현했으며 무늬를 넣어 옷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있다.

이 외에도 <춤>이라는 작품 속에는 북한미술의 핵심적인 요소가 숨어있다. 당시 북한은 문인화나 수묵화를 지배계급의 미술이라고 비판하면서 그것을 대신할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김용준의 <춤>은 바로 이것을 극복하고 북한 인민의 정서나 미감을 잘 반영한 최초의 작품이다. 북한 인민의 정서나 미감에 맞는다는 말은 대충 이런 뜻이다. 일단은 사실적으로 그렸으니 이해하기가 쉽고, 채색이 들어갔으니 보기가 좋으며, 율동이 있으니 감정을 움직이기 좋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이후에도 조선화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교과서 같은 구실을 한다.


▶쟁강춤
김성민/조선화/136.2*96 /1993

김성민의 <쟁강춤>은 김용준의 <춤>을 현대에 맞게 표현한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크기도 비슷한 이 두 작품의 제작시기는 30년 이상 차이가 난다. 그동안 북한미술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일단은 색채가 굉장히 화려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승무를 추는 사람의 표정은 가려져 있는데 반해 <쟁강춤>의 주인공은 밝게 웃고 있다. 율동미도 훨씬 좋아졌다. 치마에 표현된 힘찬 붓질은 과히 충격적이다. 50년대 말은 전후 복구가 한창 이루어지던 시기였고 90년대는 평양축전, 유엔동시가입, 정상회담 따위의 통일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였다. 그래서인지 <쟁강춤>에는 소재의 파격성과 아울러 대담한 붓질에서 느껴지는 자신감과 낙관성이 보인다. 공통점이라면 춤이라는 소재와 발이 한쪽만 보이는 것과 두 손을 올렸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정리를 하자. 김용준의 <춤>은 승무를 하는 것이기에 넘어가더라도 <쟁강춤>보면 느껴지지 않는가. 무희가 미인이라는 거... 매력적인 몸매와 아울러... 함께 춤추고 싶다는 야성(?)은 느껴지지 않는가 말이다. 그래서 춤바람은 사람을 흥분시킨다. 통일은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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