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은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
- 김현희 KAL858기 실종사건 16주기에 부쳐


1. 국정원은 자기의 입장을 뒤집고 진상은폐에 매달리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 11. 3. 김현희에 의한 KAL858기 폭파사건에 대한 천주교 사제 115인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선언이 발표되자, “수사발표에서 역사와 국민 앞에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고 대책위나 가족 측에서 제기한 의혹부분에 대해 성의껏 해명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해명은 하지 않은 채 지난 11. 22. 당시 수사에 관계했던 국정원 직원들이 이 사건을 소재로 사건의 조작가능성을 제기하는 소설 ‘배후’의 저자와 출판사에 대해 명예훼손을 이유로 형사 고소와 아울러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다.

국정원은 스스로 해명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가 아무런 해명은 없이 형사고소 등의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진상규명 노력을 하는 관계자들을 협박하려는 것이다.

국정원은 ‘수지킴 사건’이란 뼈아픈 경험으로부터도 여전히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의 합리적 의혹 제기에 대하여 함께 검토하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결론을 얻어내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국민을 협박하고, 진상을 은폐하려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은 1998. 10. 14. 스스로 이 사건이 조작되었다며 의혹을 제기하고 재조사 의지를 천명한바 있다. 더욱이 수사 결과에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다는 국정원의 강변은 자가당착임이 드러났다. 국정원 스스로 이미 2001. 12.에 수사발표 상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자인한 바 있고, 최근 또 다시 초동수사가 미진했으며, 또 김현희의 진술에만 의존하고 사실확인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국정원은 제기되어 있는 수많은 의혹에 대한 답변을 여전히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한 국정원 관계자는 ‘조작이라고 해도 법률상 재조사가 가능하다면 어디 해 보라’는 식의 망발마저 서슴지 않았다. 한 마디로 무언가 구린 구석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은폐에 매달리는 추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은 또 한 번 국민들로부터 버림을 받는 상황을 자초하고 있다. 이제라도 실종자 가족들의 아픔에 눈을 돌리고, 국민들이 품고 있는 의혹에 대해 성실하게 해명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소설 ‘배후’의 저자와 출판사에 대한 민형사상 조치를 철회하여야 하며, 관련 자료를 공개하고 공개적인 토론과 검증을 거쳐 진상규명이 완벽히 이루어지도록 철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 국정원은 천주교 사제들이 진상규명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압력을 가하고 뒷조사를 한 데 대하여 사과하여야 한다. 심지어 어느 국정원 관계자는 천주교 사제가 “북한과 연계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며, 전국 순회강연을 중단할 것을 종용하는 망발을 서슴지 않았다. 


2. 국정원은 스스로 자인한 수사결과의 문제점들에 대하여 해명하여야 한다

국정원은 최근 스스로 기존의 수사결과에 문제가 있고, 일부 의혹이 사실임을 인정하는 태도를 취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국정원은 조작 의혹을 일축하고 있지만, 여전히 해명되지 않는 많은 문제가 있다. 국정원은 마땅히 그에 대하여 국민 앞에 해명하여야 할 것이다.

(1) 결국 국정원은 김현희가 가짜임을 인정하였다.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이 유일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진 상의 인물과 김현희가 서로 다른 인물이라는 점은 귀 모양이 다르다는 점 때문에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입증된 상태이며, 북한에 실존하고 있는 인물임이 밝혀졌다. 그러자 답변이 궁색해진 국정원 관계자는 이제 와서 김현희가 지적했던 사진 속의 인물이 자신이 아니고 다른 인물이 자신이라고 하였으며, 수사관계자는 김현희의 진술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고 발뺌을 하고 있다. 김현희가 도대체 사진 속의 인물이 자신인지 아닌지도 구별을 하지 못하였다는 주장도 기가 막히거니와, 그런 엉터리 해명을 믿으라고 국민들 앞에 내놓는 강심장에 놀라게 될 뿐이다.

(2) 국정원은 김현희의 아버지 김원석이 당시 앙골라 주재 북한무역대표부 수산대표라고 발표하였다가 이제 와서 당시 앙골라와는 외교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확인하지 못한 사실이라고 발뺌하였다. 그렇다면 김원석이 외교관계가 없는 적성국가인 쿠바에서 63-67년 사이에 근무하였다는 사실은 어떻게 확인하였다는 것인가. 또 일본의 언론들은 당시 이미 국정원의 발표가 잘못된 것임을 확인하였고 가족들은 계속하여 의혹을 제기하였는데, 16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왜 그 사실을 숨겨 왔는지 그 배경이 궁금하다. 

(3) 국정원은 김현희가 북한에서 사용하지 않은 용어를 사용하였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해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국정원은 이와 관련하여 김현희가 쓴 자필맹세문의 용어 중 남한식 표기가 있었다는 지적을 받자 슬쩍 북한식 표기로 조작한 사실에 대해 추궁하자 중앙일보에 가서 물어보라는 망발을 서슴지 않았다.

(4) 김현희가 수첩에 암호로 된 북한공작원과 연락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기재해 두었다고 발표했으나 그 중 2가지는 유치원과 회사 전화번호로 밝혀진 바 있는데, 국정원 관계자는 이 사실을 인정하였다. 그렇다면 김현희는 왜 무의미한 전화번호를 마치 북한과의 연락전화번호인 것처럼 암호로 적어두었다는 것일까. 국정원은 이 점에 대해 해명하여야 한다.

(5) 국정원은 김현희가 오스트리아 빈의 남역에 도착하지 않고 서역에 도착한 점, 암파크링 호텔 603호가 아니라 322호에 묵은 점, 유고 베오그라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811호가 아니라 806호에 묵었다는 사실을 일본인 저널리스트가 밝혀내자 그에 대해 김현희가 기억 상 착오를 일으켰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밖에도 김현희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는 있지도 않은 사자다리, 부다페스트 광장을 관광했다고 주장하였는바, 이것도 해명해야 한다.

(6) 김현희가 유고 베오그라드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에 만난 암청색 유니폼을 입은 동양인 남자 3명에 대해서는 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는가. 그들은 누구인가. 국정원 관계자는 그에 대하여는 김현희가 잘 알고 있다고 하였는데, 김현희의 대답이 어떤 것인지 국민들 앞에 소상히 밝혀야 한다.

(7) 폭발물과 관련한 수많은 의혹도 한 가지도 시원하게 해명되지 않고 있다. 어떻게 삼엄한 바그다드 공항의 검문검색을 통과하여 폭발물을 비행기까지 반입할 수 있었는지, C-4 350g, PLX 700cc 정도의 양으로는 순식간에 비행기를 파괴할 수 없다는 점이 밝혀졌으며, 잔해 분석결과 C-4와 PLX 폭파흔적은 발견하지 못하고, 거꾸로 김승일의 허리띠에서 TNT흔적이 발견된 이상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8) 초기에 엉터리로 밝혀진 미얀마 산악지역 일대를 추락지점으로 지목하고 요란스럽게 수색작업을 한다며 수선을 떨다가 해상지역으로 추락지점을 수정한 점, 블랙박스수색을 하지 않은 점, 11일만에 정부조사단이 사실상 수색을 포기하고 조기 철수한 점, 부유물이 막 발견되기 시작했을 때 철수한 점, 잔해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를 식인상어나 물살의 빠르기 등 비과학적인 이유를 대며 가족들의 수색요구를 묵살한 점 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9) 정부가 가족들의 의사를 완전히 무시하고 권리를 탄압하며 일방적으로 사고 뒤처리를 진행시키고, 가족들을 반공궐기대회에 동원하고, 김현희를 대선 하루 전에 압송하여 대대적으로 보도하게 만드는 등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에만 골몰하였던 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0) 김현희가 체포될 당시 음독하였다는 사실은 조작으로 드러났다. 담당의사가 기자회견에서 김현희에게는 음독후유증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으며, 의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불명상태를 위장하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11) 김현희는 아부다비에서 내린 뒤 굳이 출입국이 어려운 바레인으로 갈 이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레인으로 간 점, 바레인에 가게 된 이유를 설명한 대목도 전혀 엉터리인 점, 바레인에 갔더라도 로마나 빈 등 다른 곳으로 운항하는 비행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다른 곳으로 출국하지 않고, 관광을 하고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닌 점, 자신을 한국과 일본 당국이 쫒고 있음을 알면서도 즉각 탈출하지 않고 495점에 이르는 증거를 그대로 보유하는 등 정예공작원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행동을 한 점에 대하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12) 김현희가 음독하고 의식불명상태에 있을 때 김현희의 유럽행적들이 신문에 보도되었고, 당시의 보도는 나중에 발표된 수사결과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이것은 이미 작성된 시나리오에 근거해서 김현희의 행적이 연출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3. 국정원은 이제라도 헛된 은폐공작을 그만두고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

국정원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일하는 국민의 기관이지, 지난날 독재정권 하에서처럼 독재정권의 안위를 위해 일하는 사유물이 아니다. 국정원은 정권의 하수인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의 기관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지금 KAL858기 폭파사건에 대한 국정원의 수사발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의혹에 싸인 엉터리이며, 김현희는 한 편의 조작된 범행사기극에 동원된 가련한 연기자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지울 수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과거 어두웠던 시절, 독재정권의 주구가 되어 꾸며낸 각종 공작들의 비밀을 과감히 공개하고 국민들에게 사죄를 구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명백히 조작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 과감히 그 진상을 스스로 밝히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끝까지 은폐에 매달리다 결국 진상규명된 이후에야 시인하는 전철을 다시 밟지 말아야 한다.

또한 국정원은 스스로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과감하게 털어버리는 용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2003. 11. 29.

김현희 KAL858기 실종사건 진상규명 시민사회대책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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