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중선(통일뉴스 논설위원)


2000년 8.15 광복절은 매우 의미 있는 민족 경축의 날로 기록될 만 했다. 왜냐하면 그 동안 분단 상황에서는 남과 북은 물론 이남에서는 민과 관이 각각 다른 장소와 형태로 8.15행사를 하면서 그 추구하는 내용이나 목적이 다른 행사를 진행해 왔던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8.15축전 행사는 해방 후 55년만에 처음으로, 비록 같은 장소는 아니더라도 남과 북 그리고 이남의 정부 당국이나 재야통일운동 진영, 그리고 해외동포들까지 포함한 온 민족이 6.15남북공동선언의 `이행과 실천` 및 `지지와 관철`, 그리고 민족화해와 협력을 내용으로 한 다채로운 축전행사가 진행되었고 민족의 자주와 평화적 통일을 향한 실천적 결의를 다졌던 것이다.

이와 같이 이번 8.15행사가 전민족적 행사로 될 수 있었던 것은 분단 후 처음으로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할 것과 연합제와 연방제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갈 것, 그리고 민족화해를 위한 각종 남북교류의 활성화 조치들을 합의한 `6.15남북공동선언`의 결과였다. 이는 또 민족적 양심을 지닌 애국자들이 그 동안 민족의 화해와 자주 그리고 평화적 통일이라는 민족적 당위를 실현하고자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6.15공동선언이 전민족적 지지와 환영을 받고, 또 각종 형태로 민족화해를 바탕으로 한 남북교류들이 이루어지고 있고, 과거의 `7.4공동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와는 달리, 민족 통일의 새로운 역사적 전환점으로 되는 실천적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6.15공동선언 자체가 지니고 있는 한계점도 있고, 또한 공동선언이 올바로 실천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할 과제들이 적지 않게 가로놓여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6.15남북공동선언은 통일과 평화문제를 분리하고 있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남과 북이 상호적대관계를 해소하는데서 필수 조건인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의 선행조건에 관한 합의가 없다는 점이다. 남과 북은 3년간의 치열한 전쟁을 치른 적대국 관계였고 그 이후 50년 가까이 휴전협정 체제가 지속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나 합의가 없었다는 것은 자주적 평화통일을 향한 공동성명으로서는 결정적인 한계점일 수밖에 없다. 현 상황에서 군사적 긴장완화 문제와 관련한 합의가 없이는 민족의 평화는 보장될 수 없고, 평화에 관한 보장 없이는 남북공동선언의 합의들이 과연 올바르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행되어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음으로, 겉으로 내놓고 남북공동선언을 반대할 수는 없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세력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6.15남북공동선언 발표에 대해 `친북행위 운운`등으로 매도하는 것 등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분단을 지탱시켜온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법률적 제도적 장치들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말해 준다.

뿐만 아니라 일부 계급운동 진영에서는 남북공동선언에 대해 "현재 진행되는 남북한 관계 개선은 철저히 신자유주의적 흡수통일정책에 입각하고 있다"며 앞으로 "남한 민중들에게는 엄청난 고용위기가 몰아닥칠 것이고, 북한 민중들에게는 트로이 목마처럼 다가온 자본의 노동착취가 자행될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진보진영은 친자본 통일정책 철회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6.15남북공동선언이 민족화해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갈망하는 전민족적 기대를 충족시켜갈 수 있기 위해서, 또한 `평화공존`만이 아닌 `평화통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과제들이 극복되어야만 할 것이다.

첫째, 냉전시대에 대한 자기 반성을 통한 냉전의식의 불식이다.
분단 반세기는 비이성적이고 편협한 냉전의식을 강요해 왔고, 그것은 민족화해를 가로막고 동족에 대한 적대감정만을 고취시켜 분단지속의 밑거름으로 작용해 왔다. 이제 남북화해 시대로 진입하는 전환점에서 우리 모두는 냉전시대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에서부터 출발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루빨리 자기 내부로부터의 냉전의식을 불식시켜버리는데서 가능하다. 그러한 자기 노력 없이는 진정한 민족화해를 기대할 수 없다.

둘째, 자주적 평화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당면한 과제들을 극복해내야 한다.
동족을 적대하여 민족통일의 걸림돌로 되고 있는 법률적 제도적 장치들을 그대로 존속시키면서 민족화해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약속하고 그것을 이행하겠다고 한다면 그 중의 어느 하나는 거짓일 수밖에 없다. 전민족 앞에 남북의 정상이 합의한 사항을 성실하게 실천하기 위하여서도 냉전시대의 유물들을 하루빨리 폐기시키는 일은 당연한 귀결이다.

셋째, 각종 형태의 남북공조체제를 확립하여야 한다.
냉전시대에는 남과 북이 적대하면서 각각 외세와의 동맹관계를 맺고 대립해 왔다. 그러나 이제 남북화해의 시대에는 당연히 외세와의 동맹관계를 청산하고 남북민족간의 공조를 이루어 외세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지금 자주적이고 평화 통일의 핵심적 걸림돌이 되고 있는 외세 문제와 한·미·일군사공동체 해체문제 등은 오직 민족공조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1990년대 초 남북고위급회담 과정에서도 대일문제와 관련하여 북측에 의해 남북공조문제가 제기된 바 있고, 최근 분단 후 최초의 남북외무장관 회담에서도 유엔에서의 남북공동발의 문제에 관해 일정한 합의를 이루어 냈다는 사실은 남북공조문제가 가능한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오늘의 이 시점에서 우리의 민족구성원 모두가 총력을 집중하여할 과제는 가장 먼저 냉전시대에 대한 철저한 자기 반성의 기초 위에서, 민족화해를 가로막는 법률적 제도적 장치들을 제거해 내고, 민족끼리의 단합을 통한 민족화해와 자주적 평화통일의 길을 도모해야만 한다.



▶노중선 논설위원

노중선 논설위원 약력

충남 공주 출생
고려대학교 노동교육과정 수료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간사 겸 연구원
고려대학교 노동교육원 강사 역임
평화통일연구회 상임연구원
통일자료실 대표 (현)
4월혁명회 사무총장 (현)
통일뉴스 논설위원(현)

저서

『民族과 統一』(사계절 출판사, 1985)
『4·19와 통일논의』(사계절 출판사, 1989)
『現段階 統一方案』(공저, 한백사)
『남북한 통일정책과 통일운동 50년』(사계절 출판사, 1996)
『남북대화 백서 - 남북교류의 갈등과 성과』(한울아카데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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