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한국민권연구소 연구위원)


나라 곳곳에서 정당과 국회해산에 대한 국민여론이 들끓고 있다. 범청학련이 국회해산과 조기총선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는가 하면 어느 칼럼니스트는 `헌재에 위헌 정당 해산 제소하라`는 칼럼을 통해 "이번 정경유착을 통한 정치자금은 행위자가 처벌받음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그런 불법에 조직적으로 관여한 정당 자체도 해산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나라당의 비호세력이라도 할 수 있는 조선닷텀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보아도 정당과 국회 해산에 대한 국민 여론을 엿볼 수 있다. 조선닷컴의 한나라당 해체론에 대한 네티즌 여론 조사 결과, 투표 참여 인원(3만 3,510명)의 65.8%(2만 2037명)가 `해체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사실 국회를 해산해야 한다는 주장은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이미 2003년 9월 27일 어느 네티즌은 `국민통합 21` 자유게시판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국회를 해산하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백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백성의 뜻을 파악해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곳이 국회라면 지금 여의도에 있는 국회의원들을 모두 해산하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어려운 시기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제자리를 뱅뱅 돌고만 있다면 어서 빨리 국회를 해산하라"는 것이다. 어서 빨리 국회를 해산하고 "국민의 힘으로 국회의원들을 다시 뽑자"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당시 개혁당 국회의원이었던 유시민 또한 2003년 10월 10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안기부 돈 도둑질한 국회 해산 문제도 함께 묻자"고 제안하기도 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을 묻겠다는 발표 배경과 관련한 인터뷰를 하면서 "대통령 하야만을 묻지 말고, 국회 해산도 같이 묻자"며 "대통령은 20년 측근이 비리 혐의에 휘말려 책임을 지겠다는데, 안기부 돈을 도둑질하고 국가예산을 도둑질하고 세무서를 동원해서 선거자금 마련하는 국회는 왜 아무런 책임을 안지나"고 반문하기도 하였다.

문화관광부 사이트에 2003년 12월 9일 "하찮은 정치논리로서 우리사회를 혼란스럽게 해서는 안된다. 이는 소모전에 불과할 뿐이다"는 제목으로 국회해산을 주장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하였다.

대선자금 비리 문제가 불거져 나왔던 2003년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시작되었던 국회 해산 논란은 바야흐로 정국의 주요사안이 되어 현재 한국정치는 국회해산 정국으로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해산은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국민과 대통령의 권리 행사

대한민국 헌법은 국회의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제46조 ① 국회의원은 청렴의 의무가 있다. 
   ②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 

즉 국회의원은 `청렴의 의무`가 있을 뿐 아니라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직무를 수행한다`고 적고 있다. 따라서 헌법의 조항대로 한다면 최근 대선자금 문제와 관련하여 거론되고 있는 상당수의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원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들이 속한 정당이라는 곳은 그들이 국민과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보다는 그들의 비리를 비호하고 그들을 법의 심판대에 앉히려는 시도를 무마하기 위해 방탄국회를 열기에 바쁘다. 국회의원의 자격을 상실한 국회의원들을 비호하는 정당 또한 정당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할 수 있으며, 국회의원을 거느릴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

또한 헌법 제8조 2항은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불법 대선자금을 수백억원, 수천억원씩 불법모금한 정당의 활동은 `민주적`인 것이 아니라 `민주파괴적`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또 8조 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헌법 제34조 4항은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적고 있으며,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민에 대한 위험은 단지 물리적 위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리적 위험 못지 않게 정신적, 정치적 위험에 대해서도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최근 대선자금 문제를 갖고 전개되는 정치인들의 `이전투구`로 인해 우리 국민들은 삶의 희망을 상실 당하였고 근로 의욕조차 빼앗겼다.

"깡패같은 정당은 수백억 원의 정치자금을 뜯어내고 재벌그룹은 이권을 보장받기 위해 불법자금을 제공하고…. 서민들로서는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그렇게 갖다 바칠 돈이 넘쳐나면 근로자들의 복리후생에 써야지 썩어빠진 정치자금으로 바치는 게 말이 되느냐"는 한 인터넷 언론사에 실린 40대 택시운전기사의 말은 우리 국민의 심정을 그대로 담고 있다. "1억 원을 받았다는 이광재 씨는 구속되고 수 백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뜯어낸 한나라당 의원들은 큰소리치는 게 우스꽝스러운 현실이다. 부패정당을 심판하고 불법자금 관련된 정치인은 법대로 처벌해야 한다"는 30대 회사원의 말 또한 마찬가지다.

이렇듯 최근 정치권에서 전개되고 있는 대선자금 공방은 단지 정치적 사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위협하고 국가 존재 기반을 흔드는 심각한 국가적 위기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헌법 34조와 72조를 적용한다면 `대통령이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국가 안위를 지키기 위한 방도를 묻는 국민투표를 붙일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해산에 관한 과거 사례

사실 국회해산은 노무현 정부 들어서 처음 제기되는 것도 아니다. 김영삼 정부의 한보 비리 사건으로 정국이 시끄러웠던 1997년에도 국회해산 주장은 제기되었다. 주간잡지 뉴스플러스는 1997년 2월 27일자 보도를 통해 "내각책임제였다면 벌써 몇 번이고 해산 당했을 15대 국회이다. 그래도 선거법 위반 6개월 공소시효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정치자금법만을 금배지 지키기의 방벽으로 내세울 것인가. 정치인들은 이 단계에서 정태수 씨로부터 받은 뇌물이나 `떡값`에 대해 양심선언을 하고, 의원직을 사퇴해야 마땅하다. 15대 국회를 해산하고 새 총선을 치르는 것이 국회가 당하는 치욕과 불명예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다. 그렇지 않으면 남은 임기 3년 내내 국민적 불신임을 지울 수 없다. 한보 게이트의 총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은 이같은 일이 선행된 다음의 일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악명높기로 유명한 박정희의 경우에는 실제 국회를 강제 해산시킨 일도 있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특별선언을 통해 국회해산과 정당 및 정치활동의 중지 등 헌법의 일부 기능을 정지시키는 비상계엄을 전국에 선포하는 이른바 `10월유신`을 단행하였다. 따라서 당시 제8대 국회는 1년 3개월만에 해산되었으며, 대통령을 의장, 국무총리를 부의장으로 하고 국무위원으로 구성되는 비상국무회의가 국회의 기능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국회해산은 현실의 절박한 요구

현 국회가 존재하는 한 국회는 대선자금 비리를 감추기 위한 정치적 도구가 될 수밖에 없다. 각 정당들마다 대선자금에 관한 단호한 법의 심판을 부르짖고 있지만 실제 검찰의 수사에 협조하는 당은 단 한 곳도 없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12월 11일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다 밝히는 것이 국민에 대한 기본적 도리"라며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파악해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밝히겠다"는 입바른 소리는 하지만 정작 최돈웅 의원의 소환을 거부하고 있다. 또 대선 당시 한나라당 재정국의 핵심 실무자들은 물론 재무·회계 관련 주요 당직자들도 모두 도피중이다.

열린우리당 또한 마찬가지이다. 노무현 대통령후보 선대위의 총무본부장이었던 이상수 의원 등은 여전히 대선자금 문제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한나라당에 쏟아지는 비판의 화살이 자칫 분산될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우지만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국민도 없을 뿐더러 설령 그 말이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치부는 가리고 상대방의 치부만을 부각시키겠다는 정치논리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대선만 거치고 나면 불거지는 대선자금 문제는 한국 정치 개혁의 가장 중요한 내용중의 하나이다. 대선자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 정치개혁을 논할 수 없다. 그러나 말로는 정치개혁을 외치지만 대선자금 문제 해결에 있어 어느 정당, 어느 국회의원도 제대로 협조하지 않고 공개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방탄국회를 열어 방어하기에 급급한 국회는 더 이상 국회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다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대선자금 문제의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이회창과 노무현이 나선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15일 기자회견을 하고 전격 검찰에 자진 출두한 이회창의 행동을 두고 대선자금 문제를 풀기 위한 `구국의 결단`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대선에서 500억 가량의 불법 대선자금을 받아 썼`고 `앞으로 어떤 추가적인 불범자금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그 책임은 모두 자기 책임`이라는 상호 모순된 발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회창이 말한 대로 모든 것이 `자신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졌다면 이회창 본인은 500억을 썼는지, 1000억을 썼는지 자세하게 알 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모순된 발언을 하는 것은 대선자금 전면공개의 의지는 없고 지금의 검찰 수사가 조기에 종결되었으면 하는 바램의 표현일 뿐이다.

또한 이회창은 검찰에 출두해서도 언제, 누구에게 지시를 내려 어떻게 불법 모금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하지 않고 모든 것이 자기 책임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뇌이기만 하였다. 이회창의 기자회견과 검찰 출두는 최근 전개되고 있는 검찰의 한나라당에 대한 대선자금 수사에 혼란을 제기하고 시간을 끌어 수습책을 마련해보려는 `꽁수`이다.

16일 기자회견을 한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한나라당의 10분의 1 이상을 받았다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발언은 10분의 1은 받아도 된다는 의미로서 대선자금 문제를 바라보는 대통령의 안일한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그러한 자세로는 결코 대선자금 문제를 풀 수 없으며 정치 개혁 또한 실현할 수 없다.

정치권이 이렇듯 불성실한 태도로 임하면서 국민을 실망시키고 분노를 자아내게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본격적으로 나서서 대선자금 문제도 풀고 정치 개혁도 단행해야 한다는 것을 웅변해준다. 그러나 국회가 저렇듯 정쟁만을 일삼고 있는 조건에서는 결코 국민들이 본격적으로 나서 정치 개혁을 단행할 수 없다. 국회가 존재하는 한 국민의 정치 개혁이라는 `창`은 결코 방탄국회라는 `방패`를 뚫을 수 없다.

국회를 해산하고 국민의 진정한 의지를 모아 총선을 다시 실시해 국민들의 염원과 의사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을 선출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결심`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국회해산은 법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가능한 일이며, 현실의 요청이기도 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과연 가능하겠는가`라는 회의론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러한 회의론은 그동안 구시대정치인들이 만들어놓은 `패배주의 덫`에 다름 아니다. 우리가 이러한 패배주의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영원히 구시대정치인들의 정치놀음에 국정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생존을 내맡긴 채 살아야만 한다.

박정희 독재 하에서의 국회해산 경험이 또한 국회해산에 대한 행동을 주저하게 만들기도 한다. 즉 국회해산이라는 것은 반민주독재의 전형적 형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국회해산은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국회해산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한 국회해산인가 하는 것이다.

박정희처럼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독재정치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국회해산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국민의 권리를 박탈하고 민주주의를 죽이는 행위이다. 그러나 최근 방탄국회로 일관하며 국민의 삶을 `허무와 분노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는 국회에 대한 해산은 정치개혁을 실현하고 국정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민주정치의 수단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따라서 지금의 국회 해산은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한 국민들의 권리 행사인 것이다.

문제는 국민들의 `결심`이며, 국민들과 함께 정치개혁을 실현하겠다는 진보·개혁세력의 `결심`에 있다. 국회해산은 군사독재자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부패정치, 구태정치를 청산하기 위한 역사적 과업을 수행하는 중요한 민주주의 정치의 수단이다. 국회해산에 대한 국민여론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국민의 힘을 결집하여 국회를 해산하고 `국민의 염원과 의사`에 맞는 정치 개혁을 단행해야 할 때이다. 그것만이 한국정치가 살 길이고 우리 국민이 살 길이며 대한민국이 살 길이다.

어느 지방 언론사 논설위원의 기사를 일부분을 소개하며 글을 끝맺는다.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대세에 떠밀려 한나라당까지 정치개혁을 입에 올리고 있는 것은 국민이 일으킨 정치개혁의 혁명적 상황이 만들어낸 분위기이자 문화적 소용돌이다. 때문에 정치개혁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요구는 불가항력이다.

하지만 불법 대선자금 조성과 관련한 검찰조사에 대한 한나라당의 태도와 그것의 물타기를 위한 특검 추진에서 보듯이 그들은 떼밀려 죽을지언정 스스로 정치개혁에 참여할 집단은 결코 아니다.

이는 민주당 역시 마찬가지다. 정치개혁에 대한 반발에 있어 민주당은 한나라당에 버금간다. 그들 역시 구시대의 낡은 정치패러다임에서 벗어난다면 대부분의 소속의원들의 정치생명이 바람 앞에 등불의 처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열린 우리당의 경우에도, 시대변화와 국민적 요구를 감지하고는 있는 듯 하지만, 이러한 변화된 정치패러다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또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현 상황에 대한 거부감도 다른 당과 별반 차이가 없는 듯 하다.

변화된 정치패러다임을 이해하고 실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과거 명망가와 고위관료출신들의 영입에 열을 올리고, 지구당 창당을 현직 국회의원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따라서 현 시대와 국민이 요구하는 온전한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을 구김 없이 올바로 형성해 깊은 국민의 골병을 근원적으로 치료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정치개혁의 작업을 현재의 국회의원들이 아닌, 국민들의 손에 맡겨야 한다고 본다.

국회를 해산하자는 주장의 근거는 거기에 있다. 선거구제 변경과 선거공영제는 사실상 현재의 정치권이 모두 동의하고 있는 만큼, 즉각 법제화하고 현재의 국회는 그것으로 자신의 생명을 마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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