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 민족주의`와 맞물린 평화패러다임


정세진(중앙대 민족발전연구원 교수. jsjpol@hotmail.com)


파병문제가 또 다시 부각되는 시점이다. 사실 지난 봄 파병을 둘러싼 논란도 현상적으로는 갈등이 두드러진 것 같지만, 대내적으로 한국민주주의의 새로운 실험, 혹은 질적 발전이며, 대외적으로는 `폐쇄된 민족주의`가 아니라 `열린 민족주의`를 새롭게 발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오랜 권위주의의 관성으로 파병뿐만 아니라, 다른 외교사안이나 일반 사회 현안들에 있어서도, 생각이나 관점 차이 같은 그야말로 똑 같을 수 없는 본질을 지닌 문제들에 대해서도, 갈등이 없는 것처럼 강제, 억압하는 측면이 적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국론 통일`, `국론 분열`과 같은 권위주의적이고 냉전적 용어를 들 수 있다.

사실 민주사회에서는 성립될 수 없는 용어 아닌가? 脫권위주의인 시점에서는 그러한 입장의 차이나 갈등을 은폐하거나 없는 것처럼 강제할 것이 아니라, 분명하고도 충분하게 드러냄으로써, 치열한 `논쟁거리`로 만들 필요가 있다. 특히 외교적 사안일 경우, 다양한 논의흐름 자체를 대외협상의 지렛대(bargaining chip)로 활용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제는 이념적 편차를 떠나 시민사회 영역(civil society. 비국가적이고 비경제적인 제3의 공적 영역 일반을 지칭)에서의 다양한 활동들에 대해 좀 더 여유 있고 관대하게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우리 한국인들은 오랜 기간 국가권력에 의한 권위주의적 통치, 혹은 위로부터의 일방적 통치에 익숙해 일반 시민들이 公的인 문제(public affairs)에 대해 나름의 목소리를 내는 일에 문화적으로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그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이는 적절한 수준의 민주주의 유지에 있어 하나의 필수조건임을 새겨 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많은 이들이 통일문제에 있어, "보혁갈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엄살`을 부리지만, 사실 우리 시민사회 차원에서 필수적인 정책적 경쟁이 이제서야 막 시작된 시점이 아닌가. 우스꽝스런 예일 수 있지만, 70년대 박정희, 육영수 두 분의 사망시, 많은 국민들은 `국가의 아버지, 어머니`(國父, 國母)가 서거하셨다는 신민적(臣民的) 정서하에 엄청난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가.

반면 지금 21세기, 대통령을 지낸 양김씨가 돌아가신다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이가 눈물을 훔치겠는가. 그만큼 탈권위주의로 변화되었기 때문에 그만한 세월의 변화에 걸맞는 시민적 참여의 덕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오랜 기간 망각해왔던 참여라는 시민(citizen)의 덕성이 복원, 생활화되어야 할 때다.    

지난번 민족적 정체성을 자극한 월드컵의 경우, 평화적 방법으로 진행되는 근대국제정치의 한 측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은 사실 민족을 상상하고 내면화하게 하는 일종의 근대적 발명품이지 않은가. `붉은 악마`나 `촛불시위`를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 민주주의 확장을 함축한다. 아울러 중요하게는 세대변화를 통해 "외교적 자율성" 혹은 "자율적인 새로운 외교정책"(more independent foreign policy)에 대한 소박한 갈망이 분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이제 남은 일은 붉은 악마와 촛불시위라는 새로운 틀거리를 통해 촉발된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원초적 욕구, 혹은 `외교적 자율성`에 대한 욕구를 어떻게 다른 국가, 민족과의 관계속에서 구체화, 현실화시켜 나갈지의 여부일 것이다. 이를테면 최소한의 민족적 정체성 회복과 아울러 他者와의 순조로운 공존을 가능케 하는 `열린 민족주의`로의 발전여부일 것이다. 이러한 내용물을 채워줄 핵심은 글로벌시대 각 국가, 민족간의 공존을 가능케 하는 `최소 공배수`로서의 새로운 `평화정신`이요, `평화문화`일 것이다. 평화문화에 대한 접근은 기존의 편협한 국민국가 단위의 인식을 발전적으로 넘어서는 것이 요구됨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번 정부의 이라크전 파병은 대단히 편협한 현실주의 논리의 적용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시민사회 차원에서 볼 때,  이라크 지역에서 6개월간 활동한 "이라크평화반전팀"의 활동은 이같은 "열린 민족주의와 맞물린 새로운 평화패러다임"의 모색에 있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여섯살배기 아들을 남겨둔 채 인간방패 대열에 합류했던 임영신씨는 자신이 한국군의 이라크 파견에 반발해 국적포기를 선언하던 당시의 비통함을 토로한 바 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수만의 생명들이 피로 대지를 적시는 이 죽임의 땅에서 다시 우리의 이익을, 진실을 말하는 대신 비굴한 파병을 결정하는 한국의 정부를 통해 저는 어떤 이익도 얻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전 필자가 만난 반전평화팀장 최혁 선생의 얘기도 눈에 선하다. "상식적으로 이라크 보통 사람들의 기준에서 접근하자"고 말이다. 이제 이러한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라크에 평화교육센터를 만들고, 팔레스타인 평화팀도 파견할 것이라고 한다. 평화, 반전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운데, 국경을 뛰어넘는 우리 시민사회의 질적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최근 우리 시민사회의 역할을 새삼 일깨워 주는 훌륭한 사례를 볼 수 있다. 지난해 있었던 차세대전투기(FX) 선정 의혹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의 꾸준한 문제제기가 없었더라면, 국방부 주장대로 그냥 묻힐 뻔했던 사안이다. 안보정책에 있어서도 정부 차원이 아닌 시민사회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보잉사의 F-15K 전투기가 성능과 가격 모든 면에서 다른 기종보다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입하도록 하기 위한 압력이 존재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선정과정과 관련, 시민단체들은 감사(監査)를 청구한 바 있는데, 최근 기종평가가 잘못되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감사원은 "기종평가가 부적정했으며, F-15K 엔진 구매 계약이 원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체결되었다"고 밝혔다.

감사 결과 가운데 극히 일부지만, 그것만으로도 FX 사업의 기종 평가가 처음부터 투명성과 공정성을 상실하였다는 시민사회단체의 주장이 정당하였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공적 문제에 참여하는 덕성있는 시민의 역할을 보여준 좋은 예다. 안보정책과 관련, NGO 차원에서의 집단적 감사청구는 사실상 초유의 일일 것이다.

이제 한반도는 과거 `우리라는 정체성` 형성을 왜곡시켜온 냉전문화의 발전적 해소와 이를 대신할 만한 새로운 `평화문화`의 형성, 발전이 가장 중요한 당면 과제일 것이다. 냉전질서의 극복은 새로운 사회질서의 형성뿐만 아니라, 정치공동체로서 한국의 새로운 정체성 형성을 의미할 것이다. 이처럼 `평화 만들기`라는 맥락에서 볼 때, 정부 차원 못지 않게 우리 시민사회의 역할과 발전 가능성에 우선적으로 주목해보지 않을 수 없다.

평화, 통일문제에 있어서 국가 이외의 새로운 행위자로서 `시민사회의 재발견`과 특히 올 봄 파병논란 이래 `반전평화(反戰平和) 운동`이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군을 대신한 전투병 파병`이라는 `가당찮은` 장벽을 돌파할 시민적 지혜를 결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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