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거리연장 등 미국에 허락받아야 하는 현실… DJ 500km 요구 실현될까

지난해 6월11일, 서해안의 한 군사기지. 국내 최초의 2단 분리형 과학로켓이 굉음을 내며 하늘로 힘껏 솟구쳤다가 포물선을 그리며 목표해역에 정확히 떨어졌다. 총비행시간은 362초, 불과 6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다. 이 로켓은 길이 11.1m, 무게 2t, 최고 발사 고도 137km 정도였다.


한국과 일본의 머나먼 기술차


발사광경을 지켜본 로켓개발 관계자들은 한켠으론 발사성공을 기뻐하면서도, 다른 한켠으론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주변 나라들의 기술에 견주면 아직은 보잘것없는 성과였기 때문이다.

과학로켓이 경제성 있는 위성체를 싣고 날기 위해서는 고도 200km 이상에서 수평 방향으로 초속 8km 이상의 속도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국이 이 정도의 기술에 도달하려면 앞으로 적어도 5년 남짓은 더 걸릴 것으로 진단한다. 게다가 이 과학로켓의 핵심부품인 관성항법유도장치는 미국산이며, 그 밖의 부품들도 상당수 외국에서 사온 것들이다. 그야말로 무늬만 국산인 셈이다.

그 무렵, 북한도 로켓 시험발사를 실시했다. 북한은 지난해 8월31일 함경북도 무수단리에서 3단 분리용, 추정무게 25t의 발사체를 동해 상공으로 쏘아올렸다. 이 발사체는 동해를 가로질러 태평양 한가운데에 2단계 추진체를 떨어뜨리며 우주궤도로 근접했다. 세계가 깜짝 놀랐다. 전문가들은 이 발사체가 북한이 자체개발한 항법장치와 액체연료로 2천km까지 날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했다.

북한은 이미 60년대 후반부터 로켓개발에 뛰어들었다. 본격적인 성과를 거둔 것은 81년 이집트에서 수입한 스커드-B 미사일을 분해해 그 제작법을 익히면서부터다. 북한은 84년 사거리 280km의 스커드-A, 이듬해 320km의 개량형 스커드-B를 자체 개발했다. 이어 89년 사거리 500km의 스커드-C에 이어 93년 1천km의 노동1호, 98년 8월에는 2천km의 대포동-1호를 시험발사했다. 지금은 6천km에 이르는 대포동-2호 시험발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포동-2호의 탄두를 추정치인 1t보다 가볍게 만들면, 사거리가 1만km에 이르는 사실상의 대륙간탄도탄(ICBM)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평화헌법에 따라 전략무기 생산이 엄격히 제한돼 있는 일본은 어떤가. 일본도 비슷한 시기인 지난해 7월4일, 가고시마 우주센터에서 화성탐사선 ‘플래닛 B’를 쏘아올렸다. 이 탐사선은 일본이 최근 개발한 4단 분리 로켓 ‘M5’에 실려 장장 15개월 동안의 화성여행을 하고 있다. 이 로켓은 길이 31m, 무게 2t의 위성을 저궤도에 올려놓을 정도의 추진력을 갖고 있다. 더구나 핵심부품의 100%가 일본산이다. 특히 미사일의 핵심기술인 유도기술에 관한 한, 일본은 미국과 어깨를 견줄 만하다. 일본은 대륙간탄도탄 수준인 사거리 1만5천km에 이르는 위성발사체 H-2의 자체개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과학연구 개발을 명분으로 로켓강국에 진입했다. 1954년 도쿄대의 로켓연구반은 길이 23cm, 지름 1.8cm의 연필만한 로켓을 처음 만들어 시험발사를 거듭했다. 일본은 이때의 실험자료를 바탕으로 60년대 초반 2단 분리형, 발사고도 300km를 넘는 로켓을 만들어냈다. 성능으로 따지면 이 로켓은 한국이 지난해 6월에 쏘아올린 2단 분리형 과학로켓과 비슷하다. 한국과 일본의 기술격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두환 정권의 굴복


이런 엄청난 기술격차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많은 전문가들은 순전히 ‘한·미 미사일 양해각서’ 탓이라고 말한다. 이 각서에 따라 한국은 군사용이건 우주개발용이건, 사거리 180km를 넘는 미사일의 연구개발과 생산배치 때는 일일이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한국은 5, 6공 정권 때 “미국으로부터 미사일 부품과 기술을 제공받는 대가로 사정거리 180km, 탄두중량 500kg 이상의 미사일을 개발하지 않겠다”고 미국 정부에 각서로 약속했다. 미국은 이 각서를 빌미로 한국의 미사일 개발과 우주 개발을 가로막으면서 남북간은 물론 일본과의 기술격차를 크게 벌려놓았다. 한 미사일 개발 관계자는 “미국의 외압을 당당히 견뎌낼 수 있는 자주성이 있고, 정통성이 있는 정권만 일찍 나왔더라도 우리 로켓개발 수준은 이미 10년 전 위성을 쏘아올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로켓’은 과학용에서 군사용까지 폭넓게 쓰인다. 로켓은 발사추진체 자체를 가리키는 용어인데, 앞머리에 폭발물을 실어 군사 목적으로 사용하면 ‘미사일’로 불린다. 한국이 처음 로켓개발에 나선 시기는 지난 50년대 말이다. 출발은 일본이나 북한에 견줘 그렇게 뒤지지 않았던 셈이다.

국방과학기술연구소가 58년에 최초의 국산 로켓을 만들었다. 59년에는 81km까지 날 수 있는 3단 분리 로켓을 발사하기도 했다. 본격 개발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72년 국방과학연구소가 문을 열면서 시작됐다. 이 연구소는 불과 6년 만인 78년 가을에 사거리 180km의 장거리 국산미사일 ‘백곰’을 만들어냈다. 오히려 북한보다 몇년 앞서 장거리미사일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당시에도 미국의 압력은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장거리미사일인 나이키 허큘리스 코리아(NHK) 생산계획을 밀어붙였다. 미사일 핵심기술인 관성항법장치는 영국에서 수입했다.

그러나 80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 압력에 굴복해 국방과학연구소의 미사일 개발팀은 해체됐다. 그뒤 노태우 정권도 전 정권의 정책을 답습했고, 국산 미사일 개발은 사거리 180km 벽을 깰 수가 없었다. 미국은 아예 한국이 180km 이상 날아갈 수 있는 관성항법유도장치를 다른 나라에서 구입하지 못하도록 족쇄를 채웠다. 장거리미사일 개발을 위해서는 미사일이 자체적으로 목표물을 찾아 추적할 수 있는 관성항법유도장치가 필수적이다. 미국은 이 기술의 이전을 지금까지 회피하고 있다.

미국은 미사일통제기술체제(MTCR)가 허용하고 있는 사거리 300km의 미사일 개발 허용도 미적거리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1월 서울에서 열린 안보연례협의회에서 한국의 미사일 개발을 사거리 300km까지 확대한다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그러나 미국쪽에서 수시 현장사찰 등 개발단계의 투명성 보장을 요구해 아직까지 최종 합의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민간경제분야에도 타격


설사 미국이 사거리 300km를 허용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미사일기술통제체제에 가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민수용은 몰라도 사거리 300km 이상의 군사용 미사일 개발은 끝내 못할지 모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지난 87년 미국 주도로 꾸려진 이 체제는 신흥국가들의 지대지 미사일 개발 한도를 가급적 사거리 300km 이내로 묶어두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이 미사일 개발 억제를 빌미로 우주개발이나 민수용 로켓개발도 막아왔다는 점이다. 이런 미국의 횡포가 한국의 로켓발사 기술을 수십년 뒤처지게 만든 결정적 단초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로켓이나 미사일 개발기술은 단순히 군사분야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우주산업기술, 이동통신, 고화질 텔레비전 등 첨단산업분야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따라서 미국이 채운 족쇄는 민간경제 분야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미국의 미사일 개발통제는 군사적으로도 심각한 군사력 불균형을 불러왔다. 79년에 개발한 ‘백곰’을 80년 개량한 ‘현무’의 미사일 사거리는 180km다. 휴전선 가까이서 미사일을 쏜다 해도 겨우 평양에 닿을까 말까다. 이 밖에 사거리 38km의 어네스트 존이 있으나 도입된 지 30년이 지나 폐기중이다. 지난 95년에는 단 한발로 140km 떨어진 축구장 3∼4개 크기의 지역을 초토화할 수 있는 지대지 미사일 에이타킴스를 미국에서 도입했다. 그럼에도 남쪽의 미사일 전력은 북한의 맞상대가 되지 못한다. 다만 정확도면에선 남쪽의 미사일이 북쪽을 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7월3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미사일 사거리 500km까지는 연구하고, 실험발사 정도는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 대통령이 직접 나서 미사일 사정거리를 늘려달라고 공식 요청한 건 처음이다. 더구나 북한의 미사일 추가 발사문제가 미국을 극도로 예민하게 만들고 있는 시점에서 김 대통령이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문제를 정면에서 끄집어낸 것은 그만큼 미사일 문제가 절실하다는 것을 뜻한다. 미사일 사거리 500km의 전략적 의미는 적지 않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80km는 평양 이남, 300km는 평북 신의주까지를 사정권으로 한다. 500km는 북한 전역과 중국 만저우 일대까지 타격할 수 있다. 남·북한간 미사일 기술 격차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셈이다.


500km 개발해도 북한 상대 못 돼


그러나 지금으로선 미국이 사거리 500km의 미사일 개발을 허용할지 극히 불투명하다. 미국은 한국의 미사일 개발이 북한은 물론이고 일본, 중국까지 자극하는 동북아 군비경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국내 군사전문가들 가운데도 “미사일 사거리 연장이 득보다 실이 많다”고 주장하는 이가 적지 않다. 미사일 사거리를 늘리는 데 드는 엄청난 비용에 비해 경제성이나 대북 억지력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국방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북한 미사일은 대개 지하 깊숙이 숨겨져 있는 데다, 낙하속도가 워낙 빨라 미국의 미사일 요격기술로도 잡지를 못한다. 한국이 사거리 500km 미사일을 개발한다 해도 맞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또 “통일이 되더라도 주변 강대국들이 공격용 미사일을 그대로 둔 채 통일을 허용할 리가 없기 때문에 나중에는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지금은 군사용보다 과학관측이나 민수용 로켓개발에 철저히 힘을 쏟는 게 낫다는 얘기다.

미국은 95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다섯 차례 열린 한·미 미사일 회담에서 민간 우주발사체에 대한 제한은 철폐키로 합의한 바 있다. 뒤늦게 로켓개발 사업에 뛰어든 한국 정부는 오는 2003년까지 총 58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무게 400kg의 탑재물을 싣고 고도 700km까지 올라갈 수 있는 3단 분리형 로켓을 개발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 로켓을 과학관측에 이용할 뿐 아니라, 다목적 실용위성의 본격발사에 대비한 발사체로 활용할 생각이다.

미사일에 관한 한 한국은 아직 주권국가가 아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미사일 주권을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북한을 비롯해 일본, 중국 등 주변국 모두가 막강한 미사일을 갖고 있는데, 한국만 빈손으로 미국에 의존한다면 주권국가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겨레21 1999.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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