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발사체, 궤도진입 실패 불구 장거리 投射力 과시

우선 MTCR 체제 가입 … 300㎞ 미사일 개발부터
〃사정거리 연장 … 전략무기시스템 독자 구축〃 과제로

『위성인지 탄도미사일인지도 분간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입을 다물고 있는 편이 낫다.』(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성명)

지난 6일 평양방송을 통해 나온 조평통의 대남(對南) 독설은 우리 정부를 겨냥한 모욕을 넘어 한국 미사일 능력의 현 주소를 성찰케 하는, 그야말로 역설적인 일침(一針)이었다. 북한이 지난달 31일 로켓 추진물체를 발사한 이후 이른바 「미사일 주권」에 대한 관심과 그것의 회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온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미사일 발사능력이 북한의 10분의 1도 못되는 냉엄한 현실을 아프게 인식한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동안 이 발사체(「광명성」 1호)가 미사일이냐, 인공위성이냐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발사체의 성격이 아니라 북한이 남한은 물론 일본, 러시아 연해주, 중국 동부 및 대만 등지로 대량살상무기를 날려보낼 중·장거리 투사(投射) 능력을 과시했다는 데 있다. 제임스 루빈 미 국무부 대변인은 14일 뉴스 브리핑에서 북한의 발사체를 「지구궤도 진입에 실패한 소형 인공위성」으로 결론짓고 『북한은 이번 발사를 통해 보다 먼거리의 지상 목표물을 향하여 탄두를 운반할 수 있는 힘을 보여 주었다』며 「인공위성」 발사가 던지는 위협적 의미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북한은 한국보다 한발 뒤진 지난 70년대 말부터 구소련의 기술지원을 받아 미사일 개발에 나섰다. 86년 소련제 스커드-B의 사정거리를 3백20~3백40㎞로 늘린 개량형 스커드-B 양산체제에 들어섰고, 91년에는 사정거리 5백㎞에 이르는 스커드-C 미사일을 자체 개발했다. 나아가 93년에는 사정거리 1천~1천3백㎞의 「노동 1호」 발사에 성공함으로써 남한 전역을 커버할 수 있는 전략무기 체제를 갖추었다. 그리고 이번에 사정거리 1천5백㎞가 넘는 발사체를 쏘아올림으로써 이제 북한의 미사일 능력은 기존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단계에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예비 단계로 도약케 된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국제여론을 의식해 인공위성발사로 위장한 중거리 탄도미사일 혹은 ICBM 발사실험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까지 제기됐다.

반면 우리는 북한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 미사일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군이 보유한 지대지(地對地) 미사일은 80년대 말 독자 개발한 「현무」와, 올 들어 미국에서 도입 중인 「ATACMS」 정도다. 이들의 사정거리는 각각 1백80㎞와 1백40㎞로, 지난 79년 미국과 「양해각서」를 교환, 사정거리 1백80㎞(탑재중량 5백㎏)가 넘는 미사일의 개발을 포기한 데 따른 결과인 것이다. 더구나 이 각서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가 허용한 3백㎞ 이내의 미사일 개발까지도 사실상 규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노동」 「대포동」으로 이어진 미사일 체계를 구축한 한편 중국은 ICBM을 실전배치했고, 일본은 사정거리 1만5천㎞에 달하는 미사일 개발능력을 확보키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한-미 미사일각서는, 동북아 지역에서의 군비증강 억제라는 미국 의도와는 달리 한국에만 「족쇄」를 채운 채 주변국가간에 미사일 경쟁을 불붙인 셈이 됐다.

북한을 위시한 동북아 제국의 이같은 움직임은 우리가 더이상 미국의 미사일 우산에 모든 것을 의지할 수 없는 객관적 상황이 되고 있을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는 적어도 MTCR 허용범위의 미사일을 개발하지 않을 수 없다는 명분을 우리측에 제공하고 있다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와 관련, 지난 80년대 후반 「현무사업」과 함께 추진되다가 미국의 입김으로 중단됐던 「천룡사업」(사정거리 4백㎞짜리 미사일 개발)을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일고 있다. 김태우(金泰宇)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심지어 「한-미 미사일 양해각서」 완전 폐기와 사정거리 1천㎞짜리 미사일 개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정부 또한 미사일각서의 개정을 조속히 관철시켜 우리의 미사일 사정거리를 3백㎞까지로 늘리고, 사정거리 3백㎞ 이상의 중·장거리 미사일에 대한 기술연구도 착수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방침이다. 지난 11일 워싱턴 한-미 외무장관 회담에서 이루어진 「한국의 미사일 개발범위 확대」에 관한 원칙적 합의는, 이러한 우리 정부의 방침과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미 행정부의 현실인식이 낳은 타협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홍순영(洪淳瑛) 외교통상부 장관은 한국의 미사일 개발범위를 3백㎞로 연장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도 3백㎞ 이상의 미사일은 개발하지 않는다는 투명성이 보장된다는 전제하에서 이에 원칙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사일 개발의 실적으로는 우리가 북한에게 10년 남짓 뒤져 있지만 미사일 개발기술 자체로는 우리도 상당한 수준에 있다고 한다. 다만 여러가지 「변수」로 해서 그 기술을 실제로 활용하는 데 제약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지금 우리는 MTCR에 가입, 미사일 능력을 제한적으로 강화해나갈 것인지, 아니면 「미사일 주권」을 완전히 되찾아 장기적인 안목에서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과 인공위성 발사 등 우주개발을 추진할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자유신문 제 241호 1998.9.12)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