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우(사진가)

간단히 이 글의 방법론을 밝힌다. 이 글은 크게 체계적 접근 방법으로 유엔사를 분석하였다.  체계적 방법론의 전개를 위해 유엔사의 역사와 구조와 기능에 대해 분석한다. 이때 역사는 체계의 발생, 발전 과정으로, 구조는 요소들간의 관계로, 기능은 다른 체계에 대해 미치는 영향력 즉, 능력이란 면에서 조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을 통해 유엔사의 위법성과 위험성을 드러내며 유엔사 해체의 문제에 대해 언급한다. - 필자 주


1. 주한유엔군사령부의 역사


1) 유엔사 탄생의 위법성

주한유엔사는 유엔창설이래 유엔안보리가 결의한 최초의 군사기구란 점에서 유엔군 즉, 국제연합군의 성격과 위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 영향은 안타깝게도 부정적인 것이었다. 탄생에서부터 위법성 논쟁에 휘말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국제연합군이라는 명칭은 국제연합 헌장상에는 없는 것이다. 굳이 해석을 한다면 유엔헌장제43조 `모든 유엔회원국은 안보리의 요청에 의하여 그리고, 하나 혹은 그 이상의 특별 협정에 따라 ...... 필요한 병력, 원조, 통과권을 포함한 편의를 안보리에 이용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에 의해 안보리의 지시를 받는 무장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제43조의 전제조건은 `특별협정`이다. 특별협정은 1946∼47년의 체결준비 단계에서 미·소(美蘇)의 대립으로 답보상태에 빠진 채 성립되지 않아 본래의 국제연합군은 설치되지 않고 있었다.  실제에 있어 특별협정에 의한 국제연합군의 구성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제연합군의 창설은 어느 것이나 총회 또는 안전보장이사회의 권고에 입각하여 조직되었다. (주1)

한국전쟁에 있어서의 국제연합군은 안보리의 권고에 따라 15개국의 군대와 국제연합 결의에 앞서 군사행동을 취한 미군으로 구성되었는데, 이것은 유엔헌장에 근거한 국제연합군이 아니라 이사회의 권고에 임의로 응한 가맹국의 강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걸프전 당시 미국이 보인 태도는 한국전 당시와는 모순된다. 미국은 걸프전에서의 군사행동이 한국전쟁의 그것과 정반대로 유엔차원의 행동이 아닌 자위권적 조치, 즉 임의행동임을 주장했다.

`유럽의 국제법 교수와 실무자들은 탈냉전적 상황에서 안보리상임이사국들의 입장이 일치된 가운데 이루어진 대 이라크 군사행동을 냉전시기 사문화되었던 제7장의 규정에 따른 군사적 강제조치의 최초의 적용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대다수의 미국교수들은 유엔헌장 제43조의 특별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제42조의 군사조치가 법적으로 발동이 불가능하므로 대 이라크 군사행동을 제42조의 군사조치로 해석하는 것은 모순이며, 또한 문제의 군사행동이 유엔의 여하한 통제도 받지 않고 이루어졌다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이는 유엔의 행위 즉, 강제조치라고 볼 수 없으며 문제의 군사행동의 법적 정당화는 이를 헌장51조에 의한 집단적 자위권행사로 볼 때에 가능함을 역설한다.` (주2)

걸프전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에서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군사행동이 안보리의 군사적 강제조치로 해석되기 위해서는 안보리의 군사적 제재 권한에 대한 유일한 법적 근거인 유엔헌장 제42조가 적용되어야 한다. 제42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전보장이사회는 제41조에 규정된 조치가 불충분한 것으로 인정되거나 또는 불충분한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 또는 회복에 필요한 공군, 해군 또는 육군에 의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한 조치는 유엔회원국의 공군, 해군 또는 육군에 의한 시위, 봉쇄 및 다른 작전을 포함할 수 있다.`

그러나 헌장 해석상 제42조는 독립적으로 적용된다고 볼 수 없다. 42조는 안보리에 병력을 제공하기 위하여 안보리와 회원국들간의 특별협정 체결을 규정하고 있는 제43조와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으며, 제43조에 의한 특별협정 체결은 제42조에 의한 군사적 강제조치 적용의 전제조건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주3)

이는 헌장 106조에 의해 재확인되고 있다. `안보리가 제42조상의 책임수행을 시작할 수 있다고 인정하는 제43조에 규정된 특별협정이 발효될 때까지... 유엔회원국과 협의한다`라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안보리의 요청에 따라 회원국들이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병력을 사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견해(주4)에 따라, 특별협정 체결 없이 회원국의 병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가정해도 거기엔 필요한 전제가 있다. 그 병력이 안보리 강제조치에 사용되었다고 하기 위해서는 안보리의 사용권아래(at the disposal) 놓여야 하는 것이다. 안보리의 사용권하에 놓인다는 것은 그 통제(control)하에 놓인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통합군대가 한국전에서 걸프전까지 안보리의 작전 통제를 받은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름은 국제연합군이라고 하지만, 미국정부가 임명한 사령관이 국제연합군을 지휘하였으며, 국제연합 기관의 직접적인 통제에 따르지도 않았던 것이다. 15개 참전국군대는 그 소속국에 의해 미국에게 제공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들의 행위는 국가책임에 관한 국제법위원회 초안 제1부 제9조의 `일국의 통제하에 놓여진 타국 또는 국제기구의 기관의 행위는 국제법상 그 국가의 행위로 간주된다` (주5)는 원칙에 의해 다루어짐이 마땅하다.

유엔군사령부와 국제연합과의 연관 관계는 그것이 이사회의 결의에 입각한 것이라는 사실 이외에는 전혀 없다. 흔히 유엔군사령부설립의 근거로 제시되는 1950년 7월7일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S/1588)제 3항을 살펴보자.

`3.전기 안전보장이사회의 권고에 의거하여 군대와 기타 원조를 제공하는 모든 가맹국은 이런 군대와 원조를 미국의 통합군사령부하에 제공할 것을 권고한다.`

여기선 분명 유엔군사령부(United Nations Commad)가 아닌 통합사령부(Unified Command)를 말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북의 입장을 보자.

`...결의안이 보여주는 것처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군>을 조직한 것이 아니라 다만 유엔성원국들이 <제공>하는 <무력>과 기타 <원조>를 미제가 통솔하는 련합사령부가 사용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여기에는 <유엔군>을 조직파견 한다거나 <유엔군사령부>를 설치한다는 표현조차도 없다.` (국제법사전, p.572, 사회과학출판사, 2002년)

또한 이 결의안은 `권고`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권고(recommend)는 요청(Request)보다 훨씬 약한 표현이다. 그리고 통합군사령부에 제공하는 군대와 원조의 내용은 전적으로 회원국들에게 일임되어 있다. 게다가 한국은 유엔 가맹국이 아니었으므로 7월7일 결의에 권고적 또는 법적 구속력을 받지 않았다. 안보리의 결의의 효력은 유엔헌장 제25조의 규정에 의해 가맹국에 대해서만 법적 구속력이 있다. 제25조의 안보리의 결정(decision)은 모든 결의(resolution)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헌장 규정에 의한 `결정`에 한한다고 해석된다. (주6)

한국은 유엔가맹국이 아니므로 이 결의는 명백히 가맹국 또는 미국에 권고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결의가 한국에 대해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주7)

더구나 절차상의 문제도 흔히 지적된다. 유엔헌장 제32조에 따르면

`안전보장이사회의 이사국이 아닌 유엔회원국 또는 유엔회원국이 아닌 어떠한 국가도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심의중인 분쟁의 당사자인 경우에는 이 분쟁에 관한 토의에 투표권 없이 참가하도록 초청된다.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회원국이 아닌 국가의 참가에 공정하다고 인정되는 조건을 정한다.`

당사자인 북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대만문제로 소련이 안보리에 불참하고 있던 기회를 틈타 기습적으로 결의안을 처리했다. 당사자인 북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초청되지도 않았다. 이는 유엔총회 제28차 회의 결의와 대비해 보면 더욱 명백하다. 1973년 10월1일 유엔총회 제28차 회의에서는 조선문제를 토의할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를 무조건 초청할 것을 결정하였다.` (현대 국제법연구, 과학백과사전 종합 출판사, 평양, 1989, p.158)

상황이 위에서 예시한 바와 같음에도 7월 25일 미국은 통합사령부(Unified Command)를 유엔군사령부(United Nation Command)란 이름으로 명칭을 바꾸어 설립한다는 성명을 발표한다. 이로서 7월7일의 결의는 갑자기 유엔군사령부 설립으로 둔갑되고 말았다. 이는 미국이 유엔의 결의를 일방적으로 왜곡한 과정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이다. 당시 미국이 주도하던 유엔의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유엔의 한국전쟁 개입에는 여러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첫째, 유엔이 한국전쟁에 개입한 것의 적법성에 대한 문제가 그것이다.

유엔의 1950년 6월 25일의 결의(S/1501)에 의해 유엔은 당시의 한반도 사태를 내란으로 본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이 결의에서 북을 `북한`(the North Korea) 또는 북한당국(the authorities of North Korea)이라 표기한 반면 남은 `대한민국`(the Republic of the Korea)이라고 표기함으로서 남을 합법정부로 인정함과 동시에 북을 독립된 국가로 인정치 않고 있기 때문이다. (주8)

이는 유엔 스스로도 한반도분쟁을 내란 사태로 파악하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내란에의 개입은 국제법적으로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Pereterki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침략은 일국가에 의한 타국가에 대한 무력적 공격이다...한국의 일부에 의한 한국의 타부에 대한 한국의 사태는 침략전쟁이 아닌 것이 명백하다. 우리들에게 그것은 내란이다...한국인민의 국가 통일과 독립을 위한 한국민의 숭고한 투쟁이다." (주9)

또한 1950년 8월3일 소련대표는 제482차 회의에서 한국의 투쟁은 내란이며 이에 대한 유엔의 개입은 위법이라고 역설하였다.

"...한국분쟁은 국내적 분쟁이다. 남북미국이 그들의 조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내란으로 투쟁할 때에 남북미국간에 침략의 개념이 적용될 수 없는 것과 같이 남북한간에도 침략에 관한 규칙이 적용될 수 없다." (주10)

이들 예를 따르지 않더라도 일반 국제법상 내란은 국제법의 지배 밖에 있는 국내문제(Domestic affairs)이며 이에 대한 개입은 위법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승인된다.  A.V.W.Thomas와 A.J.Thamas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란은 국제법의 지배 밖에 있는 국내문제라는 것은 일반 국제법에 의해 확립된 법칙이다." (주11)

1950년 유엔총회에서도 그리스 사태에 대하여 위와 같은 원칙을 확인하는 결의를 채택한바 있다.  "유엔총회는 ...어떤 국가가 위협이나 무력의 행사로 타국의 정부의 변경을 목적으로 타국의 대내문제에 간섭하는 것을 금지한다." (주12)

둘째, 유엔은 전쟁선언을 하지 않았다. 전쟁선포의 적법성문제는 1907년 `전쟁개시에 관한 조약`이 기준이 된다. 미 야전교범(FM27-10)도 헤이그 3협약의 효력이 있는 것으로 인용하고 있다. (주13)

국제군사재판소는 독일의 주요 전범자들에 대한 기소장에서 독일의 조약의무 위반의 사실의 하나로서 동조약 1조의 위반을 들고 있다. (주14)  따라서 유엔의 결의와 권고는 전쟁선포에 해당하는 법적 조문으로서의 조건을 결여하고 있다.
 
셋째, 유엔헌장에는 군사참모위원회가 유엔안보리의 재량에 맡겨진 병력의 전략적 지시에 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유엔사는 유엔도 아닌, 또한 유엔사령관인 맥아더도 아닌, 미국합참의 작전통제를 받았다. 7월7일의 결의를 다시 살펴보자.

`3. 전기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의하여 군대와 기타 원조를 제공하는 여사한 군대와 기타 원조를 미국 관할 통합사령부에 제공할 것을 권고하며
4. 미국이 동 군대의 사령관을 지명할 것을 요청하며
5. 본 통합 사령관은 그의 재량에 의하여 작전중에 재참전국의 국기와 함께 국제연합기를 사용할 것을 승인하며
6. 미국이 안보리에 대하여 통합사령부 지휘하에 취한 활동에 관하여 적절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요청한다.`
(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제 84호, 통합군사령부의 설치권고(1588호), 1950.7.7)
 
이 결의가 유엔헌장에 보장된 군사참모위원회의 기능을 어떻게 무력화 시켰는지를 살펴보자. 유엔헌장 제46조와 제47조를 인용한다.

`제46조 ; 병력사용계획은 군사참모위원회의 도움을 얻어 안전보장이사회가 작성한다.
제47조3항 ; 군사참모위원회는 안전보장이사회의 감독하에 안전보장이사회의 재량에 맡겨진 병력의 전략지시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그러한 병력의 지휘에 관한 문제는 추후에 해결한다.` 

여기서 전략지시(strategic direction)는 지휘(command)의 상위 개념으로 유엔안보리의 통수권을 전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주15) 
 
`지휘`는 군령과 군정을 통합하는 개념이며 전략지시는 일종의 통수의 개념이다. 즉, 군사적 영역을 넘어선 판단인 것이다. 예를 들어 전쟁의 목표를 방어위주에서 반격위주로 할지, 인민군에 대한 3.8선의 복구로 할지, 북측 지역의 점령으로 할 지에 대한 판단과 전략지시는 유엔안보리에서 판단하는 것이 이치에 맞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유엔헌장상의 군사참모위원회인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유엔안보리를 유린하고 유엔으로 가야할 모든 권한을 미국정부에 귀속시켰다. 유엔군사령관은 유엔안보리의 전략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미 합참의 지시를 받게 되었고, 맥아더는 실질적으로는 육군참모총장의 지시를 받았다. 누가 봐도 유엔군사령부가 아닌 미군사령부로 비치어진다. 이는 미 합참본부의 전사에서도 인정하는 바이다.

`미 합참이 유엔군사령부와 직접 의사소통을 갖게 될 안전보장이사회 소속의 위원회 설치를 반대한 것은 유엔이 전략과 전술에 관계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주16)

당시 미국으로서는 유엔에서 초유의 일인 유엔사 구성 문제를 놓고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한 치열한 음모를 진행했다. 미 합참의 전사기록은 그 정황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1950년 6월 마지막 주에 비공산권 국가로 구성된 군사동맹의 지도자로서, 미국은 침략행위에 대하여 정치적 제재 조치를 취하도록 헌장에 규정한 국제기구의 옹호하에 싸울 전쟁을 막 시작하려는 순간에 서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미국, 유엔 및 주한군사지휘부 간 3자 관계에서 많은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 전쟁의 목표는 어떻게 확정할 것인가? 누가 유엔사령관에게 전략지침을 제공할 것인가? 유엔군사령관은 유엔과 직접 의사소통을 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을 통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와 이와 유사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군사적 정치적 고려사항들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서로 뒤섞이었다.` (주17)

결국 이 모든 비정상적인 고려사항들은 유엔헌장의 원칙을 벗어나 미국이 이익에 충실하게 결정되었고, 미국에 의해 장악된 유엔안보리의 체제에서 유엔헌장이 보장한 군사참모위원회는 유명무실화되었다. 미국이 군사참모위원회를 통해 지휘한다는 것은 소련과 함께 한국전쟁을 지휘하는 것을 의미했기에 미국으로서는 원치 않는 사항이었다. 미, 소등 5대 강국의 유엔 대표들에 의해 이 위원회 소속 관계자들의 급료를 지불하고는 있지만, 군사참모위원회는 지금까지도 유명무실한 단체로 전락되어 있다.

`군사참모위원회는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미국, 소련, 중국, 영국, 프랑스의 고위 군참모들로 구성돼 있으며 발족 이후 한 달에 두 번 정도 약 20분간 지하 회의실에서 회동, 유엔 안보리가 자신들에게 아무런 일거리를 지시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확인한 채 폐회하곤 했다. 현행 유엔 헌장에 따르면 이 위원회는 안보리가 창설할 지도 모르는 다국적 군사기구에 대해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외교관들은 이 위원회의 회의 소집 포기는 유엔이 공동 군사행동을 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대한 종말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이 위원회의 회의개최를 선호해 왔었다. 이 위원회는 세계가 냉전체제에 들어감에 따라 창설된 지 얼마 안되어서부터 유명무실한 기구로 전락하게 되었으며 한국동란 때에는 유엔이 이 군사참모위원회를 활성화시키지 않고 유엔군사령부에 군지휘권을 부여했었다.` (주18)

또한, 통합군사령부의 설치권고(1588호) 6항에 의하면 유엔군사령부가 유엔안보리에 대해 가지는 유일한 의무인 보고마저 `정기적인 보고서`가 아닌 `적절한 보고서`로 되면서 사실상 보고 의무마저 미국이 임의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유엔군사령부를 지휘하는 책임단위로서의 유엔안보리의 권한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당시 맥아더 유엔군사령관도 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와 유엔과의 관계는 대체로 형식적이었다...나의 사령부와 내가 수행한 모든 것에 관한 전적인 통제는 나의 육군참모총장과 그 참모총장이 통제하는 나의 통신계통으로부터 나왔다. 내가 유엔에 보내기 위해 정상적으로 작성한 보고서까지도 국무성, 국방성에 의해 점검을 받아야만 했다. 어쨌든 나는 유엔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주19)

이런 이유로 유엔사가 과연 유엔의 보조기관, 행정기관으로서 제대로 된 자격을 갖추고 있었는가에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유엔사 탄생과정에서의 불합리성은 정전이후에도 한반도에서 불합리한 구조를 생산하는 원인이 된다. 그 중의 하나가 유엔군사령관 테일러(M.Taylor)가 미국과 마찰을 빚는 이승만 대통령의 제거를 염두에 두고 작성한 에버레디 계획(Plan Everready)이다.

`그것은 한국군이 유엔군의 작전권을 벗어날 경우 반항적인 지도자들을 제거하고, 그들에 대한 모든 지원을 중단하며, 필요할 경우 유엔군의 지휘하의 군사정부 수립도 검토한다는 내용이었다.` (주20)

이것은 유엔군이 애초 부여받은 임무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북을 격퇴하는 임무에서 남을 통제하는 임무까지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 뒤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합의되지만 미국으로서는 한국군의 북진을 막기 위해 한국군을 유엔군의 지휘권 아래 두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국은 조약에 대한 가조인이 있은 후 발표된 한미공동성명에서 `정치회담을 열기로 합의한 기간동안 한국이 무력에 의해 통일하려는 독자적인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밝힘으로써 미국은 한국의 단독 북진 가능성에 `임시적`이나마 족쇄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임시적 조치로는 미국이 안심할 수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은 한미 합의 의사록을 새로이 추진한다.

"대한민국은 상호협의에 의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 상호이익에 가장 유리하기 때문에 변경하는 경우가 아니면, 유엔군사령부가 대한민국의 방위를 책임지는 한 그 군대를 유엔군사령부의 작전통제권(operational control)하에 둔다." (한미합의의사록 2조)

유엔사는 이로써 북뿐 아니라 남에 대해서도 군사적 주권을 행사함으로서 한반도에서의 실질적인 군사적 지배를 달성하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로써 미국은 이승만의 북진정책을 견제할 수 있는 확실한 제도적 보장을 확보하였다. 이제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는 북한의 남진을, 그리고 [한미합의 의사록]으로는 이승만의 북진을 막을 수 있게 됨으로써 한반도에 관한 그들의 기본정책인 현상유지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주한미군역사쟁점전망, p.73, 김일영 조성렬 지음, 한울아카데미)

유엔사는 한반도의 정전상태를 관할하며, 남과 북을 분할통치하는 실질적인 무력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정전후 유엔사의 존재는 민족과 외세라는 대립구도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유엔이 책임있는 국제기구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과거 불합리한 유엔의 결정에 대해 그 실수를 반성하고 유엔사의 위법성을 시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유엔사는 미국의 국내법을 기준으로 해서도 위법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미국은 한국전에 대한 참전 결정도, 유엔사 설치에 대해서도 미의회의 비준이나 승인을 받은 적이 없다. 따라서 전쟁선포권을 가진 의회가 선전포고한 적이 없고, 대통령이 전쟁을 선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전쟁권`은 1973년이나 되어서 제정되었으므로 향후 북미평화협정체결시 이를 의회에서 비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의회조사국(CRS)의 최근 보고서에서 내리고 있는 결론이다.

한편, 미 군사평론가 구겔러는 군부가 월남전의 교훈에서 `군인은 정부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이는 백악관의 시빌리언 그룹을 통한 전쟁선포에 강한 불만을 표시한 것이며, 전쟁은 국민의 대표로 이루어진 국회에서 결정하고 그 결정이 국민의 것이 되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미 합참본부의 한국전에 대한 해석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즉 한국전 참전과 유엔사 설립은 미국 국내법상으로도 의회의 동의없이 백악관이 결정한 위법적 요소를 안고 있는 것이다.

2) 유엔사의 위기-위법성에 대한 유엔총회 결의

유엔사 최대의 위기는 아무래도 1975년 유엔총회에서의 해체결의일 것이다. 제3세계 비동맹국의 괄목할만한 진출과 함께 이루어진 성과중의 하나인 유엔사 해체 결의로 미국은 수세에 몰렸고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은 1975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76년 1월 1일부로 유엔사를 해체할 것을 약속했다. 유엔사 해체는 미국이 유엔총회 결의 사항을 받아들여 해체를 결정하고 이 사실을 유엔안보리에 통보하면 되는 사안이었다. 즉 안보리의 새로운 결의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결의에 방점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유엔총회에서까지 결의하면서 누가 봐도 시간끌기용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소위 `단계적 접근론`을 들고 나왔으며 결국 더 이상의 진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유엔사 해체가 임박했음을 인식한 탓인지 78년 한미연합사를 창설하여 유엔사의 작전통제권을 모두 이양한다. 이는 유엔사를 군사정전위원회라는 형식만 남겨 놓은 채 실질적인 작전권을 한미간의 쌍무 군사기구로 흡수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1957년부터 1978년까지 23년 동안, 주한미군 지상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하와이의 태평양군사령관이 아니라 워싱턴의 합동참모본부가 직접 행사하였고,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주한미군사령관이 행사하였다. 그러나 주한미군사령관은 미국 합동참모본부의 휘하에 있으므로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행사한 것은 미합동참모본부였다. 한미연합사에 작전통제권이 위임된 것처럼 볼 수 있으나 실제로는 아직까지도 유엔사에 작전통제권이 속해 있다.

이 문제는 유엔사의 구조에 가서 자세히 언급한다. 이러한 지휘체계는 오늘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한국군은 유엔사가 아닌 미국 합동참모본부의 휘하에 배속되어 있는 군대인 것이다. 미국 건국 이후 다른 나라의 군대를 합동참모본부가 직접 지휘한 전례는 없다.

3) 유엔사의 현재

미국은 유엔사를 형식상으로라도 구색을 맞추기 위해 각국에 연락장교를 파견하도록 하고 있으며 2000년 4월10일 정전후 유엔사에서 철수한 그리스 정부가 재참여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고 연락장교를 파견함으로서 현재 유엔사에 소속된 참전국은 16개국 중 호주.벨기에.캐나다.콜롬비아.프랑스.네덜란드.뉴질랜드.노르웨이.필리핀.태국.영국.미국 등 13개국이다.

미국정부는 주한유엔군사령부를 통해 북과 정전협정을 손질하거나 이를 대체할 새 협정을 마련할 수 있는 "광범위한 특권"을 가질 수 있으며 이같은 변화에 대해 미 의회의 비준을 받지 않을 수도 있는 입장이라고 미 의회조사국(CRS)의 최신 보고서가 밝혔다. 미국이 유엔사를 포기하지 않고 부활시키고 있는 이유를 이 보고서를 통해 알 수 있다.

더구나 유엔사는 1999년 서해교전을 통해 다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상황에 본격적인 개입을 시작했다. 1차 서해교전의 초점은 북방한계선을 임의로 설정한 당사자이며, 교전수칙을 실제로 관할하는 유엔사에 있다. 또한 경의선과 동해선의 연결공사 과정에서 개성공단 착공식을 둘러싼 교류과정에서 유엔사가 행하고 있는 본격적인 간섭은 아직도 유엔사가 불안정한 정전체제의 관리자임을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고성의 금강산전망대 등에는 유엔사 직원이 일정기간 상주하며 이 문제를 감독하기도 했다.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관측소에는 태극기와 함께 유엔기가 펄럭이고 있다. 가끔씩 감독을 나오는 유엔사의 직원들에 의해 전방부대의 한국군은 통제되고 있다. 
 
유엔사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 탄생과정에서부터 운영되는 과정에서도 위법적인 요소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현재 위법적인 유엔사가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관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유엔사의 구조


유엔사의 구조는 다른 군사기구와의 연관을 밝히는 문제이다. 유엔사는 한반도 정전협정의 법적 당사자로 그 조직표를 보면 정전관리 임무를 수행하는 군사정전위원회와 일본에 위치한 후방지휘소로 크게 구분된다. 유엔사의 지위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인접한 군사기구들과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주한미군사령부와의 관계

주한미군과 유엔사의 관계에서 핵심사항은 작전통제권의 문제이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1953년 10월1일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 규정에 의거 합의된 한미합의의사록(Agreed Minute and Amendments Betwwen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United States of America, 17 November,1954)에 의해 주한미군사령관이 아니라 유엔군 사령관이 행사하도록 되었다.

합의의사록 제2항은 `유엔군사령부가 대한민국의 방어를 위한 책임을 부담하는 동안 대한민국 국군을 유엔군사령부의 작전통제 아래 둔다.(retrain Republic of Korea force under operational control of the United Nations Command)`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미합의의사록은 1955년 8월 12일에 수정되었으나,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에 대해서는 아무런 개정이 없었다.

주한미군사령관이란 직책으로 작전통제하는 대상은 미국 포트블리스에 있는 23방공여단(패트리어트부대)을 제외한 미 육군의 8군단, 진해에 기지를 두고 있는 주한미해군 함대, 포항에 기지를 두고 있는 주한미해병대, 오산과 군산의 주한미공군, 제주의 주한미특전사령부이다. 유엔사의 작전통제부대 목록에도 이들이 모두 포함되는 것은 물론이다. 더 나아가 유엔사는 일본에 있는 7개의 미군기지에 대한 기지사용권까지 가지고 있는 점에서 주한미군사령부보다 훨씬 방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주한미군사령부 주둔의 법적 근거인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유엔사를 연관시켜 비교해보자.

첫째,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다른 안보조약과 가장 큰 차이가 나는 조항중 하나가 주병권인데 이 조항은 유엔사의 작전통제권과 결합되어 한국과 상의 없이 무력을 배치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미군병력의 주둔을 허용하고 있는 제4조를 보자.

`상호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the right to dispose)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여기서 `상호 합의에 의하여`라고 명기하고는 있지만 조약 체결 당시 미군은 이미 한국에 주둔하고 있었고 따라서 한미간에 새로운 상호 합의가 요구되지 않았고, 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이 유엔사령관에게 이미 이양된 상태였으므로 한국군의 배치는 물론이고 미군의 배치에 대해 상호합의 한다는 것은 실제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이 조항 이전에 전제가 된 유엔사의 존재로 인하여 미군은 `상호합의 없이` 병력을 주둔시킬 수도, 철수시킬 수도, 특정지역에 배치하거나 이동시킬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다. 현재 주한미군의 전방배치는 1973년 미국의회의 `전쟁권 결의(War Power Resolution)에 의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결의 제2절 (c)항에는 대통령이 의회의 동의 없이 60일간의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경우로 `합중국, 즉 그 영토, 속령 또는 그의 군대 (its territories or possession, or its armed forces)에 대한 공격`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 의하면 주한미군이 후방에 배치되었을 경우 북의 전방에서의 공격은 미국군대에 대한 공격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은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만 군사조치를 취할 수 있다. 전방에 배치된 주한미군을 흔히 `인계철선`이라고 하는데 후방에 배치되면 인계철선으로서의 의미는 사라진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프랭클린 와인스타인 교수는 안보공약을 `상황적 공약(situational commitment)과 비상황적 공약(non-situational commitment)으로 나눠 설명하는데 `상황적 공약`은 `상황에 따라 지킬 수도 안 지킬 수도 있는 공약으로 정의한다. 반면 `비상황적 조약`은 상황에 관계없이 의지와 신념의 구현으로서 반드시 지켜지는 공약으로 설명한다. 이 경우 한미상호방위조약 자체는 본질적으로 상황적 조약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미 2사단의 존재는 `비상황적 공약`에 속한다. (주21)

한미방위조약 제4조만으로는 무력의 행사를 위한 배치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전통제권이 유엔사에 있는 상황에서는 상호합의 없이도 이것이 가능하다. 즉 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유엔사령관에 귀속되어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미군에 대한 배치를 한국과 미국이 상호합의로 정한다는 것은 사실상 허구일 수밖에 없다. (주22)
     
둘째,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당사국의 상호원조를 위한 요건으로 `무력적 공격(armed attack)`을 규정하고 있다. 조약의 전문을 보자.

 `...외부로부터의 무력공격에 대하여(against external armed attack) 그들 자신을 방위하고자 하는 공통의 결의를 공공연히 또는 정식으로 선언할 것을 희망하고...` (주23) 

여기서 무력적 공격이란 유엔헌장 제51조에 자위권의 행사요건의 하나로 규정되어 있는 `무력적 공격이 발생한 경우(it an armed attack occurs)의 `무력적 공격`과 동일한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때 `무력적 공격`이란 무력의 불법적 행사(illegal use of force)를 말하며 기타의 법의 위반(other violation of law)은 제외된다. (주24)

예를 들면 경제봉쇄, 간접침략, 국내의 무력충돌, 쿠데타, 민족해방운동에 의한 대규모 항쟁, 내란 등은 무력적 공격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므로 이들 경우에는 상호 원조의 의무가 없다. 따라서 유엔헌장 제51조에서 규정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명분으로 하여 주한미군사령부가 움직이기엔 많은 제약이 따르는 셈이다.

주한미군사령부와 유엔사의 관계를 연상하기 위해 1994년 6월14일 미국의 선제공격계획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은 한국정부와 전혀 상의없이 독자적으로 전쟁 계획을 수립했고 부산을 통해 오끼나와 주둔 미 해병대가 이미 부산항을 통해 도착 완료된 상태였다. 데프콘3에 해당하는 조치가 이미 취해진 것이다. 이를 통해 볼 때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주어진 전시작전통제권은 실제 상황에서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미연합사 차원에서 이런 전시상황에 돌입하려면 한미정부의 국가통수 및 군사지휘기구(NCMA)의 협의하에 전략지시가 하달됐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한미연합사 차원이 아닌 태평양사령부나 주한미군사령부 차원으로 이들 계획을 실행하면 그만이다.  94년 6월 15일 미국의 선제전쟁계획은 한미연합사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건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문제는 미국이 이 전쟁을 실행했을 때 국제사회에, 또는 내부의 전쟁목표를 지시하는데 어떤 명분을 내세울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전쟁의 경우는 유엔안보리의 결정과는 전혀 관계없으므로 유엔군사행동이란 명분은 처음부터 포기되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유엔헌장상 제51조에 명시한 집단적 자위권행사 차원에서 명분을 찾는 것이 가장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여의치 않다. 유엔헌장 제51조에 따르면 회원국이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 안보리가 조치를 취할 때까지 개별적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에 선제공격은 자위가 아닌 침략이다.

실제 페리 국방장관의 기록에 의하면

`나는 대통령과 함께 사태를 검토하였고, 북한의 공격을 격퇴시키는 것이 그들이 핵 병기고를 획득하는 것을 막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면 그를 위한 세 가지 대안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대안들 중 어느 것도 북한에 대한 선제군사공격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모두 주한미군의 증강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하나는 특히 대규모 증강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나는...북한이 이러한 배치에 대해 선제공격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했다.` (주25)

라고 하였다. 북에 선제공격을 하진 않지만 무력을 증강시키고 압박하여 북이 먼저 공격하면 전쟁을 시작한다는 계획임을 알 수 있다. 전쟁의 명분을 위해 어디서도 그는 선제공격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규모 무력증강은 북이 먼저 공격하도록 유도하는 것임이 자명하다. 이때 미국이 가까스로라도 전쟁의 명분을 세울 수 있는 방법중 하나가 유엔사이다. 미국이 번잡한 한미연합사의 결정구조를 통하지 않고 직접 전쟁을 일으키고자 할 때 가장 좋은 명분은 유엔사를 이용하는 것이다.

서해교전이나 비무장지대에서의 우발적 총격사건 등이 일어나는 경우 누가 먼저 발포했는가 등의 선후를 가리기 힘들고 유엔사가 침략을 받은 것으로 선언하면, 한미연합사에 지시하는 형태를 취하거나 직접 유엔군사령부를 통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직접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 누가 먼저라고 책임을 묻거나 증명하기 어려운 서해교전과 같은 상황에서 유엔사가 이렇게 나서면 미국으로서도 전쟁의 명분을 주장하는데 아무런 하자가 없다. 아직까지 유엔사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합법적 기구로 주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조약 제3조의 방위지역 조항을 보자.

`각 당사국은 타당사국이 행정지배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이 행정지배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 타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적 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남한의 경우에는 군사분계선 이남의 영토를, 미국의 경우는 미국 본토와 오끼나와처럼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관할 하에 있던 영토를 포함한다.  주한미군이 책임지는 방위지역은 이처럼 군사분계선 이남지역이다. 그러나 유엔사는 일본의 주요 7개 기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미국의 한반도 전쟁시나리오에 의하면 전쟁의 시작은 오끼나와 해병원정대가 남한에 도착해야 가능하다. 결국 5027작전 시나리오는 주한미군이 인계철선일 뿐 완결적인 전쟁수행단위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이에 비해 유엔사는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일부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국가통수기구(NCA)는 대통령과 국방장관으로 구성되며 국가통수 및 군사지휘 기구(NCMA)는 대통령, 국방장관, 합참의장으로 구성된다. 골드워터-니콜스법에 따라 변화된 미국의 국방체계에 따르면 합참의장의 새로운 임무로서 유엔군사참모위원회(Military Staff Committee)에 미군을 대표해서 참석하도록 되어 있다. (주26)

합참의장은 한편으로는 미군지휘계통을 따라 주한미군사령관을 작전지휘하고, 유엔군사참모위원 자격으로 유엔사를 움직이려 할 가능성이 있다. 유엔군사참모위원회를 움직이는 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유엔군사령관을 직접 작전통제한 후 예의 그랬던 것처럼 `적절한 보고`를 유엔안보리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 

결론을 내리면 주한미군은 독자적인 전쟁 수행단위가 안되지만 유엔사는 명분을 새로 만들 필요가 없고 주일미군까지를 일부 포괄하기에, 유사시가 되면 유엔사를 통한 전시작전통제가 훨씬 현실화 될 가능성이 많다.

또한 동일인이지만 주한미군사령관으로서 미 합참으로부터 받는 작전통제와 유엔군사령관으로서 받는 작전통제는 전혀 내용을 달리하지만 유엔사의  지시에 의해 주한미군이 움직일 수는 있어도, 주한미군의 지시에 의해 유엔사가 움직일 수는 없다는 사실도 상징하는 바가 크다. 결국 이 모든 일이 한사람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많음을 의미한다.

2) 한미연합사와의 관계

한미연합군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는 상호 지원협조관계이나, 정전업무에 관하여 한미연합군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의 지시에 응하고 지원하는 기능을 계속 담당하고 있다. 즉 침투, 습격, 혹은 각종 공격행위 등 북의 정전 협정 위반사항에 대하여 유엔군사령관은 한미연합군사령관에게 즉각 대처하도록 요구한다. 즉 한미연합군사령관은 정전협정이 폐기되기 전까지는 유엔사령관의 지시를 받는 관계이다. 그러나 이 둘은 동일인이다.

1978년 `한미연합군사령부(ROK/US Combined Forces Command)`의 창설시에 한미간에 맺어진 `한미연합군사령부 설치에 관한 교환각서(Exchang of Notes for the Establishment of the ROK/US Combined Forces Command)에 의해서도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유엔군사령관에게 있음이 확인된다. 이 부분은 통상 유엔사에서 한미연합사로 작전통제권이 이양된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원문을 잘 해석해 보면 여전히 유엔사에 작전권이 존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54년에 서명되고 1955년과 1962년에 각각 개정된바 있는 `대한민국 정부와 미 합중국정부간의 군사 및 경제원조에 관한 합의`중 한국측 정부사항 제 2항의 규정의 범위내에서 정당하게 이루어진 약정이며, 또한 동 약정은 한미연합군사령관이 미군4성 장군으로서 국제연합군사령관 및 주한미군사령관을 겸임하는 동안 효력을 갖는 것으로 이해함을 통보하는 영광을 또한 가지는 바입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한미연합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임하는 동안이란 단서와 함께 연합사가 설치된 것이므로 거꾸로 말하면 유엔사령부가 해체될 때는 연합사의 작전통제권도 해제 또는 변화가 불가피 한 것이다. 이에 의해 양국은 한국군에 대한 작전권의 권한이 유엔군사령관에게 있음을 확인했다. (주27) 즉, 동 각서는 동 각서가 "한미연합의사록의 범위내에서 정당하게 이루어진 약정"이라고 표시하여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이 유엔군사령관에게 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김명기의 논문에 따르면 `1994년 한미연례안보회의(SCM)에서 1995년부터 평시작전지휘권은 한국군사령관에게 환수되고 전시작전지휘권만 종전과 같이 국제연합군사령관이 행사하도록 한미간에 합의를 보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주28) 그의 논문에서 `전시작전지휘권`이 `유엔사`에 남는 것으로 합의됐다는 것은 우선 사실과는 다르다. `전시작전통제권`이 `한미연합사`에 남는 것으로 합의된 것이 SCM의 기록이다. 그러나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이 여전히 유엔군사령부에 남아 있다는 그의 예리한 지적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해교전을 예로 들면, 당시 교전에는 한미연합사 교전수칙이 아닌 유엔사 교전수칙이 적용되었다. 평시작전권을 한국군이 이양받았지만 평시에도 한미연합사령관은 한국합참의장이 위임한 것으로 되어 있는 연합위임사항(CODA)에 대해 임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다. 그 내용은 전시작전체계의 수립, 조기경보를 위한 연합정보관리,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주관, 연합교리의 발전 등으로 핵심적인 지휘권은 여전히 한미연합사가 가지고 있지만 포괄적이고 추상적이어서 그나마 이원화된 작전통제권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실제로 99년 6월 연평해전에서 한국군 합참이 독자적으로 작전을 감행해 한미연합사측과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29)

흥미로운 것은 연합사 차원의 평시작전통제권의 연합위임사항이 작전술 차원의 추상적인 내용인데 비해 유엔사 교전수칙은 전술 차원의 구체적인 지침을 가지고 전장에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실제 데프콘3에 준하는 전시상황에서 한미연합사의 전시작전통제권이 작동하기 전에도 유엔사의 교전수칙은 이미 한국군에 의해 실행된다는 것이다.  

이들 기구는  미국에 있어서 국제법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한미연합사와 주한미군사령부는 지역주의와 계약주의에 따른 집단적 자위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할 수 있고, 유엔사는 유엔군사행동을 취하는 것으로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걸프전 이후 집단적 자위조치의 개념을 지역주의나 계약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 적용할 수 있다는 법 해석의 경향은 전쟁의 명분보다 힘의 논리를 앞세우게 된 원인의 하나로 볼 수 있다. 92년 동아시아 전략구상(EASI 1)에서 밝힌 주한미군 3단계 감축안에 의하면 2단계에서 한미연합사를 해체한 뒤 한미기획사령부를 창설하고, 연합사령관이 갖고 있던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 되돌려준다는 계획이 있다. (주30)

이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전제한 방안이기보다는 냉전이후 미국의 군사전략 전환에 따른 일방적 조치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미연합사 창설은 실상 75년 유엔총회의 해체결의 이후 유엔사 해체를 대비하여 작전통제권을 미리 이양해 놓을 필요성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유엔사를 다시 강화시키고 있으며 한미연합사가 존속할 경우 미국으로서는 94년 전쟁계획과 같이 미국의 요구에 의해 긴급히 전쟁을 일으켜야 할 때 한국과 반드시 협의하도록 되어 있는 이 불편한 구조를 선호할 리 없다.

한미군사동맹과 미국이 다른 나라와 맺고 있는 쌍무적 군사동맹 체계가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한미동맹은 분단과 한국전쟁으로부터 비롯된 유엔사의 작전통제구조의 하위체계인 것이다. 때문에 한미연합사의 구조와 유엔사의 구조는 엄연히 역사와 체계가 다르다는 지적은 일리 있지만 이러한 차이만 강조되는 것 역시 오류이다. 왜냐하면 유엔사와 한미연합사는 수직적 작전통제권에 의해 불가분의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한사람의 미군 4성장군이 주한미군사령관과 한미연합사령관과 유엔사령관을 겸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들 구조의 차이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분한 연관관계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3) 태평양 사령부와의 관계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 두 개 지역에 두 개의 연합사령부를 운영하고 있다. 나토에 가입된 19개국 군대와 미국의 유럽사령부 병력을 합쳐서 만든 `나토 연합군`과 `한미연합군`이 그것이다. 현재 독일에 주둔한 주독 미 군사령관은 유럽 사령관과 나토 군사령관을 겸하고 있다. 현재 한미연합사 산하의 미군은 2사단 병력뿐이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태평양사령부산하 미군부대가 한미연합사로 배속되기에 한미연합사 산하 미군전력은 급격히 증강된다. 별도로 한미연합사가 있음에도 한반도는 태평양사령부의 구역에 포함되므로 미국은 한미연합사를 배제하고 태평양사령부만으로 한반도에서 독자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주31)

태평양사령부와 유엔사의 지휘계통이 만나는 구조는 합참이다. 각 통합사령부의 사령관은 해당사령부의 주력군종에서 임명되는 전통에 따라 태평양사령부는 주력군종인 해군대장이 총사령관을 맡고 있다. (주32)

주한미군의 주력은 육군이므로 한미연합사령관과 주한미군사령관, 유엔사령관은 육군대장이 맡고 있다. 맥아더 유엔사령관의 증언에서도 나타나듯 자신의 실질적인 상부는 육군참모총장이었다. 이는 5.16쿠데타 시 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이 워싱턴과의 상의 없이 육군내의 판단만으로 반혁명성명 등을 발표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한편 1974년 12월 미육군태평양 사령부가 해체되면서 주한미군은 워싱턴 직할이 되고 형식상으로 유엔에 속해 있던 유엔군에 대한 작전명령권이 미합참으로 이관된다. (주33) 

그러나 미합참은 1986년 골드워터-니콜스 법이 제정되기까지 각 군종의 참모총장보다 못한 권한을 가질 뿐이었다. 따라서 미군 개혁작업의 결과 합참의장의 권한이 증가하기 전까지 실질적으로 유엔사는 육군참모총장, 태평양 사령부는 해군참모총장으로 지휘계통이 분리되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73년 골드워터-니콜스법에 따라 변화된 미국의 국방체계에 따르면 합참의장의 새로운 임무로서 유엔군사참모위원회(Military Staff Committee)에 미군을 대표해서 참석하도록 되어 있다. (주34)

태평양 사령관 역시 그동안 각군 중심으로 정해져온 국방정책을 통합사령부의 시각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는 의회의 생각에 따라 골드워터-니콜스법안에서는 합참의장으로 하여금 통합사령관을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국방장관에게 부여했다. 통합사령관을 감독하도록 했다는 것이 통합사령관에 대해 합참의장이 나름의 권한을 행사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합참의장을 감독하는 사람으로 지정함으로서 국방장관이 나름의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투사령부의 준비태세를 감독하고 국방장관이 통합사령관에게 내린 명령의 이행 상태를 점검하며, 둘 이상의 통합사령관이 개입되는 문제들을 조정하는 등의 임무가 합참의장에게 주어 졌다. 또한 합참의장이 통합사령관의 대변인 역할을 수행토록 함으로서 소위 말해 합참의장의 경우는 통합사령관들과 논의하고 이들의 요구사항을 국방장관과 국방성 전반에 전달하도록 되어 있다. (주35)

전시상황이 되면 한미연합사산하의 미군부대라고 해봐야 고작 미 2사단에 불과하고 그나마 실질적으로는 제외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므로(오산의 7공군은 태평양 사령부 소속) 미국은 한미연합사가 있음에도 이를 배제하고 태평양 사령부만으로 군사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4) 한국군과의 관계

한국군과 유엔사의 관계에서 주목할 점은 전시작전통제권과 점령주체의 문제이다. 앞서 언급했듯 유엔사가 전시작전통제권을 최종적으로 행사한다. 이와 관련 미국은 전쟁을 수행하기에 앞서 반드시 거쳐야 할 유엔안보리의 결의나 권고, 결정 등을 이끌어내기 위한 외교적 절차를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미 유엔안보리의 결의에 따라 유엔사가 임무를 수행중인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작전통제권 환수를 언급하며 전쟁이 나도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자, 이 말에 대해 국회의원과 조선일보 등에서 대통령이 잘못 알고 있다며 훈수한 일이 있었다. 한미연합사 차원만을 염두에 두면 이들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한미연합사 채널 하나만으로 치러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한미군사령부와 태평양사령부만으로도 전쟁을 개시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 유엔사가 전쟁의 국제법적 명분을 얼마든지 해결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은 흡수통일을 생각하는 보수적인 군부의 입장에서도 다음과 같은 우려를 던질 가능성이 있다.

`국군에 대한 작전 지휘권이 환수되어야 미국이 국제연합군의 이름으로 북한영역에 진입하여 북한영역에 작전지휘권의 내용의 하나인 군정권을 행사하고 북한영역에 대한 대한민국의 통치권 회복을 거부하는 것, 즉 "개입통치"를  배제할 수 있다. 요컨대 대한민국은 외교역량을 최대한 동원하여 북한의 붕괴에 앞서 작전지휘권의 전부를 환수해야하며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작전지휘권의 일부인 민사작전지휘권만이라도 환수하여 자주통일을 이룩해야 할 것이다.` (주36)

만일 북이 붕괴되거나 전쟁을 통해 북을 점령했을 경우 점령주체는 한국군이 아닌 유엔군사령부가 된다는 것에 대해 보수적 입장에서도 이 점은 우려되는 상황인 것이다. 유엔사가 해체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1950년 7월7일 안보리 결의가 유효한 것으로 주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미동맹을 역설하는 한국군 일부조차 유엔사로부터 작전통제권을 통일전에 환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군사적 사안은 아니지만 북이 평화협정을 대신하여 불가침조약을 내놓은 배경에는 자주권존중과 내정불간섭의 내용에 한미군사동맹에 대한 불간섭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한미연합사나 주한미군사령부는 대북 억지력에서 동북아 세력균형자로 지위를 변경한다든지 하여 불가침조약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유엔사는 반드시 해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유엔사는 북을 적으로 상정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북미불가침조약의 실질적인 진전은 유엔사 해체를 동반하게 되는 것이다.  
 
5) 주일미군과의 관계

일미안보조약 제6조는 `일본국의 안전에 기여함과 동시에 극동에 있어서 국제평화 및 안전의 유지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미국의 육군, 공군 및 해군이 일본국에서 시설 및 구역을 사용토록 허용한다`라고 되어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달리 안보의 대상지역이 `일본본토`에 머물지 않고 `극동`을 범위로 하고 있다.

여기서 일본국의 안전에 기여하는 부대는 오끼나와 해병3사단이 대표적이고, 극동의 안전에 기여하는 부대는 요코스카의 미해군7함대와 요코다의 제5공군사령부가 대표적이다. 오끼나와 해병대는 한반도 전쟁시나리오인 작전계획 5027에서 신속전개전력의 핵심으로 투입되는 병력이다. 따라서 오끼나와 해병대는 기본적으로 `일미안보조약` 상 일본방위임무와 더불어 `한미상호방위조약` 상 주한미군과 마찬가지로 남한의 안보에도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일본 도쿄의 자마시 근처에 위치한 주일미군기지 캠프 자마에는 주한 유엔사의 후방지휘소가 있다. (주37)  이곳에는 각국에서 파견한 연락장교들이 근무하고 있다. 캠프 자마는 군사적으로 큰 특징이 발견되지 않지만 서울 용산기지와 같은 성격의 기지로 이해하면 된다. 주한 유엔사가 일본에까지 기지를 가지고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1950년 7월 1일 일본의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미군의 출동이 유엔의 경찰조치인 이상 일부의 사람들이 점령군(주일미군)의 명령의 따라 전투행위 등에 종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1950년 7월 3일의 차관회의는 한국전쟁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방침을 결정한다.

① 미군의 군사력의 발동에 협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② 장래 일본이 유엔에 가맹하기 위하여서라도 유리하다. ③ 따라서 헌법과 법률의 범위 안에서 필요한 행정조치-선박, 육상등의 수송력의 증강, 전화통신의 가설, 해상보험의 임시조치 및 이에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위의 방침 중에서 ③은 오늘날 거론되고 있는 신가이드라인의 원조인 셈이다. (주38)

이는 일본이 한국전쟁 당시부터 유엔사에 대한 협력이란 미명하에 다시 군국주의의 길로 들어선 과정을 보여주며, 결국 일미 가이드라인으로 완결되었다. 유엔사 후방지휘소에는 7개의 중요 주일미군기지가 포함되어 있다. 오끼나와의 미해병대기지로서 상륙함 등이 배치되어 있는 캠프 화이트 비치와 공격헬기 등이 배치되어 있는 캠프 후템마, 미공군시설인 카데나 공군기지, 그리고 도쿄의 5공군기지사령부가 있는 캠프 요코다, 7함대기지인 캠프 요코스카 미해군의 항공기지인 캠프 아쯔끼, 구주의 미해군기지인 캠프 사세보 등이다.

이들이 주한 유엔사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유엔사의 작전지시에 따라 주일미군기지의 무력이 자동으로 한국전쟁에 개입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유엔사는 누구나 명목상의 기구로 이해하지만 실제 전쟁이 발발할 시에는 남한과 일본의 미군과 한국군 자위대 일부까지도 전쟁에 참여시킬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공할 무력을 행사할 권한을 지닌 셈이다. 위법적 요소를 가지고 탄생한 유엔사에게 이러한 비정상적인 무력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바로 유엔사의 위험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일본의 유엔사령부와 관련하여 미세한 변화는, 미국이 유엔사의 해체를 염두에 두고 대비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일련의 흐름이다. 98년 신가이드라인의 부속협정으로 체결된 미일 물품·용역 상호제공 협정법(ACSA)이 그것인데, 사실상 이 협정에 의해 유엔사가 해체되더라도 미군의 일본내 기지 사용 문제는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미국이 걸프전의 사례에서 보듯 유엔의 명분을 걸치던 냉전시절의 관행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미국 패권중심의 집단적 자위조치 개념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우세해 지고 있음을 감지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엔사가 해체되기 전까지는 유엔군사행동이란 명분이 사라지는 게 아니고, 미국은 유엔을 통해서든 자국중심의 군사패권을 통해서든 군사행동이 모두 가능해진 것이므로 두 가지 칼자루를 다 쥔 셈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일본 평화운동 세력과의 그간의 연대는 유엔사 해체 문제에서만큼은 연대가 아닌 연합으로 발전되어야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6) 유엔안보리와의 관계

군사기구는 아니지만 유엔안보리와의 관계를 마지막으로 정리해보자. 유엔사는 유엔안보리의 보조기구로 정전관리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하지만 유엔사가 정전협정과 과연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아는 게 우선이다.

정전협정문에는 서명자가 유엔군사령관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유엔군사령관이 정전협정을 체결할 권한이 있는가가 문제가 된다. 7월7일 결의(S/1588)에서 안보리는 통합사령부(유엔군사령부가 아닌)를 설치하고 그 사령관의 임명을 미국에 위임했으나 정전협정의 체결권을  동사령관에게 위임한 바가 없고 또 유엔의 또다른 주요기관인 총회나 사무총장도 이를 동사령관이나 미국에 위임한 바가 없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의 체결과 함께 유엔사는 유엔안보리의 군사기구에서 정전협정 관리기구라는 행정기관으로서의 성격을 부여받게 되었다. 유엔사가 이 의무를 확인하는 유일한 과정은 결코 정기적이지 않은 미군 임의의 `적절한 보고` 뿐이다.

정전협정이후 이루어진 한미간의 쌍무 조약인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하면 작전권을 유엔사가 행사하도록 되어 있다. 이로써 한미간의 쌍무 관계로 귀속되어야 할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유엔사라는 국제기구에 귀속되는 괴이한 구조를 갖게 된다.

더구나 유엔사의 존재로 말미암아 한반도에서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고자 하는 경우를 가정 한다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전쟁이나 이라크전쟁에서처럼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얻기 위해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게 된다. 이미 50년전 유엔안보리가 결의한 유엔사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유엔사의 이름으로 전쟁을 개시하고도 유엔안보리에 해야 할 유일한 의무는 앞서 말했듯 `적절한 보고` 뿐이다. 

유엔사와 인접한 군사기구들의 관계를 통해서 보여지듯 유엔사는 국가간에 있을 수 있는 쌍무적 군사동맹을 비정상적인 지역적 군사행동이 가능한 체제로 만들어 놓았다. 유엔사의 역사에서 태생한 위법성이 위험성으로 진화한 과정을 우리는 보게된다.


3. 유엔사의 기능


유엔사의 기능은 유엔사라는 구조가 다른 인접구조에 미치는 역할과 능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체계이론에 따르면 구조의 변화보다 기능의 변화가 더 결정적인 질적 변화를 수반하기에 기능에 대한 고찰은 다방면적이고 전체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글이 너무 길어지므로 앞서 유엔사의 구조에서 언급한 군사기구들과의 관계는 생략하고 유엔사와의 관계에서 이들의 최고 상위체계라 할 수 있는 정전체제에서의 역할과 능력에 대해서만 언급한다. 또한 유엔사 해체가 가져올 변화를 중심으로 현재 유엔사의 기능을 살펴보기로 한다.

유엔사는 한미군사동맹과 일미군사동맹을 연결하는 상위체계로서 미국의 패권이 극동지역에 작용하는 중요한 지렛대로서 역할해 왔다. 앞서 살펴봤듯이 유엔사가 그 탄생에서부터 심각한 위법성 논란에 휘말리고 심지어는 75년 유엔총회에서 해체결의가 내려지고, 그에 대비해 한국에서는 한미연합사를 창설하여 유엔사의 작전통제권을 이양하고, 일본에서는 일미가이드라인을 추진하여 오면서도 해체될 듯, 말 듯 하며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것은 유엔사의 기능에 대한 미국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매순간 유엔사의 해체를 결심하고 준비하는 듯 했지만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싸워온 나라는 북한뿐이었다. 한국과 일본은 자신들의 문제이면서도 미국과의 동맹우선주의에 밀려 이미 유엔사가 옥상옥(屋上屋)이 되어 버린 뒤에도 어쩌지 못하고 끌려오기만 했다.

한미동맹과 유엔사는 엄연히 그 구조가 다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한미동맹 또한 유엔군사령부에 작전통제권이 존속되는 이상 정전체제의 하위체계이다. 유엔사의 해체가 곧 정전체제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정전체제의 소멸은 유엔사 해체를 필수로 한다. 유엔사가 해체되고도 정전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지 못하진 않겠지만 어쨌든 평화협정 체결운동과 유엔사 해체운동은 약간의 차이를 발생시킬 순 있어도 대체로 불가분의 연관관계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한국군의 입장에서도 유엔사는 한미동맹과 달리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많아질 수밖에 없는 기구이다. 현재 정전관리를 담당한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비무장지대를 지키는 것은 공동경비구역의 일부 미군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국군이다. 공동경비구역을 한국군에 이양하겠다고 미국이 신호를 보내도 미래를 향한 대책보다는 한미동맹에 대한 심리적 공황에 가까운 의존 때문에 이조차 한국군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게 현재의 실정이다. 국가주권의 문제와 직결된 작전통제권 환수의 문제나, 평화통일의 중요한 전제인 평화협정체결 문제에 대해 우리가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하는 과정이 유엔사 해체 문제임에도 이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자가당착일 뿐이다.

유엔사가 해체될 경우 세 가지 측면에서 정전체제의 군사적 부분에 변화가 온다.

첫째는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일본기지내 사용에 제약을 받는다. 유엔사에 대한 기지 제공의무는 유엔군 철수시 90일 이내에 종료하도록 되어 있다. 유엔사가 해체되면 유엔군에 대한 기지사용권이 소멸되므로 미군의 작전계획 5027의 수행에 큰 차질이 빚어진다. 그러나 이는 앞서 본 바와 같이 일미가이드라인 부속협정인 일.미물품용역상호제공협정(ACSA)에 의해 많은 부분 해결되기에 미국에게 유엔사 해체의 불안요소가 되진 않을 것이다.    

둘째는 유엔군사령부의 존재 자체에 의해 미국은 한반도 전쟁시 유엔결의를 따로 필요로 하지 않으며 즉각 개입이 가능하다. 유엔사가 해체되면, 또 대체할만한 별다른 안전보장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전쟁시 유엔헌장 제7장에 따라 유엔안보리의 결의를 거쳐야하고 다시 유엔군을 구성하든 유엔산하 다국적군을 구성하여 개입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경우는 유엔 창설이래 한국전쟁만이 유일했으며 걸프전에서도 유엔결의가 채택됐지만 미군은 자신들의 군사행동을 유엔군사조치가 아닌 집단적 자위조치로 해석을 하고 있다. 마치 이제 유엔을 통한 권위에 의존하기보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패권을 시위하듯 말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자신들의 군사적 행동에 유엔안보리의 결의를 필요로 해왔고 유엔외교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전쟁의 명분은 전쟁의 목표가 되며 이는 미군이 70년대 이후 새로이 수립한 군사 원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때문에 유엔사 해체가 몰고 올 파장은 미국으로서는 상당한 부담일 수밖에 없다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셋째는 작전통제권의 환수문제이다. 유엔사가 해체되면 유엔사에 이양되었던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환수받게 된다. `작전지휘권` 문제는 방위조약에 따른 한미합의의사록 2조에 명시되고 있다.

"국제연합군사령부가 대한민국의 방위를 위한 책임을 부담하는 동안 대한민국 국군을 국제연합군사령부의 작전지휘권 하에 둔다. 그러나 양국의 상호적 및 개별적 이익이 변경에 의하여 가장 잘 성취될 것이라고 협의 후 합의되는 경우에는 이를 변경할 수 있다."

바로 이 조항에 의해 실질적으로 부여되어 있는 유엔사의 작전통제권은 한국군으로의 환수절차를 밟게 된다. 작전통제권환수문제와 관련해서는 한미연합사도 지켜봐야 할 대상이다.

92년 동아시아 전략구상(EASI 1)에서 밝힌 바와 같이 주한미군 3단계 감축안에서 2단계에 한미연합사를 해체한 뒤, 연합사령관이 갖고 있던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에 되돌려준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고 이는 아직도 유효함을 럼스펠트 국방방관이 재확인하였다.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든 유엔사가 해체되는 작전통제권 환수문제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유엔사와 한미연합사의 해체는 각각 의미가 다르다.

한미연합사의 해체는 한미관계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나 유엔사의 해체는 남.북한, 미.일과 유엔 등 국제적인 차원의 변화를 가져온다. 한미연합사가 해체되어도 북에 대한 점령주체는 여전히 유엔사가 되고, 미일군사동맹도 유엔의 이름으로 합법적인 개입이 가능하다. 유사법제나 일미가이드라인 같은 복잡한 절차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자동개입이다.

참여정부는 작전통제권 환수를 국정목표로 하고 있다. 이것은 유엔사 해체와 한미연합사 해체 두 가지 방향에서 진행될 것이다. 한미연합사 해체를 통한 작전통제권 이양은 미국이 신군사전략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바이다. 단지 시간이 걸릴 뿐 그렇게 진행될 것이다. 유엔군사령부 해체는 판문점 경비를 포기하는 등의 조치가 나오고 있지만 반대로 용산기지에 유엔사 등의 건물만은 철수하지 않겠다는 조치도 나오고 있다. 북미간의 평화체제보장에 대한 외교적 진전이 있기 전까지 유엔사 해체는 전략적으로 숨겨놓는 카드가 될 것이다. 이것을 들추어내어 들끓게 하면 어떻게 될까? 어차피 국정목표로 추진되는 사업인 이상 이제는 그 내용과 방향이 문제다.

이처럼 유엔사 해체를 통해 유엔사를 중심으로 한 정전체제를 살펴보면 그 기능이 어떠한지 실감할 수 있다. 아직도 유엔사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군사관계의 이해가 엇갈리는 정점이다. 유엔사의 해체는 평화협정체결을 통한 정전체제의 종식에도, 작전통제권환수를 통한 자주적 군사주권의 확립에도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4. 유엔사 해체 운동


유엔사는 한미연합사 창설이후 무력을 거의 존재하지 않은 허수아비 군사기구에 불과하다. 또한 유엔해체 결의로 사형선고를 받은지 오래다. 그러나 형식만 남은 것 같은 유엔사가 이날까지 존속되고 있는 것은 한.미.일군사동맹을 통합하는 상위체계이며, 남북정전체제를 유지하는 상위체계이며 90년대 이전까지 역사상 존재한 바 없는 전무후무한 합법적인 유엔군사력으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의 군사기구중 유엔사는 가장 폭넓은 범위에서 막강한 기능을 행사할 수 있는 기구이다. 그러나 유엔사는 이미 형식만 남아 있는 사멸해 가는 기구이며, 미군으로서도 이미 해체준비가 거의 완료된 상태의 기구이며, 무엇보다 한국군으로서도 한미동맹에서 가장 불합리한 부분으로 인식되고 있는 기구이다. 이런 점에서 유엔사는 가장 강력한 군사기구이자 가장 약한 고리의 군사기구이다. 가장 강력한 실세인데 가장 약한 것이다.

그런 만큼 유엔사 해체 운동의 폭도 공세적인 조건을 이미 가지고 있다. 유엔의 경우 유엔사무총장을 상대로 이미 유엔가입국이 된 북을 유엔의 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유엔사의 해체를 건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남한뿐 아니라 일본의 시민사회와 연합차원의 운동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경우 비무장지대를 통한 교류가 활발해 질수록 유엔사는 심한 압박을 받게 되어 있다.

비무장지대를 통한 남북교류운동은 곧 유엔사를 압박하는 운동이 된다. 유엔사가 이렇게 압박을 받다보면 반드시 어느 지점에서 반발하게 되어 있다. 경의선, 동해선 철도의 지뢰작업 상호검증단을 둘러싼 유엔사의 돌출행동은 그 시작이다. 이때 대중적인 유엔사 해체운동이 전개되도록 준비될 필요가 있다. 한국군에서도 유엔사의 반발에 반대하거나 최소한 중립을 지키도록 하는 여론이 형성될 수 있는 정도의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준비는 첫째,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지역에 대한 관심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백령도에서 고성까지 비무장지대나 민통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주요 사건들이 유엔사와 연관된 것임이 이해되어야 한다. 서해교전이 남과 북의 대결이 아닌 유엔사 관할수역에서 일어나는 일임이 부각되어야 하고 북방한계선의 진실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어야 하며, 한강하구 수역의 자유로운 통항을 결정하는 것이 국방부가 아닌 유엔사임이 부각되어야하며, 땅굴 문제 또한 궁극적으로 유엔사 관할임이 이해되어야 한다. 고엽제 피해와 대인 지뢰피해 등 민통선지역의 피해들도 유엔사와의 연관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래서 군사분계선이 남과 북의 대치선이 아닌 민족과 외세의 대치선임이 인식되어야 한다.

둘째, 대북 관광사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관광은 통일을 즐기는 시대의 특징에 맞는 대중운동이다. 금강산사랑시민연대처럼 평양, 묘향산관광 등을 토대로 한 대중운동이 확산될수록 비무장지대를 관할하는 유엔사의 역할과 능력은 위축된다. 사람의 발길을 따라 비무장지대에서의 더 대담한 조치가 잇따르고 그 절정의 어느 지점에서 대중과 유엔사가 만나게 될 것이다. 이미 그렇게 가는 것은 알고도 어찌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더욱 대세가 되었다.

 셋째, 운동의 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미군을 전체로서 인식하는 단계를 지나 부분으로도 인식해야 한다. 모든 문제를 주한미군 전체의 문제로만 환원시켜선 안되겠다. 여중생 사건의 경우엔 주한미군철수란 구호가 나왔다. 을지포커스렌즈 훈련의 경우엔 한미연합사 차원의 훈련이다. 비무장지대를 둘러싼 교전이나 충돌은 모두 유엔사 관할의 사건들이다. 사람들이 주한미군을 전체와 부분으로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구조적 인식의 전제이다. 구조적 인식을 전제로 우선고리에 집중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그런 의미에서 유엔사는 주한미군 전체의 변화를 가져올 물꼬임에 틀림없다.

넷째, 한.일 평화운동의 연대와 연합운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면 용산기지와 도쿄의 캠프자마 미군기지단체가 중심이 되어 유엔사가 용산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해체되도록 하는 유엔사 해체운동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무장지대의 유엔사 관련 사안이 발생할 때 일본의 평화단체들과 공동으로 행동하는 것도 가능한 일일 것이다. 

유엔사는 이미 해체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된지 오래이다. 그러나 유엔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집중되어야겠다. 주한미군을 부분과 전체로 보는 구조적 인식을 높이거나, 실천에서 전략적인 중심고리와 우선순위 등에 대한 체계적 접근이 필요해지고 있다. 올해는 정전협정 50주년과 한미동맹 50주년이 겹쳐진 한해였다. 한미동맹의 운명과 정전체제의 운명이 같이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이 다른 나라의 안보동맹과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이것이 한미동맹 50년, 최고의 숙제를 유엔사 해체로 생각하는 이유이다.    
 
------------------------------
< 주 >

(1) 편성과 지휘에 사용된 두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6·25전쟁 때의 국제연합군의 경우로서, 특정 국가를 지정하여 여기에 군대의 편성과 지휘를 위임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에 의하면 자연히 지정된 국가의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기가 곤란하다. ② 수에즈 분쟁의 경우로서 국제연합 자신이 특정의 개인을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직접 국제연합에 책임을 지게하고 그 밑에 가맹국으로 하여금 소요(所要)되는 군대를 제공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에 의하면 특정 국가의 영향을 적게 받으며 군대의 독립성을 보다 강하게 유지할 수 있으므로 국제적인 군대라고 할 수 있다.

(2) 걸프전의 법적 성격, p105, 김석현 논문, 국제법학회 논총 37권 2호

유럽과 미국의 이러한 견해 대립은 단순한 법논리상의 대립이 아니라 탈냉전상황에서 스스로의 지위를 부각시키려는 양대 정치권의 국제정치관의 대립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미국은 걸프전을 계기로 국제 경찰국으로서의 자국의 역할을 법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서, 프랑스는 결의비준과정에서 지도적 역할을 한 자국의 위치를 강조하며 미국의 독주를 반대하는 유럽제국과 이해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3) H.Kelsen, The Law of the United Nations, London, Stevens & sons, 1951, p756 [걸프전의 법적 성격] 김석현 논문, p.107에서 재인용

(4) H.Kelsen, 위의 자료 p.750 재인용

(5) Annuare de la Commssion du Droit International, 1980, vol.2, p.30. 앞 논문서 재인용

(6) H. Kelen, The Law of the United Nations-New York : Frederick A.Praeger, 1951 p.293 재인용

(7) 한국동란에 대한 국제연합 개입의 합법성. p.9, 김명기, 제법학회논총

(8) 이에 대해 임덕규는 그의 논문 [한국전쟁의 법적 성격]에서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해당부분을 인용한다.

`북한의 대한민국에 대한 무력공격을 다룬 유엔 안보리의 의사 일정은 시종 대한민국에 대한 침략제소(complaint of aggression upon the republic of korea)라는 의제로 다루어 졌다. 그러나 1950년 6월 25일 안보리 결의시 각국 대표들의 논의과정을 보면 그들의 인식은 어느편이 침략에 대한 책임을 지는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상당한 토론 후 결국 결의문 내용에 `북한군의 대한민국에 대한 무력공격(armed attack on the republic of Korea by forces from North Korea)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안보리 대표들이 남한과 북한 모두를 동등한 당사자로 생각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임덕규는 무력공격(armed attack)이란 용어에 집착 이 용어가 무책임한 집단이나 사인에 의해 형성된 사건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라 오히려 타국의 일국에 대한 공격을 의미한다고 본다는 국제법 학자의 해석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장에서 무력공격의 주체인 북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닌 지역적 개념으로서의 북한이라고 표현한 주어 부분에 대한 주의를 소홀히 하고 있다. 당시 유엔안보리의 결정자들이 북을 독립된 국가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북측지역으로 보고 있는 것이며 `무력공격`의 의미도 독립단어가 아닌 이 문맥에 의해 해석될 필요가 있다.

(9) I. Pereterkii.Narushitel;mezhaunarodnogo prava, Izvestiin, Aug 11, 1950, 3, quoted from E.R.Goodman, The Soviet Design for a world State (New York;Columbia Univ. press,1961), p.110. 한국동란에 대한 국제연합의 개입의 합법성, p.12-김명기 논문서 재인용

(10) R.higgins, United Nations Peacekeeping, 1945~1967, Documents and Commentary, <London; Oxford Univ. Press, 1970>, p.175. 위 논문서 재인용

(11) A.V.W.Thomas and A.J.Thamas, Non-Intervention <Dollas; Southern Methodist Univ. Press, 1956>, p.221. 위 논문서 재인용

(12)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Resolution 380 (v), 위 논문서 재인용

(13) http://faculty.ed.umuc.edu/~nstanton/Ch1.htm, 2003.10.20 검색

(14) 한국전쟁의 법적 성격, 임덕규 논문, p.122, 41번 주석 재인용

(15)  한국군 합참 군사용어사전에 의하면,

전략지시(戰略指示, Strategic Directives): 합참의 군령권 보좌 및 국가전쟁지도 주요 기능수행을 위해 전략상황 평가 및 판단 결과 도출로 전략적인 지침을 지시화한 것으로서, 합참이 국가통수 및 군사지휘기구 승인하에 연합사에 전략지시를 하달함.

지휘(指揮, Command): 지휘관이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계급 또는 직책을 통해서 예하부대에 합법적으로 행하는 일체의 권한행사를 말함. 지휘시에는 이에 따른 책임이 수반되며 가용한 자원의 효과적인 사용과 할당된 인원에 대한 건강, 복지, 사기 및 훈련에 대한 책임도 포함됨.

국가통수 및 군사지휘기구(國家統帥및軍事指揮機構, National Command and Military Authorities : NCMA) : 군사분야에 관한 전략지시 및 작전지침을 제공하는 국가 최고기관으로서 한.미 군사관계에서 사용되는 용어임. 미국의 국가통수기구(NCA)는 대통령과 국방장관으로 구성되며 국가통수 및 군사지휘 기구(NCMA)는 대통령, 국방장관, 합참의장으로 구성됨. http://www.jcs.go.kr/index2.html

(16) 미합참본부사, 한국전쟁 상, p.112,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7) 미합참본부사, 한국전쟁 상, p.108, 국방부군사편찬위원회

(18) 조선일보, 1990.8.28

(19) 미합참본부사, 한국전쟁 상. p.115, 국방부군사편찬위원회

(20) Paper Submitted by Taylor, May 4,1953, FRUS 1952-1954 Vol. XVPart, 1984, p.965-968, 주한미군역사쟁점전망, p.64-65, 김일영, 조성렬 지음, 한울아카데미 재인용

(21) 철저해부 주한미군, p.55, 동아일보사

(22) 김명기의 위 논문, p.27

(23) 관련조항을 더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2조에 `당사국중 어느 1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의 무력적 공격에 의하여(by external armed attack)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될 때에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 3조에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서의 무력적 공격(an armed attack in the Pacific area)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24) 김명기 논문,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보완에 대한 연구`, p.25, 서울국제법연구원 주최 세미나 자료(2003.6.30).
 
(25) 예방적 방위전략, p.196 윌리암 페리, 애시튼 카터 지음, 프레스21

(26) 합동성 강화 미 국방개혁의 역사, p.200, Gordon Nathaniel Lederman 저, 연경문화사

(27) 김명기, 작전지휘권환수의 국제법상 문제점과 그에 대한 대책연구, <국제법학회 논총>제34권 제12호, 1980, p.14~15, 1990, p.18

(28) `북한붕괴시 흡수통일에의 미국개입의 법적 근거와 개입배제대책` p.11, 김명기 논문

(29) 한반도평화 네트워크홈페이지 http://www.peacekorea.org/usfk/usfk13.html

(30) DoD, A Strategic Framework for the Asian Pacific Rim: Looking toward the 21st Century, DoD Report to the Congress(Washington, D.C. April 1990), pp.16-17, 주한미군역사쟁점전망, p.201에서 재인용

(31) 주한미군역사쟁점전망, p.162~163, 김일영 조성렬저, 한울아카데미

(32) 그 분포를 보면 해군42%, 해병대25% 육군20% 공군13%

(33) 주한미군30년사, p.377, 서울신문

(34) 이런 과정으로 볼 때 유엔사에 대한 지휘는 74년 이후 합참을 통해 주한유엔군사령관으로 직접 연결되는 구조로 실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35) 미 국방개혁의 역사, p.204, Gordon Nathaniel Lederman저, 연경문화사

(36) 국제법학회논총, 제43권 제1호, 북한 붕괴시 흡수통일에의 미국개입의 법적 근거와 개입배제대책, p.14, 김명기 논문

(37) http://www.globalsecurity.org/military/facility/camp-zama.htm 2003.7.20 검색

(38) http://peacemaking.co.kr/news_view.php?no=947, 김승국 2003.10.17일 검색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