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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의 날 55주년 기고> 민족의 군대로 다시 태어나길 - 김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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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3.09.26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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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석 (군사평론가/`반갑다 군대야` 지은이/hiarmy@orgio.net)


북진을 기념한 국군의 날 

10월 1일은 55살 먹은 국군의 날.

"1950년 9월 29일 오후 2시 이승만 대통령은 대구에 있는 육군본부에서 정일권 3군 총사령관에게 북진을 명령했다. 이어 9월 30일 정 총사령관으로부터 38선 돌파명령을 받은 제1군단장 김백일 준장은 38선 이북 진출을 위한 작전병령을 하달했다.

이 명령에 따라 국군 제3사단은 23연대를 선봉으로 10월 1일 오전 5시 인구리 북쪽진지에서 38선을 넘어 양양을 향해 진격했다. 이것이 최초의 38선 돌파다."(국방일보 2003년 9월 26일, 5면, `제40주차 기본교재, 『시사안보교육』「국군의 날 제정의미」에서)

국방부 정훈공보관실이 제공한 이 글에서 10월 1일은 잘 알다시피 북진을 기념해 국군의 날로 제정했다는 설명이다. 올 10월 1일은 특별히 국군의 시가행진도 잡혀있고, 육군은 10월2~5일까지 대전 계룡대와 육사에서 지상군 페스티발 2003행사를 할 예정이다.

잔치에 재를 뿌릴 생각은 없다. 국군의 날도 좋지만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나중인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자 보자

북에 대한 `찔러, 베어, 때려, 돌려 쳐`는 계속되고

15년전, 1988년 10월 경 21살의 한 젊은 신세대 사병이 몸을 던졌다.

"군부독재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아니 상반되게 던져온 한 장의 소집통지서! 기껏 폭력적 지배방법, 법적 표현에 불과한 소집통지서와 이 조국산천의 검은 얼굴, 돌멩이 하나 하나에도 서린 통일 의지를 안고 달려갈 조국순례 대행진 참가신청서 사이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감동의 차이를 감내하며 저는 그저 폭력통지서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한 동포를 상대로 한 찔러, 베어, 때려, 돌려 쳐를 배우고 사격술을 배우고 난 뒤… 제게 떠 맡겨질 임무는 방위병으로 M-16 소총을 들고 탄약창고를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고 양영진 추모사업회발행, 「사랑하는 내 사람들에게」,『식민의 땅에 들불이 되어』, 1988. 11. 일자에서)

위의 글은 1988년 10월 10일 조국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가득 담은 유서를 움켜쥔 채 부산대학교 재료관 5층 옥상에서 투신한 양영진 이병의 유서 중 일부이다. 1988년은 남북이 분단된 지 43년째 되던 해이자, 조국통일을 앞당기려는 청년학생들의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달아오른 해였다.

그 해 8월 15일에는 남북의 청년학생이 한자리에 모여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논의하려는 남북학생회담이 열릴 예정이었고, 양영진 이병은 그 준비의 일환인 조국순례대행진에 참가할 것을 마음먹고 있었다. 

통일을 앞당기는 데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려고 바쁘게 일하던 양영진 이병은 뜻하지 않은 영장을 받게 되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북한 동포는 우리의 적이다`라는 정신교육과 북한 동포를 `찌르고, 베고, 명중시키라`는 군사훈련이었다. 분단된 조국에서 태어났지만 조국의 갈라짐이 싫어 통일조국을 열망하는 한 젊은이의 고뇌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그가 며칠 밤을 뒤척이며 괴로워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나? 유서의 내용으로 짐작하면 그를 괴롭히던 문제들은 "북한 동포는 우리의 적인가 아니면 말 그대로 같은 민족인가?"라는 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55년 전 북진을 기념하던 국군의 날에 15년전 유명을 달리한 국방열사 양영진 이병을 떠올리는 것은 왜일까.

2000년 6월 15일, 남북공동선언이 있던 날 군대가 제일 충격에 빠졌을 것이다. 남북의 군 통수권자가 서로 껴안았으니 말이다. 그 뒤 군대의 변화는 가히 놀랍다. 하지만 실제 피부로 느끼는 건 아직 멀었다.

물론 경의선이 뚫리고, 장관급회담이 열리고 있지만 지난 날 육군 전방부대 철책선에선 "한 마리 잡자"(한 사람도 아닌) 구호에서 2003년 9월, 철책선 주변 전봇대에는 "간첩 꼭 잡자"라는 노란 글씨의 구호로 바뀌었을 뿐이다. 같은 동족끼리 간첩이 어디 있단 말인가?

지금도 철책선에서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양영진 이병들의 후배들은 시대변화에 맞게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군인의 임무는 조국인 이 땅을 다른 민족의 침략이나 간섭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지 같은 민족에게 총부리를 돌리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나… 지금 나는 통일을 향한 모든 민족의 열망을 반대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고민할까.

아니 고민 할 시간이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병들이 아침저녁으로 외워야 했던 `군인의 길`이라는 것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나의 길은 통일에 있다. 기필코 공산 적을 쳐부순다!" 

대부분이 이런 식이다. 북한 동포는 대화의 상대나 통일을 이뤄야 할 같은 민족이 아니라 오로지 무력으로 쳐부숴야 할 적이라는 주적 개념! 민주화운동 운운하는 자들은 모두 북한의 동조자이기 때문에 우리의 적이라는 논리! 이것이 군대에서 허용되는 유일한 사상이지 않을까.

인간의 얼굴을 한 국군을 바라며 

국군의 날을 맞아 지난 55년 동안 한국군이 사병들에게 가한 반인륜적인 인권탄압에 대해 참회어린 대국민 반성과 사죄가 따르는 국군의 날을 촉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군개혁은 공염불일 뿐이다.

10월 1일, 55주년 되는 국군의 날. 50살은 지천명(知天命)! 쉰 살에 드디어 하늘의 명을 알게 된다는 뜻인데 하늘의 뜻을 안지 5년이 더 지났다. 백성의 뜻이 하늘인데 과연 한국군 지도부는 백성인 사병들의 아픔을 얼마나 귀담아 들을까. 스스로 물어보지만 여전히 아직 멀었다. 다만 최근의 군 변화는 지금껏 한국군이 55년 동안 보여준 구태의연함을 조금씩 벗어 보려는 몸부림으로 보인다. 두고 볼 일이다.
 
육군은 2003년 8월 5일 성희롱과 성추행 등 성군기 위반 행위를 금지하는 `병영생활 행동강령`을 육군 일반명령으로 4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어 열흘 뒤에는 최근 잇따른 병영 내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고참 사병들이 후임병들에게 명령이나 간섭을 일절 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은 `사고예방 종합대책`을 수립했다.
 
특히 `사고예방 종합대책`은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일부 젊은이들의 비판도 있지만 다른 일부에서는 육군참모총장의 오랜 야전군 생활에서 우러나온 고뇌에 찬 군개혁으로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국방일보 2003년 9월 3일자 표명렬 전 육군 정훈감 기고글)
 
하지만 55년 동안 숱한 `사고예방 종합대책`이 나온 가운데 2002년, 2003년에도 하루에 1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군대에서 죽어가고 있다. 국군의 날, 보무도 당당한 시가행진 사이로 비상시나 전시도 아닌 때 1년에 300여명, 자살자가 100여명, 정신질환자가 5,000여명의 국방 젊은이들이 군대에서 앓고 있다.
 
이것은 한국군대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9·11사건이다, 테러다 하면서 부시 입만 쳐다보고 있을 때 그것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80년대부터 한국군대에서 잃었다. 1980년부터 지금까지 1만 5천명이상의 사병들이 강제징집, 녹화사업, 군기사고, 안전사고, 타살로 죽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오창래 위원에 따르면 가히 한 해에 국지전이 한번 일어난 피해다. 피와 케찹을 구분 못하게 하는 제국주의 여론조작에 놀아난 결과 몇 명 죽은 것은 간에 기별도 안가는 건가.
 
민족의 군대로 다시 태어나길

60세, 이순(耳順)을 향해가는 한국군! 이 나이테에는 생각하는 모든 것이 원만하여 무슨 일이든 들으면 곧 이해가 되어 스스로 자주의 시대, 참여의 시대에 맞는 한국군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 60살, 이순(耳順)을 향해 가는 한국군에게 국군의 주인인 국민이 외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국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미국에게 뺏긴 나라에서 2001년 아프간 침략전쟁에 비전투병 파병, 2003년 이라크 침략전쟁에 의무병 파병, 이도 모자라 이라크 침략전쟁에 올 10월 말 안에 사단규모의 병력 파견에 내몰린 한국군을 향해. 
 
한국군은 2004년 국방예산증액 방침을 철회하고 이라크 침략전쟁에 대한 파병계획을 중단하라고, 그래서 이제 6·15공동선언 이행과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에 힘쓰라고.
 
지금도 휴전선 155마일에서 하루 24시간 씩 `아무 생각없이` 촘촘히 철책선 근무를 강요하는 무식하고 봉건적인 군사전략을 하루바삐 바꾸라고.
 
그래야 72만 장·사병의 권리를 바로 세우는 정치·군사적인 환경이 조성된다. 그래야 한국군대가 두 발로 스스로 서는 군대가 될 수 있다. 이때 `분단병`의 희생자인 군의문사, 성폭력, 탈영, 정신질환, 구타사고는 찾아보기 힘들고 부모들이 군에 자식들을 마음놓고 보낼 수 있게 된다.

지금 시가행진에 참여하고있는 양영진 이병들의 후배들에게 보낸다. 양영진 국방열사 유서 일부를...

"지금 군대가 강요하는 일은 애국애족을 위해 살 것을 결심한 나로서는 따를 수 없는 죄악이다. 군인의 신분으로서 민족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할 수 없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 해야하는 것은 목숨을 던져서라도 군대의 반 민족성, 반 통일성을 고발하고 통일을 위해 봉사하는 군대, 민족의 군대로 다시 태어나야 함을 절규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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