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30일 인도 칸들라 항구. 인도 세관은 북한 화물선 구월산호를 억류했다. 구월산호는 마침 태국의 방콕에서 싣고 온 설탕을 하역한 뒤 막 출항하려던 참이었다. 곧이어 구월산호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되면서 선상은 난장판으로 변했다. 무장한 인도 경찰 및 국방연구개발기구(DRDO) 합동 조사팀과 격렬히 저항하는 북한 선원들간에 몸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인도 당국이 구월산호에서 적발한 물건은 미사일 부품과 관련 장비들. 로켓의 모터 케이스와 미사일의 원추형 머리부분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기계, 미사일 항로수정 장치 등 177톤이었다.

인도 당국이 구월산호를 의심한 것은 북한과 파키스탄간의 미사일 커넥션 의혹 때문이었다. 인도는 적대국인 파키스탄에 미사일 제조기술을 이전해 준 국가로 중국과 북한을 지목하고 있었다.

구월산호의 최종 행선지가 어디였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파키스탄이 아니라 리비아였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구월산호 사건은 북한의 대외 미사일 커넥션 의혹을 확증했다는 점에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북한의 대외 무기거래 커넥션은 지난해 11월에도 한차례 수면위로 떠오른 바 있다. 파키스탄 주재 북한 대사관 경제참사관이자 비밀무기 판매 책임자인 윤강태의 부인 김신애가 살해된 사건이다. 김신애는 무기거래 정보를 서방에 제공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북한 요원들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구월산호 사건은 지난 10년간 진행돼 온 북한의 대외 미사일 커넥션의 일각을 드러낸데 불과하다. 다소 극적으로 표현하자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이 ‘제3세계 미사일은 북한으로 통한다’는 말이 성립할 정도다

미국과학자연합(FAS)과 국방·국제안보연구센터(CDISS), 중동군사력균형(MEMS) 등의 연구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10년간 최소한 6개국에 400기의 ‘스커드’미사일과 미사일 기술을 수출해 현금만 10억달러를 벌어 들였다. 물물교환 형식으로 받은 석유와 기타 물품을 포함하면 액수는 더 늘어난다. 이 금액은 미사일 강국 중 하나인 중국의 미사일 판매수입을 능가하는 것이다. 미사일이 북한 경제에 효자노릇을 해 온 셈이다. 미 상원의 태드 코크란 의원(공화·미시시피주)도 97년 10월 의회청문회에서 “미사일은 본질적으로 북한의 유일한 수입원(Missiles are essentially North Korea`s only cash crop)”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이 최근 북한 미사일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북한 미사일의 직접적인 위협도 위협이지만 제3국 수출이 미국의 미사일 비확산 정책에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북한의 미사일 수출 대상국을 보면 자명해진다.

북한 미사일의 직수출 대상은 주요 고객인 이란과 시리아를 비롯한 파키스탄, 이라크, 이집트, 아르헨티나 등이다. 미국이 자신의 세계정책에 가장 골칫거리로 규정하고 있는 이란, 시리아, 이라크 등 ‘불량배 국가(rouge state)’가 고스란히 포함돼 있는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과 관련 기술을 수출하는 이유는 단순히 외화벌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체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에 수입국들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북한은 미사일 수출과 기술이전의 대가로 상대국을 미사일 성능 시험장으로 이용해 왔다. 한반도와 동북아 상황을 고려하고 미국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이라크, 시리아 등에서 자체 미사일을 시험발사해 온 것이다. 대부분 부품형태로 가져가 현지에서 조립한 후 발사하는 형태였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북한이 상당한 규모의 미사일을 실전배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북한내에서 발사실험을 행한 경우가 많지 않았던 이유는 자명해진다.

미국내 일부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이 시험발사를 충분히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동미사일의 실전배치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과거 미국과 구소련이 통상 10여차례 이상의 시험발사를 통해 확실한 성능 검증을 거친 후 실전배치한 전례에 비추어 북한을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제3국에서 실험발사를 행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같은 입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은 대외수출과 협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이 미사일 개발에 첫발을 들여 놓은 것은 60년대 말~70년대 초 중국의 ‘DF-61’미사일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부터. DF는 ‘DONG FENG(東風)’의 영문 이니셜을 딴 것으로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구소련제 스커드 미사일이 그 원형이다. 북한은 DF-61 미사일을 역조립하는 과정을 거쳐 사정거리 300㎞의 ‘스커드B’미사일 기술을 습득했다. 84년 시험발사와 성능개량을 거친 뒤 2년이 채 안돼 양산에 들어갔으며 이중 상당량을 이란에 수출했다. 판매대금을 이용해 또다시 사정거리를 500㎞로 늘린 ‘스커드C’미사일 개발에 성공했다.

스커드C는 스커드B에 비해 몸체길이를 약 3㎙, 추진연료량도 25% 늘린 것이다. 스커드C 개발에는 이란의 도움이 컸다. 당시 이라크와 8년전쟁을 벌이고 있던 이란은 자국으로 발사된 이라크의 구소련제 장거리 미사일의 파편을 북한에 제공했던 것이다.

북한은 8년전쟁 당시 이란과 이라크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쳐 미사일 수출선을 확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88년 초 테헤란을 비롯한 이란 주요 도시에 떨어진 200기 이상의 이라크 ‘알-후세인’미사일은 북한제 스커드C 기술을 원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미 정보기관의 분석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미사일 기술 개량을 위해 이란-이라크 전쟁을 자체 무기시험장으로 활용한 셈이다.

북한과 시리아간의 거래도 이미 82년 미중앙정보국(CIA)의 정보망에 노출된 적이 있다. 당시 북한은 CIA의 감시망을 따돌리기 위해 스커드 미사일이 적재된 화물선을 이란에 입항시킨 뒤 다시 육로를 통해 시리아로 운반했다.

최대 사정거리 1,300㎞, 탄두중량 1톤인 ‘노동’미사일도 긴밀한 대외 커넥션을 바탕으로 이뤄졌다는 게 미국과 러시아 전문학자들의 분석이다. 리비아와 이란, 시리아가 개발 후 완제품을 인도하는 조건으로 북한에 자금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노동 미사일은 최근 제3세계 국가가 가장 군침을 흘리고 있는 대상이다. 98년 봄 시험발사된 파키스탄의 ‘가우리’미사일과 같은 해 여름 발사에 성공한 이란의 ‘사하브-3’미사일은 노동 미사일을 본 따 만들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물론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제3세계의 요구수준을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구매국가의 클레임도 있었다. 이란은 한때 추진체의 결함을 이유로 수입했던 스커드C 미사일을 일부 반품하고 대금지불을 거부한 적이 있다. 미국 MIT대학의 데이비드 라이트 박사는 “노동 미사일의 탄착 오차한계는 사정거리가 1,000㎞일 경우 2~4㎞에 달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북한이 미사일의 정확성을 결정하는 관성항법장치 제조 기술에서 뒤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같은 점을 감안하면, 북한이 지난해 8월 발사한 ‘대포동’미사일은 마케팅 효과도 노리고 있다는 해외 전문가들의 분석은 경청할 만 하다. 당시 북한은 이 미사일이 군사용이 아닌 인공위성 발사용이었다고 주장해 미국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사실관계를 떠나 북한이 다단계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사실 자체로도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에 가입하지 않은 잠재적 구매국들의 귀를 솔깃하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주간한국 199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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