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에서 죽음 자체가 슬픈 일이다. 거기다가 이유 모를 죽음을 당했다면. 죽은자는 말이 없다고 치자, 그 가족들의 심정은 어떨까? 더 나아가 그 죽음이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데다 사인(死因)마저 바뀐다면...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의문사의 나라에 살고 있고 오죽하면 정부 차원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까지 있겠는가. 꼭 어느 경우인지 알 수는 없지만 29일로 현대사의 비극이자 미스테리인 KAL858기 사건 16주기를 맞는다.

◆ 지난 198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115명의 승객을 태운 KAL858기가 미얀마 상공에서 실종됐다. 당시 안기부(국정원 전신)는 이 실종사건이 `북한공작원 김현희와 김승일(사망)이 공중에서 폭파시킨 테러사건`이라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가족들은 유해나 유품 한 점 찾지 못했고 안기부 발표에 숱한 거짓말이 있다면서 끈질기게 의혹을 제기해 왔다. 이들의 의혹 제기는 `김현희가 진짜 북한 공작원인가`, `주범 김승일의 행적(평양에서부터 KAL기 폭파시점까지)` 등 자그마치 서른 가지가 넘는다.

◆ 과거 국정원은 나는 새도 떨어뜨리고, 남자(여자)를 여자(남자)로 바꾸는 것만 빼고 뭐든지 다 한다고 세간에 회자될 정도로 권부(權府)중에 권부였다. `수지김 사건`에서 보듯 안기부에 의해 `조작된 대공사건`도 있었다. 국정원은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는 법이다. 특히 KAL858기 사건은 당시 대선에서 대북 안보심리를 불러와 여권에 결정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쳤고 또 이 사건으로 인해 북한은 미국에 의해 1988년부터 지금까지 16년째 테러지원국이란 딱지를 받아 온갖 규제를 받고 있다.

◆ 최근 KAL858기 가족회와 진상규명 대책위의 지속적인 의혹제기와 특히 천주교 신부 115인 선언 기자회견 이후 이 사건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방송에서는 MBC `PD수첩`과  KBS `일요스페셜`, SBS `그것이 일고싶다`도 다뤘거나 다룰 예정이며, 소설 `배후`(창해)와 르뽀 `김현희는 가짜다`(두리미디어)가 출간됐다. 이에 국정원은 처음에는 `언제든지 의혹 부분에 대해 입장을 밝힐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가, 급기야 국정원 직원 5명(당시 안기부 조사관)이 소설 `배후`의 작가와 출판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 물론 "폭파는 안기부 공작원의 소행"이라는 소설 내용에 국정원 직원들이 발끈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은 국정원의 명예훼손이 아니라 가족들의 의혹제기이다. 국정원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답해줄 필요가 있다. 따라서 당시 국정원 관계자는 가족들의 의혹제기에 대결적으로 맞서지 말고 성실하게 답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공판이 진행된다면 당시 수사.공판기록이 공개됨은 물론 유일한 생존자인 김현희씨도 증인으로 나와 진실이 규명되어야 한다. 이것이 국정원의 위신을 되찾고 죽은이의 혼을 달래고 가족들의 원을 쓰다듬는 길이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