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한국민권연구소)


이라크 전쟁과 관련한 유엔 결의를 전후한 여론조사의 결과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

유엔 결의 전에는 과반수가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였지만 유엔 결의가 있고 나서는 찬성이 70% 이상을 웃돌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18일 정부가 결정한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도 과반수가 넘게 지지와 찬성을 보내는 것으로 이어졌다.

물론 이러한 결과가 예상치 않았던 것은 아니다. 유엔 결의 전에도 유엔의 결의가 있다면 파병을 찬성하는 여론이 많았다는 사실은 이러한 결과를 예상케 하기도 했다.

이러한 여론의 반전은 많은 이유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유엔 결의를 통해 그나마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에 대한 정당성이 확보되었다는 인식이 그 하나일 것이고, 유엔 결의가 없는 상태였다면 이라크에 파병하는 것이 국가 주권의 심대한 훼손이 될 수 있겠지만, 유엔결의가 있으니까 그나마 심대한 주권 훼손은 아닐 것이다. 즉, 파병은 국제역량과 현실상 어쩔 수 없는 것이므로 유엔 결의가 그나마 우리의 체면을 살려준 것이 아니냐 하는 생각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유엔 결의 이후 파병을 기정사실화 했던 정부와 정치인 그리고 보수언론의 활동이 본격화되었고 그의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특히 대다수 언론은 유엔 결의 이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유엔 결의가 있으면 이라크 파병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 항목을 달아 마치 유엔 결의를 이라크 파병의 전제 조건인 양 호도해왔던 것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엔 결의 이후 바뀌는 여론 조사 결과는 자못 충격이다. 가장 커다란 충격은 조사 결과 자체보다는 유엔 결의에 대해 대다수의 국민들이 잘못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에 있다.

무엇을 잘못 인식했는가. 유엔의 결의라는 것이 이라크 전쟁의 침략적 성격에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대다수의 언론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엔의 결의가 파병의 전제 조건으로 인식케 하는 다양한 여론전을 펼쳤고, 그에 대해 무방비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지금도 반대하고 있는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의 나라들이 유엔 결의 이후에도 그 어떤 추가 파병이나 경비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유엔안보리에서 이라크 전쟁 관련 유엔 결의를 통과시킨 것은 미국의 침략 전쟁에 대한 정당성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일방적인 이라크 전쟁에 대해 그나마 유엔의 역할을 확보하자는 차원의 문제였다. 물론 그 역할이라는 것이 대단히 미미하고 오히려 미국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는 결과가 되어버린 것이지만, 유엔 결의의 의미를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다음으로 잘못된 인식은 비전투병 파병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놓치고 있는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 있다. 물론 비전투병은 직접적인 전투 행위를 하지는 않는다. 즉, 이라크 저항군이나 국민들과 직접 군사적 충돌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전투병 역시 전투 행위에 간여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미국의 침략전쟁 행위에서 다친 병사들을 치료하는 의무병이나 미국의 침략전쟁을 용이하게 하는 각종 시설들을 만들어 내는 공병대나 미국의 전투행위를 도와주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물론 그들의 그러한 역할이 이라크 국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비전투병의 몫과 실질적인 역할은 이라크 국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전쟁에 도움이 되는 후방의 역할을 하고 있는 부분이 더 크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 역시 언론의 역할이 컸다. 언론은 전투병, 비전투병이 마치 전혀 별개의 성격인 양 보도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은 잘못되었다. 전투병이 되었건, 비전투병이 되었건 파병 결정은 잘못이며, 국제 사회의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마치 유엔 결의를 기다렸다는 듯이 파병을 결정한 정부의 태도는 유엔 결의를 심각하게 잘못 해석하였던지 아니면 알면서도 우리 국민을 기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해방 이후 우리는 외세의 강점으로 인해 독립국가를 건설하지 못하고 분단이라는 가장 커다란 민족적 고통을 겪고 있다. 외세의 내정 간섭의 폐해를 가장 크게 본 민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와 같은 고통을 이라크인들에게 전가할 수는 없지 않는가? 우리와 같은 고통을 이라크 민중에게 가하는 일에 ‘일조자’ 나아가 ‘선봉자’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정부의 결정이 파병 문제의 종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파병문제의 최종 결정은 국민이 내려야 할 것이다. 이라크 파병 저지 투쟁은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다. 잘못 결정된 이라크 파병, 국민의 힘으로 반드시 저지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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