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일(한신대교수)


머리말

금년은 단군릉 발굴 10주년 그리고 제 2차 개천절 남북공동행사가 열리는 해이다. 그래서 남북 학자들은 10월 2일 평양 인문문화궁전에서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오전에는 제 2차 남북학자 발표회가 있었고, 오후에는 단군릉 발굴 10주년 기념 자유토론회가 있었다.

▶10월 2일 개천절민족공동행사의 일환으로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남북 공동학술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이철화기자]

특히 오후의 자유토론회 시간은 남북 학자들이 자유로운 주제로 서로 묻고 대답하는 최초로 갖는 자유토론행사였다. 남북이 단군과 고조선 연구에 관한 제한없는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하는 그야말로 자유토론회였다.

여기서는 오전과 오후의 시간으로 나누어 진행된 발표와 토론의 내용을 요약 정리하기로 한다.

1. `대동강 문화` 실체 확인

북측 학자들이 발표한 오전 6편의 논문은 모두 일관되게 `대동강 문화`의 실체를 확인하는 내용이었다. 대동강 문화란 평양 중심의 대동강 유역에 세계 4대 문화와 버금가는 아니 그것 보다 더 오래된 문명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미 북한은 검은모루 유적을 통해 민족 이동설을 부인하고 자생설을 주장해 왔던 터이다. 『조선전사』상고사편은 검은모루 유적지에 이어 덕천 력포 사람, 그리고 승리산 인간으로 이어지는 고대 문명권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한 바 있다.

조선전사는 남측에서 역사를 기술하는 방법과는 달리 인간이 역동적으로 살아오는 생활상 중심으로 서술한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원시무리기,` `초기 모계사회,` `모계사회, 부계사회`와 같이 기술한다. 그러나 남측에서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 온 바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와 같이 인간이 사용한 도구 중심으로 연대기를 분류하는 것이 특징이다. 다분히 남측의 사관에는 실증사학적 연구 방법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발표에서 북측학자들은 평양 주변의 고인돌, 조롱박 단지, 그리고 비파형 동검을 예를 들면서 대동강 유역 문화의 실체를 입증하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남측 학자들은 대동강이 아닌 요동 반도설을 주장하였다.

▶북측은 대동강 유역 문화의 실체를 입증하는데 주력했다. [사진 - 통일뉴스 이철화기자]

이에 대하여 이형구 교수(선문대)는 대동강과 요동이 고대에는 동일 문화권이었다고 했다. 이 교수의 말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요동반도와 대동강 유역을 분리시켜 놓고 요동이 아니고 대동강이라고 하는 주장이나 그 반대로 대동강이 아니고 요동반도라고 하는 주장이 모두 현재의 정치적 지형 구도를 두고 하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요동과 대동강이 모두 단일 문화권으로서 동쪽 문화권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한족 중심의 서쪽 문화권과는 다른 문화권으로서 이 동쪽 문화권의 주역이 단군 고조선이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발표를 통하여 남북의 학자들이 현재의 자기 정치적 입장을 떠난 역사 연구가 얼마나 어렵고 결국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사실이 아니라 지금 현재 여기서 만들어 간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를 자기들의 소수민족 역사로 편입하여 가르치고 있고, 심지어는 한글 마저 한문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마당에 역사는 찾기 쟁탈전의 마당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직도 남측 학자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실증 사학에 사로잡혀 한 치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간 우리 역사를 중국이나 일본에 다 빼앗기고 말 것이다. 더욱이 통일을 앞두고 우리는 중국에 대하여 그리고 일본에 대하여 역사 논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남측의 일각에서는 상고사 문제를 거론하여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을 꺼려하는 분위기 마저 있다.

그런데 북측의 역사 박물관을 방문하면 안내원들이 한결 같이 하는 말이 통일되어 고조선과 고구려의 고토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중국과 인접해 있는 북측에서 도리어 당당하게 잃어버린 만주 땅을 다시 찾자고 하는 데 남측에서 중국 심기 운운하며 말 자체를 금기시하고 있으니 역시 주체적 삶을 살고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많은 영토를 잃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다가오는 통일도 그 과정에서 많은 우리 영토를 잃지 않을지 염려가 된다. 일본이 독도를 넘겨다보고 있고, 중국도 마찬가지로 북방경계의 어느 곳을 앗아가려고 할 것이다. 이 때에 남북의 학자들이 민족적 자각 의식을 가지고 역사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

▶토론회 전날 밤 남측 학자들이 저녁식사 후 토론회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여기서 한가지 지적해 둘 점은 북측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인 손승환 교수가 남측에서 지금 퍼져 가고 있는 민족해체론에 대하여 일침을 가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세계화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민족 담론 자체를 거부하고 심지어는 반통일 그리고 민족해체론을 주장하는 남측 학자들에 대한 우려를 보냈다.

서양에서 민족주의에 대한 반대는 2차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 비엔나 학파의 유대인 학자들 중심으로 제기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민족주의는 히틀러의 나치 민족주의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서구에서 교육을 받은 한국의 학자들이 한국에 돌아와 서구 지식인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내고 있는 데 문제가 있다. 그것도 학술진흥재단에서 엄청난 연구비를 타 민족해체론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강대국의 위협을 받고 있으며, 분단된 현실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자유, 민주주의라는 담론은 공염불에 불과하고 민족 담론 밖에는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던가?

2. `환단고기` 역사적 가치 인정

이번 학술 토론에서 가장 보람이 있었던 것은 그 동안 남측 학계에서 위서로 취급받아 사료적 가치가 없다고 한 『환단고기』를 북측 학자들이 강하게 그 사료적 가치성을 인정하고 나왔다는 점이다.

이는 이미 작년에 김일성종합대학 손영종 교수가 『규원사화』의 사료적 가치성을 인정한 바 있다. 물론 남측에서는 대다수 학자들이 규원사화의 사료적 가치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손 교수의 발표가 있은 후 남측에서 올라간 학자들 간에 손 교수의 주장에 대하여 이견이 생기게 되었다.

다시 말해 고려대학교의 최강식 교수가 역사비평(2002. 12)에서 손 교수가 규원사회만을 인정했고 환단고기는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 데 대하여 필자는 손 교수가 일단은 규원사화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지만 앞으로 환단고기도 같은 방법으로 연구하면 사료적 가치가 인정된다 하였다고 보았다. 사실 이번 방북의 큰 목적 가운데 하나는 최 교수와 필자 사이의 이견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토론회를 마치고 기념촬영. [사진 - 통일뉴스 이철화기자]

이에 앞서 2001년도에 금강산에서 있었던 6.15 공동선언 1주년 기념행사에서 필자는 사회과학원 원장 허종호 교수를 만나 환단고기 문제를 심도 있게 토론을 한 바 있다. 그때에 허 교수는 남측 학자들이 환단고기를 왜 위서라고 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했다. 북측에서는 이들 위서라고 하는 사료들에 대하여 문헌 비평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중이며 지금 상당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그 결과가 2002년도 제 1차 학술발표회에서 손 교수가 가지고 나온 논문이라 할 수 있다.

이 논문은 최근호 남측 단군학회지에 실려 있다. 여기서 이 문제에 대하여 북한 학자들의 입장을 명확하게 정리해 둘 필요가 있어서 안동대 임재해 교수의 현장 기록을 중심으로 적어 두려 한다. 그리고 더 분명한 것은 통일뉴스에 의하여 전 토론 내용이 녹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우선 임 교수의 기록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려 한다.

환단고기에 대한 북측 학자들의 의견을 물은 질문에 대하여 북측 손승환 교수는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김상일 질문: 규원사화와 환단고기의 사회적 가치를 북에서는 어떻게 보는가? 

손승환 선생의 답변내용(안동대 임재해 교수 현장 기록): "위서라 생각하는 환단고기와 삼성기등을 몽땅 위서로 보는가, 아니다. 일부는 그렇다. 특히 규원사화는 상당부분 인정할 만한 사료이다. 신빙성 있는 자료가 적다고 하더라도 백제의 건국연대도 고고학적 성과를 참조해서 볼 때에 일치한다. 고고학적 방법,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검증되는 것은 철저하게 자료로 이용할 수 있다."

손 교수의 이 말은 손영종 교수의 말과 일치하는 것으로 환단고기에 대한 사료적 가치를 북측하자들이 인정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오후 발표 후 남측 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또 다시 이 문제가 논란이 되었으며 한결 같은 주장은 손 교수가 환다고기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렇게도 역사란 인간의 현재적 사고와 감정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지? 아무튼 이 문제는 독자들이 위 임재해 교수의 녹취록을 통해 판단할 문제이다.

그 날 저녁 이 사실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필자는 연회 석상에서 정영훈교수, 이형구교수 그리고 필자가 허종호 교수를 만나 다시 다음과 같이 확인하고 기록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2003년 10월 3일 양각도 호텔 식당에서 (정영훈, 김상일, 이형구, 허종호 4인)

▶토론회를 마치고 저녁식사 자리에서 북측 허종호(왼쪽) 교수와 한단고기에 대한
입장을 재확인 하고 있는 필자(오른쪽).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기자]

김상일: 한단고기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듣고 싶다.

허종호: 사료적 가치가 있는 것이 있다. 그 안에도 전승에 기초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이 있다. 역사 자료가 하나도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이것 저것 다 버릴 수는 없다. 한단고기 속에 신비적인 것이 있지만 그런 것을 골라내면 사료적인 것도 있다. 신비적인 것이 있다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 마저 다 버릴 수는 없다.
   
물론 우리가 북측 학자들의 주장에 따라가기 위해서 이런 장황한 기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식민사관에 찌들어 되도록 우리 역사를 줄이고 있는 것은 말살하려는 남측 학계의 관습화되어 있는 현실을 고발하기 위한 것이다.

10월 2일 오후 토론회가 끝난 다음 역사 박물관을 방문했다. 우리는 그때에 박물관 벽에 환단고기에 나오는 단군 47대 왕들의 목록을 그대로 명시해 적어 놓은 것을 보았다. 이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북에서 규원사화와 환단고기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암시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 밖에 남측 학자들은 단군릉 조사에 탄소동화법을 사용하지 않고 전자상자공명법을 사용했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하여 북한 학자들은 전자상자공명법이 단군릉 조사 방법에는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결론

내년 학술대회는 남측에서 개최할 것을 제의하였다. 이에 대하여 개천절 행사는 단군릉이 있는 북측에서 하는 것이 좋다고 대답했다. 이번 개천절 행사는 남에서 300명이 참가했다. 북측에서도 다른 어느 행사보다도 민족 공조를 해 나가는 데 필요한 것이 개천절 행사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개신교, 천주교 그리고 민족종교 대표들이 대거 참가한 이번 행사는 단군이 과연 單君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년 보다 발전된 학술토론회는 남북 학자들이 공동으로 같은 주제로 연구할 수 있은 실마리를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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