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위원장 `조건부 개발 포기 가능` 발언…
한.미, 회의적 시각속 "진의 파악부터"
동북 아시아의 안보를 위협해 온 북한 미사일 문제에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것인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 방문 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조건부 미사일 개발 포기 가능’ 발언을 소개하면서 북한 미사일 문제 해결에 대한 새로운 움직임이 일고 있다.


▲ 작년 9월 5일 북한의 중앙방송에 방영되었던 대포동 1호 미사일의 모습. 98년 8월 31일 시험 발사되었다.
또,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문제에 대해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 러시아가 중국, 북한과 연대해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위체제(NMD) 추진을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어 이에 대한 논쟁이 가열될 전망이다.

지난 98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로 야기된 북한 미사일 문제는 미국이 NMD를 추진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면에서 단순한 지역차원의 문제를 넘어선지 오래다. 이 문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북한을 방문, 김정일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가진 후 이른바 ‘조건부 미사일 개발 포기 가능’ 발언을 소개했다.

현재까지도 그 진의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푸틴 대통령이 소개한 김 위원장의 발언은 다음과 같이 요약되고 있다.

“우리(북한)는 외국에서 우주탐사를 위한 인공위성 발사체나 기술을 제공한다면 그것만을 이용할 준비가 돼 있다. 우리가 다른 나라들로부터 그런 지원을 받는다면 미사일 실험을 중단할 의사를 갖고 있다.”

●미 "북한 영토에서 로켓 발사는 절대 불가"

푸틴 대통령과 함께 오키나와 서방 선진 8개국 회의(G8)에 참석한 이고르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를 더 구체화시켰다. “북한측은 위성을 독자적으로 발사하기 위해 미사일 또는 미사일기술을 획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이 북한 위성을 발사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지원이 어떻게 돼야 할지 구체적인 문제를 논의하기에는 시기가 이르다.”


▲ 지난 6월 20일 미 국방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크 갠슬러 국방차관이 NMD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G8회의에 참석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양자 회담을 갖고, 김 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하며, 이같은 방식의 북한 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설 것을 촉구했다.

북한과 미사일 협상을 하고 있는 미국의 반응은 일단 회의적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우선 북한 제안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우리나라 정부가 분석한 미국의 입장은, 우주개발을 위한 경우라도 국제사회가 북한에 로켓발사능력을 제공해 북한 영토내에서 로켓을 발사하는 것에 대해서 절대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 대변인이 “북한이 자체 미사일을 개발하지 않도록 하면서 우주발사를 충족시키도록 협력하는 방안을 함께 탐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것은 제3국시설을 활용해 북한이 우주개발을 하려 할 경우 돕겠다는 것이지, 북한에 시설과 기술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 국방부 대변인은 “우주발사 능력이 대륙간 탄도미사일 (ICBM) 개발 능력으로 이어지므로, 다른 나라들이 이러한 능력을 개발하지 않도록 우주에 도달할 수 있는 방안을 지지하고 있다”고 발언, 분명한 선을 그었다.

한미 양국은, 푸틴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김 위원장 발언을 소개한 것과는 달리, 러시아와 북한의 공동선언에는 이 내용이 전혀 포함돼 있지 않은데 주목하고 있다.

북한은 오히려 러촵북 공동선언에서 미사일을 개발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우리의) 미사일 강령이 그 누구도 위협하지 않으며, 순수평화적 성격을 띤다는 것을 확언하였다”는 조항은 북한이 평소 평화적 목적으로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는 내용을 다시 강조한 것이다.

북한이 지난 72년 미국과 소련이 맺은 탄도탄요격미사일 제한조약(ABM)에 대해 ‘전적인 지지’를 표명, 러시아의 입지를 강화시켜 준 것도 특기할 만하다. 또 국가미사일방위체제(NMD)와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배치를 검토중인 전역(戰域)미사일 방위체제(TMD)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러시아는 북한을 자신들이 추진하는 세계 미사일통제체제(GCS)를 지지하게 함으로써 북한 미사일 문제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김정일 위원장의 불분명한 발언을 적극 소개했다는 관측이 나올 수 있다.

GCS는 북한에 우주개발을 목적으로 한 로켓 발사체를 제공하더라도 철저하게 감시를 할 경우 군사목적으로 전용되는 것을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사일 개발은 발사체기술, 유도장치, 탄두와 관련된 기술이 필요하므로 이중에서 발사체기술만 제공해 우주개발용으로만 쓰게 하고 다른 분야는 철저히 통제하면, 위험성을 제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생각은 다르다. 미국은 우주발사 능력의 단초가 되는 발사체가 제공되면 바로 이것이 사정거리 5500㎞ 이상의 ICBM개발 능력으로 이어진다고 판단하고 있다. 북한이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는 조건으로, 외국의 로켓을 제공받는 것을 내건 것으로 볼 때 북한이 정말로 미사일을 포기할 의사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더 두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입장도 미국과 다르지 않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최근 북한이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미촵북 미사일 회담에서 북한이 미사일 수출을 중단하는 대가로, 30억달러를 요구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조건부 미사일 개발 포기’ 발언에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 러시아와 북한이 미국 NMD추진 명분을 약화시키기 위해 미사일 개발 포기 발언을 러시아 언론에 흘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조건부 미사일 포기 가능 시사로 향후 미사일 문제는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띄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미국이 NMD문제로 국제사회에서 여론이 좋지 않은 것을 파악, NMD에 반대해온 러시아와 연대해 미사일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새로운 카드를 제시했을 수도 있다는 분석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북한은 경제난을 겪고 있는 러시아가 자신들이 미사일을 포기하는 반대급부를 제공하지는 못하더라도 북한에 호의적인 여론을 국제사회에 확산시키고, 미국을 압박할 수 있다는 계산을 했을 수도 있다. 더욱이 러시아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북한의 입장을 적극 지지하고 나설 경우 문제는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이 오키나와 G8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가진 양자회담에서 북한 미사일 문제에 대해 강도높게 거론한 사실은 이같은 러시아의 분명한 입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외국 지원 받기 위한 새 카드 아니냐"

또 북한의 ‘조건부 미사일 개발 포기’ 발언을 지난 90년대 초 북한이 핵 개발을 하겠다며 국제사회를 위협한 후, 경수로 지원을 얻어낸 것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98년 발사된 대포동 미사일을 인공위성 발사라고 주장해온 북한이,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우주개발 명목으로 외국의 지원을 받기 위해 새로운 카드를 제시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지루하게 진행된 미촵북 미사일 회담은 지난해 베를린 회담을 통해 미북간의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한다는 미사일 모라토리움이 최대의 성과일 뿐이다. 북한은 미사일의 개발이나 실험은 주권 사항에 속하는 것으로 수출 문제에만 국한하여 협상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은 수출 뿐만 아니라 생산, 개발, 실험도 모두 포괄해서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도 쉽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양측 모두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어 새로운 국면이 조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이 대외 관계를 개선하고 경제지원을 획득하는 지렛대로 삼아온 미사일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미북 외무장관 회담과, 향후 진행될 미사일 회담에서 북한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면밀하게 분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간조선 200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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