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민 기자(mhong@tongilnews.com)

`관점이 대상을 창조한다`. 프랑스 언어학의 거두 소쉬르의 말이다. 대상이 고정불변의 진리 안에 있다고 보는 것이나 대상이 변화의 끊임없는 유동성 속에 있다는 것이나 모두 보는 사람의 관점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굳이 심미적인 프랑스 철학전통에 대한 부연이 있지 않아도 쉽게 우리의 인식론을 자극하는 논쟁의 화두가 될만한 말이다.

이 말이 12일 국회 `통일.외교.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을 보며 떠오른 말이라면 왠 뚱딴지같은 말이냐고 취급받을까 싶다. 그러나 북한이 변화중이냐 변하지 않았느냐를 놓고 여야의원이 벌인 언어 설전을 놓고 문득 소쉬르가 이를 본다면 쓴 미소를 지으며 떠올렸을 법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이 진정으로 변화했는지 아니했는지에 대한 여야의원들의 진지한(?) 주장들이 이렇게 뜨겁게 오가는 것을 보니 언뜻 국민세금 낭비는 아닌 듯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는 여야간 무수한 애국의 열정(?)이 오가는 가운데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국민들이라고 안도감이라도 가져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논쟁이 살아있는 현실이 되기엔 역부족이였다. "김정일은 살아있는 최악의 폭군이며, 역사의 죄인"이라고 목놓아 외치는 야당 의원의 말씀이나, "이제 학교에서 국기게양식조차 폐지한다"고 애국적 국가관의 상실을 개탄하며 남북관계의 급진전이 "대한민국 소멸을 감수"하려는 시각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전직 대통령의 따님이신 야당 부총리의 말씀이나, 그 의미에선 과거를 추스려 현실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다분해 보였다.

학식과 고매한 인품의 우리 야당 의원들을 변화를 보지 못하는 장님으로 취급하는데 격분하지 않길 바란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을 `안보의 무력화`라고 보거나 "답방 전에 임동원 국정원장, 한완상 부총리, 박지원 전 문광부장관, 박재규 통일부장관 등"을 퇴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속에는 고매한 학식에 걸맞는 현실인식이 결여되어 있는 듯 보인다.

이들 논법을 역으로 보면 DJ의 평양방문은 북한에게 심각한 안보 무력화가 아닐 수 없다. 체제 역량에서 어느 누가 보아도 우월한 우리가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을 `안보 무력화`로 보는데 실소를 금치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게다가 특정 행정부 인물을 자칭 보수의 표적으로 몰아부치는 속에는 대북한 정책을 사소하게 인물화시키는 과거 군사정권의 권위주의적 정책 발상의 논리가 자리하고 있는 듯 하다.

북한의 목적이 무엇이든 변화는 평양 정상회담으로 하나의 출발점을 그었다. 대남혁명의 시퍼런 기세를 꺾었든 꺾지 않았든 20년이 넘은 낡은 노동당 규약의 비현실적인 `민족해방` 문구를 들먹이며 `주적 삭제`를 안보의 심각한 붕괴로 인식하는 자칭 보수의 언술 속에 국보법의 서슬 퍼런 칼날이 희생시킨 무고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북경협이나 남북교류에서는 전시 행정주의니 이벤트성이니 하면서 실사구시적인 접근을 주장하면서 `주적`의 문제에서는 완고한 명분에 사로잡혀 실사구시에는 눈이 어두워 보이는 것은 왜일까. 답방시 `과거사 문제`의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에도 과거를 추스려 현실의 논의를 무력화하자는 다분히 당리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남북관계 흠집내기의 거친 표현만이 난무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언론사 세무조사에 얽힌 권력관계가 이런 주장들의 팽팽한 시위에 힘을 주고 있는 것도 우리의 북한인식과 정책 마인드를 흐리게 하는 주범이다.

사실, 과거와 비교해 요즘처럼 남북관계에 있어 역사적 낙관이 점쳐지는 때도 드물 것이다. 역사적 낙관은 관점의 문제이다. 무엇을 역사적 낙관으로 볼 수 있고 비관으로 볼 수 있는가. 현실인식을 당리당략이나 관성화된 보수논법에 용해시킨 의도된 불변의 자세로 보는 것이 비관의 시각이라면, 낙관의 전망은 변화를 미래지향적으로 인식하는 국민들의 지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대상이 관점을 창조한다`는 소쉬르의 말은 지금껏 우리의 관점을 통해 어떻게 북한이 창조되어 왔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독일 통일의 밑거름이 됐던 모토가 `접근을 통한 변화`였다. 그러나 우리 야당 앞에서 이 말은 아마도 `당리를 위한 불변`의 모토로 바뀌어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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