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6자회담의 빠른 성사를 위해 책임을 지고 성의를 보여라


이른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2차 6자회담의 연내 개최가 각국의 각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물 건너갈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간의 커다란 입장 차를 절충하기 위해 막후 교섭을 벌이던 각 나라들마저 하나 둘 손들었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을 제외하더라도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자회담 참가국은 물론, 이탈리아와 아일랜드, EU집행위 등 이른바 EU(유럽연합) `트로이카` 대표단도 발벗고 나섰지만 그 재개가 무망해진 형국이다. 특히 한국과 중국이 연내 개최에 강한 집착을 보이면서 동분서주하고 있으나 객관적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유는 간명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미국측의 무성의와 무의지가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판을 깨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돌이켜 보면 지난 8월말 베이징 1차 6자회담의 교훈은 앞으로 2차 6자회담이 재개된다면, 이는 미국측이 `새롭거나 진전된 안`을 가져와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당시 북한측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 포기의사 대 북한의 핵계획 포기의사`와 `핵문제 해결을 위한 동시행동 원칙` 합의 등 두 가지 새로운 제안을 했으나 미국측은 아무런 대안없이 종래의 입장만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 한.중.일.러는 후속회담의 성사를 위해서는 미국측이 `새롭거나 진전된 안`을 가져올 것을 공개.비공개적으로 공감했으며 또 최근까지 그러한 방향으로 진행돼 왔다. 즉, 부시 미 대통령의 `다자틀내 대북 서면 안전보장안`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이 커졌고 참가국들은 종횡으로 그 성사를 위해 바삐 움직였다. 그러다가 특히 이번 달 4-6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일 3국 비공식 정책협의회에서 `공동성명 문안` 초안이 작성되자 북미간의 기류가 확 바뀌었다. 공동성명 문안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도록` 하는 북핵폐기 3원칙을 토대로 하고, 대신 대북 안전보장을 하되 이는 북한이 요구해온 `동시행동(simultaneous steps)`이 아닌 `조화된 조치(coordinated steps)`로 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북한측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2차 6자회담 성사와 관련한 북한의 입장은 지난 9일 외무성 대변인의 발언에서 명확히 나타나 있다. 북한은 "미국이 우리의 일괄타결안을 한번에 다 받아들일 수 없다면 최소한 다음 번 6자회담에서 `말 대 말`(핵포기 선언과 대북 안전보장 약속)의 공약과 함께 첫 단계의 행동조치라도 합의하자는 것이다." 그 첫 단계 행동조치란 북측이 핵활동을 동결하는 대신 미국측은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 정치.경제.군사적 제재와 봉쇄 철회, 그리고 미국과 주변나라들에 의한 중유, 전력 등 에너지 지원과 같은 대응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북한이 핵을 `동결`이 아닌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폐기`해야 하고, 핵폐기라고 하더라도 이를 조건으로 한 경제지원이나 보상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전제조건 없이 회담에 참가하라는 것이다. 미국측의 이러한 입장은 지난 1차 6자회담에서 무대안과 무응답으로 일관한 것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은 것이다. 이에 따라 그간 회담 성사를 위해 특히 각고의 노력을 해 온 중국과 한국에서조차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미국이 2차 6자회담의 성사 조건인 `새롭거나 진전된 안`을 준비하지 않고서 얼마나 대책없이 나오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2차 회담 개최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완고하고 대책없는 입장에 대해 여러 경로를 통해 상당한 `불만`을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심지어 중국은 "미국이 과연 6자회담을 통해 핵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 뜻을 정말 갖고 있는지 회의를 품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더 나아가 한때 중국은 한.미.일 3국이 합의한 `동시행동` 대신 `조화된 조치`라는 용어가 들어간 `공동성명 문안`을 전달받은 뒤, "이 정도의 문안내용으로는 6자회담의 합의 도달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만큼 북한과 협의할 의향이 없다"는 입장을 3국에 다시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명 회담에는 `시기`가 있다. 북핵문제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어서 있는 당사자인 한국측과 북핵문제 해결의 조정자임을 내세운 중국측이 2차 6자회담의 연내 개최에 강한 집착을 보인 것도, 지난 8월 1차회담 이후 후속인 2차회담이 해를 넘길 경우 `시기`를 놓쳐 자칫 회담의 모멘텀이 끊기지 않을까 우려해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다소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래도 성사될 뻔했던 6자회담의 연내 재개가 물 건너가게 된 것은 누가 봐도 지난 1차회담의 입장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순전히 미국측 탓이다. 미국이 `지원 및 보상 불가`를 내세워 북한의 `동시행동` 원칙을 `조화된 조치`로 바꿔 거부한다면 `다자틀내 대북 서면 안전보장안`은 북한이 아닌 남한이나 중국, 러시아에 의해 먼저 거부될 것이다. 미국은 2차 6자회담의 연내 개최 무산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빠른 성사를 위해 성의있게 나올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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