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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째 마당, 한민족 형성의 방파제가 되었던 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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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02.12  12: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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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국사를 공부할 때 고구려가 나오는 부분을 공부하면서 저절로 신이 나는 느낌을 누구든지 한번쯤 가졌을 것입니다. 만주 일대를 장악하고, 중국의 통일 왕조인 수와 당을 물리친 고구려를 생각하면서 이때가 우리 민족의 전성기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갖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만약 고구려가 통일을 했다면 우리 민족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하고 큰 나라가 되었으리라는 생각은 누구든 한번쯤 가져 봄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뒤 우리 민족은 만주를 잃었으며, 중국 대륙의 나라나 바다 건너 일본의 침략을 받아 강토를 짓밟힐 대로 짓밟힌 뒤 간신히 물리쳤거나 아니면 아예 그들의 지배 아래 들어갔고, 현대에 들어서도 민족은 두 동강이 난 채로 여전히 외세의 강한 입김 아래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는 몇 가지 중대한 오류가 있습니다. 그 오류의 근원은 가정을 전제로 역사를 생각하는 데서부터 나옵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를 두고 가정을 하는 것은 마치 죽은 아이 나이 세기와 같이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가정하는 것은 단지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만 잘못인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를 통해 오늘을 보는 시각을 매우 왜곡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먼저 고구려의 영화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결국 고구려의 영화와 번성도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니냐는 허무주의를 낳을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영화를 생각하면서 잠시 도취될 수는 있겠지만 결국 현실은 그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국 허무주의밖에는 낳지 못합니다.

다음으로 그것은 강한 것, 큰 것만을 최고로 여기는 생각을 낳습니다. 그러면서 과거의 영화에만 집착하게 되는 것이지요. 나아가서는 현재에는 강하고 크게 될 수 없으니까 강하고 큰 외세에 영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과거의 영화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과연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생각하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구려가 광대한 영토를 가졌던 것과 수, 당의 침략을 물리친 것에 대해서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요?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를 보면 고구려가 중국의 통일 제국인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략을 잇달아 물리친 것은 중국과 대결하면서 보여 준 발전의 한 모습이었으며, 아울러 백제. 신라까지 지켜 준 민족 수호의 의미를 지닌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 부여를 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고구려가 수와 당의 침략을 물리치면서 과연 남쪽의 백제나 신라를 보호하겠다는 생각을 했을까요? 또 만약 고구려가 수와 당이 침략한 전쟁에서 졌다면 백제나 신라도 함께 멸망했을까요?

고구려와 백제 및 신라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듯이 한 민족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 나라는 작은 부족들이 통합해서 부족연맹국가로 된 뒤, 다시 중앙집권국가를 이루었던 것이지, 원래부터 하나의 국가였던 것이 갈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 나라들은 각자의 이익에 따라 다른 나라들과도 외교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신라가 삼국 전쟁에서 당나라와 연합했던 것은 잘 알려진 일이지만, 백제도 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고구려도 중국 대륙이나 만주 지역의 여러 나라들과 필요에 따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하지만 세 나라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가깝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세 나라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혈통도 가까웠습니다. 세 나라 모두 단군의 후예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언어가 비슷했습니다. 세 나라가 서로 접촉하면서 통역이 있었다는 기록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세 나라는 결국 하나로 되어 우리 민족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면 고구려가 만약 수와 당의 침략을 저지하지 못했다면 백제와 신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역사에서 가정은 용납되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이 역사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교훈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의미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고구려가 수와 당의 침략을 물리치지 못했다면 신라나 백제는 그 때의 국력으로 볼 때 그들의 침략을 막아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구려가 멸망했다고 해서 신라나 백제가 함께 멸망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신라나 백제가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면서 민족을 이루어가는 데는 많은 장애가 따랐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고조선, 삼한, 예, 맥, 부여 같은 여러 부족 국가들이 변화를 거듭하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룩했습니다. 이들은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 흩어져 살았는데, 중국 대륙 주변의 많은 종족들이 끝내는 중국에 흡수, 동화되었지만 우리 민족을 구성한 부족들은 그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민족은 중국 대륙 주변의 민족 중에서 현대까지 오면서 끝끝내 중국에 흡수되지 않은 몇 안 되는 민족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대륙의 강대국과 맞닿아 있던 만주 일대나 한반도 북부에 강력한 국가가 형성되어 중국의 침략을 막아 주는 방파제 구실을 했기 때문입니다. 고조선이나 부여, 고구려가 바로 그러한 나라들입니다. 특히 고구려가 했던 방파제 구실은 결정적인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고구려는 우리 민족이 형성되는 데 방파제 구실을 했고, 그것이 고구려가 역사 속에서 차지하는 의의임을 알았습니다. 칠종칠금(七縱七擒)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갈량이 남만의 맹획을 일곱 번 놓아 주고 일곱 번 사로잡았다는 데서 온 말로 상대를 마음대로 다룬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 중심의 사고입니다. 남만 중심으로 생각할 때 그것은 붙잡혀도 좀처럼 굴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남만은 오늘날의 베트남입니다. 그러한 정신은 현대의 베트남에도 이어져 세계 최강이라고 하는 미국을 상대로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게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학생들에게 제갈량의 신출귀몰한 재주를 가르칠 것이 아니라, 맹획의 불굴의 정신을 가르쳐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고구려가 광대한 영토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중국 대륙의 통일 국가와도 맞서서 싸우는 기개를 갖고 있었음을 자랑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것은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토대로 오늘날 우리가 과연 무엇에 자부심을 가져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반성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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