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중선 (통일뉴스 논설위원)


이북 사람들과의 회합이나 통신은 물론 통일논의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곧 분단 극복을 차단하는 `분단유지법`이다. 현행 국가보안법이 존속하는 한 이북과의 어떤 형태의 대화나 교류라도 위법행위이고 처벌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은 그 동안 분단시대를 살아오면서 수많은 민주인사와 통일운동가들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벌되었던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 그 동안 국가보안법 철폐운동과 논의는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

먼저, 통일운동 과정에서 국가보안법 철폐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부터였다. 1980년대 중반, 6.29선언을 전후한 시기부터 통일운동은 활기를 띠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통일운동가들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체포·투옥되어야 했다. 이에 1980년대 말부터는 조직적 통일운동의 일환으로 국가보안법 철폐문제가 제기되었는데 1990년대 초에는 처음으로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범국민투쟁본부`가 꾸려졌다.

그 이후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은 각종 형태로 조직체의 결성과 집회, 시한부 농성, 단식 농성, 단식기도회, 청원서 제출 등의 방법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목숨을 건 노천단식 농성, 무기한 `감옥체험`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정치권에서도 국가보안법 철폐문제가 제기되었다. 즉 1991년 1월 여야가 국가보안법 개정을 위한 협상을 처음 시작했고, 당시 민주당은 국가보안법 철폐촉구 성명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또한 1992년 6월 당시 국민당 정주영 대표는 공산당 합법화 및 국가보안법 철폐를 선언했고, 1994년 7월 민주당 이기택 대표는 국회 정당대표 연설에서 국가보안법 개정을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에는 미국과 유엔에서도 `한국의 국가보안법`을 비판하고 철폐를 권고했었다. 1994년 3월 미 국무장관은 `한국의 국가보안법 철폐`가 미국의 공식입장이라고 확인하였고, 같은 해 8월에는 `한국의 국가보안법이 폐기 또는 개정되어야 한다`는 특별성명을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1996년에도 미 국무부가 발표한 인권보고서는 `한국의 국가보안법이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시민적 자유를 계속 침해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했으며, 1998년 1월에도 미 국무부는 `한국 국가보안법 인권침해 악용`을 비판했었다.

그리고 1996년 4월 유엔인권위원회는 `한국에서는 국가보안법이 자의적으로 적용돼 개인의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 한국정부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의사 표현의 자유권 행사를 이유로 수감된 모든 재소자를 무조건 석방할 것을 권고한다`고 발표하였다. 이어서 1999년 11월 유엔이사회는 `국가보안법의 단계적 폐지`를 한국정부에 권고하였다.

이와 같이 국가보안법은 냉전의 산물로서 곧 `분단유지법`이고, 표현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인권탄압법`이며, 민족화해와 통일 추진을 가로막는 `반통일법`으로 규정되었고, 국내외적으로 철폐압력을 받고 있다.

지금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존속함에도 불구하고 통일논의는 활기를 띠고 있고, 남북당국간의 대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여러 부문에서 남북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똑같은 방북행위도 통일운동가는 투옥되고 정부당국자는 법의 저촉을 받지 않는다.

이 같은 `현실 따로, 법 따로` 현상으로 말미암아 이미 국가보안법은 법 집행의 형평성을 잃고 있고, 법으로서의 권위도 떨어졌다. 국가보안법 철폐문제는 곧 통일문제이다. 지금 우리 민족구성원 모두는 민족화해와 통일을 촉진시키는 일에 머뭇거릴 아무런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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