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 모여주신
우리 KAL 858사건 실종자 가족분들, 그리고 여러 선생님들!
바쁜 시간에도 이렇게 함께 모여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오늘은 우리 남편, 아들딸, 형제자매들이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 돌아오지 않은지 16년이 되는 날입니다.
해마다 오늘이면 우리 가족들은 무덤조차 없는 남편,
혹시라도 어느 하늘아래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한가닥 소망을 접지 않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 모여 왔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모여 슬픔과 분노를 함께 삭이기도 하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남편에 대한 도리를 절대 잊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기도 하면서 또다시 1년을 살아갈 절규를 확인하여 왔습니다.

차라리 잊을 수 있었으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채 사라져버린
남편의 애절한 눈빛을 떠올리지 않은채, 잠들 수 있는 날이
단 하루라도 있었다면
우리 가족들은 진작에 뿔뿔이 흩어져 이 자리에 모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가는 세월 탓하며 편안한 삶의 방식에 정착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 남편은 늘 제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자신이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억울하게 구천을 떠돌아야 하는 이유를 세상에 알려달라고!
거짓과 허구에 찬 당시 정부의 발표가 아니라
진실이 무엇이었는지를 세상에 알려달라고!

KAL858 사건의 진실은 저도 잘 모릅니다.
제 남편은 죽은 것인지, 살아있는 것인지
그 사건은 우연한 사고였는지 아니면 치밀한 조작사건이었는지...
그러나 다만 확실한 것은 당시 정부와 안기부의 발표는 거짓투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엄청난 거짓을 만든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가족들이 절규하는 너무나 명백한 이유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KAL858 사건의 결정적 증거가 없다고 난색을 표합니다만
그러나 조작증거가 명확한 이상 진실은 밝혀질 수밖에 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엄청난 사건을 만든 사람들은 이 순간에도
우리 가족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며
설마 힘없는 가족들이 무엇을 어쩌랴 하고 있겠지요.

그러나 지난 16년 고난의 세월 함께 살아오신 가족 여러분!
그리고 우리 가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신 전국의 신부님, 민변의 변호사님, 그리고 각 단체의 선생님들!
저희는 이제 큰 침묵의 바다를 건넜습니다.
지난 16년동안 우리 가족들이 그 긴 외로운 투쟁을 처연하게 전개하며
여기까지 이르게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들은 외롭지 않습니다.
진상규명의 길까지 아직 가야할 길은 참으로 멀지만
이렇게 언론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우리의 절규에 뒤돌아보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는 사실만으로
저희는 큰 침묵의 바다를 건너왔다고 확신합니다.

우리 자식들이 더 길고 건강하게 살아야할 이 세상은
상식이 상식대로 빛나는 사회여야 합니다.
명백한 가짜가 마치 진실인양 판을 치는 세상을 그대로 두고
저희가 어떻게 구천에서 남편의 얼굴을 바로 볼 수 있겠습니까.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
꼭 잡은 손 놓지 말고
너무나도 평범한 이 진실이
세상에 명백하게 떠오를 수 있도록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저 역시 힘을 내겠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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